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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문자의 아이들
작가 : 뉴레기
작품등록일 : 2017.7.8

첫 번째 암흑기를 주도했던 세 명의 사이먼 중 하나인 젤브로스는 두 번째 암흑기가 도래하려하는 전란의 시기인 300년대에 모든 인과관계를 끊고 가이아드 대륙을 방황한다. 그러던중 우연히 네지라는 자의 부탁을 들어주게된다. 부탁이란 최근 도시 펠리스를 둘러싼 영악한 괴물에 대한 퇴치 의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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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0 22:01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1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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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산의 정상은 고원의 평평한 초원 처럼 올곧게 펼쳐져 있었다. 경사로 내려가는 부분이 지평선 끝자락에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젤브로스는 하늘 바라보았다. 슬슬 구름이 사라지고, 지고있는 태양의 모습이 보였다. 오후 6시 쯤 됐을까. 여름은 낮이 긴 법이니까.

 

 불규칙적인 발톱자국을 따라 이동했던 젤브로스는 두 눈을 땅에 쳐박았다. 비 때문에 눅진눅진 한 진흙 바닥에 여러개의 발자국이 찍혀있는 것이 보였다. 발자국의 위치로 보건데 젤브로스와는 다른 루트로 이곳 까지 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 아치형은 말의 편자가 틀림없어. 그리고 이건......사람의 발자국이지만 평균 크기보다 크군. 분명 발 전체를 감싸주는 철제 보호대를 착용했을거야.'

 

 젤브로스는 고개를 들었다.

 

 "흠, 그 녀석들의 친구가 아무래도 이곳에 발을 들인 모양이군. 왜지? 흥미로운데."

 

 이정표가 망가진 마을에서, 젤브로스는 열 명의 제국군을 참살했다. 하지만 그 숫자는 현재 대규모 병력을 앞세워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제르키아 대제국의 부대라기엔 너무나 수가 적었던 것이다. 그래서 젤브로스는 그들 외의 다른 녀석들은 모두 먼저 출발했으리라 짐작했다. 그리고 그 짐작이 사실로 드러났다.

 

 '발자국이 선명해. 아무래도 지나간지 얼마 안된 모양이군. 조금 더 찾아볼까.'

 

 아이러니 하게도, 제국군이 휩쓸고간 자리의 흔적들은 의뢰 속의 '여자 아이'가 헤집고 다니면서 남긴 흔적들과 같은 방향으로 뻗어있었다. 젤브로스는 자신의 아랫턱을 쓰다듬었다.

 

 설마.

 

 젤브로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쩌면 이번 의뢰에서 본의 아니게 제국군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전신을 휘감았기 때문이다.

 

 

 

 

 

 

 #

 

 

 

 

 

 

 

 쾅! 쾅!

 

 편자를 엮어 만든 나무문을 심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고요한 산 속에 울려퍼지고 있다.

 

 "열어!"

 

 쾅! 쾅! 쾅!

 

 발로 걷어차고 주먹으로 후려갈기고.

 

 그러나 굳게 닫힌 문은 조금도 열릴 기미가 없다.

 

 오늘, 정혈 마녀를 붙잡아 오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달려 겨우 디엘노움 지역에 도착한 제국 제 157소대의 소대장 필리어스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였다.

 

 처음엔 무슨 놈의 빌어먹을 저주인줄 알았다. 오랜 시간 동안의 여행 중 왕국과 공화국의 본대를 몇 번이나 마주쳤고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는 동안 11명의 부대원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 필리어스의 소대는 그를 포함해 겨우 23명 밖에 남지 않았다.

 

 아무리 명령이라지만 이건 무모해!

 

 보통 전시 중엔 지휘관과 부대원의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필리어스와 그의 부하들은 달랐다. 이번 임무가 빌어먹게 무모하고 멍청한 일이란 것을 모두가 인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력이 아닌 지략으로 제국군의 지휘관이 된 필리어스 소위는 어찌저찌 여러 위험요소를 피해갈 수 있었다. 시체를 뜯어먹는 콥서, 산속에 매복하고 있는 왕도 정규군, 일정 간격으로 진을 치고 일대 전역에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공화국 본대.

 

 적들을 피해 숲속을 경유할 때면 괴물들이 습격해왔고, 조금 잠잠한가 싶어 포장 도로를 내달릴 때면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왔다.

 

 하지만 그런 위협들을 필리어스는 자신의 지략으로, 가끔은 자신이 믿는 고귀한 신의 하사한 기적으로 무사히 벗어나 이곳 디엘노움 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모두가 지쳐있었다.

 

 동료의 죽음, 떨어져가는 식량, 그로인해 땅 끝 까지 떨어진 사기.

 

 디엘노움에 도착했지만 정작 필리어스 소대의 상황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떤 마을을 발견했다.

