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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세계의 환상
작가 :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18.6.8

6개월 전 일어난 이상 세계 현상.
그 이후로 시작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World 11-2 심야 식당
작성일 : 18-07-13 09:03     조회 : 284     추천 : 0     분량 : 10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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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다음 날도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누나 말 좀 들어!”

 “무슨 누나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너야말로 내 말 좀 들어!”

  은색 머리칼의 쌍둥이 소인, 소민 남매였다. 이들은 심야 식당에서 먹을 것을 두고 자신의 의견만을 펼치고 있었다. 메뉴판이 없다는 것의 단점이라 볼 수 있었다.

  한참 만에 메뉴는 스테이크 정식으로 정해졌지만, 이번에는 곁들일 소스에 대한 문제로 서로 언성을 높혔다.

  강혁은 소스 하나로 다투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여웠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크게 싸울 것은 불 보듯 뻔했기에 일단은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해결책은 바로 두 명이 먹을 큰 스테이크를 중앙에 놓고, 양쪽에 서로가 원하는 소스를 붓는 것이었다.

 “2인분을 줄 수도 있었지만, 너희들이 이런 사소한 걸로 싸우지 않기를 바랐기에 이렇게 준 거야. 먹고 부족하면 말하면 더 줄게.”

  강혁은 친절하게 미소 지었다. 쌍둥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머쓱한 듯 웃더니 금세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그때 그 소녀가 이런 조신한 아이였다니, 마석이란 거 정말 무서운데?”

  강혁은 공사현장에서의 소민과 현재의 소민의 차이에 도저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마치 환골탈태라도 한 것 마냥 분위기를 비롯한 대부분의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엑. 점장님. 조신하다니요, 이런 양아치가…”

  소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소민에 대한 평가를 용납하지 못했다. 소민이 재빨리 그의 뒤통수를 치며 응징했다. 소인은 떨떠름한 기분을 가진 채 밥을 떠먹었다.

 “그것보다도 소민아, 넌 이 분에게 감사해야해. 이분이 그 망할 녀석한테서 널 지켜주신 분이라고.”

 “정말?”

  소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강혁은 쑥스러움에 피식 웃으며 턱을 긁적거렸다.

 “와, 예의 바른 척 하긴.”

 “너 진짜 조용히 안 해?”

  쌍둥이는 또 다시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강혁은 재빨리 그들을 말렸다.

 “두 사람, 원래 이렇게 자주 싸워?”

  서로의 소스만을 먹는 쌍둥이에게 강혁이 조심스레 물었다.

 “소인이가 먼저 건들잖아요.”

 “소민이가 먼저 건들잖아요.”

  그 순간 두 사람은 또 다시 불이 붙었다. 식탁을 치며 일어서는 등의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지만, 강혁이 더 세게 싱크대를 치자, 화들짝 놀라며 그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더 이상 싸울 거면 두 사람 다 나가. 엔트의 심야 식당은 소통을 위한 휴식처지, 광인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싸움터가 아니야.”

  화를 낼 수 있었지만, 강혁은 오히려 화를 내는 것 대신 조곤조곤 말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평화적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했기에 쌍둥이들의 투지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너희들은 충분히 서로 다투고 싸울 수 있어,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아는 쌍둥이일텐데, 그렇게 싸우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소인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이미 감정적으로 행동해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과 투쟁은 상처만 남길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선, 자신의 잘못된 모습이 비춰보였기에 소민에게는 도저히 살갑게 대할 수 없었다.

 

  소민은 최근 자신이 소인의 그림자와 다를 바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학교에서 인정받는 것도, 대부분 칭찬을 듣는 것도 바로 자신이었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소인의 잘못된 점보다 자신의 잘못된 점이 더 부각되는 것 같았고, 결정적으로 자신은 잘못된 선택을 했었지만, 소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크게 와 닿았다.

  강혁으로서는 두 사람의 비슷한 생각을 의외로 빠르게 눈치 챌 수 있었다.

 “얘들아 반대쪽 스테이크를 먹어 볼래?”

  강혁의 친절한 권유에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로의 것을 먹기 위해 포크를 움직였다. 하지만 서로 먼저 먹겠다는 알량한 자존심으로 인해 포크가 부딪치는 소리만이 엔트에 울려 퍼졌다.

  웃기는 모습에 강혁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얘들아 서로가 먹여주면 괜찮을 것 같은데?”

  강혁은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인해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주먹 쥔 손으로 입을 막으며, 고개를 푹 숙인 채 소리 죽여 웃기 시작했다.

