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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라이트노벨
너와 함께
작가 : rororiri
작품등록일 : 2017.7.2

인간을 증오하는 드래곤 ‘엘리시아’와 아름다운 그녀에게 반한 인간 ‘이유하’는 누군가의 음모로 이세계에 떨어졌다. 차원이동의 부작용으로 하필 유하가 가장 꺼려하는 로리가 된 엘리시아. 곧 죽어도 싫어하던 둘이지만 점점 서로에 대한 감정은 싹트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유하와 엘리의 이세계 모험기.

 
엘리의 독백(3)
작성일 : 17-07-03 14:06     조회 : 39     추천 : 1     분량 : 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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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하, 이 몸이 간지럼을 잘 타는 건 어찌 알고……. 정말로 겁이 눈곱만치도 없는 인간이로구나. 이 몸이 너를 가치 있게 여기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거라.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골백번도 더 죽었을 거다.”

 

 엘리는 헛웃음을 한 번 짓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우쭐댔다.

 ―근데 어차피 여기 오기 전에 벌써 골백번 죽지 않았나?

 

 “크응……. 방금 전에 또 죽여 놓고 선심 쓰는 척 하지 말아줄래……?”

 “본인이 자초한 일인 것은 생각 못하는 우매한 인간이로구나. 아니면 안하무인인 것이냐?”

 

 엘리가 어이없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계획은 분명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이세계에 오기 전 바윗돌에 머리를 찧고 죽었다가 살아났을 때는 함께 박살난 안경까지 분명히 원래대로 돌아왔었다.

 때문에 엘리가 말한 대로 마법을 건 시점의 형상으로의 부활, 즉, 형상기억의 효과에는 신체뿐만 아니라 옷이나 장신구 등도 포함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왜 다시 살아나도 계속 강제 하의탈의 상태여야 하는 건데?! 이딴 이파리 쪼가리로 언제까지고 불안하게 살 수는 없다고!”

 “크큭. 그거야, 이 몸이 어려지는 바람에 마력도 줄었으니 기능적으로도 감소하는 당연한 이치인 것을.”

 “웃지, 마!”

 

 ―한때 예능 프로에서 유행하던 말이다.

 내가 랩을 잘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 이 로리 자식을 디스하고 말겠다.

 ……한번 해볼까?

 

 “yo.”

 “뭘 하려는 진 모르겠지만 하지 마라.”

 “예.”

 

 내가 또 무슨 짓을 할까봐 불안했는지 그녀는 도끼눈을 하고 나를 째릿 쳐다보며 시도조차 못하게 기를 죽였다.

 솔직히 초딩이 그렇게 나를 노려본다고 해서 겁이 나는 건 아니지만, 저 주먹의 위력은 이미 체감했기 때문에 상당히 무섭단 말이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쳇!”

 “?”

 

 엘리가 혼자 중얼거리는 나를 갸웃하며 쳐다본다.

 ―절대 대놓고는 말 못하지.

 그나저나, 이 낯선 곳에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우릴 차원이동 시킨 기계는 잃어버렸고, 마을이나 도시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고.

 애초에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이긴 한 거야……?

 ―느닷없이 찾아온 침묵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엘리, 근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중?”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만, 일단 고산지대에서 하천을 따라 하류 쪽으로 걷다보면 군집이든 뭐든 있지 않겠느냐.”

 

 생각해보니 우리는 하천을 왼쪽에 끼고 흘러 내려가는 방향으로 계속 걷고 있었다.

 아직까지 먼 시야에 울창한 숲이 보이긴 하지만 전보다는 가까워진 것으로 보아 그쪽 방향으로도 가는 것 같았다.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런 허허벌판의 초원보다는 숲에 열매 같은 것도 있을 테고, 엘리의 말대로 문명이란 강 하류 쪽에 많이 발달되는 법이니까!

 

 “흠, 생각보다 꽤 똑똑한 드래곤이잖아?”

 “뭘 모르는 구나. 드래곤의 지성은 인간보다 뛰어난 것을. 그리고 이번 건은 이 몸이 똑똑한 게 아니라 네놈이 멍청한 것이다.”

 “거참, 발끈하기는……. 로리가 화내도 그걸 듣고 있으면서 기분 좋아라 하는 마조히스트 같은 녀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걸랑?”

 

 퍼억.

 ―꾸어어어! 또 한대 맞았다!

 정말 손버릇 기가 막히네. 아니면, 이 녀석 혹시 로리란 단어가 뭔지 아는 거야?