 

 그 마을의 주민들은 어쩌면 왕국군을 피해 달아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 근처에 둥지를 튼 괴물들 때문에 집을 버리고 피난길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마을에 도착한 필리어스는 그 마을을 버린 주민들이 어째서 보금자리를 버린다는 극단적인 선택지를 골랐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힘들고 지친 상태의 병사들의 발목을 묶기 위해 아내와 딸, 혹은 이웃집 독신 처자를 강제로 가두어 두고 떠난 이 마을의 지독한 풍경은 괴물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쇼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 근처에서 공화국 본대가 패퇴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정말로 그게 사실일 줄이야.

 

 필리어스는 생각했다. 그리고 왕도 정규군을 위해 준비한 이 여자들은 곧이 곧대로 필리어스 소대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아마 지금 쯤 다마리스 병장과 디럼 병장이 이끄는 1분대와 2분대, 총 열 명의 소대원이 그 마을에서 신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으리라.

 

 그런 연유로 지금 산속에 지어진 허름한 초가집 문을 두드리는건 필리어스와 열 두명의 소대원들 뿐이었다.

 

 충분해.

 

 필리어스는 구석에 몰린 길고양이를 위협하는 질나쁜 청소년 처럼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이 안에 정혈 마녀가 있다.

 이 마녀만 붙잡는다면 필리어스가 원래 속해있던 대대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리라.

 그리고 만약 이 마녀가 반반한 미인이라면 돌아가는 중에 양껏 귀여워해줄 수도 있고.

 

 무엇이든지 간에 고통 끝에 이룩한 결실이란 이름의 열매는 달콤한 법이다.

 

 "열어! 이 초가집을 통채로 불태워 버려야 그 병신같은 상판을 내밀거냐!"

 

 필리어스는 바로 뒤에 있던 부하가 들고있는 횃불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푸히히 웃으며 나무를 기조로 짚으로 지붕을 만든 나약하고 허름한 그 집의 기둥에 불을 갖다대었다.

 

 "아 제길, 축축해서 불이 붙지 않아."

 

 "그냥 부수고 들어가는게 어떠십니까?"

 

 "냅둬. 겨우 겨우 이 빌어먹을 년을 발견했어. 이대로 고분고분 잡아 족치는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아, 그러십니까. 그나저나 늦네요 다마리스 병장 님과 디럼 병장 님."

 

 "흥. 녀석들은 싱싱한 염소 시체와도 떡을 쳤던 바보들이니까 꽤 오래걸릴지도 몰라. 기다리는건 그만둬, 그보다 지금은 빨리 이 안에 조용히 숨어있는 가엽고 가여운 새끼 고양이를 꾀어내는데 집중해야해."

 

 필리어스는 코 밑을 슥 닦고는 강철로 만들어진 발 끝으로 힘차게 문을 걷어찼다.

 

 쾅!

 

 놀라운 소리가 울려퍼진다. 하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꽤 튼튼한건지 아직 금조차 가지 않는다.

 

 "귀찮아."

 

 필리어스는 잠시 문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여유롭게 팔장을 끼며 고개를 까딱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필리어스 본인도 슬슬 질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필리어스는 허리춤에 차고있는 날카로운 검을 뽑아들었다.

 

 "마음이 바뀌었어. 그냥 부숴버리지 뭐."

 

 휙!

 

 와장창!

 

 필리어스의 주먹질과 발길질에도 꿈쩍 않던 문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필리어스는 자신의 검에 붙은 나무 조각을 휙 휙 털어내고는 칼집에 집어넣지 않은채 곧장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따라 네 명의 병사가 그를 따랐다.

 

 방안은 어두웠다. 습기도 차있고 무슨 시큼한 냄새도 났다. 며칠 동안 씻지 않은, 땀에 절은 인간이 비까지 맞아 비린내 까지 섞이고 만듯한 고약한 냄새.

 

 "불 줘봐."

 

 필리어스는 병사에게서 횃불을 받아 근처를 비췄다. 방은 고작해야 20평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워낙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흠, 없는 것 같....."

 

 고개를 갸웃 거리는 필리어스. 하지만 횃불을 자세히 비추던 도중 인간의 다리가 아주 미세하게 시야 끝자락에 드러난다. 가녀린 여자 아이의 얇은 다리. 옳커니. 필리어스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횃불을 드리우자 소녀의 모습이 나타난다. 구석에 짱박혀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필리어스는 단번에 이 소녀가 정혈 마녀라는 것을 눈치챘다.

 

 "노랑에 가까운 금발, 붉은 눈동자, 드레스 차림.....흠, 나이도 얼추 1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군. 기가막히게 예쁘군, 크면 분명 훌륭한 창녀가 될 수 있을거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필리어스는 약간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린애를 강간하는데엔 그다지 흥미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뒤쪽에 서있던 몇 몇 부하는 군침을 주룩 흘리기 시작했다.

 

 "킁 킁, 제길 냄새가 기가막히는군. 도대체 마지막으로 씻은게 언제지? 기묘하게 썩는 냄새도 나고."