  쌍둥이는 마치 홀린 듯 서로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소민은 잠시 소인을 노려봤지만, 곧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고기는커녕 소스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소민은 슬쩍 실눈을 떠 소인을 바라보았다.

  소인은 벌레 씹은 표정으로 소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소민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선 소스 묻는 나이프를 들어 그의 눈앞에서 최면술을 걸 듯 둥글게 돌렸다.

 “빨리 안 하면 때릴 거라고?”

  소인의 말에 소민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결국 소인은 한숨을 크게 쉬며 자신의 스테이크를 잘라 소민의 입에 넣어주었다.

  우물거리던 소민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곧 자신의 스테이크를 잘라 소인의 입에 넣어주려 했다. 그런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벌리는 소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대 손의 검지와 중지로 그의 눈을 가리키며 까딱거렸다.

 “눈 감으라고?”

  이번에도 소인은 정답이었다. 소민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소인은 중지를 치켜세우는 것으로 자신의 대답을 전했다.

  소민은 예상치 못한 모욕에 얼굴이 새빨개지며 거칠게 숨을 쉬었다. 소인은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대었다. 그렇게 그가 방심한 바로 그 순간, 소민은 재빨리 스테이크를 소인의 입에 넣었다. 그는 당혹감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스테이크를 씹었다.

  결론적으로 서로의 스테이크는 나쁘지 않았다. 강혁이 잘 만든 것도 있었지만, 그 이후로 다 먹을 때까지 서로가 싸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너희는 닮았지만, 하는 행동, 원하는 것, 취미까지 많은 것들이 다를 거야. 하지만 서로 이해하고 돕는다면, 너희들은 그 누구보다도 최고의 콤비가 될 거라 생각해.”

  그렇게 쌍둥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하나의 거울이 그들 앞에 놓여있다 생각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곳저곳 생긴 얼룩이 보였다. 그랬기에 조금은 두 사람이 서로를 다르게 볼 수 있었다.

 “서로의 입맛을 아는 것으로 너희들은 서로를 이해하는데 한 발짝 더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강혁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 서로를 바라보며 장난기어린 웃음을 지었다.

 “사부! 포우 관련 전문가처럼 보이는 사람이 이번에는 포우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다 구설수에 올랐대요.”

  그때, 스마트폰으로 웹서핑을 하던 루나가 말했다.

  강혁도 베닌이라는 이름의 전문가에 대해 나름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 은근히 느껴왔던 것, 유일하다시피 포우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가 구설수에 올랐다는 사실은 축구 경기 결승전만큼 큰 관심을 가질만한 사건이었다.

 “정말?”

 “이거 보세요.”

  루나가 보여준 내용은 베닌이 그동안에는 은유적으로 반감을 표했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번 발언 수위는 굉장히 강했기에 문제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강혁은 흥미롭게 기사와 관련 내용을 계속해서 읽었다. 심심해진 소인과 소민은 슬금슬금 그에게 다가갔다.

 “저, 이 사람 알아요!”

  그 중, 소민이 베닌의 얼굴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네가?”

 “네! 마석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만난 적 있었어요. 우리 리아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있던데요? 무려 리아가 만든 마석을 알고 있었어요.”

 “우리 리아라면 설마 그 핏빛 공주 블러드리아?”

  루나가 소민에게 물었다.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외에는 어떤 사람이었니?”

  강혁이 물었다.

 “음, 제게 용기를 줬었어요.”

 “무슨 용기?”

 “저라면 마석을 잘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했거든요. 듀얼 액션? 이러면서요.”

  강혁과 루나는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인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듀얼 액션’에 인상을 쓰며 기억을 되뇌기 시작했다.

 “그것 말고는 다른 건 없었니?”

 “네. 실은 마석의 힘에 취했을 때, 꽁지머리 과학자랑 같이 나타났었어요. 몇 번 만나긴 했었는데. 그때 일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소민은 시무룩하게 말했다. 강혁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 손님은 20분 정도가 지나고 들어왔다. 중년의 신사와 선글라스를 쓴 소녀인 그들은 해성과 노바였다.

  강혁은 노바를 해성의 딸이라 생각했지만, 단순한 제자일 뿐이라는 말에 금세 수긍할 수 있었다.

  해성에게는 제육볶음, 노바에게는 돈가스를 대접했다.

 “강혁 씨, 소통이라고 하셨죠?”

 “네, 심야 식당의 취지가 소통입니다.”

 “그럼 제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해성은 강혁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자 이야기가 나오자 마냥 돈가스를 먹던 노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스승이나 선생들이 잘 이끌어가야 할. 잘 이끌지는 못하더라도, 나쁜 길로는 빠지지 않게 해야 할 때 묻지 않은 수정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해성은 강혁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덩달아 강혁도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노바는 어른들이 왜 웃는지 이해 못한 채, 돈가스를 우물거릴 뿐이었다.

