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황제의 정인
작가 : 황도톨
작품등록일 : 2017.12.17

맨홀에 빠져 이상한 세계에서 눈을 뜬 것도 황당한데, 나더러 백작의 딸 대신에 황제의 16번째 후궁이 되어 달라고?
무한 긍정 프로 알바러 정인의 이세계 황궁 정복기!

 
황제의 정인 2
작성일 : 18-04-04 10:20     조회 : 112     추천 : 3     분량 : 8098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릴 적 꿈이었던 공주님 침대에서 5일을 더 보내는 동안에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지금 내 상황에 대해서도.

 역시나 여기는 전혀 어딘지 알 수 없는, 내가 아는 상식의 세계지도와는 전혀 다른 세계지도를 가진 곳이었다. 적어도 지구는 아닌 게, 아니 지구라고 치더라고 내가 아는 지구와는 전혀 다른 지구인 게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짐작한 것과 비슷하게 여기는 중세정도... 의 문명과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신분제도 역시 중세의 그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학교 다닐 때 세계사가 꽝이었던 나에게는 그저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미네르바백작의 말처럼, 그의 가문은 꽤 높은 지위를 가진 가문인 것 같았고, 나는 백작에게 몇 번이나 나의 생명을 구해주고, 또 치료를 해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했다. 그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나의 인사를 들었다.

 게다가 내가 발견된 뒤 무려 2주나 내가 기절을 해있었고, 처음에 의사가 방문했을 땐, 거의 절망적인 상태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미네르바백작에게 또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했고, 내가 몸이 낫는 대로, 꼭 보답을 하겠다는 말도 했다.

 청소든, 설거지든, 뭐든지 닥치는 대로, 잘할 자신이 있었다. 다년간 축적된 나의 알바 노하우들로 말이다. 까치도 은혜를 갚는 대한민국에 사는 만물의 영장으로 그쯤은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다.

 아! 그리고 처음 깨어나서 만난 메이드는 정말 이 집의 메이드였고, 이름도 앤이었다. 나는 혹시 성이 셜리냐고도 물어봤지만, 아쉽게도 앤 셜리가 아닌 앤 도노반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내가 겨우 몸을 움직이게 된 것은 정신을 차리고 나서도 2주가 더 지나고 나서였다. 겨우 몸을 움직이게 되어서 방 안 정도는 산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창문을 내다보면, 이게 정말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성이나 다름이 없는 건물 규모도 그랬고, 성 안에 정원이 있는 것도 그랬으며, 오고가는 사람들 어느 하나 내가 익숙한 복식인 사람이 없었다. 다들 중세에서 튀어나온 듯 한 복장이었다. 아니, 사실은 저들이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끼어든 것이겠지만.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스프 밖에 없었긴 하지만, 안에 들어 있는 재료나, 과일들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내가 먹던 것이랑 맛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누워있는 2주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하루 종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했다.

 결국 내린 결론은 ‘어떻게든 해야 한다’였다. 어떻게 돌아가야 될지는 모르지만, 어째든 여기로 와버렸으니,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된지 딱 41일이 되던 날. 나 혼자만의 물리치료처럼 정원을 산책하고 있던 남작이 나에게 다가왔다.

 “이제 제법 잘 걸어 다니는군. 몸이 제법 회복이 된 모양이야?”

 “네, 전부 백작님 덕분입니다. 이제 집안일이든 뭐든, 시켜주세요.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는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꼭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 그대는 정말 내게 은혜를 갚고 싶은가?”

 “물론이죠.”

 “그럼, 내가 부탁이 조금 있는데...”

 “네, 말씀만 하십시오.”

 살짝 뜸들이며 말하는 백작을 보며 조금 불안했지만, 나는 뭐든 시켜만 달라는 태도로 씩씩하게 말을 했다. 설마, 내 미모에 반해서 첩으로 삼겠다든 그런 건 아니겠지? 물론 내가 여기서도 충분히 먹힐 뛰어난 미모... 관두자.

 내가 여기에서 41일 동안 있으면서 느낀 건데, 대한민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기서도 지극히 평범한 외모고, 이집의 외동딸이 나라에서 유명한 경국지색인 것도 알게 되었다. 오죽하면 코트라의 보물이라는 지칭어가 있을 정도였다.