 

 원피스를 연상케하는 드레스 차림의 그 소녀는 그 붉은 눈동자를 필리어스에게 갖다 대었다. 몸을 웅크리고 두 팔로 몸을 감싸앉은 채 미세하게 떨고 있는 그 소녀는 어딘지 모르게 초조해 보였다.

 

 "겁먹은 것 같은데요."

 

 그의 부하가 말했다.

 

 "물론이지. 앞으로 어떤 꼴을 당할지 안다면 정상적으로 있을 수가 없지. 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이 좋아하겠군. 먼저 씻겨야 할테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물은 귀한 법이지.

 

 필리어스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칼을 도로 집어넣었다. 이렇게 전의를 상실한 녀석을 괴롭혀 봤자 귀중한 상품에 상처만 남길 뿐이었다. 대신 '다른 괴롭힘'을 당할테지만.

 

 "자, 집에갈 시간이다 꼬마야."

 

 "내게 다가오지마."

 

 뭐?

 

 필리어스의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내게 다가오지마. 더는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이거 이거."

 

 필리어스는 말안 듣는 꼬맹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홉살 밖에 되지 않았던 아들을 강속에 던져버린 이유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찻장의 간식을 꺼내먹었기 때문이다.

 

 필리어스의 미간이 일그러진다.

 

 "몇대 패버려. 뼈나 내장에 손상가지 않게끔. 말안듣는 개새끼도 몽둥이로 스무대만 갈기면 굽실굽실 거리는 법이니까. 내말 알지?"

 

 "물론입죠 소대장님."

 

 우두둑.

 

 뼈가 꺾이는 소리가 들린다. 필리어스는 비에 젖지 말라고 품속에 고이 모셔둔 시가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가 예상하건데, 이 시가를 다 피울 때 쯤이면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든 저 꼬맹이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부하들을 향해 다리를 벌릴 것이리라.

 

 '교육은 좋은거야.'

 

 필리어스는 낄낄 웃었다.

 

 바로 그 때.

 

 "으아아아악!"

 

 비명소리가 들렸다. 집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대원들의 목소리였다. 필리어스는 그 비명소리에 깜짝놀라 시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비싼 건데! 필리어스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대체 뭐야!"

 

 혹시.

 

 저 꼬맹이가 말한게 '진짜'인건 아닐까?

 

 필리어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바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리는 없지. 암.'

 

 분명 이 근처에 나돌아다니는 콥서들이겠지. 아까전에 마을에서 여자 몇 명 죽여버리기도 했고.

 

 필리어스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비명소리로 보아 운이 없는 소대원 한 두명이 이미 괴물에게 당해버린 듯 하지만 그정도 손실이야 뼈아픈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필리어스는 칼을 뽑고는 자신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온 네 명의 병사와 함께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대체 무슨 일-!!"

 

 그리고.

 

 필리어스가 출입문 밖으로 한 발짝 나섰을 때.

 

 반짝이는 무언가가 빠르게 자신을 스치고 간다.

 

 '.....어라.'

 

 시야가 빙글빙글 돈다.

 

 선수들에게 실컷 걷어차이는 축구공이 살아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축구엔 흥미는 없었으나 필리어스는 문득 생각했다.

 

 아, 그 녀석도 꽤 아프겠구나.

 

 목 부근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

 

 하지만 다행히 통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빙글빙글 도는 시야에서 부하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뭐가 그리 놀랍냐. 필리어스는 생각했다.

 

 어라, 그런데 이상하다.

 

 오직 제국군 지휘관만이 장비할 수 있는 금색 견장을 단 녀석이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거지?

 

 그런데 저 녀석, 목이 없네.

 

 털썩, 데구르르.

 

 

  "소대장 님! 씨발!"

 

 원인을 모르겠다.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함께 집 문을 나섰던 필리어스의 목이 순식간에 달아났던 것이다.

 

 적의 습격? 괴물? 아니, 대체 무슨.....

 

 여기저기서 살이 찢기고 터지는 소리가 난자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에 동료들의 끔찍한 시체가 널부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살아남은 소대원은 이제 자신을 포함해 세 명 뿐이다. 원래 네 명이었는데 방금 한 명이 죽어버리고 말았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전우들은 모조리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철컥.

 

 새빨간 무언가가 자신을 겨눈다. 피가 묻은 칼날인것 같기도하지만 언뜻 보면 검신 자체가 붉은 색인 것 같기도 하다. 무슨놈의 넌센스 퀴즈일까.

 

 한도를 초과한 공포심을 이기지 못하고 무기를 떨군 뒤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오래간만에 무방비한 여자 아이를 훔씬 두들겨줄 수 있으리란 생각에 한껏 들떠있던 그였지만 이제는 달랐다.

 

 촤악!