 “이 엔트도… 제 스승님이 물려주신 겁니다. 뭐, 몇 십 년 이상 배운 게 아니라 물려받았다는 표현마저도 창피하지만요.”

 “그래도 강혁 씨의 스승님이 물려주신 건, 강혁 씨를 믿고 있으니까 그런 것 같군요.”

 “정말 그럴까요?”

 “그럴 겁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강혁은 해성에게 와인 한 병을 제공했다.

 

 “얘, 너 귀엽다. 몇 살이야?”

  엔트의 종업원 루나는 선글라스에도 감춰지지 않는 외모의 노바에게 치근덕거렸다. 노바는 그녀가 귀찮았지만, 마냥 싫지만은 않았기에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몰라.”

 “에이, 그러지 말고. 알려줘. 언니는 19살이야.”

 “진짜 몰라, 노바는 언제 태어났는지 기억이 안나.”

  노바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루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불안한 시선은 슬금슬금 해성에게로 움직였고, 그는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노바는 12살입니다.”

 “아, 12살이에요?”

  루나는 뭔가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 캐내지 않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미안해. 참, 주스 좋아해?”

 “주스?”

 “그래, 주스. 이름이 노바랬지? 노바한테는 언니가 아끼는 이걸 줄게.”

  루나는 노바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냉장고에서 파인애플 망고 주스를 꺼내 잔에 따랐다.

 “뭐야?”

 “파인애플 망고 주스. 요전에 한정 판매하던 주스거든. 많이 사뒀으니 더 먹고 싶으면 말 해.”

  루나는 이를 보이며 웃었다. 노바는 주스를 홀짝 마셨다. 입으로 들어오는 특이한 맛에 노바는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루나는 검지와 중지로 브이를 만들었다.

 “좋은 제자를 두셨군요.”

 “뭐, 그렇죠. 이제 제게는 저 녀석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우울함. 해성은 제육의 비계를 질겅질겅 씹으며 시선을 돌려주었다.

  강혁의 눈가는 붉어졌다. 예전 생각에 콧날이 따갑게 시큰거렸다.

 

 

  다음 손님은 릴리라는 이름의 커다란 고깔모자를 쓴 마법사 아가씨였다.

 “마법사신가요?”

  강혁은 마법사로 추정되는 수상한 사람들을 거리에서 몇 번 정도는 본 적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후드나 로브를 입고 있었고, 음침한 분위기를 풍겨오는 게 꼭 무슨 광신도를 보는 것 같았다.

 “네. 마법사에요. 눈치가 빠르시군요.”

  커다란 고깔모자도 마법사라 한다면 연상하기 쉬운 이미지였기에 강혁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자리로 안내했다.

 “메뉴가 없군요?”

 “저희는 손님이 원하는 메뉴를 최대한 제공해드리기 위해 정해진 메뉴는 없습니다.”

 “가격은 얼마나 하나요?”

  날카로운 질문에 강혁은 그녀가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파악했다.

 “심야 식당은 돈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생선 구이에 쌀밥, 괜찮을까요? 반찬은 나물 몇 개만 있으면 됩니다.”

  의외로 간단한 주문에 강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를 하던 중, 그는 이 마법사가 호야, 태양과 같은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준은 현 가문이라는 특성상 타 지역에서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고, 이 마법사는 이 마을의 마법사들과는 달리 후드, 로브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문한 요리를 대접하며 강혁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볼일이 있어서 방문하신 건가요?”

  릴리는 강혁을 빤히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선 젓가락으로 생선구이의 살을 발라 입에 넣었다. 눈이 번쩍 뜨이는 맛에 표정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

 “이 마을의 북쪽 산에서 생명수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서 관리 차 온 거예요. 문제는 너무 집중한 나머지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거든요. 허기는 달래야하는데, 편의점은 싫고… 불 켜진 가게가 여기뿐이어서요.”

  강혁은 그 순간 그녀의 날카로움 뒤에는 천진난만한 점이 있다고 느꼈다. 마치 아이같이 맛있게 먹어대는 모습에 지그시 웃음을 지으며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먹어갈 즈음,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전 릴리라고 해요. 이 마을에 올 때면 가끔 찾아와야겠어요.”

 “제 이름은 강혁입니다. 자주 찾아오셔도 괜찮습니다.”

 “네, 감사해요. 아, 참. 그건 그렇고 북쪽 산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예, 자주 갑니다.”

  릴리는 남은 밥을 허겁지겁 털어 넣고는 자신의 물병에 든 물을 마셨다.