 본적은 없었지만, 그런 칭호라면 우리나라의 미스코리아의 쌍싸다구를 후려칠 수 있는 미모겠지.

 백작은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고 앞장섰고, 나는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분명 남들이 보면 백작님과 그 첩이 아니라, 백작님과 그 종이라는 타이틀이 훨씬 어울리는 모양새였을 것이다.

 내가 백작을 따라서 간 곳은 서재였다.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고급 진 책장이 짜여 있고, 그 책장이 방을 완전 둘려 쳐있고, 거기에 책까지 꽂혀 있는 곳은 백작가의 위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앉게.”

 백작은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서재의 책상으로 가서 앉았고, 나를 자신의 맞은 편 자리를 권했다. 자리에 앉자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과 창문 너머로 하나 둘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잘 꾸며진 정원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환한 정원의 풍경 옆으로 어두침침한 초상화 하나가 벽에 걸려 있었다.

 금발 머리와 짙은 청록의 눈을 가진 남자의 초상화였다. 초상화 상으로는 분명 잘생긴 이목구비와 해사한 금발머리를 가진 남자로 보였지만, 무뚝뚝한 표정 때문인지, 어쩐지 차가워 보이는 눈빛 때문인지 남자는 어딘가 차갑고, 무서우며, 어두워 보였다.

 할리우드에서 퇴폐미로 유명한 배우가 생각나는 얼굴이었다. 그가 고전영화에서 왕이나 귀족의 역할을 맡으면, 그의 집에 걸려 있을 법한 그런 초상화였다.

 “누군지 아는가?”

 “네?”

 멍하니 초상화를 쳐다보고 있던 나에게 미네르바백작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아, 아뇨. 누군데요?”

 “지금 제국의 황제이신 아르에페 시뮤르 드 엘라니훔폐하의 초상화일세.”

 “아르에, 에푀.. 페... 시뮤... 하아... 혀 깨물기 딱 좋은 이름이네요.”

 나의 깔끔한 이름평에 미네르바백작은 기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뭐- 없는 데서는 나랏님도 욕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 진짜 나랏님이시구나.

 “내 부탁은 자네가 폐하의 후궁으로 들어갔으면 하는 것이네.”

 “아, 후궁요... .... 네? 후궁요??!!”

 갑자기 스케일이 커졌다. 설마하니 백작이 자신의 수청을 들라고 하지 않을까? 라고는 조금, 아주 밤톨만큼 생각을 하긴 했지만, 뭐? 황제의 수청을 들라고?

 “그게 무슨...”

 “나에게 딸이 하나 있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겠지.”

 “네. 앤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습니다. 엄청 예쁘시고, 대륙의 보물이라고 불린다는...”

 “그렇지, 그렇지.”

 역시 모든 아버지들은 딸 바보인지, 미네르바백작은 자신의 딸의 미모를 칭찬하자 금세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표정은 이내 어두워졌다.

 “그런데, 우리 딸에게 얼마 전에 후궁 첩지가 내려왔다네.”

 “그러니까, 황제께요?”

 “그렇네.”

 “그.. 제가 잘은 모르지만, 좋은 것 아닌가요? 황제의 부인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지. 황후자리가 공석인 지금, 우리 가문정도라면 후궁이라고 할지라도, 거의 제국의 안주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테고. 허나, 문제는 지금의 황제가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네.

 자네가 말한 대로, 자네가 다른 곳에서 왔다면... 분명 잘 모르겠지. 지금 우리나라의 정세에 대해서.”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책장으로 다가가 커다란 책을 하나 들고 왔다. 불행히도 나의 자동번역기는 말은 번역을 해주었지만, 글자는 전혀 번역에 되지 않았기에 나는 그가 들고 온 책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그는 내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책을 펼쳐서 보여주었고, 그 곳에는 단어들과 그 단어들을 이은 선들로 나열되어 있었다.

 “이건 지금 현재 우리 황실의 가계도이네.”

 “아, 네.”

