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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게임판타지
코어월드
작가 : 재시작
작품등록일 : 2017.12.8

“코어월드의 최강자가 되겠다. 하드코어 모드로!”

세계 최대 VRMMORPG 코어월드.
전업 게이머 나강일은 코어월드에서 레벨 99를 돌파한 초월마도사 ‘퀀텀 코어시커’다. 최강을 추구하는 그는 최강자인 코어마스터에게 도전했으나 압도적인 힘에 밀려 패배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는다. 돈과 건강과 캐릭터까지.
좌절한 폐인이 된 나강일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그것은 하드코어 모드. 더 어려운 대신 두 가지 보너스를 지급 받는 모드다. 단, 하드코어 모드로 게임하다가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다.
나강일은, 자의반타의반의 심정으로,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걸고 코어월드에 재접속한다. 레벨 1의 하드코어 플레이어로서.

 
15화
작성일 : 17-12-13 20:20     조회 : 501     추천 : 1     분량 : 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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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웃음을 그친 헬레나는 내게 물었다.

 “뭐가 그리 궁금한데? 전부는 무리고, 딱 하나의 질문에 대해서는 가르쳐 줄게.”

 “약속이죠?”

 “응. 약속.”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나에게는 수십 개의 질문이 있었다. 데이나의 정체부터 해서 엑셀레온 컴퍼니와 바이코뮤닉 길드에 관해서도 묻고 싶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나뿐이었다.

 “당신이 코어월드에 하드코어 캐릭터를 생성하고 하드코어 모드로 플레이하는 이유는 뭡니까?”

 “……그게 궁금해?”

 “네.”

 헬레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코로 숨쉬는 소리가 조금 커지는가 싶더니, 툭 내뱉듯이 말했다.

 “최고가 되고 싶어서야.”

 헬레나는 방금 전 박장대소한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의기소침한 얼굴이었다.

 “나는 말이지. 부모님은 죽었지만 언니가 유능해서 부자야.”

 “압니다.”

 “원한다면 어느 대학이건 들어갈 수 있어. 어느 연예인하고도 연애할 수 있어. 어느 거라도 먹을 수 있고 어느 곳이라도 여행 할 수 있어. ……언니의 돈만 있으면 말이야.”

 여기까지만 들으면 마치 헬레나가 데이나의 돈을 바라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헬레나 아가씨는 그게 싫었던 거군요.”

 “맞아. 나는 그게 싫었어.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괜찮다면 제가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헬레나 아가씨. 당신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던 겁니다.”

 “나 자신의 가치?”

 “헬레나 아가씨는 모든 걸 버리고 갑자기 가난하게 살 수 있을까요?”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아.”

 “바로 그겁니다. 부유하고 풍족하고 쾌적하게 살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언니에게 의존하면서 살고 싶지만은 않은 기분. 즉, 자신의 풍요로운 삶을 스스로 쟁취하고 싶다는 욕망.”

 “아아…….”

 “그 욕망을 발현할 신세계가 있죠. 그곳이 바로 이곳.”

 “코어월드.”

 “그겁니다. 그것도 보통 캐릭터로는 곤란했죠. 스탠다드 캐릭터로 레벨 1부터 키우기 시작해서는 까마득하니까. 단순히 코어월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헬레나 아가씨가 원한 건 다른 것이었죠? 바로…… 정점.”

 “마치 내 속마음을 들여다 본 것처럼 말하네.”

 “다 압니다.”

 “웃기지 마. 누구도 내 마음을 몰라.”

 “압니다. 그리고 저는 안다고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

 “어째서?”

 “저는, 퀀텀 코어시커로서, 이 세계의 정점인 코어마스터에게 도전했었습니다. 그리고 처절하게 패배했습니다.”

 내 뇌가 욱신거리는 듯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헬레나의 얼굴은 같은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소녀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반강제였긴 하지만…… 저는 정점에 재도전하기 위해 하드코어 모드로 지금 플레이 중입니다. 그리고 제가 코어월드에서 만난, 저랑 가장 닮은 사람은 바로 헬레나 아가씨. 당신입니다. 같은 하드코어 플레이어로서의 동질감, 그 이상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헬레나는 고개를 숙였다.