 

 문답무용으로 양 옆의 동료들이 토막난다. 해체된 단면으로 부터 냄새나는 장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남자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가죽으로 만든 징박은 옷이었는데 중간 중간 강철을 덧대 방어력을 끌어올렸다. 언뜻 보면 로브 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옷은 뒷자락이 망토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

 하지만 들고있는 칼은 눈의 색과 어울리지 않는 붉은색이다. 맞춤 제작으로 보이는 검은 옷, 뒷목 까지 내려오는 흑발.

 

 대체 뭐지 이 녀석.

 

 왕도 정규군도, 공화국 본대도 아닌것 만큼은 확실한데.

 

 어리석은 생각들.

 

 죽기직전 떠오르는 생각이 곧 자신을 회를 떠버릴 적에 대한 분석이라니.

 

 '웃기지도 않아.'

 

 허탈감에 미소를 짓는다.

 

 촤락!

 

 검신이 자신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자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정신이 멀어져 갔다.

 

 

 

 

 

 #

 

 

 

 

 

 마지막 적을 제거한 젤브로스는 리블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한 놈 정도는 살려둘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엎질러진 물은 더이상 주워담을 수 없는 법이었다.

 

 젤브로스는 허름한 초가집을 바라보았다. 문은 부숴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썩은 나무가 함몰되기 시작한건 아니었다. 문만 깔끔하게 박살나 있었고, 부숴진 잔해들을 보건데 도구를 후려쳐 부순게 틀림 없었다. 아마 녀석들이 조금전에 부쉈겠지.

 

 저 안에 그녀가 있겠군.

 

 젤브로스는 생각했다. 집 안에 있는 것으로 보아 절대로 늙은 페스트롭일 가능성은 없었다. 정말로 오버로드의 저주를 받은 불행한 인간일 공산이 컸다.

 

 '흠, 보통이라면 내가 오기도 전에 귀찮게 하는 이 녀석들을 직접 처리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군.'

 

 이성은 남아있는 것일까?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젤브로스는 생각했다.

 

 저주도 여러가지가 있다.

 젤브로스가 직접 목격한 오버로드의 저주만 해도 열 가지가 넘었다. 그리고 분명, 젤브로스가 경험해보지 못한 형태의 저주도 있을 것이다.

 

 젤브로스는 생각했다.

 

 만약 그가 경험해본 저주가 상대라면 쉽게 끝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만약 처음보는 형태의 저주를 받은 인간이 상대라면 가능성은 미지수에 치닫는다. 그 미지수의 가능성을 100%로 끌어올릴 때 까지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걸릴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윗대가리의 종노릇을 그만둔 젤브로스로서는 쉬지도 않고 며칠 동안 힘겨루기를 하는것은 사양이었다.

 

 그는 다짐을 굳히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컴컴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붙은 시가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것이 보였다. 다행히 거꾸로 쳐박혀있진 않아 불이 붙지는 않았다.

 

 젤브로스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겁이라도 먹은건지 잔뜩 웅크리고 있는 소녀를 발견했다.

 

 '틀림없군, 의뢰의 여자야. 생각보다 여리군.'

 

 칼을 뽑을까.

 

 생각해보았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오버로드의 저주들 중 어떤 형태는 공격을 받음과 동시에 발동되는 형태도 존재했다. 이렇게 얌전히 있을 때는 자극하지 않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게다가 상대는 소녀다. 육안으로 보았을 때 신체적으로 뚜렷한 저주의 증상이 드러나있지 않은것으로 보아 저주받은 자의 이성까지 옳아먹는 형태의 잔학한 저주는 아닌것으로 보였다.

 

 소녀는 흘긋, 젤브로스를 쳐다보았다. 기분나쁘다기 보다는.......오히려 안정감을 주는 그윽한 적안이었다.

 

 도대체 이 불쌍한 소녀는 어쩌다가 이런 지독한 일에 휘말린 것일까.

 

 "내게 다가오지마."

 

 시간이 지나도 입을 열 기미가 없는 젤브로스를 향해 소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지?"

 

 젤브로스는 감정없는 목소리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소녀는 눈을 반쯤 감았다.

 

 "당신을 죽이고싶지 않아. 난 괴물이야. 그러니까 어디론가 가버려."

 

 "그럴순 없어."

 

 젤브로스는 오히려 소녀에게 다가가며.

 

 "지금부터 널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해야하거든."

 

 자신의 운명을 제멋대로 정한다는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소녀의 눈썹이 찡그러졌다.

 

 '흠, 옷은 평범하군. 구속하는 형태의 저주는 아니야. 드러난 피부에도 딱히 미묘한 흔적은 없어. 정확한건 옷을 벗겨봐야 알겠지만......'

 

 "언제부터지? 사람들을 습격하기 시작한게."

 

 "돌아가. 제발."