 대답은 했지만, 까막눈인 나로썬 그가 노비문서를 들고 와서 황실 가계도라고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대답을 했을 거였다.

 “돌아가신 선왕께오선 덕이 높고, 지혜로우신 분이셨지만, 몸이 허약하신 분이셨네. 그래서 매우 아끼셨던 첫 황후, 엘리자님과 두 분 사이에서 현 황제이신 아르에페폐하께서 태어나셨을 때는 정말 온 나라가 축제였지. 사실, 두 분께서 그렇게 금슬이 좋으셨는데도, 아주 오랫동안 태기가 없어서 온 나라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거든.

 그런데, 호사다마라 했던가? 아르에페폐하가 걷기 시작했을 무렵, 엘리자님께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시더니, 결국 병석을 떨치지 못하고 승하하셨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의 일이지. 선왕께서는 매우 상심하셨고, 어린 아르에페폐하를 매우 걱정하셨네.

 그래서 지금의 태후이신 폴리브님을 두 번째 황후로 맞이하여, 아르에페폐하를 보살피고, 또한 황실을 돌보도록 하셨네. 그리고 폴리브님과의 슬하에 지금의 친왕이신 에듀스전하를 두셨지.”

 미네르바백작은 알 수 없는 꼬부랑글씨를 짚어가며 나에게 매우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봐도 알 수 없는 글자에, 외우기 어려운 이름들의 향연에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선왕께선 몸이 허약하셔서 국정운영이 힘드셨네. 그래서 아르에페폐하께서 장성하시게 되면서 점차 국정을 폐하께 맡기게 되었고, 스무 살이 되시던 해부터는 완전히 대리청정을 하시게 되셨지.

 그리고 마침내, 마침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긴 하지만 어째든 올해, 선왕께서 승하하셨네. 태어났을 때부터 허약하여 스물을 넘기기 어렵다 하시던 분께서 예순을 넘기셨으니 장수하셨다고 하실 수도 있겠지.

 선왕께서 승하하시고 나선 당연히 제 1왕위 계승자셨던, 아르에페폐하께서 왕위를 계승하셨네. 태후파에서 반대를 하려고 했지만, 명분이 없었지.”

 점점 잠이 오기 시작했다. 내가 세계사에 흥미가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모르는 이름이 너무 많이 나오고, 스케일이 커서 그렇지 결국 남의 집 집안사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름들은 왜 그렇게 어려워서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네르바백작은 설명을 이어갔다.

 “아르에페폐하의 왕위 계승식은 순조롭게 이루어졌지만, 아직 조정에는 태후파들이 존재했네. 뭐, 하루 이틀일은 아니었지. 대리청정을 하고 있을 때도 그들은 있었고, 어떻게든 태후님의 핏줄인 에듀스전하를 옹립시키려고 하고 있었지.

 아르에페폐하께선 그들을 견제하기 하고, 본인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정략결혼을 추진하고 계시네.”

 살짝 꿈의 나라로 빠질 뻔했지만, 다행히 미네르바백작의 옛날이야기가 마침내 현재에 이르자 다행히 백작의 앞에서 조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한분이 미네르바백작님의 따님이고요?”

 “그렇네.”

 “별로,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요? 속물적인 견해일 수도 있지만, 초상화로 보건데 매우 젊고 잘 생기신 분이시고, 어째든 황제이시고, 백작님 견해에 따르면 지금 황후가 없으니 거의 황후급... 인 위치가 되실 텐데요.”

 “황제께선 황태자시절에 태후의 반대로 황태자비를 맞이하지 못하셨네. 아직 이르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스물이 넘도록 맞이하게 못하게 한 것은 누가 봐도 아직 시기가 일러서가 아니라 유력가문과 혼인을 하여 황제폐하의 세력이 확장될까봐 태후쪽에서 염려해서 그런 것이었지.

 어째든 황제께선 반려가 없는 상태로 황제즉위를 하셨고, 황후자리도 아직도 공석이네. 그리고 유력가문에 후궁첩지를 돌리기 시작했네. 현재 공석인 황후자리를 미끼로 해서.

