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덩치가 가판대에 놓여있는 말린 과일들을 한 움큼 손안에 쥐어 몇 개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낙천의 한쪽 눈썹이 절로 위로 올라갔다.
덩치가 입을 오물거리며 건어물 주인에게 제 손에 쥔 말린 과일을 흔들어 보였다.
돈도 내지 않으면서 참으로 뻔뻔한 행동이었다.
얼굴이 굳었던 주인이 옅은 한숨을 내쉰다 싶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낙천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저 시……, 누군 호구라서 돈 내고 먹나?”
자신은 한 푼도 깎지 못하고 먹는 말린 과일이었다. 그걸 놈은 공짜로 날름날름 먹는다는 것이 짜증이 나는 낙천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렸다.
20대 중반의 인상 더러운 놈이었다.
놈은 낙천을 기분 나쁜 얼굴로 아래위로 훑어봤다.
낙천 주위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놈의 눈길에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서 후다닥 도망을 갔다.
낙천은 놈의 눈빛을 피하지 않은 채 말린 과일을 입에 털어 넣었다.
꿈틀!
녀석이 낙천의 눈빛을 더욱 강하게 쏘아봤다.
한쪽 눈썹을 치켜세운 낙천이 우습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보였다.
녀석의 얼굴이 굳는다 싶더니 성큼 낙천 쪽으로 발을 떼었다. 허리춤에 걸린 귀두도(鬼頭刀)가 철컹 움직였다. 그에 따라 손잡이 끝에 달린 장식까지 이리저리 흔들렸다.
“허 조장!”
순간, 장부를 든 사내가 왔던 길을 돌아가면서 사내를 불렀다.
사내는 낙천을 쏘아보다 어깨를 으쓱한다 싶더니 장부를 든 사내의 뒤를 쫓았다.
쫓아가다가 사내가 낙천을 제대로 기억하겠다는 듯이 뒤를 돌아봤다.
낙천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린 과일을 입안에 털어 넣을 뿐이었다.
세 사내가 멀어지자 낙천 뒤의 포목점에서 주인이 나와 불쑥 입을 열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네. 저자는 허만이라는 자로 얼마 전에 새로 들어온 금전장(金錢莊) 사람이라고. 자네는 초임자라 모르겠지만, 금전장과 수인장은 이곳 지역에서 어느 쪽이 영향력이 크다고 단정할 수 없네. 그러니 웬만하면 서로의 일에 간여하지 않지.”
낙천이 시큰둥한 얼굴로 말린 과일만 씹어대자 주인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좀 전에 말한 그 허만이라는 자,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긴다고 하더군. 원래 금전장이 이렇게까지 인심이 야박하지 않았는데 저 허만이라는 자가 들어온 뒤로 아주 각박해졌어. 며칠 전에는 저기 빈 가게 보이지? 저기가 원래 과일 가게였는데 빌린 대금을 갚지 않았다고 허만이라는 자와 그 똘마니로 보이는 좀 전에 젊은 놈이 가게 주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모두 어딘가로 끌고 갔다는 소문이 돌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서 어딘가에 묻었다는 사람들도 있고 토막을 내서 뒷간에 버렸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돈다니까.”
낙천은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린 과일만 털어먹다가 입을 열었다.
“흉흉한 건 모르겠고 아주 드러븐 놈이네.”
“드러븐……? 풋! 이 소문을 듣고도 자네처럼 반응하는 사람은 처음…….”
신이 나서 말하던 포목점 주인이 갑자기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근데 자네, 방금 나한테 설마 반말한 건가?”
낙천은 사내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먹고 있던 말린 과일을 내밀었다.
“먹을래?”
“야 이, 어린놈의 새끼가?!”
“뭐 얼마나 차이 난다고 그래?”
황당한 표정을 보이던 주인이 신경질적으로 제 민머리를 낙천에게 들이밀었다. 귀 뒤에만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 하얀 머리카락을 제대로 보라는 듯이 주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기까지 했다.
“니 눈깔은 백태냐? 이 흰머리가 보이지도 않아?”
“시……, 진짜 귀찮네.”
“뭐여?”
얼굴이 붉어진 주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낙천이 그 자리를 벗어나며 말했다.
“멋지다고. 할배 머리 진짜 멋져.”
낙천이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웠다.
두 눈을 데구르르 굴리던 주인이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제 남은 머리카락을 양 손가락으로 빗어넘겼다.
“험험!”
걸어가던 낙천이 슥 돌아봤다.
“할배! 나랑 친구 하지 않을래? 날 위해 목숨까지 바쳐주면 더 좋고.”
“……”
기가 막혀 쩌억 입을 벌린 주인이 정신을 차린 듯 신발을 벗어 던졌다.
“꺼져라, 이 정신 빠진 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