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문자의 아이들
작가 : 뉴레기
작품등록일 : 2017.7.8

첫 번째 암흑기를 주도했던 세 명의 사이먼 중 하나인 젤브로스는 두 번째 암흑기가 도래하려하는 전란의 시기인 300년대에 모든 인과관계를 끊고 가이아드 대륙을 방황한다. 그러던중 우연히 네지라는 자의 부탁을 들어주게된다. 부탁이란 최근 도시 펠리스를 둘러싼 영악한 괴물에 대한 퇴치 의뢰였는데........

 
3
작성일 : 17-07-13 23:21     조회 : 299     추천 : 0     분량 : 10038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소녀가 눈을 뜬것은 다음날 아침 9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행여 그녀의 몸에 무슨 특별한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여(예를 들면 일전의 그 폭주라던가) 젤브로스가 절름발이 네지에게 특별히 사람을 붙여 지켜보도록 했던 것이다.

 

 젤브로스는 지금 시청의 2층에 있었다.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복도가 꽤나 혼잡했다. 민원은 모두 1층에서 받도록 돼있었지만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2층과 3층을 돌아다니며 업무를 진행했던지라 그다지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그는 계단을 발견하곤 4층까지 올라갔다. 피지 못할 사정으로 인해 집으로 돌아가기가 곤란하거나, 그럴 기력조차 상실했을 경우를 대비한 직원 휴게실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플로어였다. 소녀는 거기에 있었다.

 

 노크는 하지 않고 들어갔다.

 

 네지는 먼저 들어와 있었다. 그에게서 미세하지만 알코올 냄새가 나는것이 느껴졌다. 어젯밤 맥주라도 한 잔 했으리라.

 

 소녀는 침대 위에서 상반신만을 일으킨채 멍하니 있었다. 혼이 빠져나간 사람같았다. 혹은 뭔가의 굉장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자신의 감정을 외부로 내보내는 것을 거부하는 PTSD환자 처럼 보이기도 했다.

 

 네지가 시킨것일까, 찢어지고 더러워진 드레스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녀의 몸을 가려주는 것은 이제 그녀를 덮고있는 얇은 삼베 이불 뿐이었다.

 

 "난.....잘 모르겠군요. 마스터께서 알아서 잘 해결하시리라 믿겠습니다."

 

 네지의 눈가에 진한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다. 어제 잠을 설친모양이다. 이유는 아무래도 자고있는 동안 이 소녀의 습격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극도의 긴장감과 불안감 때문일테지.

 

 젤브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지는 데리고온 사병 둘과 함께 방문을 나섰다.

 

 "이름이 뭐니?"

 

 젤브로스가 입을 열자 소녀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는 펠리스라는 도시야. 남쪽에 있지."

 

 침대 옆 탁자위에 미지근한 물이 담긴 통과 머그잔이 보인다. 젤브로스는 물을 한 컵 따라 소녀에게 건넸다.

 

 "피부가 푸석푸석하군, 점막이 말라서 입 안이 건조해. 게다가 이유도 없이 맥박이 빨리 뛰더군."

 

 듣고는 있는걸까. 젤브로스는 더이상 아무말 않고 억지로 소녀 손에 물이 가득 담긴 머그잔을 쥐어주었다.

 

 "전형적인 탈수 증상이야. 마지막으로 물을 입에 댄게 언제지?"

 

 "........"

 

 "마음대로해. 네가 말라죽어도 내가 손해보는건 없어. 단지....."

 

 침대 옆 원형 의자에 걸터앉으며 젤브로스는 날카롭게 뜬 눈으로 소녀를 쳐다본다.

 

 "그건 시엘의 문자더군. 네 배에 새겨져 있는거."

 

 ".....!"

 

 깜짝놀란 소녀의 두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젤브로스는 이어서 말했다.

 

 "사이먼이라는 말 들어본적 있나?"

 

 소녀는 침묵했다.

 그건 또 그거대로 괜찮다는 듯 젤브로스는.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사회에 내던져지면 많은 일을 겪기 마련이야. 역사의 길이 남을 황금기에 태어나 편하게 살다가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전쟁과 역병이 끊이지 않는 암흑기에 태어나 일찍이 도태되는 인간들도 있지. 그리고 사이먼들은 도태된 인간들 사이에서 나타난단다."