 일단 후궁으로 들어오면, 그 후궁들 중에서 황실에 어울리는 이를 뽑아 황후로 뽑겠다는 것이 황제의 말씀이셨네.”

 “그럼 더더욱 좋은 것 아닌가요? 잘하면 백작님의 따님이 황비도 되실 수 있으신 건데요? 엄청 아름답다고 하셨으니, 황제의 눈에 뜨일 확률도 높을 텐데요.”

 “16번째 후궁이네.”

 “네?”

 “황제께서 즉위하시고 거의 2주에 한번 꼴로 후궁 첩지가 내려졌지. 내 딸이 첩지를 받은 시점에선 이미 12명의 후궁이 있었고, 차일피일 기일을 미루는 동안 현재 황실에는 15명의 후궁이 이미 있네.

 지금은 잠잠한 상태이니 17번째, 18번째 후궁이 생길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어째든 내 딸은 16번째 후궁으로 입궁을 하게 되는 걸세.”

 과연... 황제의 후궁이라고 해도 백작이 미루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딸 미모를 칭찬만 해도 얼굴에 미소를 감출 수 없는 이 딸 바보께서, 아무리 황제이기는 하나 대륙의 보물이라고 불리는 딸을 그런 하렘에 보내고 싶지는 않았겠지.

 아니, 잠깐! 그렇다고 날 보내는 건 너무 하잖아! 내가 대륙의 보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우리 할머니의 보물정도는 되는데, 우리 딸은 귀한 딸이니 귀한 우리 딸 대신에 좀 덜 귀한 네가 좀 가라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저기, 그래도 제가 가는 건 좀...”

 “은혜를 갚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부탁함세.”

 “아니, 정말 저를 구해주시건 감사하긴 한데요. 그래도 그건 좀 불가능 하지 않을까요? 일단, 따님은 엄청 미모가 뛰어나다고 소문이 나있다면서요. 저는 보시다시피... 그냥 평범한 외모인데요.”

 “물론 그렇긴 하네.”

 헐... 본인을 앞에 두고 그렇게까지 외모가 평범하다는 말에 긍정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냥 빈말이라도 개성있고, 나름대로 오밀조밀하며, 어떤 각도에서 보면 이뻐보이기도 한다는, 그 정도의 공치사는 할 수 있잖아.

 “허나, 우리 아이는 몸이 허약하여 공식석상에 나선 적은 한 번도 없네. 그 소문은 딸의 초상화나 딸을 개인적으로 만난 이들이 퍼트린 소문이네. 그러니 황실에 딸의 얼굴을 정확하게 아는 이는 없네.”

 “아니 그렇다고 해도...”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딸아이는 흑단같이 검은 머리와 밤하늘과 같은 검은 눈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네. 바로 자네처럼.

 이 나라에서는 밤색이나 갈색의 머리는 흔하지만,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은 의외로 드물다네. 그리고 그것을 동시에 가지는 것 역시 드문 일이지.”

 굳이 또, 나랑 똑같은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이셨군. 아니, 잠깐?

 “나는 딸아이와 같은 검은 눈, 검은 머리칼을 가진, 거기다가 생전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는 자네가 우리집 정원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본 순간, 나는 강렬한 운명을 느꼈네.

 운명의 신께서 딸을 구하기 위해 자네를 보내셨다는 것을 말이네.”

 아니, 저기... 저는 하나도 못 느꼈는데요. 그 강렬한 운명이라는 거요. 그건 본인이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도, 다른데서 온 제가 갑자기 백작님의 딸 노릇을 하는 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일단 제가 아는 것도 아무 것도 없고요.”

 “딸 아이가 허약하여 건강에만 힘써서 배움이 높지 않다고 하면 되네.”

 “제가 거길 가서 뭘 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고요.”

 “아무 것도 할 것은 없네. 그저 거기에 후궁으로 존재만 하기만 하면 되네.”

 “아니, 그래도 제가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지도 모르고.”

 “삼엄한 궁중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행방불명이 된다면, 오히려 그게 더 좋을 것일세. 그러면 내 딸은 궁중에서 후궁인 체로 행방불명이 된 것이고, 그럼 진짜 내 딸 아이는 더욱 새 신분으로 살기 편할 것일세.”

