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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9.혹시 나 좋아해요?
작성일 : 17-10-31 16:12     조회 : 17     추천 : 0     분량 : 8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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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수국을 들고 대기실까지 찾아왔던 정혁이 다시 회사로 들어가 봐야 한다고 해서, 제이는 공연장 홀에서 정혁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

 

 직접 공연장을 찾아와서, 자신을 응원해준 정혁에게 많이 신경 써주지 못한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던 제이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대기실에서 빠져나와 마지막까지 정혁을 배웅했다.

 

  "조금 있다가 저녁 공연 보러 올게요."

 

  "네, 열심히 준비할게요."

 

 떠나기 전 제이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 정혁은 머뭇거리는 제이를 재촉하지 않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정혁의 따뜻한 시선에 용기를 낸 제이는 조심스럽게 따뜻하고 보드라운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들으면서 연필만 쥐고, 공부만 했을 것 같이 곱고 보드라운 손이었다.

 

 정혁은 제이의 손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이따 저녁 공연 때 봬요."

 

 제이는 사라지는 정혁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뉴욕에서 백룡의 공연을 보고 팬이 되었다는 정혁은 무대에서 놀라운 마술을 보여주던 백룡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도 '마술사 윤백룡'을 그리워하고 생각해주는 백룡의 팬이 이 세상에 남아 있다는 게 신기했고, 자신의 아빠가 아닌 '마술사 윤백룡'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었던 제이는 정혁과의 만남이 짧게만 느껴졌다.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누가요?"

 

  "엄마야!"

 

 제이는 갑자기 공연장 홀을 쩌렁쩌렁하게 울린 철수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심장 떨어질 뻔했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제이가 뒤를 돌아보니 철수가 계단 위에서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이을 바라보는 철수의 눈빛은 가을에 부는 바람보다 더 싸늘했다.

 

  "뭐에요, 깜짝 놀랐잖아요."

 

  "왜 놀랍니까? 무슨 나쁜 짓 했습니까?"

 

 계단에서 내려와 제이의 코앞까지 다가와 눈을 마주친 철수는서늘한 눈빛으로 제이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뭐야, 이 남자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나쁜 짓이라뇨. 제가 나쁜 짓을 왜 하겠어요. 그냥 갑자기 철수 씨가 나타나서 놀란 거잖아요."

 

  "…….“

 

 잔뜩 화가 난 듯 딱딱하며 표정을 굳히고 있는 철수는 팔짱을 풀지 않은 채 삐딱하게 제이를 바라봤다.

 

 ……혹시 나한테 뭔가 화가 난 건가?

 

 철수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던 제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철수의 눈빛은 한겨울에 부는 바람보다 더 차갑고 매서울 걸 보니, 왜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저 사람이 왜 윤제이 씨를 찾아온 겁니까."

 

  "우리 아빠의 오래된 팬이셨대요."

 

  "선생님의 팬이요?"

 

 제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심각한 표정으로 꼴똘히 생각에 잠긴 철수가 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런데요?"

 

  "……네?"

 

  "그런데 왜 윤제이 씨를 찾아온 겁니까?"

 

  "그냥…… 우연히 인터넷에서 기사를 보다가 제가 이곳에서 공연하는 걸 아셨대요."

 

  "우연히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철수는 허, 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왜 이러는 거야.

 

 제이의 표정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조금씩 굳어져 가고 있었다.

 

  "우.연.히 제이 씨가 여기서 공연하는 걸 알았다고요?"

 

  "네, 마침 공연장이 정혁 씨 회사 근처라서 저를 응원하러 잠깐 들르셨대요."

 

  "응원이요?"

 

  "네."

 

  "그 사람이 제이 씨 응원을 왜 합니까?"

 

 아무 죄도 짓지 않는 자신을 마치 범죄자처럼 대하는 철수를 보고, 제이는 잔뜩 이맛살을 찌푸렸다.

 

 흡사 경찰서에서 취조받는 느낌이라 제이는 빨리 철수와의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예전에 소극장에서 아빠와 공연하던 저를 본 적이 있다고 하셨……”

 

  “그럴 줄 알았지.”

