17. 옛 기억 하나
토요일 아침,
지담은 야근을 무리하게 한 탓인지, 몸이 무겁고 열도 나는 것 같았다.
식욕이 강하던 지담도 아프니까 입맛이 없었다.
좀 더 자고 일어나, 약국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핸드폰 알림음이 울렸다. 스케줄 알림음이었다.
-참 오늘 약속이 있었지-
아무래도 약국은 가는 길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지담은 욕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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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먼저 도착한 지담은 창가 쪽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서지담 씨?”
얼핏 보아도 미인인 중년 여성이 다가왔다. 언젠가 본 적 있는 수훈의 어머니였다.
“네, 서지담입니다”
지담은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권 여사는 지담을 위에서 아래로 쭉 훑어보더니 지담의 맞은 편에 앉았다.
차를 시킨 후에도 아무 말이 없던 권 여사가 차를 천천히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보자고 했는지 짐작이 가나?”
가라앉은 권 여사의 목소리에 섬짓한 지담은,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대답을 했다.
“아뇨... 절 왜 보자고 하셨는지 짐작이 안 갑니다”
“그래? 난 짐작 하는 줄 알았는데...”
“수훈이 때문 이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사귀는 사이가 아닙니다”
지담은 권 여사의 화려한 외모와 권위적인 말투에 주눅이 들었다.
그래서 겨우 말을 마쳤다.
더군다나 빈속에 약을 먹어서 그런지 머리도 어지러웠고 속도 울렁거렸다.
“사귀는 사이가 아니다?..... 그래 그건 내가 원하는 바야.... 근데 지금 내 아들이 너 때문에 엉망 진창이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네가 내 아들을 거절해서 지금 상태가 말이 아니라고...”
권 여사는 뒷조사를 시킨 사람에게 수훈이 왜 요즘 술을 자주 마시는지를 전해 들었다.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 네 까짓게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근데, 도대체 내 아들을 어떻게 홀렸기에 애가 저 모양이지?”
“네~에?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은데요”
그때 권 여사가 물 잔을 들어 지담의 얼굴에 물을 쫙~~~부어 버렸다.
시선이 일제히 권 여사와 지담에게 집중되면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말씀이 지나쳐? 네가 내 아들에게 한 짓은 지나친 게 아니고?”
지담은 휴지로 얼굴을 대충 닦고는
“수훈의 마음을 거절한 게 잘못이라면..... 후~~지나친 게 아니라고.... 봅니다. 어차피 수훈이와 제가 사귀는 건 원하시지 않잖아요...아..윽.. 근데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지담은 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어갔지만, 등줄기에 식은땀이 자꾸만 나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머릿속에는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잘 못 한 게 없.다. 라... 처음부터 그 반반한 얼굴 믿고 내 아들을 홀리지 말았어야지... 역시 없는 것들은 따박따박.. 한 마디를 안 져... 그게 그 알량한 자존심인가?”
“그게...읏....무...슨...어윽..반반....한.....하...학....윽”
지담은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가픈 호흡을 몰아쉬며 말을 하려 했지만 잇지 못했다..
반반한 얼굴이라는 권 여사의 말에 권 여사의 얼굴이, 지담의 할머니 얼굴로 오버랩 되면서 옛 기억이 지담의 머릿속을 스쳤다.
‘반반한 얼굴로 내 아들 꼬셔서 이 집안에 들어왔으면 할 일은 해야지, 이 망할 것’
할머니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호통을 치는 모습이 지담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 기억에 더욱 숨이 찬 그녀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지만,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누가... 나.... 좀....-
지담은 진심으로 누군가 나타나 주기를 바랐다.
“이게 어디서 생쇼야?”
권 여사는 지담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거짓말처럼 누군가 지담의 앞에 나타났다.
“서 지담 괜찮아? 일어날 수 있겠어?”
-누구?-
말할 힘도 없는 지담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현기증이 나서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서지담, 지담아 정신차려!”
지담을 안고 나가려는데, 권 여사가 뒤에서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이봐, 보아하니 아는 사이인 것 같은데, 그 아가씨 나하고 말하기 싫어서 생쇼 하는 거니까 내려 놓지”
“지금 뭐라고 하는 겁니까? 이 여자 쓰러진 거 안보입니까?”
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그녀를 안고 호텔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담을 안고 나간 남자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커피숍 안에 있던 사람이 권 여사 쪽으로 시선이 모아졌다.
그 덕에 권 여사는 아무말도 못하고 지담과 그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서지담, 정신 차려!...서지담!”
몹시 불안한 얼굴을 한 그 남자는 지담을 여전히 안은 체 택시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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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은 아버지의 터무니없는 약혼 소리에 선호에게 연락을 했다.
아무래도 연호 오빠인 선호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나야, 오늘 시간 돼?”
선호가 전화를 받자마자 강현은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해?”>
“정말 무슨 일인지 넌 모르는 거야?”
<“연호 때문에 그래?”>
“그래, 그래서 오늘 시간 되냐고...”
<“세시에 호텔로 와...한 시간정도 시간 비니까”>
“알았어”
앞에 사고가 났는지 호텔에 10분 정도 늦게 도착한 강현은,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그곳엔 낯익은 여자가 가슴을 부여잡고 웬 낯선 여자랑 앉아 있었다.
-서 지담?-
이곳에 온 목적을 잊어버린 듯, 강현은 성큼성큼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
확실히 서지담 그녀였다.
그런데 그녀가 이상했다. 한 눈에 보아도 아파보였다.
“서 지담 괜찮아? 일어날 수 있겠어?”
강현은 쓰러진 그녀를 끌어안았다.
“이봐, 보아하니 아는 사이인 것 같은데, 그 아가씨 나하고 말하기 싫어서 생쇼 하는 거니까 내려 놓지”
“지금 뭐라고 하는 겁니까? 이 여자 쓰러진 거 안보입니까?”
하고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나와서 택시를 탔다.
그때 호텔로 들어가던 한 여자가 그 두 사람을 얼핏 보고는 다시 들어가려다 말고 뒤돌아보았다.
“강..현...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