 확고하다. 이 백작님은 죽어도 나를 거기 보낼 생각인 것 같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16번째 후궁은 좀...

 “어차피 자네는 갈 곳도 없지 않은가?”

 뜨끔.

 “자네 말대로, 이곳에 대해서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자네가, 우리 집에서 나가야 한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뜨끔.

 “그리고 아까 책을 보여줬을 때, 자네 눈에 초점이 없었던 것을 봐선, 까막눈인 것 아닌가?”

 뜨끔, 뜨끔.

 “갈 곳도 없고, 이 나라의 세상 물정도 모르고, 까만눈이기까지한 자네가 과연 우리 집을 나가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지 잘 생각해보게.”

 이제 대화는 협박으로 변했다. 백작의 눈을 보자 엄청나게 진지했다. 내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백작은 나를 내쫒고도 남을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그의 말대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지의 세계인 이곳에 나는 빈털터리로 쫓겨 날거고, 당장 오늘 저녁에 먹을 것을, 그리고 잘 곳을 걱정해야 될 거다.

 게다가 내가 아무리 다재다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력직 프로알바러 라도, 신분증 하나 없이는 어떤 일도 하기 힘들 게 뻔했다.

 결국, 나에게 별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리고, 백작도 그걸 알고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거겠지.

 “나는 자네를 살려 줬지 않은가?”

 나의 흔들림이 백작의 눈에 보였나보다. 그는 다시 한 번 애절한 목소리로 부탁을 해왔다. 만약, 만약 우리 아빠가 살아 있었다면, 내가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우리 아빠도 저랬을까? 저게 부정이라는 것일까?

 “제발 부탁하네.”

 딸을 위해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저렇게 간절히 부탁을 할까?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정체도 모르는, 자기 딸 또래의 여자에게 저렇게 간곡히 매달릴까?

 “알겠습니다. 제가 황제의 후궁으로 궁에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백작의 부탁을 수락하고 말았다.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도 했지만, 백작의 간절한 목소리가 나를 흔들어 놓았다.

 나는 받아보지도 못한, 그래서 더욱 들어주고 싶었던 부정이 나를 거절 할 수 없게 만들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연재중단 안내 2018 / 5 / 27 774 0 -
24 황제의 정인 24 2018 / 4 / 19 14 1 5234   
23 황제의 정인 23 2018 / 4 / 18 15 1 5403   
22 황제의 정인 22 2018 / 4 / 17 16 1 5223   
21 황제의 정인 21 2018 / 4 / 16 17 1 5882   
20 황제의 정인 20 2018 / 4 / 15 17 1 5610   
19 황제의 정인 19 2018 / 4 / 15 19 1 5868   
18 황제의 정인 18 2018 / 4 / 14 17 1 5685   
17 황제의 정인 17 2018 / 4 / 13 17 1 6087   
16 황제의 정인 16 2018 / 4 / 12 18 1 5070   
15 황제의 정인 15 2018 / 4 / 11 19 1 5573   
14 황제의 정인 14 2018 / 4 / 10 20 1 5238   
13 황제의 정인 13 2018 / 4 / 9 20 1 6098   
12 황제의 정인 12 2018 / 4 / 8 22 1 6513   
11 황제의 정인 11 2018 / 4 / 7 23 1 5018   
10 황제의 정인 10 2018 / 4 / 7 27 1 5125   
9 황제의 정인 9 (1) 2018 / 4 / 6 31 1 5418   
8 황제의 정인 8 2018 / 4 / 6 23 1 6026   
7 황제의 정인 7 2018 / 4 / 5 22 1 5888   
6 황제의 정인 6 2018 / 4 / 5 23 1 7822   
5 황제의 정인 5 2018 / 4 / 4 58 2 5208   
4 황제의 정인 4 2018 / 4 / 4 55 2 6504   
3 황제의 정인 3 2018 / 4 / 4 66 2 5518   
2 황제의 정인 2 2018 / 4 / 4 113 3 8098   
1 황제의 정인 1 2018 / 4 / 4 495 2 5483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지옥연애환담
황도톨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