 

 불쑥 끼어든 철수에게 말허리가 잘린 제이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뭐가 그럴 줄 알았다는 거예요?"

 

  "그 사람 좀 이상한 사람인 것 같군요."

 

  "정혁 씨가요?"

 

 철수가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대뜸 이상한 질문을 했다.

 

  "이름은 어떻게 안 겁니까?"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정말.

 철수의 황당한 질문에 어이가 없어진 제이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소리가 삐져나왔다.

 

  "당연히 정혁 씨가 알려주셨죠."

 

  "……아, 그렇군요."

 

  "처음 만난 사람이랑 통성명도 못 해요?"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철수를 보며 제이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야.

 

 알 듯하면서도 모르겠는 그와의 대화에 피곤해진 제이는 냉정하게 철수를 지나치고 대기실을 향해 걸어갔다.

 

 리허설 시간까진 아직 한참 남았지만, 대기실에서 간단한 마술로 손을 풀면서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고 싶었다.

 

 그런데 철수는 제이의 뒤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이정혁 씨, '신세상' 대표이사 아닙니까?"

 

  "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사업하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잘합니다. 분명히 우연히 이곳을 찾았다는 건 거짓말일 겁니다."

 

  "정혁 씨가 거짓말을 했다고요?"

 

 복도를 걸어가던 제이가 우뚝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래요. 확실합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제이가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정혁 씨가 그럴 사람 같진 않던데."

 

  "원래 사업가들은 자기 실적이나 영업이익을 부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명히 거짓말한 것일 겁니다.“

 

  "아니에요, 거짓말 같진 않았어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은 제이는 계속 복도를 걸어나가자, 뒤에서 따라오던 철수가 제이의 앞길을 막아섰다.

 

  "분명히 거짓말이라니까요. 제이가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 그래요."

 

  "사업가들이 거짓말을 잘해요?"

 

  "네, 완전 다 거짓말쟁이들이죠."

 

  "……그럼 철수 씨는요?"

 

 제이는 입을 다문 철수를 보고 속으로 몰래 웃음을 지었다.

 

 난감해하는 철수의 모습을 보니 완전 깨소금이었다.

 

  "철수 씨도 사업가잖아요. 그럼 철수 씨도 거짓말 잘해요?"

 

  "……아니죠. 난 아니에요."

 

  "뭐가 달라요? 철수 씨도 정혁 씨처럼 사업가잖아요."

 

  "난 다른 사업가들과는 달라요. 역시 제이는 사람 볼 줄 모르는군요."

 

 말끝마다 제이는 세상을 모른다, 제이는 사람 볼 줄 모른다면서 자신을 무시하는 철수를 보고, 제이는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왜 마음대로 '제이'라고 부르는 건데.

 

 제이는 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철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강철수 씨는 여기 왜 오신 거예요?”

 

 철수가 덥석 제이의 손목을 잡아끌자, 확연한 힘차이 때문에 철수에게 끌려간 제이는 점점 대기실의 문과 멀어졌다.

 

  “가요.”

 

  “어딜 가요?”

 

  “밥 사줄게요.”

 

 꼬르륵.

 

 눈치 없는 배꼽시계가 울리자 제이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철수는 제이의 배에서 울린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얘기해 봐요. 뭐 먹고 싶어요?”

 

 아침을 먹지 않아서 마침 출출했던 제이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떡볶이요.”

 

 

 

 ***

 

 

 

 공연장 근처에 있는 빨간 떡볶이집을 찾은 제이는 주인아줌마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제이 학생, 이게 얼마 만이야."

 

  "진짜 오랜만인 것 같아요."

 

  "제이 학생! 아주 예뻐졌네."

 

 교복을 입고 빨간 떡볶이집을 자주 찾았던 제이를 기억한 아줌마는 자신을 '학생'이라고 부르며 반갑게 맞이했다.

 

 사실 교복을 벗은 지 벌써 5개월이나 지났지만, 제이는 자신을 학생이라고 부르는 아줌마에게 기분 좋은 미소를 보냈다.

 

  "아줌마, 떡볶이 일 인분이랑 순대 일 인분 주세요."

 

 제이는 빨간 떡볶이집에 올 때마다 앉는 지정석 -가게 제일 안쪽에 있는 자리- 으로 자연스럽게 향했다.