 “계곡 근처의 밭과 동굴에서 뭔가 유사적으로 만든 힘이 느껴져요.”

 “유사적으로 만든 힘이라뇨?”

  강혁은 북쪽 산의 밭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릴리는 손가락을 위협적일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주체할 수 없는 무언가를 표현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주체할 수 없게 표현한 나머지, 강혁으로 하여금 이루 말할 수 없는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느낌. 문제는 너무 인위적으로 꿈틀거려서 자연스러운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요.”

 “그 밭은 제 밭입니다. 딱히 이상한 걸 재배하고 그러지는 않습니다만…”

  강혁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고, 릴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화들짝 놀랬다.

 “강혁 씨의 밭이었어요? 세상에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강혁은 대체 그녀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껏 손님들을 위해 치유 효과가 있는(건강에 좋을 것이라 생각한) 북쪽 산에서의 재배를 고집한 그였다. 하지만 릴리의 반응으로 보건대 그것은 결코 좋은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었다.

  그 순간 강혁은 머릿속에서 시영이 떠올랐다. 그처럼 모두를 위해서 한 행동이 자칫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과는 다른 말이었다.

 “혹시 강혁 씨도 마법사세요?”

  릴리의 물음에 강혁은 너무나도 당황하여, 방금 전 느낀 불안감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아뇨, 전 그냥 전직 격…”

  그 순간 강혁은 입을 굳게 다물며 침을 꿀꺽 삼켰다.

 “격?”

 “요리사입니다…”

  허무하게 대답한 강혁. 릴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어쨌든 그 밭을 어떻게 재배하고 계시죠?”

 “근처 계곡물에서 물을 떠서 재배하고 있습니다.”

  강혁은 아무 생각 없이 말했고, 그 말로 인해 릴리가 경악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호, 혹시 이상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나요? 막 찢어지거나 뜯긴 작물들이 바로 자라났다거나 그런…”

 “릴리 씨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누군가 제가 키운 작물들을 서리해가서 말이죠. 릴리 씨가 잡수신 그 샐러드와 겉절이도 제가 직접 재배한 작물로 만든 것들입니다.

  릴리는 다 먹은 샐러드와 겉절이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시선에서는 두려움과 이상함이 공존했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이런 맛을 낸다면, 먹어도 지장은 없지만,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네요.”

 “대체 이유가 뭐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의 힘. 혹시 음식 문제로 문제 있으신 적…”

 “한 번도 없습니다.”

  릴리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흔들림 없는 강혁의 눈빛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럼 안심할 수 있겠군요. 그 물을 사용해서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다면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으니…”

  강혁은 마치 자신의 마음이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대체 뭐가 문제라는 말이죠? 생명의 힘. 잘은 모르지만 좋은 것 아닌가요? 덕분에 후드가 작물을 서리해도 그걸로 고칠 수 있잖습니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그게 생명이라 할 수 있을까요?”

  강혁의 입은 굳게 닫혔고, 반박할 수 없었다. 생명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작물이 치유된 효과가 생명의 힘이 담겨있기에 그런 거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연적인 생명이 아닌 인위적인 생명, 어감부터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부터 재배하셨죠?”

 “4개월 전 부터입니다.”

  강혁의 딱딱한 대답에 릴리는 조금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문제없을 거예요. 그래도 4개월이라면… 하하…”

  마치 근본부터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손님을 위한 마음이었지만, 그것이 곧 손님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지금 막 안전하다 보장받았지만, 마음은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

 “나중에 북쪽 산에서 한 번 뵐 수 있을까요?”

  릴리는 조심스레 물었고, 강혁은 마지못해 수락했다. 그녀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단 한 가지 확실하게 느껴진 것은 이번만큼은 소통하지 않았다는 게 좋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늘의 심야식당을 끝내려는 강혁이었지만, 이곳으로 빠르게 달려온 고속의 존재로 매정하게 문을 닫을 수는 없었다.

 “상처가 회복되고 있어. 달리는데도 전혀 아프지 않아. 역시 때로는 의술(醫術)보다 마술(魔術)이 더 좋을 수도 있군.”

  발바닥의 상처가 나아가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는 고속은 어두운 표정의 강혁과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지만, 곧 자연스레 심야 식당이 재개되었다.

 “고속 씨, 당기는 음식이라도?”

 “시간도 늦었는데, 강혁 씨가 편한 음식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따라 고속의 배려는 강혁에게 크나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닭죽을 끓이려 했지만, 마음이 바뀌어 백숙을 만들어주었다.

 “배, 백숙? 이건 만드는 게 그렇게까지 편하지는 않을 텐데요.”