 

 소녀는 마음의 문을 닫은 모양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들어보렴 꼬마야. 어쩌면 내가 널 도와줄 수도 있어. 네가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난 널 해칠 수 밖에 없단다. 그러니까 내 말에 조금이나마 귀를 기울여다오. 이건 너를 위해서야."

 

 "......."

 

 '돕는다'

 그 말에 소녀는 고개를 조금 들어올렸다.

 

 "아니야, 당신은 날 도울 수 없어. 지금까지 날 도와주겠다고 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어. 나 때문에."

 

 '보아하니 꽤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마음의 상처가 생각보다 심해.'

 

 젤브로스는 그녀의 눈높이에 맞춰주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난 그들과는 달라. 너같은 사람들은 많이 만나봤지. 어떤 녀석은 자신에게 호의를 배푸는 사람들을 모두 돌로 만들어버리는 저주에 걸렸더군. 그가 사랑하는 연인, 부모님, 친구.....모두 돌로 변해버렸어."

 

 젤브로스는 과거를 회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 때 그 코서가 불쌍하다고 느낀 젤브로스의 동료가 돌이 되버리고 말았다. 그를 죽여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 라는 호의적인 마음이 그를 돌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소녀는 흥미롭다는 듯 젤브로스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봐, 난 이렇게 무사히 살아있지. 이번에도 그럴거야."

 

 "......."

 

 소녀는 고개를 두 다리속에 파묻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몰라......"

 

 "뭔가 이상한 녀석들을 만났다거나, 특이한 물건을 접했다던가."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 모르겠어. 내 14번 째 생일날. 엄마 아빠랑 같이 집에서......드레스를 선물받고....그리고...."

 

 "됐다. 그만해도 돼."

 

 젤브로스는 잠시 침묵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기라도 하는건지 그의 두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방황했다.

 

 '태아성 저주가 틀림없어. 그녀가 어미의 뱃속에 있을 적 부터 받은게지. 대개는 짐작가는 사건이 생각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실질적인 효력은 그녀가 14번 째 생일을 맞은 기점으로 발동했군.'

 

 "지독해."

 

 젤브로스는 저도모르게 혀를 찼다. 태아성 저주의 경우 젤브로스가 아는 한도내에서의 커스 오브 오버로드 중에서도 극악에 달할 정도로 지독한 저주였다. 그 저주는, 저주를 내리는 오버로드 조차 대량의 마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왠만하면 꺼리는 종류의 저주였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 소녀에게 저주를 내린 오버로드는 굳이 자신의 마력을 대량으로 소모해가면서 까지 자신과 관련없는 이 소녀가 고통받기를 원하는, 아주 전형적인 변태일 확률이 높다는 소리다.

 

 '도울 방법은 없어. 이 경우엔.......'

 

 젤브로스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태아성 저주에 걸린 코서인 경우, 저주를 내린 오버로드를 처치하지 않는 한 정화하는게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아무리 이 소녀가 불쌍하다 해도 어디있는지도 모를, 게다가 마스터 티어 급 용병이자 사이먼인 자신 조차 목숨을 걸어야할 정도의 존재인 오버로드에게 싸움을 걸면서 까지 이 소녀를 보호할 마음은 없었다.

 

 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뽑았다.

 

 사과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죽음만이 이 가혹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저주받은 어린 소녀를 구원해줄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그녀가 '저주에 걸린 모습'으로 변한다면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끝내줄 수 있을텐데 이상하게도 소녀는 웅크려 앉은채 그대로였다. 칼이 칼집을 스치고 밖으로 빠져나온 소리가 분명 들렸을텐데, 그럼에도 저항없이 여전히 꿈쩍하지도 않았다.

 

 그녀도 은근히 바라고있는게 아닐까. 해방을.

 

 어쨌든 오늘, 젤브로스는 자신의 거지같은 일대기에 또다시 찝찝한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리라, 혀를 차며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파앗!

 

 "......뭣!"

 

 그리고 바로 그 때였다.

 

 젤브로스의 오른쪽 손등에 새겨져있는 '시엘의 문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젤브로스는 특유의 냉정하고 과묵한 성격에 걸맞지 않게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물론 이유없이 자신의 손등에 새겨진 시엘의 문장이 발광했다는 것에도 있었지만.

 

 '이 아이.....설마!'

 

 그녀의 복부, 정확히는 배꼽이 있는 위치에서도 찬란한 금빛이 발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소녀의 배꼽에서 빛을 발하는 중인 그것은 일말의 의구심을 느낄 필요도 없는 '시엘의 문장'. 즉 젤브로스와 같은 종류의 성흔이었던 것이다.

 

 "말도 안돼.....이건.....대체....!"

 

 젤브로스는 치켜들었던 리블을 내려놓고는 자신의 문장과 소녀의 문장이 공명하듯 빛나는 광경을 맥없이 지켜보았다.

 

 그리고 소녀 또한 이 공명이 당혹스러운 건지 어쩔줄 몰라 몸을 아둥바둥 거리기 시작했다.