 

 천장이 조금 낮았는지 살짝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온 철수는 어색하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제이의 맞은편에 앉았다.

 

  "먹고 싶은 게 떡볶이에요?"

 

  "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떡볶이거든요."

 

  "내가 사주겠다는데 겨우 떡볶이가 먹고 싶었어요?"

 

 제이와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스테이크를 먹을 생각을 했던 철수는 지금 자신이 허름한 떡볶이집에 앉아있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겨우'라니요. 여기 떡볶이가 얼마나 맛있는데요. 철수 씨한테 꼭 한번 맛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군요."

 

 손으로 턱을 괸 철수는 픽, 하고 웃음을 지었다.

 

 정말 제이는 자신이 독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호라는 걸 알고 있는 걸까.

 

 떡볶이와 순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제이를 보면서 철수는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독일에서 성공한 철수에게 접근한 여자들은 모두 자신에게 물질적인 것들 -반짝거리는 보석이나 동물 가죽으로 만든 명품 가방, 아니면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길었던 구두 따위의 것들- 을 요구했다.

 

 철수는 흔쾌히 여자들의 요구를 들어줬지만, 속으론 그녀들이 원하는 것이 물질이라는 것을 알고 차갑게 마음이 식어갔다.

 

 성공하면 할수록 주변에는 자신의 재산을 보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아닌 척 내숭을 떨었지만, 철수의 눈에는 다 보였다.

 

 철수는 자신의 배경이 아닌 자신과 보내는 시간을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는데 제이가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것을 보고 조금 놀라웠다.

 

 주문한 떡볶이와 순대가 나오자 제이는 철수에게 젓가락을 쥐여주었다.

 

 포크로 열심히 떡볶이를 찍어 먹던 제이가 가만히 있는 철수에게 물었다.

 

  "떡볶이 별로 안 좋아하세요?"

 

  "아뇨, 좋아합니다."

 

 철수는 떡볶이를 입안으로 가져갔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떡볶이였다.

 

 매콤한 떡볶이의 냄새를 맡자 어렸을 때 태오와 일 인분 시켜서 나눠 먹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시 가난이 미치도록 싫었던 철수는 태오에게 떡볶이를 마음껏 사줄 수 있을 정도로 부자가 되고 싶었다.

 

 오랜만에 떡볶이를 먹으니 철수는 감개무량해졌다.

 

  "그런데 철수 씨."

 

 그녀의 입가에 빨간 양념이 묻은 것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트린 철수는 옆에 있던 티슈를 뽑아 제이에게 건넸다.

 

 철수가 손가락으로 입가를 가리키자 제이는 얼른 티슈로 얼굴에 묻은 양념을 깨끗하게 닦았다.

 

  "그런데 왜 부른 거예요?"

 

  "네?"

 

  "아까 나한테 할 말 있었잖아요. 말해 봐요."

 

 이번에 철수는 순대 옆에 놓여있는 간을 입으로 가져갔다.

 

 늘 먹던 푸아그라(거위의 간으로 만든 프랑스 음식)는 아니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깔끔하게 입가에 묻은 양념을 닦아낸 제이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철수 씨는 왜 그렇게 정혁 씨를 싫어하시는 거예요?"

 

  "……뭐라고요?"

 

 순식간에 입맛이 떨어진 철수는 젓가락을 아래로 내려놓았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요."

 

  "……."

 

  "정혁 씨 한테 거짓말쟁이라느니, 사기꾼이라느니 그런 소리는 왜 하는 거예요?"

 

  "사기꾼이라고는 안 했습니다."

 

 입맛이 뚝 떨어진 철수는 다리를 꼬려고 했지만, 그의 긴 다리가 들어가기에는 테이블이 너무 낮고 좁았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까?"

  "네?"

 

  "제이는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것 같군요."

 

  "……뭐가 위험하다는 거예요?"

 

 사실 지금 제일 위험한 건 표정을 무섭게 구기고 있는 철수와 마주 앉은 자신인 것 같았지만, 제이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꽃다발을 들고 제이를 찾아오다니 정말 수상하지 않습니까?"

