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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검은 달 그림자
작가 : 사이딘
작품등록일 : 2016.7.7
검은 달 그림자 더보기

작품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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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언제나 3가지 존재들이 함께했었다.
인간, 죽은 자들의 영혼, 그리고 정령들.

한편, 트레시안 대륙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벨리스온 제국의
정통 황위 계승자인 3황자 시이엔 루인 벨리스온.
어느 날,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그를 대신하여 세인이 벨리스온 황성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슬픔과 고통 앞에서도 언제나 웃을 줄 아는 세인의 모험기가 펼쳐진다.

 
제 7 화
작성일 : 16-07-07 11:29     조회 : 416     추천 : 0     분량 : 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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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이노리언.

 온 세상을 불태울 듯한 붉은 머리와 눈동자를 가진 그는 이곳 자연계를 지탱하는 4대 정령 중 불을 다스리는 존재였다.

 샤이노리언이 세인과 연을 맺은 것은, 5년 전 누군가 자신을 간절히 부르는 마음에 응답했을 때였다.

 오랜만에 새로운 계약자가 나타났음을 느끼며 모습을 드러낸 샤이노리언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한 꼬맹이의 모습에 순간 멍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네가 날 부른 거냐.”

 “누구세요?”

 “…….”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자신이 모습을 드러낸 곳에는 많이 봐줘야 예닐곱 살밖에 안 된 어린 여자 아이 하나뿐이었다.

 “하!”

 불의 정령왕인 자신이 고작 이런 어린 꼬맹이에게 불려왔다는 말인가.

 샤이노리언은 잠시 동안 황당한 표정으로 아이를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아무리 훑어보아도 정령을 불러낼 힘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인데, 어떻게 자신을 불러낸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음?”

 그러다 아이의 주위에 수많은 정령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본 샤이노리언은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끔 1만분의 1 단위로 선천적으로 정령들과 뛰어난 친화력을 가진 아이가 태어날 때가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계약을 통하지 않더라도 정령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또한 부릴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정령들과 달리 자신과 같은 정령왕들과는 이름을 걸고 계약을 맺어야 했지만 말이다.

 “흠… 뭐, 오랜만에 인간사에 나온 기념으로 해두지. 좋다, 꼬마. 나와 계약을 하겠느냐.”

 “…….”

 인심을 쓰듯 아이에게 말을 건네던 샤이노리언은 아무런 말없이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아이의 모습에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냐! 나랑 계약하기 싫다는 거냐!”

 “계약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아저씨랑 계약하면 뭐가 좋은데요?”

 “뭐?”

 “뭐가 좋냐구요.”

 “이 망할 꼬맹이! 내가 얼마나 뛰어난 존재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냐! 난 세상의 모든 불을 다스리는 불의 정령왕인 샤이노리언이란 말이다!”

 “불이요?”

 “그래! 불! 세상 모든 걸 태울 수 있는 강한 불!”

 “저기 있는 아궁이에도 불을 피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불이요?”

 “…뭐?”

 “저기 아궁이에도 불을 피울 수 있냐구요.”

 “…….”

 샤이노리언은 아이의 말에 순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궁이라니. 인간들이 음식을 할 때 불을 피우는 저 아궁이를 말하는 건가.

 “혹시 말이다. 정말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네?”

 “조금 전 불이 필요하다는 마음을 먹은 게 저 아궁이 때문이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기에 불을 피우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맞는데요.”

 “…망할!”

 샤이노리언은 정말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작 저따위 아궁이를 피우고 싶다는 마음에 정령왕인 자신이 이곳으로 불려왔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도, 믿고 싶지도 않았다.

 “으득!”

 당장이라도 눈앞의 꼬맹이의 목을 졸라서라도 증거 인멸을 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으득 이를 갈며 마음을 진정시킨 샤이노리언은 간단히 손을 움직여 순식간에 여자 아이가 그토록 바라던 아궁이에 불을 피워주었다.