 “헬레나 아가씨. 저는 당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분명히 이해한다고 확신합니다.”

 “흑……. 으흑…….”

 헬레나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흐와아아아아앙……!”

 어린아이처럼, 아예 호텔 객실 바닥에 주저 앉아 울기 시작했다. 당현준과 최명석은 어쩔 줄 몰라하며 서로를 돌아 볼 뿐이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헬레나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줬다.

 “자자, 그만 우세요. 하드코어 캐릭터로 플레이 하는 하드코어 플레이어라면, 남들 앞에서는 절대 울어서는 안됩니다.”

 “흑, 으흑……!”

 “울어서 경험치가 오른다면 울어도 좋지만 말이죠.”

 “흑…… 후훗……!”

 헬레나의 울음은 작은 코웃음으로 그쳤다.

 “그렇지. 마지막까지 하드코어 플레이어로서 마무리 지어야겠지.”

 “그렇죠. 그럼 함께 로그아웃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헬레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응…….”

 헬레나는 눈물을 닦은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로그아웃.”

 우리는 로그아웃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헬레나 구출 임무는 일단락되었다.

 

 

 “으음.”

 나는 가상과 현실이 이어질 때의 어지러움 속에서 잠시 신음했다.

 “해냈군요.”

 여자 목소리. 데이나였다. 그녀는 내 VR 디바이스와 연동된 스크린을 통해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여동생을 보고 올 테니.”

 데이나는 왠지 모르게 허둥거리며 방을 나갔다.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30분 뒤.

 데이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왔다. 둘 다 아는 얼굴이었다.

 “당현준과 헬레나 아가씨군요.”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당현준은 내가 이름으로 부르자 무척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데이나 회장님. 이놈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 제거할까요?”

 “아직입니다. 헬레나가 나강일 씨를 마음에 들어 하니까요. 그렇지, 헬레나?”

 “응. 죽이진 않았으면 해.”

 헬레나는 내가 정말로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녀는 내게 다가오더니 직접 내 몸에 묶인 밧줄을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풀리지 않았다.

 “누가 이렇게 꽉 묶은 거야?”

 “비켜보렴.”

 데이나가 나이프를 꺼내더니 내 몸을 묶은 밧줄을 풀어 주었다.

 “그럼 이제 나는 자유인 겁니까, 데이나 님?”

 “후훗. 더 붙잡아 둘 이유는 없죠. 원한다면 우리 비서실장이 원래 있던 고시원으로 데려다 줄 겁니다. 그렇죠?”

 “회장님. 부다 다른 놈을 시켜주십쇼. 저 오만불손한 인간과 엮이는 건 이제 사양입니다.”

 당현준은 나를 흘겨보았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나도 당현준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상관없지만.

 “이런, 미움받아버렸군. 당현준 씨.”

 “씨? 지금 씨라고 했나? 멋대로 부르지 말게. 나보다 나이도 어린 주제에.”

 당현준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이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곁에 데이나와 헬레나가 있으니 그 이상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뭐, 어쩌라고. 내가 건방 떠는 꼴이 보기 싫으면 이 방에서 나가.”

 “뭐, 뭐라고……!”

 “나는 건방 떨 자격이 있거든. 왜냐하면 나는 여러분의 소중한 헬레나 아가씨를 구출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바라는 복수를 처리했고, 그녀의 속마음까지 다 들어줬어. 그리고 함께 로그아웃까지 했다고. 그러니 내 고용주 뻘 되는 데이나 회장님이나 헬레나 아가씨에게는 예의를 차릴지언정, 실제로 나를 납치하고 부려 먹은 비서실장 당신에게는 차려 줄 예의가 없어.”

 “으그그극……!”

 당현준은 드라마 속 고혈압 환자처럼 뒷목 잡고 비틀거렸다.