 

 사실 제일 수상했던 사람은 갑자기 나타나서 꽃다발을 건넸을 뿐만 아니라, 이상한 내용이 적혀있는 카드까지 보냈던 철수였지만 그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던 제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정말 이상한 겁니다. 제이가 TV에 나와서 유명해진 만큼 조금 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럼요. 세상에 이상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TV에 나온 제이를 보고 진심으로 사랑에 빠졌다면서 스토킹하는 미친놈이 나타날 수도 있어요."

 

 듣고 보니 철수가 없는 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아서, 제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철수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었다.

 

  "'택시 드라이버'라는 영화 알아요?"

 

  "……아, 저기 송강호가 나오는……."

 

  "아뇨, 한국 영화 말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만든 '택시 드라이버'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그건 또 누구야?

 

 제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택시 드라이버'에서 조디 포스터라는 여배우가 열연을 펼쳤습니다. 영화에 나온 조디 포스터에게 반한 스토커가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시도했어요."

 

  "……엄마야, 정말요?"

 

  "그래요, 다행히 레이건 대통령에게 쏜 총알은 옆으로 빗나갔지만, 그 뒤로도 스토커는 조디 포스터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했습니다."

 

  "……세상에!"

 

 전 국민에게 얼굴이 알려진 것이 이렇게 위험한 건 지는 꿈에도 몰랐는데.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진 제이는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제이의 곁엔 제이를 지켜줄 수 있는 나 같은 남자가 필요해요."

 

  "네, 정말 그런 것……네?"

 

 잠깐 지금 뭔가 이상한데.

 

 제이는 뭐가 이상한 건지 딱히 꼬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지금 철수의 지나가든 한 말이 굉장히 요상하게 느꼈다.

 

 철수가 이번엔 스토커에 시달렸던 일본 아이돌의 이야기를 해줬지만, 제이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할 말을 다 끝낸 철수는 여유롭게 컵에 담긴 차가운 물을 마셨지만, 그녀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궁금해서 조심스럽게 제이의 표정을 살폈다.

 

 눈꺼풀을 깜박거리던 제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철수 씨."

 

  "왜요.“

 

  "혹시 나 좋아해요?"

 

  "……컥!"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린 철수는 거칠게 기침을 했다.

 

  추하게 물을 뱉지 않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을 마셨는데도 목구멍이 덴 듯 쓰라렸다. 겨우 기침을 멈춘 철수가 들고 있던 컵을 테이블 위에 탁, 하고 소리 나게 내려놓고, 두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제이는 어딜 봐서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걸까.

 

 눈치를 보고 있는 제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철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 먼저 일어날게요."

 

 갑자기 일어서는 철수를 보고 당황한 제이가 덥석 철수의 팔목을 잡았다.

 

  "혹시 화났어요?"

 

  "아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왜……"

 

  "그냥 조금 황당해서요. 내가 제이를 좋아한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네, 그러네요."

 

 풀이 죽은 제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제이는 떡볶이와 순대를 다 먹지 못한고 밖으로 나왔다.

 

 나란히 거리를 걸으면서 제이는 슬쩍 철수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화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표정을 모아 하니 아주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오래간만에 좋았던 분위기를 자신이 다 깨버린 것 같아서 제이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럼 난 가보겠습니다."

 

  "……네."

 

 짧게 마지막 인사를 한 철수가 냉정하게 몸을 돌렸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그의 등을 보자 왠지 서러워진 제이가 크게 철수를 볼랐다.

 

  "철수 씨!"

 

 철수는 뒤를 돌아보진 않고 발걸음만 멈춰 세웠다.

 

  "……오늘 공연 보러 올 거예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힐끗 고개를 돌려 덤덤한 어조로 대답한 철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제이는 한동안 철수의 뒷모습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

 

 

 

 공연 한 시간 전, 제이는 종환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네에? 무대 조명이 안 켜진다고요?"

 

 종환이 안타까운 듯 표정을 구기며 고개를 숙이자, 제이는 무대 조명을 조정하는 곳에 가서 기계의 버튼을 눌러봤지만, 조명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시윤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내가 종환 아저씨랑 고쳐본다고 고쳐봤는데. 점심 먹고 오니까 또 작동이 안 되더라고."