 

 “지금껏 계속 봐주고 있는데, 감히 드래곤에게 이상한 단어로 부르는 무례를 자꾸 저지르면 언제든지 없애버릴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거라.”

 

 아, 그러시겠죠. 그렇게 앳되고 새침한 얼굴로 비웃듯이 말해도 로리는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네에…….”

 

 ―라는 본심과는 달리 겉치레의 대답은 결국 그녀에게 복종하는 것이었다.

 역시 나는 세계 제일의 치킨맨이다.

 ……라고는 해도, 사실 그녀의 매운 주먹은 맛을 한번 보면 복종하는 것을 절대 멈출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중독적이다.

 ―제길.

 

 

 * * *

 

 

 얼마쯤 걸었을까.

 앞서 가는 엘리를 뒤따라 좀비처럼 축 늘어져서 몸을 질질 끌 듯이 계속 걸었다.

 슬슬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배가 무지하게 고프다.

 이곳에 와서 얼마나 지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최소 한나절은 됐을 것이다.

 그런데다가 난 여기에 오기 전에 저녁도 못 먹었었다.

 ―거기에 더해서 누구 때문에 먹은 점심마저도 게워냈었지. 썩을.

 사실 배가 고픈 수준이 아니라 위가 줄어들 대로 줄어서 아사 직전의 상태나 다름없었다.

 

 “엘리…….”

 “왜 그러느냐. 아까부터 자꾸 뒤쳐지는데―”

 

 앞서가던 엘리가 우뚝 멈추고 뒤돌아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넌 배 안고파……?”

 

 목마름이야 하천 물로 해결은 했지만, 도통 먹을 만한 것이 보이질 않는다. 작은 열매 같은 거라도 있다면 좋겠는데.

 그보다, 그 커다란 드래곤이라면 아무리 폴리모프 상태라고 해도 식사량이 장난이 아닐 것 같은데, 이 녀석, 전혀 배고파하질 않는다.

 ―괴물 같은 심해어를 잡아먹는다고 하지 않았냐.

 

 “훗, 우리 드래곤은 마나가 늘 넘쳐나기 때문에 이슬만 마셔도 어느 정도 공복을 해결할 수 있느니라. 불편한 인간의 몸과는 차원이 다르지.”

 

 꼬르르륵.

 

  “엘리, 이건 내 배에서 나는 소리 아닌데?”

 

 나는 물끄러미 엘리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띠면서 점점 얼굴이 빨개지고 있었다.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쾅!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이 소리는.

 고귀한 드래곤께서 이슬만 마시고도 공복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자부하다가 나는,

 배에서 천둥이 요동치는 소리입니다.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쾅!

 

 “이야, 어디서 번개라도 치나? 엄청나게 소리가 큰데?”

 

 화아악―!

 엘리의 얼굴이 아주 잘 익은 사과처럼 온통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그녀는 안절부절한 표정으로 저도 모르게 배를 손으로 꼭꼭 숨기듯이 가렸다.

 

 “이, 이건! 나, 나, 나도 마지막 식사는 200년 전이라서! 그, 그래서! 윽……!”

 

 그녀는 민망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이 입을 물결치듯 떨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흐흐흐. 그래, 그래, 이번 건 좀 귀엽다고 해줄게. 원래 꼬맹이한테는 칭찬하지 않는 주의지만 말이야.”

 “큭……! 인간 따위에게 이런 수모를 겪다니, 치욕스러워…….”

 

 엘리가 새빨간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획 돌리고는 다시 앞장서서 나아갔다.

 ―어이, 어이. 수모라니,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지, 임마.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강제 하의탈의 패션을 생각해봐. 이거보다 치욕스러울 수 있어?

 

 “어쨌든, 저기 꽤 울창한 숲 쪽에 뭐라도 있지 않을까? 지금은 귀여운 토끼고기라도 와그작 와그작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거든.”

 “품위 없는 녀석.”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지금 궁서체는 아니다? 그리고 나 지금 아사하기 일보 직전이거든? 하다못해 작은 앵두 같은 열매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이 하천에는 대체 왜 물고기가 하나도 없는 거냐. 제길.”

 

 괜히 발길질을 해 흙무더기를 하천 쪽으로 날려보지만 물고기가 도망가는 반응은 쥐뿔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흔한 피라미 한 마리조차.

 꾸르르르륵.

 이젠 힘이 빠진다. 하다못해 어른 버전의 엘리처럼 예쁜 여신님이라도 옆에서 응원을 해준다면 어떻게든 힘을 내보겠는데…….

 

 “더 이상은 못 걷겠어…….”

 

 볼을 만져보니 움푹 패어서 들어가 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내 얼굴은 해골바가지랑 비슷하지 않을까?