 “와아!”

 자신이 나타날 때도 놀라는 표정 하나 짓지 않던 여자 아이는 그런 자신의 행동에 처음으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흠흠… 어때? 대단하지? 나랑 계약할 거냐?”

 “네!”

 “…젠장!”

 고작 아궁이에 불 한 번 피워준 것으로 뻐기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 스스로에게 작게 욕설을 내뱉은 샤이노리언은 다시 한 번 긴 한숨을 속으로 내뱉으며 계약을 진행시켰다.

 샤이노리언은 두 눈을 감고 나직한 음성으로 무언가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와 아이의 발밑으로 빛으로 만들어진 도형이 생겨나며 둘을 감쌌다.

 “이름.”

 “네?”

 “그대의 이름을 말하라.”

 “세인.”

 자신의 온몸을 감싸는 환한 빛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세인은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진지한 모습으로 변한 샤이노리언의 나직한 음성에 조용히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 순간, 세인과 샤이노리언을 감싸던 빛의 도형이 둘로 나뉘어져 각자의 몸 안으로 흡수되듯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뭐, 뭐예요?”

 “뭐긴 뭐야? 위대한 불의 정령왕인 내가 앞으로 너의 곁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거지.”

 “아궁이에 불 피워주시려구요?”

 “우씨! 내가 아궁이에 불만 피우는 존재로 보이냐!”

 “그럼 저기 쓰레기도 태워주시는 거예요?”

 “…….”

 샤이노리언은 세인의 말에 다시 한 번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계약자를 만나왔지만, 이런 웃기지도 않는 꼬맹이 계약자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정령왕인 자신에게 아궁이도 부족해, 이제는 쓰레기도 태울 수 있냐고 묻다니! 지금 장난해!

 “만약 말이다.”

 “네?”

 “손이 씻고 싶거나 더워서 약~ 간의 바람이 필요할 때, 아니면 저따위 쓰레기를 땅에 파묻고 싶을 때, 나를 불렀을 때처럼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거라.”

 “네?”

 자기 혼자만 당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런 쪽팔리는 계약은 다른 정령왕 녀석들도 당해봐야 할 것이다.

 아니면 억울해서 온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지도 모른다.

 툭! 툭!

 “응?”

 그렇게 다른 정령왕들이 자신처럼 똑같이 쪽팔림을 당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눈을 활활 불태우던 샤이노리언은, 순간 자신의 손을 툭툭 치는 손길에 생각을 멈춰야만 했다.

 “뭐냐?”

 자신의 생각을 방해한 세인을 보며 눈을 날카롭게 빛내던 샤이노리언은 이어지는 세인의 대답에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 안 태워주실 거예요?”

 “젠장!”

 그렇게 세인과 샤이노리언의 만남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오랜 세월 그 연을 맺어온 것이다.

 

 “황자?”

 “응. 나보고 황자가 되라네.”

 “말은 똑바로 해. 황자가 아니라 죽은 황자의 그림자 노릇을 하라는 거잖아! 당장 때려치워!”

 세인에게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듣던 샤이노리언은 눈빛을 사납게 일그러트리며 화를 냈다.

 이제야 두들겨 패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쳤나 싶더니, 이제는 귀족 인간들의 꼭두각시 그림자 인형이 되었다는 세인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샤이노리언은 자신의 어린 계약자 때문에 언제나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만날 때마다 아버지에게 맞아 새로운 상처가 생긴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세인의 아버지를 화염 속에 던져 태워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아버지의 편을 들고 오히려 그를 걱정하는 세인으로 인해,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마을 사람들과 아버지에게 외면을 받고, 자신 앞에서 슬픈 눈빛으로 웃는 세인을 보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에 열불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풋!”

 “젠장! 웃지 마! 넌 화도 안 나냐! 넌 지금 저 인간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거라고! 정신 차려! 이 멍청한 꼬맹아!”

