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는 자신의 대답에 볼을 부풀리고 있는 자그마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왠지 자신에 눈에는 작고 귀여워 보였다. 미르는 그런 리아를 보다 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너 거기 적힌 물품 중에 집에 없는 거 뭐야?”
“음... 모르겠어. 그냥 다시 살래. 오래 돼서 새로 사긴 사야돼.”
“그래? 뭐, 그러든지. 알아서해.”
미르에 말이 끝나자마자 리아는 마치 물만난 물고기처럼 광장에 열린 장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우와! 미르 이거봐! 진짜 예쁘다! 우와! 이건 또 뭐지?!”
마치 고삐풀린 망아지가 저럴 거라고 생각하며 미르는 리아에 뒤를 조용히 따라 다니며 일일이 다 대답을 해주었고 그 결과 쇼핑이 끝났을 때 미르는 녹초가 되었다.
“하아, 그래서 다 샀어?” “음... 아! 로브! 로브만 사면 돼.”
“그래?”
미르는 희망에 찬 표정으로 리아를 따라 옷가게로 갔다. 가자마자 리아는 이런 저런 로브들을 구경하며 혼자 신나서 놀고 있었다.(정확히는 미르에 눈에만 그렇게 보였다.)
“미르. 이거 어때?”
리아가 들어올린 것은 밝은 분홍색에 로브였다.
“그런 건 안돼.”
“왜?”
“우린 위험한 곳에 간다고. 아예 그냥 반짝이에 야광으로 도배를 해놓지 그러냐.”
“그런가? 그럼 이건?”
이번에 리아가 든 로브는 휜색이고 밑단에 레이스가 달린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미르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마음에 드는 로브를 발견하곤 리아에게 물었다.
“이런 건 어때?”
미르가 든 건 진한 회색에 두꺼운 방한용 로브로 매우 따뜻해 보였다. 리아는 보자마자 좋다며 여름엔 뭘 입을까라고 중얼거리며 로브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계속 파격적이고도 특이한 디자인만을 골랐기 때문에 결국 미르가 여름용이랑 가을용 로브까지 다 골라주었다.
“치이, 마지막꺼 진짜 예뻤는데...”
“예쁘기야 예뻤겠지.”
미르는 리아가 마지막으로 골랐던 심각하게 파격적인 꽃무늬 로브를 생각하며 혼자 중얼거리더니 짐을 들고 얼른 먼저 걸어갔다. 걸어가는 미르에 앞에 노을이 보였다.
“미르! 같이가!”
“싫은데? 얼른 와. 짐도 두고 가기 전에.”
“피이, 알았어.”
대답하며 돌아서 미르를 봤다. 그 순간 리아는 넋을 놓고 말았다. 미르에게 후광이 비쳐서 백발은 주홍색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하얀 눈동자는 어둠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날렵하고 높은 콧대와 뚜렷한 이목구비가 매우 아름다웠다. 그리고 백옥 같이 투명하고도 흰 피부에 붉고 도톰한 입술까지 완벽한 모습이었다. 거기에 이마에 금빛에 아름다운 문양이 ‘날 좀 보소’하고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마도 저 무늰 내 이마에도 있겠지? 평상시에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허스키한 목소리에 달달한 눈웃음도 짓고 리아~ 한 번만 봐줘. 응?이라고 할 때도 귀여웠지만 늘 귀여웠는데 동생 같았는데 웬지 애가 퇴폐미가... 자, 잘생겼다고? 퇴폐미가 어떻다고?! 아악! 미쳤나봐! 솔직히 섹시하긴 해ㄷ... 나 진짜 또라이잖아! 아아아악!’
리아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미르에게 달려갔다.
“미르! 집에 가자! 얼른! 당장!”
“뭔 쌩뚱맞은 소리야? 원래 집에가던 길이었잖아?”
“아! 그랬지!”
“에휴, 네가 너 때문에 늙는다. 늙어.”
“그래봤자 너는 17살 이상으론 안보여.”
“모르겠다.”
“아닌데. 맞는데.”
“어, 네가 맞겠다.”
“미, 미르?”
“응? 왜?”
미르에 눈은 분명 웃고 있었으나 왠지 무서웠다.
“여,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 고, 골격도 작고 약하므로 지, 지켜줘야 하는 존재!”
“난데없이?”
“나 때리려고...?”
“아니, 내가 널 왜 때려. 농담이었는데. 미안. 대신 재밌는 거 태워줄게.”
“어? 응? 꺄악!”
미르가 캐스팅을 하자 리아가 떠올랐다.
“어때 재밌지?”
“응!”
“그래, 그럼 가자”
그렇게 한 명은 둥둥 뜨고 한 명은 짐을 잔뜩 든 채 리아네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