 

 '말도안돼.....이 소녀, 나와 같은 성흔을 가지고 있어. 시엘의 문장을 몸에 지닌 사이먼이야.'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란 말인가.

 

 오버로드의 저주를 받은 코서인데, 그와 동시에 성흔을 각인시킨 사이먼. 게다가 성흔의 모양은 젤브로스가 지니고있는 시엘의 문장과 일치한다.

 

 공명의 빛이 어두컴컴한 방안을 가득 비춘다.

 

 찬란한 금빛, 마치 눈부신 태양빛을 연상케 하듯 주변에 눈을 찌르는 빛이 작렬한다.

 

 만약 젤브로스가 펠리스에서 절름발이 네지의 의뢰를 수락하지 않았다면, 만약 펠리스의 주민을 괴롭히는 괴물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가 바라는대로 어떠한 귀찮은 일에 휘말릴 필요도 없이 조용히, 땅의 얼룩처럼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젤브로스는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성흔과 전쟁, 그리고 한 오버로드가 엮여있는 복잡한 실타래의 첫 단이 풀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손등의 시엘의 문장은 그냥 빛나기만 하는게 아니었다. 이건 일종의......그래, 폭주와도 같았던 것이다.

 

 타오를 듯한 격통이 전신의 혈류를 타고 머리 끝까지 서서히 올라오는 듯한 불결한 느낌에 젤브로스는 어울리지도 않는 욕설을 퍼부었다.

 

 '진정시켜야해. 아무튼 빨리!'

 

 젤브로스는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조르듯 움켜잡았다. 그의 몸이 지진이 이는 땅 위에서 어거지로 버티는 인간마냥 비틀비틀 춤을 추기시작했다.

 

 "윽...으윽...으으으으으으!!"

 

 팟!

 

 잘 만들어진 섬광탄이 작렬하듯 금빛으로 빛나는 시엘의 문자가 폭발하듯 터진다. 말도안되게 눈부신 빛이 찰나의 순간, 온 사방으로 퍼지는가 싶더니 이내 무수히 많은 은은한 빛의 결정이 되어 다시 젤브로스의 손등으로 돌아오기에 이른다.

 

 어찌저찌 막은 것 같다. 젤브로스는 약간의 현기증을 일으키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하지만 폭주가 멈춘건 젤브로스의 성흔 뿐이었다. 소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빛은 아직도 눈부신 빛을 발하며 폭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젤브로스는 정신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재빨리 그녀에게 달려갔다.

 

 '위험해, 성흔이 폭주하면 변이하고 말거야. 어떻게든...... 하지만 성흔을 다룰 수 있는건 그 주인밖에.....'

 

 쯧, 혀를 찬다.

 

 '이런 도박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젤브로스는 소녀가 입고있는 드레스를 잡아 찢었다. 하얀 속살이 그녀의 치골부터 가슴 중앙 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시엘의 문자.

 

 '만약 정말로 이게 시엘의 문자라면......'

 

 젤브로스는 시엘의 문자가 새겨져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그녀의 복부에 갖다댔다. 그러자 젤브로스의 성흔이 간혈적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진정해."

 

 배꼽 전체를 감싸고있는 시엘의 문자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복통을 호소하기라도 하듯,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것이 필사적으로 젤브로스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더 강하게 나가야할 것 같군, 젤브로스는 생각했다.

 

 "아무 문제없어, 모습을 감출필요는 어디에도 없어. 그저 받아들여, 편하게."

 

 손등의 문자가 옅은 빛을 내뿜기 시작한다. 그 빛은 마치 나이 많은 형이 꼬장을 부리는 어린 동생을 타이르듯, 폭주한 소녀의 빛을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 폭주에 휘말린 소녀의 몸떨림이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팟!

 

 조금전 젤브로스 때와 같이 섬광탄 처럼 작렬한 소녀의 성흔이 사방으로 빛을 내뿜고는, 수많은 조각이 되어 다시 그녀의 문자 안으로 스며든다.

 

 "후."

 

 눈가가 따가웠기에 젤브로스는 팔로 닦았다. 식은 땀이었다. 언제부턴가 이마에 맺힌 땀이 눈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콜록 콜록.

 

 기침소리는 소녀가 낸 것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을 지상으로 끌고올라와 폐의 물을 토해내게 했을 때 남아있는 물과 함께 공기를 토해내 듯이. 소녀는 기침기와 동시에 현기증을 일으키며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괜찮니."

 

 "아, 으윽......"

 

 '아무래도 사이먼이지만 성흔에 익숙해지진 않은 모양이군, 문자에 대한 면역력이 거의 없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같은 시엘의 문자를 가진 덕분에 어찌저찌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어. 하지만 다음번에 또 이런일이 생긴다면 보장할 수 없겠군.'