 

 젤브로스는 물 통을 들어올려 입에 한 번 털어넣은 뒤 계속 이어나갔다.

 

 "누군가에겐 괴물이라 불리지만 누군가에겐 초인이라 불리는 우리들은 딱 한 가지. 사이먼으로 변이될 때 몸 어딘가에 새겨지는 '성흔'이라는 일종의 '문자'로 구별할 수 있어. 문자의 종류는 제각각이어서 겹치는 경우는 없다시피하지. 애초에 첫 번째 암흑기라 불리우는 150~250년의 역사 속에서도 단 세 명 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젤브로스는 자신의 오른손을 뒤집어 소녀에게 내밀었다. 곡선과 최소한의 직선으로만 그려진 간단한 상형문자가 그의 살갖 위에 문신 처럼 새겨져 있는것이 보이자 소녀의 동공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시엘이란 말은 알아들을 수 있는 모양이지?"

 

 소녀는 입을 뻐끔거렸다. 두 손으로 쥐고있는 머그잔의 물이 불안하게 일렁였다.

 

 "그 누구도 이 문자의 주인이 시엘이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어. 그러나 우리는 선천적으로, 성흔이 새겨짐과 동시에 눈치채고말지. 자신에게 '문자'를 불어넣은 주인의 이름이 무엇인지."

 

 앉은 자세에서 허리를 조금 구부린 뒤 두 손을 모은 젤브로스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네가 시엘이라는 이름을 알고있다면 넌 나와 같은 '시엘의 후손'이야. 믿을 수 없군. 이런일은 이제까지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없었어."

 

 젤브로스는 시선을 소녀에게로 옮겼다. 외부와 완전히 벽을 둘렀던 어제나 조금전 까지와는 다르게 지금 그녀는 어느정도 이 분위기에 녹아들어 있는 듯 보였다.

 

 "이름이 뭐지?"

 

 두 번째로 묻는 질문.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소녀는 천천히 두 입술을 떼며.

 

 ".....루브네."

 

 자신의 이름 석자를 또박 또박 말한다.

 

 젤브로스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엘의 자손 루브네. 그게 오늘부터 네 이름이다."

 

 "....자손?"

 

 의문을 제기하는 소녀에게 젤브로스는 잠시 침묵하더니.

 

 "사이먼을 구분할 때 사용하는 별칭 같은거야. 다른 사이먼이든 인간들이든 사이먼의 이름보단 그를 상징하는 문자 주인의 이름에 더 익숙해지더군.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몇 없어도 시엘이라는 이름을 아는 자는 많지."

 

 젤브로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어쩌다가 그 어린나이에 인간의 탈을 벗고 사이먼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빌어먹을 이유 때문에 동시에 오버로드의 저주까지 받게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너와 내가 같은 주인을 두었다는 사실 하나는 명백해진것 같군. 가자, 네지에게 안부를 전하고 펠리스를 떠나야겠어."

 

 ".....같이?"

 

 젤브로스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먼임과 동시에 코서인데 나이는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지. 이대로 널 방치해둘 수는 없어. 나를 만난걸 행운으로 알아라."

 

 

  이소녀가 눈을 뜬것은 다음날 아침 9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행여 그녀의 몸에 무슨 특별한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여(예를 들면 일전의 그 폭주라던가) 젤브로스가 절름발이 네지에게 특별히 사람을 붙여 지켜보도록 했던 것이다.

 

 젤브로스는 지금 시청의 2층에 있었다.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복도가 꽤나 혼잡했다. 민원은 모두 1층에서 받도록 돼있었지만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2층과 3층을 돌아다니며 업무를 진행했던지라 그다지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그는 계단을 발견하곤 4층까지 올라갔다. 피지 못할 사정으로 인해 집으로 돌아가기가 곤란하거나, 그럴 기력조차 상실했을 경우를 대비한 직원 휴게실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플로어였다. 소녀는 거기에 있었다.

 

 노크는 하지 않고 들어갔다.

 

 네지는 먼저 들어와 있었다. 그에게서 미세하지만 알코올 냄새가 나는것이 느껴졌다. 어젯밤 맥주라도 한 잔 했으리라.

 

 소녀는 침대 위에서 상반신만을 일으킨채 멍하니 있었다. 혼이 빠져나간 사람같았다. 혹은 뭔가의 굉장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자신의 감정을 외부로 내보내는 것을 거부하는 PTSD환자 처럼 보이기도 했다.