  당황한 표정의 고속이었지만, 강혁은 힘겨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드셔주시길 바랍니다.”

  뭔가 사연 있어 보이는 강혁의 표정. 잠시 생각하던 고속은 더 이상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부드러운 닭다리를 뜯으며 그는 자신이 고민했던 것을 생각했다. ‘대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쉬우면서도 어려운 이 질문은 발바닥의 상처보다 더한 괴로움을 가져다주었다.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자신은 상처를 입는다. 포우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아미의 매니저를 조사했을 때는 다리에 무리가, 이번 창연의 일에는 발바닥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그 이전에도 남을 위하는 거라면 그는 항상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은 날아갈 듯 기뻤다. 몸은 분명히 아팠다. 자각도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로 인해 편해진 마음은 하늘을 날아 우주까지 갈 정도로 기쁨을 주었다.

  원인은 소인과 만난 그 이후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마음도 소인이 장난치는 것 같이 느껴졌고, 피식 웃으며 다리뼈를 뼈놓는 접시에 놓았다.

 “평소의 강혁 씨, 답지 않아 보입니다.”

  고속은 날개를 뜯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강혁은 흠칫 놀랐지만, 이내 거짓된 웃음을 지었다.

 “손님에게 괴로움을 드릴 수는 없죠. 소통을 하고 싶어도 지금이라면 불편함만 드릴 겁니다.”

 “소통은 서로 대화를 하는 거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깨달음을 얻는 거라면, 그건 소통이 아닌 상담이라고 생각됩니다.”

  강혁은 마치 그가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봤다고 느꼈다. 하지만 고속은 마냥 닭 날개를 먹는 것만 집중하고 있었고, 강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소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고, 은근히 그에게 고맙게 생각했다.

 “시영이 녀석이 이해가 갑니다.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 물론 제 경우는 확실히 부정당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잘못된다면 진심은 전해지지 않을 거라는 걸요.”

  고속은 먹다 만 닭 날개를 백숙 속에 떨어뜨렸다.

 “인위적인 생명의 힘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처음 들어봅니다.”

  고속은 다시 닭 날개를 꺼냈다.

 “방금 전 손님으로 인해 전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실들을 알게 되었죠. 아무래도 시영이 녀석이 자신이 포우라는 걸 알아버렸을 때가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지…”

  강혁은 계속해서 시영의 이야기를 꺼냈고, 고속은 시영을 신경 쓰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 손님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고속의 물음에 강혁은 릴리와의 대화를 빠짐없이 말했다. 대화를 듣던 고속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방금 그 계곡물을 다리에 바르고 온 길입니다만, 그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힘, 그것도 생명의 힘이라니.”

  고속은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다른 힘이라면 몰랐지만, 생명의 힘이라면 적어도 문제는 될 거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이렇게까지 힘들어 할 상황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문제가 없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이 가게는 유령 소동을 제외하고는 문제 될 거리가 아예 없지 않은가요?”

 “그래도 혹시라도 잘못된다면 죄송스러워서…”

  강혁은 말끝을 흐렸고, 고속은 그가 손님을 끔찍이도 아끼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제가 말해드릴 건 한 가지. 진심은 언젠가는 전해질 거라는 겁니다. 뭐, 이래보여도 한 때는 최고 인기 아이돌에게 미움 받는 사람이 될 뻔했죠. 그런 제가 지금은 그 아이돌과 전화번호도 교환하고 있잖습니까?”

  포우의 정체를 아미의 매니저로 생각했던 그 일은 여전히 고속의 오감을 자극하며 몸을 떨리게 했다. 나쁜 의도로 그러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만약 적의가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미움 받는 건 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무슨 일 있으셨나요?”

 “그때 기억하실지도 모르겠군요. 강혁 씨를 비롯해서 공사현장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인 그 날. 전 포우의 정체를 아미 씨의 매니저로 생각했고, 마냥 추격하다 미움을 받을 뻔 했습니다.”

 “당시 고속 씨는 못 본 것 같은데.”

 “숨어 있었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는 고속을 보며 강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수긍했다.

 “미움 받을 용기가 있는지 물으신다면, 전 없다고 봐야겠군요. 시영이 녀석이라면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 아닙니다. 강혁 씨도 미움 받고 싶지는 않으시죠?”

 “다, 당연하죠.”

 “진심은 반드시 전해질 겁니다. 그러니 그런 일로 마음을 졸이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과연… 진심은 전해질까요?”

 “예?”

  순간적으로 강혁의 목소리는 어두운 동굴 같이 무겁게 울렸다. 고속은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곧 강혁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음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고속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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