 

 제이는 속에서 흘러나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술사가 무대에서 훌륭한 마술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제이는 자신의 마술 공연을 찾아온 관객들에게 항상 멋있는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조명 없는 무대는 단팥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설픈 무대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느니 차라리 오늘 공연은 취소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들지 제이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한 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어떡하지.'

 

 이미 공연장 밖에는 일찍 온 관객들이 공연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민을 하던 제이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어쩔 수 없죠. 그럼 오늘 공연은 취소해야겠어요?"

 

  "취소? 제이야, 그럼 미리 오신 관객들이 엄청 화내실 거야."

 

 시윤이 지우의 말을 거들었다.

 

  "만약 공연을 취소하게 된다면 공연장 측에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물어야해."

 

  "……어쩔 수 없죠."

 

 막대한 위약금을 물더라도 제이는 관객들에게 허술한 공연을 보여주는 것보다 취소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 이게 맞는 거야.’

 

 처음 마술 공연을 보러 오시는 분들도 많은데 실망스러운 공연을 보여 드릴 수 없지.

 

  "잠깐만요."

 

 무대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돌렸다.

 

  "오늘 공연을 취소하다니,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강철수 씨?

 

 철수는 분명한 어조로 마술 단원들에게 지시 사항을 내리며, 차근차근 막혀있던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갔다.

 

  "시윤 씨, 일단 관객들에게 한 시간만 공연을 늦추겠다고 양해를 구하세요. 관객들에게 지금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죄송하다고 사과하면 관객들도 이해해주실 겁니다."

 

 마술 공연의 연출을 맡은 시윤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공연 관람을 취소하시겠다는 사람이 계신다면 전액 환급해 주세요. 정중하게 사과드리고 꼭 주차권도 챙겨 드려야 합니다. 대기하는 관객들을 위해서 제이 씨랑 기범 씨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마술을 보여주세요. 그 정돈 할 수 있죠?"

 

 철수가 눈짓하자 기범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 동안 제가 부른 조명 전문가들이 무대 조명을 고칠 겁니다. 그럼 공연이 시작될 때까지 다들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철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이는 종환과 진지한 표정으로 의논하고 있는 철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후우, 날숨을 내뱉다가 눈이 마주친 철수에게 제이는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

 

  '왔네요.'

 

 철수도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다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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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강 레옹과 윤 마틸다 2017 / 11 / 6 16 0 8600   
26 26.보고만 있어도 좋은 사이 2017 / 11 / 6 12 0 8195   
25 25.두 사람 신혼부부죠? 2017 / 11 / 6 13 0 8649   
24 24.‘표적’이라 불리는 사나이 2017 / 11 / 6 14 0 8410   
23 23.그럼 나랑 사귈래요? 2017 / 11 / 6 18 0 7797   
22 22.만나서 뭐했습니까? 2017 / 11 / 6 16 0 8274   
21 21.연애하는 기분 2017 / 11 / 6 18 0 8500   
20 20.우리 이제 같이 살아요 2017 / 11 / 6 15 0 8426   
19 19.동거와 홈 셰어의 미묘한 차이 2017 / 11 / 6 18 0 8169   
18 18.아침형 인간 vs 올빼미형 인간 2017 / 11 / 6 18 0 8480   
17 17,다시 만난 철수 2017 / 11 / 6 15 0 8328   
16 16.그녀와 잘 어울리는 집 2017 / 11 / 6 14 0 8622   
15 15.인류애가 넘치는 남자 2017 / 11 / 2 19 0 7889   
14 14.난 독일로 돌아갑니다 2017 / 11 / 1 19 0 8558   
13 13.발송인불명 편지 2017 / 11 / 1 21 0 8661   
12 12.눈을 뗄 수 없는 여자 2017 / 11 / 1 12 0 7755   
11 11.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당신 2017 / 11 / 1 19 0 8472   
10 10.당신이 내 곁에 없다면 2017 / 10 / 31 18 0 8112   
9 9.혹시 나 좋아해요? 2017 / 10 / 31 18 0 8653   
8 8.불안한 사각관계 2017 / 10 / 31 13 0 8381   
7 7.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것 2017 / 10 / 31 20 0 8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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