 

 네지가 시킨것일까, 찢어지고 더러워진 드레스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녀의 몸을 가려주는 것은 이제 그녀를 덮고있는 얇은 삼베 이불 뿐이었다.

 

 "난.....잘 모르겠군요. 마스터께서 알아서 잘 해결하시리라 믿겠습니다."

 

 네지의 눈가에 진한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다. 어제 잠을 설친모양이다. 이유는 아무래도 자고있는 동안 이 소녀의 습격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극도의 긴장감과 불안감 때문일테지.

 

 젤브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지는 데리고온 사병 둘과 함께 방문을 나섰다.

 

 "이름이 뭐니?"

 

 젤브로스가 입을 열자 소녀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는 펠리스라는 도시야. 남쪽에 있지."

 

 침대 옆 탁자위에 미지근한 물이 담긴 통과 머그잔이 보인다. 젤브로스는 물을 한 컵 따라 소녀에게 건넸다.

 

 "피부가 푸석푸석하군, 점막이 말라서 입 안이 건조해. 게다가 이유도 없이 맥박이 빨리 뛰더군."

 

 듣고는 있는걸까. 젤브로스는 더이상 아무말 않고 억지로 소녀 손에 물이 가득 담긴 머그잔을 쥐어주었다.

 

 "전형적인 탈수 증상이야. 마지막으로 물을 입에 댄게 언제지?"

 

 "........"

 

 "마음대로해. 네가 말라죽어도 내가 손해보는건 없어. 단지....."

 

 침대 옆 원형 의자에 걸터앉으며 젤브로스는 날카롭게 뜬 눈으로 소녀를 쳐다본다.

 

 "그건 시엘의 문자더군. 네 배에 새겨져 있는거."

 

 ".....!"

 

 깜짝놀란 소녀의 두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젤브로스는 이어서 말했다.

 

 "사이먼이라는 말 들어본적 있나?"

 

 소녀는 침묵했다.

 그건 또 그거대로 괜찮다는 듯 젤브로스는.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사회에 내던져지면 많은 일을 겪기 마련이야. 역사의 길이 남을 황금기에 태어나 편하게 살다가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전쟁과 역병이 끊이지 않는 암흑기에 태어나 일찍이 도태되는 인간들도 있지. 그리고 사이먼들은 도태된 인간들 사이에서 나타난단다."

 

 젤브로스는 물 통을 들어올려 입에 한 번 털어넣은 뒤 계속 이어나갔다.

 

 "누군가에겐 괴물이라 불리지만 누군가에겐 초인이라 불리는 우리들은 딱 한 가지. 사이먼으로 변이될 때 몸 어딘가에 새겨지는 '성흔'이라는 일종의 '문자'로 구별할 수 있어. 문자의 종류는 제각각이어서 겹치는 경우는 없다시피하지. 애초에 첫 번째 암흑기라 불리우는 150~250년의 역사 속에서도 단 세 명 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젤브로스는 자신의 오른손을 뒤집어 소녀에게 내밀었다. 곡선과 최소한의 직선으로만 그려진 간단한 상형문자가 그의 살갖 위에 문신 처럼 새겨져 있는것이 보이자 소녀의 동공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시엘이란 말은 알아들을 수 있는 모양이지?"

 

 소녀는 입을 뻐끔거렸다. 두 손으로 쥐고있는 머그잔의 물이 불안하게 일렁였다.

 

 "그 누구도 이 문자의 주인이 시엘이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어. 그러나 우리는 선천적으로, 성흔이 새겨짐과 동시에 눈치채고말지. 자신에게 '문자'를 불어넣은 주인의 이름이 무엇인지."

 

 앉은 자세에서 허리를 조금 구부린 뒤 두 손을 모은 젤브로스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네가 시엘이라는 이름을 알고있다면 넌 나와 같은 '시엘의 후손'이야. 믿을 수 없군. 이런일은 이제까지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없었어."

 

 젤브로스는 시선을 소녀에게로 옮겼다. 외부와 완전히 벽을 둘렀던 어제나 조금전 까지와는 다르게 지금 그녀는 어느정도 이 분위기에 녹아들어 있는 듯 보였다.

 

 "이름이 뭐지?"

 

 두 번째로 묻는 질문.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소녀는 천천히 두 입술을 떼며.