 

 젤브로스는 소녀의 몸을 유심히 관찰했다. 드레스가 찢어져 거의 전라상태였지만 고문이나 학대를 받은 흔적은 눈에 띄지 않았다.

 

 '곱게 자랐군. 어디 출신이지?'

 

 아무래도 소녀는 몸을 움직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간혈적으로 움찔거리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녀의 몸엔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던것이다.

 

 '할 수 없군.'

 

 젤브로스는 소녀를 번쩍 들어올려 등에 업었다. 이대로 두고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절름발이 네지는 일 분이라도 빨리 리블로 소녀의 심장을 꿰뚫어주길 바라고 있겠지만 이런 기이한 현상을 목격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해친다면 젤브로스는 자신의 일대기에 큰 오점을 남길 것이리라 단언했다.

 

 사이먼.

 

 인간에서 한 단계 뛰어넘은 존재들. 그리고 동시에 더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 자들.

 

 초인으로도 불리고 괴물이라고도 불리우며 전란의 영웅이 될 수도, 전란의 불씨가 될 수도 있는 존재들.

 

 '이렇게 어린 사이먼은 처음 보는군. 대체 어떻게.......'

 

 아니, 아니야.

 

 젤브로스는 일단 그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이 소녀가 깨어나면 모든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테니까. 조바심 낼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허름한 초가집 밖으로 나왔을 땐 벌써 하늘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습한 열대야의 바람이 젤브로스의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크르릉.

 

 기묘한 울음 소리.

 

 문득 걷다가 뭔가를 걷어찬 모양인지라 젤브로스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뭔가에 물어뜯긴 듣한 그것은 인간의 창자였다. 젤브로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외관은 고령의 노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개구리 처럼 쭈그려 앉아 폴짝 폴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한 올도 없고 눈동자가 없는 안구는 옅은 노란색을 띄고 있다. 발광물질이 섞여있는지 이런 어두운 때에도 두 눈이 밝게 빛나고 있다. 날카롭지만 불규칙적으로 나있는 수많은 송곳니들은 분명 위와 아래의 갯수가 모두 틀리리라. 지금도 쉴새없이 뭔가를 씹고 삼키고 있는 그것들의 입가엔 인간의 근육 조각과 내장 찌꺼기가 다닥 다닥 붙어있었다. 거의 없는 시력을 대신해 후각이 극도로 발달한 탓인지 코가 굉장히 크다. 전신은 기본적으로 새빨간 피처럼 붉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

 

 혐오스럽기 짝이없는 괴물.

 

 콥서.

 

 죽은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체의 냄새를 2km 밖에서도 감지하곤 뜯어먹기 위해 달려오는 전란 시대의 재앙.

 

 하지만 끝없이 원하는 인육에 대한 갈망은 비단 죽은 시체에게서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만약 시체를 찾기 위해 주변을 서성이던 중 신선한 고기가 걸어다니고 있는 것을 목격하면 콥서들은 기쁜 마음으로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 불운한 인간에게 달려들어 뱃가죽을 산채로 찢은 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싱싱한 내장에 얼굴을 파묻으리라.

 

 젤브로스의 눈앞에서 포식중이던 콥서는 합해서 모두 일곱 마리.

 신나게 제국군의 시체를 뜯어먹고 있던 그 괴물이 일제히 젤브로스를 바라본다. 아니, 젤브로스 보다는 등 뒤에 업혀있는 소녀에게 더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수퇘지 보단 암퇘지의 고기가 더 부드러운건 인간들도 아는 사실이지 않은가? 게다가 그 먹잇감이 동시에 부드러운 살결을 가진 어린아이라면.....

 

 콥서 한 명이 젤브로스에게 달려든다.

 

 빡!

 

 젤브로스는 눈하나 깜짝않고 그것의 면상을 걷어차버렸다. 어찌나 힘이 센지 걷어차인 콥서는 5~6m 밖으로 날아가 추가로 3m가량 데굴데굴 굴렀다.

 

 그것이 신호탄이 된듯.

 

 다른 여섯 마리의 콥서들이 일제히 젤브로스에게 달려든다.

 

 "꺼져."

 

 시엘의 문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젤브로스에게 달려들던 콥서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아니, 멈춘것 뿐만 아니라 괴로운 듯 온 몸을 베베꼬기 시작했다. 대량의 구더기가 몸속에 들어가있는 여러명의 인간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젤브로스는 의연하게 그들을 무시하곤 발걸음을 옮겼다.

 

 분명 그 이름없는 마을에 군마가 몇 마리 더 남아있으리라.

 

 

 

 

 #

 

 

 

 

 

 

 다음 날 늦은 새벽.