 “내가 화를 왜 내.”

 “뭐?”

 “샤논이 대신 그렇게 화를 내주는데 나까지 화낼 필요 없잖아.”

 “망할!”

 세인은 자신의 말에 작게 욕설을 내뱉는 샤이노리언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저렇게 자신을 대신해 아파하고 화를 내주는 존재들이 있었기에, 세인은 지금껏 한 번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졸려. 잘래.”

 잠시 후, 세인은 밀려오는 졸음에 길게 하품을 내뱉으며 그대로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처음으로 해본 오랜 마차 여행에 몸이 지칠 대로 지쳐 버린 것이다.

 생전 처음 누워보는 푹신한 침대에서 세인은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하아!”

 샤이노리언은 이불조차 덮지 않고 웅크린 채 잠이 든 세인의 모습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침대가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세인을 바라보았다.

 “바보 녀석.”

 그러다 한숨 섞인 말을 한마디 내뱉은 그는 손을 휘저어 방 안에 켜진 모든 불을 끈 뒤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잘 자라.”

 마지막으로 세인을 향해 인사를 건네며 말이다.

 

 

 4. 루이벨리언

 

 

 

 “이것으로 문법은 모두 끝났습니다. 제가 어제 드린 책은 모두 읽으셨습니까?”

 “네. 이제 대부분 책은 혼자서 다 읽을 수 있어요.”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빛이 온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여름. 반면에 나무들마다 푸른 잎사귀들이 싱그럽게 맺혀 기분 좋은 한낮의 여름을 연출하고 있었다.

 세인이 필리어스가에 온 지도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 날씨만큼 세인의 학구열도 그에 못지않았다.

 ‘대단하군.’

 제르는 처음 세인을 가르치게 되었을 때 기본적인 글자조자 알지 못하는 세인으로 인해 앞길이 막막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마른 땅이 물을 흡수하듯 세인이 글자를 배워가는 속도는 다른 이들에 비해 너무도 빨랐다.

 어느새 대륙 공통어부터 시작해 일반 귀족들과 황족들도 어려움을 느끼는 고대어까지 스스로 빠르게 습득해나가는 모습에 제르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이 가르친 적도 없는 고대 문서책을 들고 읽고 있는 세인의 모습에 기가 막혔던 제르였다.

 어찌 된 일인지, 어떻게 고대 언어를 알고 있냐는 자신의 물음에 세인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확실히 뭔가 특이해.’

 처음 봤을 때부터 다른 어린 소녀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외모만 해도 그랬다.

 어디 저 외모가 노예상에서 팔려 온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저 옷만 갈아입히고 머리만 정리했을 뿐인데 누가 봐도 미소년 귀공자 스타일이었다.

 이 점도 제르가 특이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세인이 여자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조차 가끔 세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진짜 남자 아이가 아닐까, 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라 생각하면 남들이 참 예쁘다 할 정도로 고운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선과 눈매가 또래 여자 아이들보다 날카로워서 그런지, 소녀가 아닌 소년의 묘한 분위기가 흐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더구나 키조차 또래 여자 아이들에 비해 조금 커서, 시이엔 황자를 위해 준비했던 검은 셔츠와 바지가 참으로 잘 어울렸다.

 “이 정도면 오 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겠군요.”

 제르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여러 가지를 익혀 가는 세인의 모습을 보면, 약속된 5년이라는 시간 안에 충분히 황자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네.”

 그런 제르의 말에 세인은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왜 오 년이에요? 황성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좀 더 뒤로 미루셔도 되잖아요.”

 세인은 그것이 궁금했다.

 여자인 자신을 데려와 가짜 황자 노릇을 시킬 정도로, 굳이 5년이라는 시간을 딱 잘라놓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다른 이를 찾아보아도 될 텐데, 5년이라는 시간에 맞추어 급하게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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