 

 ".....루브네."

 

 자신의 이름 석자를 또박 또박 말한다.

 

 젤브로스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엘의 자손 루브네. 그게 오늘부터 네 이름이다."

 

 "....자손?"

 

 의문을 제기하는 소녀에게 젤브로스는 잠시 침묵하더니.

 

 "사이먼을 구분할 때 사용하는 별칭 같은거야. 다른 사이먼이든 인간들이든 사이먼의 이름보단 그를 상징하는 문자 주인의 이름에 더 익숙해지더군.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몇 없어도 시엘이라는 이름을 아는 자는 많지."

 

 젤브로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어쩌다가 그 어린나이에 인간의 탈을 벗고 사이먼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빌어먹을 이유 때문에 동시에 오버로드의 저주까지 받게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너와 내가 같은 주인을 두었다는 사실 하나는 명백해진것 같군. 가자, 네지에게 안부를 전하고 펠리스를 떠나야겠어."

 

 ".....같이?"

 

 젤브로스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먼임과 동시에 코서인데 나이는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지. 이대로 널 방치해둘 수는 없어. 나를 만난걸 행운으로 알아라."

 

 

  기묘한 만남은 젤브로스에게 있어서도 비교적 산뜻한 이벤트임라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리라. 천만 제곱 킬로미터가 넘는 드넓은 가이아드 대륙에서, 목적없는 여행을 시작한지 10년이 됐으면 슬슬 모험의 풍미를 자극하는 달콤한 만남이나 발견이 하나 쯤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하는 이들도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갖고있는 이는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로운 세계에서 걱정거리 없이 살아가고 있는 나태한 인간들의 멍청이 같은 망상일 뿐이었다. 전란과 들끓는 괴물들이 가이아드 대륙을 집어삼키고 있는 315년의 이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만남이라곤 굶주린 탈영병이나 시체를 뜯어먹고 있는 괴물들 뿐이고, 발견이라고는 몰살당한 도시와 마을에서 백골화가 진행중인 수많은 시체의 산들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젤브로스가 이 소녀에게 평범 이상의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가 여행해온 10년. 평범한 모험가였다면 성벽 밖에 첫 걸음을 뗀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않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체로 다시 돌아올 것이 뻔한 이 대륙의 무법지대에서 10년을 방황해온 젤브로스가 보고 겪은 것은 아마 상상이상으로 절망적일 것이리라.

 

 물론 이 소녀, 루브네를 옳아메고 있는 사정도 어떻게 보면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황금기에는 영웅으로, 암흑기에는 괴물이라고 불리우는 사이먼임과 동시에 오버로드에게서 저주까지 받고 말았다. 하지만 이 소녀 루브네를 마냥 나락에 빠진 불행한 아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최악의 길로 치닫기 직전, 이 남자. 젤브로스를 만났다는데에 있다는 사실에 있었다.

 

 두 사람은 다음 날, 네지에게 작별을 고하곤 펠리스를 빠져나왔다. 네지는 평범한 소녀의 모습으로 식탁에 앉아 손 크기에 비해 너무 큰 은포크를 집고 이리저리 흔드는 모습이 막상 사랑스러웠는지 짐짓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평소 모습은 사병 스물을 해치고 주민들을 살해한 펠리스의 재앙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가련하고, 어여쁜 모습의 꼬마 아가씨였던 것이다.

 

 게다가 노랑에 가까운 금발에 밝은 적안을 가진 인종은 가이아드 대륙 내에서도 꽤나 드물었다. 네지는 처음엔 어디 고귀한 가문의 혈통이 아니냐고 즈레 짐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루브네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듯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

 

 참고로, 지금 루브네는 짧고 검은 반바지에 허벅지 까지 내려오는 하얀 로브가디건을 입고 있었다. 로브가디건은 새시 벨트로 허리를 고정하고 있었고 그 안엔 푸른 셔츠를 입고 있었다. 전라였던 루브네를 위해 젤브로스가 펠리스의 상점가로 가서 어울릴 법한 옷을 눈대중으로 골라 입혀놓은게 딱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루비."