 “그쯤 해둬요. 두 사람 모두.”

 데이나가 말했다. 당현준은 참는다는 표정으로 한 걸음 물러났고 나는 참으라는 표정으로 코웃음쳤다.

 “정식으로 사과하고, 또 감사하겠어요. 내 여동생을 데리고 나와줘서 고마워요.”

 데이나는 두 손을 단전에 모은 채 공손히 내게 절했다. 아름다운 녹색 머리카락이 에메랄드 폭포수처럼 흘러 내렸다.

 “아아, 됐습니다. 인사치레 따위는.”

 나는 오만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데이나는 허리 숙인 자세로 움찔 했다. 나름 충격 받은 모양이다.

 “그보다 사업 제안이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어떤 제안이죠?”

 “다른 사람들을 내보내주시죠.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데이나 회장님. 단둘이 남으시려거든 다시 저놈을 묶으십시오.”

 당현준은 방방 뛰었다.

 “나가 있어요. 비서실장. 그리고 헬레나, 너도 네 방에 들어가 있어.”

 “……이따가 나 혼낼 거야?”

 “습.”

 데이나가 손을 올리자 헬레나는 후다닥 도망쳤다. 당현준은 머뭇거리다 방을 나갔다.

 “자, 이제 둘 만 남았어요.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코어월드 공략.”

 “네?”

 “말 그대로 코어월드 전체를 지배하는 겁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계획은 이미, 하드코어 캐릭터를 만드는 순간 확정되었다.

 “지금 저의 레벨이 50정도 되었으니, 사실 나 혼자서도 가능합니다만 조력자가 있으면 훨씬 편하거든요.”

 “자, 잠시만요. 코어월드 전체를 지배한다는 게 무슨 뜻이죠?”

 “음? 말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만.”

 나는 턱을 긁적이며 줄줄 읊었다.

 “제라쿠스 제국의 24개 남작령, 12개 백작령, 4개 공작령, 2개 왕국령을 포함한 대륙 서부 지역을 모두 정복합니다. 노워니아 공화국에 속한 13 대도시를 포함한 대륙 동부 지역을 정복합니다. 물론, 지하계와 천상계도 정복해야겠죠. 그리고 영토 뿐만 아니라 대다수 플레이어들과 관련된 모험가 협회의 회장이 되고, 코어 길드로 분류되는 전사 길드, 도적 길드, 마법사 길드의 그랜드 마스터가 됩니다. 그리고 군소 길드들은 위의 것들을 모두 정복하고 장악하면서 자연스럽게 지배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뭉뚱그려서 코어월드 정복 이라고 합니다.”

 데이나는 보기 드물게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린 채 나를 보았다.

 “그, 그런 일을 실제로……?”

 “뭐, 이론상 가능하죠. 그리고 나름 확신도 있습니다.”

 나는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렙빨, 템빨, 돈빨만 받쳐주면 코어월드에서는 뭐든 할 수 있다. 거기에 운빨도 있으면 금상첨화다.

 “몇 가지 핵심 방안은 기획해 뒀지만, 그게 잘 되지 않을 수 있죠. 잘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데이나 님에게 사업에 동참할 것을 제안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데이나 님?”

 “그 누구도 코어월드를 정복한 적은 없어요. 코어마스터조차 코어월드의 중앙 호수에서 세상을 관조하고 있을 뿐, 직접적으로 코어월드를 통제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렇죠. 제라쿠스 제국의 황제조차도 코어월드의 서부를 엉성한 봉건제로 장악하고 있죠. 동부의 노워니아 공화국 총통조차도 투표로 선출되어 삼권 분립의 원칙 하에서만 권력을 행하고 있죠.”

 “그래요. 황제도, 총통도, 코어마스터도 코어월드 전체를 정복하지 못했어요.

 ”그렇죠. 누구도 해내지 못했죠. 지금까지는.”

 나는 히죽 웃었다.

 “그 기록은 조만간 바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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