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무실 분위기는 조용해졌고 각자의 책상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때 연우가 메일을 확인하고 두 사람에게 말한다.
"스티브 정이 오늘 저녁에 같이 식사를 하자는데 다들 괜찮아"
"약속이 있어도 취소를 해야지"
"슬비 넌 그냥 집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왜 그래 슬비도 우리 회사 직원인데"
"아무래도 술도 마시게 될 것 같은데 슬비 혼자 여자인데 괜찮을까"
"지금 자기 여자라고 보호하는 거야"
"일종의 그런 셈이지"
"알았어요. 전 빠질 테니까 두 분은 먼저 가보세요"
"그래 같이 퇴근하지 뭐 가자"
그렇게 세 사람은 사무실을 나왔다. 연우와 치훈이 차를 타고 만나기로한 약속 장소로 가고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슬비.
피곤했는지 버스 안에서 잠이 든 슬비가 눈을 떠보니 버스는 내려야 하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고 있었다. 급히 벨을 누르고 근처 정류장에서 내린 슬비 여기가 어딘지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이 학교를 다니면서 환승했던 그 버스 정류장이었다.
오랜만에 온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슬비는 생각에 잠긴다. 의자에 앉아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비가 내린다. 폰을 꺼내서 연락처를 보다가 연우와 건우 이름이 보이고 망설이다 집으로 전화를 걸려고 하다가 손가락 터치가 미끄러지면서 건우 이름으로 통화가 눌러졌다. 순간 너무 놀라 취소버튼을 눌렀지만 건우의 폰에는 부재중 전화로 뜬다.
슬비의 이름을 보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었다. 건우의 이름이 뜨자 고민을 하던 슬비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지금 어디야"
"말해 줄 수 없어 내가 말하면 넌 찾아 올 거잖아"
"아직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좋아 그럼 말해줄게 너와 내가 처음 만난 곳"
"왜 거기에 있는 건데"
"버스에서 졸다가 내리니까 여기였어"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린 거야"
"아니거든 오늘 스티브 정 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긴장을 하다가 풀려서"
"스티브 정?"
"응 계약 성사 기념으로 회식한다고 연우오빠와 치훈사장님은 갔어"
"그런데 넌 왜 안 갔어"
"연우오빠가 남자들만 있는 곳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서 나 역시 그러는게 좋은 것 같아서 안 갔어"
"지금 연우형이 널 아낀다고 착각하는 거야"
"뭐 그런 것 아니야"
"그건 널 아끼는게 아니라 무시한다는 생각은 안해봤어"
"또... 또..."
슬비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저 멀리서 슬비가 타게 될 버스가 오고 의자에 앉아있는 슬비가 일어난다. 버스가 앞에 서고 문이 열린다. 슬비가 계단에 발을 내딛으려고 하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끌어 당기며 안는다.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건우의 이마에 땀이 맺혀 슬비를 안으며 서 있다. 버스는 그냥 문을 닫고 도로를 달리고 슬비는 건우의 품에서 떨어진다.
"너 미쳤어 그러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내 걱정하는 거야"
"두번 다시 나로 인해 다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
"그렇게라도 너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난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
"도건우... 너... 결국 날 찾아왔어"
"도건우를 찾습니다 종이가 여기에 붙었던가?"
"이미 지난 일이야"
"그때 유치한 노래도 불렀는데 뭐였지?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슬비우산 연우우산 도건우우산 좁다란 골목길에 우산 세개가 이마를 마주대며 걸어갑니다."
"아직 기억하는 거야"
"비가 내리니까 귓가에 맴돌더라 그 노래를 부르던 너의 목소리가"
"그래..."
"우리 사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어긋나 버린 걸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로 인해 그렇다는 건 인정해"
"다시 돌아갈 수 없을까? 고딩들의 사랑으로"
"그러기엔 우린 너무 멀리왔어"
"그런가? 이제 다시 사랑하게 될 가능성이 없는 건가?"
"그 물음에 대답은 못 하겠어"
"그래 하지마 가능성은 열어놔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건우의 모습을 보고 차마 바라 볼 수가 없었다. 비가 내리는 버스 정류장 안에서 건우는 벽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며 서 있고 그 모습을 보지 못하겠는지 의자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슬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