 

 어느순간 부터, 젤브로스는 루브네를 루비로 부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튿날 펠리스를 떠나기 전까지 줄곧 함께 있었다. 10년 동안 줄곧 혼자 여행했던 젤브로스와, 저주받은 몸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았던 루브네는 서로 공통된 사항과(가령 시엘의 자손이라던가) 고독하게 살았던 여러 사실들이 이끌어내는 어떠한 끌림을 느끼곤 하루만에 이야기 꽃을 피울 정도로 친해지게 됐던 것이다.

 

 "에....그러니까 정말로 이 소녀가 펠리스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그 괴물이 맞는겁니까?"

 

 루브네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네지는 물어왔다. 정신을 잃은 루브네를 업고 펠리스에 도착했을 때와는 상당히 달라진 태도였다. 지금 네지는 어떻게 알아낸건지 루브네가 이전 가장 좋아했다는 음식들을 알아낸곤(꿩고기기로 만든 스튜라던지.) 주방에서 요리사들에게 주문을 하고 나온 뒤였다.

 

 전란 속에서 부흥의 도시를 이끌고있던 펠리스의 절름발이도 루브네라는 소녀가 그 끔찍한 일들을 벌여온 장본인이라는 사실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언제 폭주할진 모르지만 루비의 경우엔 내가 막을 수 있소."

 

 "어떻게?"

 

 "뭐, 그런게 있소."

 

 네지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실력을 의심하기엔 자신의 눈 앞에 서있는 남자가 써내려온 전설은 페이지로 남기면 대서사시가 될 정도였다.

 

 "펠리스를 나가면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네지는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는 젤브로스에게 루브네의 폭주를 정말로 완벽하게 막을 수 있다면 펠리스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권유해주었던 참이었다. 마스터 티어 급 용병이자 전설적인 사이먼인 젤브로스가 자신의 도시에서 지내면 네지와 펠리스 또한 세계를 뒤흔드는 폭풍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동시에 부유한 펠리스의 지원을 받으며 젤브로스는 젤브로스 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동시에 네지는 루브네의 저주를 풀 방법도 같이 모색해주겠다고도 말해주었다.

 

 그러나 젤브로스는 거절했다. 네지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루브네의 저주를 풀기 위해선 그녀에게 저주를 건 오버로드를 만나 쓰러뜨리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루브네에게 걸었던 자신의 저주가 흔들리고 폭주를 멈추는 일이 반복되는 것에 그 오버로드가 이상을 느끼고 펠리스를 습격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젤브로스는 생각했다.

 

 어쨌든 간에 펠리스에서 지내는건 민폐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제브, 다리가 아파."

 

 젤브로스가 루브네를 루비라고 부르듯, 루브네는 젤브로스를 제브라고 불렀다. 이름은 두 글자로 충분하다는 관념은 젤브로스나 루브네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곧 도착할거야."

 

 젤브로스 혼자라면 전혀 상관없었을테지만 그의 여행길에 루브네라는 작고 가녀린 여자아이가 합류했다는 것은 그의 여행 방식이 크게 달라질 것임을 의미하기도 했다. 먹고 마시지 않아도 한 달은 꿈쩍없는 젤브로스와는 다르게 루브네는 쉽게 지치고 쉽게 배고파지며 어느 것이든 간에 쉽게 질리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젤브로스는 네지에게 조언을 받았다. 펠리스로 부터 서쪽. 그곳은 북쪽 인근에서 패퇴한 공화국 본대의 소식을 듣고 왕도 정규군의 연이은 공격을 피하기 위해 공화국의 다른 본대가 일시적으로 후퇴한 지역이라고 한다. 때문에 그곳은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도 없으며, 이미 공화국 본대의 패배라는 결론이 난 북쪽 인근 지역 처럼 시체를 탐하는 괴물들의 존재도 거의 없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아니, 오히려 서쪽 지방에서 서성이던 콥서들이 시체 냄새를 맡고 죄다 북쪽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즉, 어린 소녀를 데리고 떠나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뜻.

 

 게다가 네지의 말에 따르면 펠리스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도 서쪽에 있는 모양이었다.

 

 어린 아이의 떼장이는 오래간만에 듣는군, 젤브로스는 옛날 일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뭐가 재미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둘은 오후 네 시의 디엘노움 평길을 걸었다. 파란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새들이 지저귀며 이따금 불어오는 여름의 실바람이 머리를 흐트리는, 이 절망적인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아늑한 분위기가 두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젤브로스와 루브네가 네지가 알려줬던 '피스킵 마을'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가 되어서였다.