 소녀를 업은 채로 젤브로스는 펠리스로 돌아왔다. 말을 달렸으면 본디 늦어도 늦밤 쯤엔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불행하게도 그 마을엔 시체가 여러구 있었고 당연히 콥서들이 몰려왔으며, 무방비하게 기둥 따위에 묶여있는 말들은 그것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젤브로스는 도보로 이동했다. 그 결과, 지금 도착했다. 처음에 펠리스 남문을 경계하던 네지의 사병들은 시체 남작이라도 나타난 줄 알았는지 무기를 뽑아들었다. 하지만 다가오는 그 남자의 등에 업혀있는 소녀의 모습과, 젤브로스의 허리춤에 있는 검의 모습을 보자 곧 그들이 괴물이 아닌 인간이란것을 눈치채고는 재빨리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지금.

 

 자다깬 절름발이 네지는 얼굴에 잔뜩 땀을 아롱진채 아랫턱을 부르르 떨고있었다. 여담이지만 그는 사무실 책상에서 엎어져 자기라도 한건지 한 쪽 뺨에 네모난 자국이 나있는 상태였다.

 

 "왜 죽이지 않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네지는 역정을 냈다. 지금까지 도시의 시민과 병사들을 살해해왔던 괴물을 퇴치해 달라고 보낸 녀석이 무슨놈의 빌어먹을 부성애가 발동해 고이 업어다가 도시 한복판 까지 데려온것인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설명하자면 길어. 게다가 그쪽을 이해시킬 자신도 없고."

 

 "뭐....무, 무슨 말을......"

 

 네지의 광대가 경련했다. 만약 젤브로스가 화장실에 들른다던가 하는 목적으로 자리를 잠시 뜨면 즉시 사병들을 시켜 소녀의 목구멍을 꿰뚫어버리고 말것 같았다.

 

 "일단 안전해. 지금은."

 

 "깨어나면 어쩔생각입니까!"

 

 "그래도 폭주하진 않을거야. 장담하지. 만약 위협적으로 변해도 지금은 내가 있어."

 

 "그, 그건 그렇지만......"

 

 네지는 언짢은 듯 팔장을 끼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 소녀에겐 궁금한게 산더미 처럼 많아. 이 소녀를 퇴치하기 위해 고용된 내가 흥미를 느끼고 퇴치를 그만둘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숨어있지."

 

 "벼, 별로 궁금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위험분자를 우리 펠리스에 묶어두는건 불안하군요. 대체 언제 쯤 이 괴물의 목을 자를겁니까."

 

 "안자를 수도 있어."

 

 "뭐, 뭐라구요! 당신은 제게 고용된게.....!"

 

 "안심해. 그럴 경우엔 이 소녀는 내가 데려갈 생각이니까."

 

 네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오른팔을 횡으로 확! 휘두르곤.

 

 "용납할 수 없어요 마스터 젤브로스. 당신은 지금 제게 고용됐어요. 저는 당신에게 돈을 지급할 의무가 있고, 당신은 제 의뢰를 처리해야할 의무가 있죠."

 

 "그런 얕고 얕은 인연의 끈 따윈 언제든지 끊어버릴 수 있어 친구. 난 별로 보수를 욕심내서 네 일을 도운건 아니야. 정말로 '이 내가' 돈 몇 푼 쥐어보자고 의뢰를 수락한것으로 보였나?"

 

 네지는 분한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마스터 티어 급 용병이었던 그가 상당한 양의 재보를 저금해놓았다 해도 전혀 이상할건 없었다. 아니, 보편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설령 그의 지갑이 먼지투성이라 할지라도 그의 실력과 지식은 얼마든지 다시 창고를 두둑히 채워줄 정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했다.

 

 네지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시장질은 오랫동안 해먹었지만 여전히 이길 수 없는 상대는 있기 마련이었다.

 

 "내가 졌습니다. 휴, 마음대로 하시길. 보수는 지급해드리죠. 정말로 이 괴물이 더이상 펠리스를 괴롭히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으시다면요."

 

 "내 이름을 걸고 보장하지."

 

 ".......좋습니다. 보수는 순금으로 드리지요. 마차 한 칸에 가득 담아서 --"

 

 "20만 데릭실로 충분해."

 

 "예....예에?"

 

 네지는 기가막혔다. 네지가 지급하려 하는 순금 한 돈은 개당 일백만 데릭실에 육박했다. 그런 고가의 순금을 마차 째 지급해주려고 하는데 이 남자는 정말이지 진심으로 필요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꼴랑 20만 데릭실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시피 옷이 없어. 여자아이를 알몸인 채로 냅둘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마스터 젤브로스는 이 괴물에게 손수 옷을 사입혀드리겠다?"

 

 "문제라도?"

 

 후우.....

 네지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음대로. 보좌관, 훌륭히 의뢰를 완료해주신 마스터께 즉시 이십만 데릭실을 지급해주게. 데릭실 만원권 스무장, 새지폐로."

 

 "분부대로."

 

 그의 보좌관이 방문을 나서자 네지는 두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시선만큼은 지금까지 자신의 주민들과 사병들을 괴롭혀온 소녀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좋지만은 않은 시선이었다. 그의 입장에선 당연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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