 

 배고파.

 

 그것은 루브네의 입에서 나온 첫 번째 소리였고. 그 다음은 힘들어, 연이어 나온 씻고싶어는 정말로 허름한 초가집에 틀어박혀 탈수증세가 나올 때 까지 꿈쩍도 않고 더러워진 드레스를 입고있던 그 소녀가 맞나 싶을정도다.

 

 젤브로스는 하는 수 없이 허기를 달랠 수 있고 쉴 수 있으며 몸을 씻을 수 있는 모든 여건이 갖춰져 있는 장소인 마을 여관으로 향했다.

 

 "어서옵쇼!"

 

 저녁 일곱시가 넘어서인지 여관은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과연 전란의 혼돈 속에서도 나름대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는 네지의 말은 사실인건지 여관 안의 농부들과 인부들이 저급 와인이 든 잔을 부딪히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저기 기둥 옆에 특등석을 차지한 음유시인은 다섯 개의 줄을 나무판 위에 엮어 만든 '코젤'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며 시를 낭송하고 있었고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떼장이를 부리고 있었다.

 

 젤브로스는 카운터로 다가갔다. 갈색 머리의 중년 남성이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뭘로 드릴까. 구운 토끼 고기, 야채를 곁들인 꿩 스튜, 에일 맥주 한 잔, 싼값에 마시는 와인까지 모두 준비 돼있수다. 방은 지금 네 개가 비어있는 참이지."

 

 젤브로스는 루브네를 바라보았다. 주문은 그녀에게 맡길 심산이었다.

 

 "헤에, 이거 이거 꽤나 보기드문 인종의 꼬마 숙녀로구만. 어디 출신이지? 옅은 금발에 적안이라니 처음보는군 그래."

 

 "기억을 잃었소. 그걸 찾기 위한 여행이지."

 

 젤브로스는 대충 둘러댔다.

 

 "흠 흠, 그럼 그거로구만 당신. 이 애의 아버지?.....는 아니겠지. 닮은점이 코빼기도 없구먼."

 

 언뜻 보기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젤브로스가 그녀의 아버지로 보인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말이 될지도 모른다. 14살 소녀 루브네는 나이와는 다르게 실제 연령은 8~9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젤브로스의 나이는 세 자릿 수였다.

 

 "뭐, 별로 중요하진 않은 대화거리군. 화제를 바꾸지. 이 마을은 좀 어떻소?"

 

 접시를 닦으며 주인 남성이 코웃음을 쳤다.

 

 "얼마전에 왕도 정규군이 마을을 가로질러 갔지. 도망친 공화국 본대를 쫒고있는게 틀림없어. 어쨌든 간에 동쪽으로는 가지 마시라요, 분명 공화국 놈들의 시체를 파먹기 위해 모인 콥서들을 마주칠게 분명해."

 

 "조언 고맙군."

 

 젤브로스는 자리에 앉았다.

 

 "루비, 슬슬 메뉴는 정했니."

 

 "난 저거랑 저거랑 그리고......"

 

 "에, 다 먹을 수 있는거냐 꼬마야."

 

 물론이지! 루브네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0 Final 2017 / 7 / 21 288 0 16192   
19 19 2017 / 7 / 21 263 0 13424   
18 18 2017 / 7 / 21 287 0 7013   
17 17 2017 / 7 / 21 284 0 4206   
16 16 2017 / 7 / 21 298 0 5308   
15 15 2017 / 7 / 21 280 0 7248   
14 14 2017 / 7 / 21 282 0 21031   
13 13 2017 / 7 / 21 276 0 7285   
12 12 2017 / 7 / 21 288 0 5487   
11 11 2017 / 7 / 21 297 0 7264   
10 10 2017 / 7 / 18 274 0 5897   
9 9 2017 / 7 / 18 311 0 5199   
8 8 2017 / 7 / 18 305 0 4321   
7 7 2017 / 7 / 18 296 0 4836   
6 6 2017 / 7 / 16 302 0 4109   
5 5 2017 / 7 / 16 307 0 6573   
4 4 2017 / 7 / 14 311 0 4637   
3 3 2017 / 7 / 13 300 0 10038   
2 2 2017 / 7 / 10 278 0 15848   
1 1 2017 / 7 / 8 496 0 1412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로드 오브 판타
뉴레기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