 꽤 오래 걸은 탓에 다리도 아프고, 위에서는 밥 달라고 위산을 뽁뽁 쏘아대서 헛구역질까지 날 것만 같다.

 ―나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일어나거라. 네 말대로 저쪽 숲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반쯤 쓰러지듯이 간신히 팔로 상체를 버티고 있는 내게 다가온 엘리가 내 머리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말했다.

 

 “정말……. 철없는 네놈 때문에 다시 절로 늙는 기분이로구나.”

 “미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자,”

 “……어?”

 

 축 쳐져서 고개를 떨군 내 시야에 그녀의 작고 고운 손이 들어왔다.

 

 “아, 고, 고마워.”

 

 그녀가 내밀은 손을 잡고 일어나니, 아주 조금은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여전히 배에서 요동치는 식욕을 주체할 수는 없었지만.

 배고픔을 들켜 부끄러워하던 엘리의 수줍은 표정은 벌써 어디론가 가고, 지금은 다시 평소처럼 무심해져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 마음속까지 한없이 냉정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녀의 따뜻한 손이 분명히 그렇다고 얘기하는 것만 같다.

 ―잠깐,

 내 착각이었을까?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보이는 것 같다.

 앵두 같은 도톰한 입술에 어렴풋이 번진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꽤나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배가 고파서 이젠 헛것이 다 보이나……. 사람, 아니, 드래곤의 입술이 열매처럼 보인다니.

 인간의 가장 강한 욕구 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무엇 하나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이성을 잃는다고 하던데.

 ―덥썩.

 

 “……!”

 

 통제가 안 되는 머릿속의 이성이 나의 의지를 꺾고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사실상 본능에 가까운 행동.

 ―그녀의 입술을 복숭아 같은 열매로 착각한 나는, 도톰한 아랫입술을 내 입 안으로 포개어 넣었다.

 

 “달콤하다아. 이건 무슨 열매지?”

 

 그녀의 입술을 맛보며 ‘나라는 존재’가 지껄였다.

 엘리는 ‘나라는 존재’의 입놀림에 놀라 그 아름다운 은하수 같은 자색 눈을 동그랗게 떴고, 그 놀람의 감정은 이내 분노로 변하며 미간을 꾸깃꾸깃하게 구겼다.

 

 “미친놈.”

 

 와그작.

 그녀는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나라는 존재’의 윗입술을 넣고 사정 안 봐주고 깨물었다.

 

 “아아악! 아파! 뭐하는 거야!”

 

 드디어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내 이성이 돌아왔지만 돌아온 것은 대답대신 주먹질 콤보였다.

 한 대만 맞아도 먹은 게 올라올 만큼 강력한 복부 스매싱. 다행히 먹은 것은 없어서 뭐가 올라오진 않았다.

 이어지는 정강이를 의도적으로 노린 로우킥으로 마무리.

 ‘직장 상사에게 결재서류로 처맞고 쪼인트 까인다’는 말은 이런 기분이었구나.

 부러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아파, 아파, 아파!”

 “네 녀석, 동정이라고 그랬느냐?”

 “아오! 씨……!”

 

 눈에서 눈물이 핑―돌았다.

 

 “그, 그건 왜!”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말이다. 예의도 없고 안하무인한 색골에, 나의 몸을 얼빠진 얼굴로 침 흘리며 감상하질 않나. 각골난망해도 모자를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지를 않나.”

 “예의가 없다는 말은 그런대로 인정해보려고 노력하지만 그 뒤에는 사실이 아닌 모양인뎁쇼!”

 

 너같이 찌끄만 꼬맹이한테 성욕을 느끼거나 겁탈하려는 페도필리아로 보이냐 내가! 난 죽어 마땅한 어린이 성범죄자가 아니라고!

 그래서 네 속옷을 봐도 아무런 느낌도 안 들어! 오리지널 버전의 엘리가 아니라면 말이야!

 ―라고 까지 말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번엔 할 말은 좀 해야겠다.

 

 “드래곤인 네 외모가 비정상적으로 예쁘다 보니까 입술마저 과일처럼 보이는데다가 뱃가죽이 등에 붙어 헛것이 보여서 착각한 거라고!”

 “뭐, 뭣…….”

 

 엘리는 내 반박에 당황한 듯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빨개져서는 고개를 획 돌리고 성큼성큼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갔다.

 나는 이 때다 싶어 ‘과잉복수’임을 설교하기 위해 엘리을 뒤쫓아 따라가는데―

 

 “오?”

 

 숲의 가까이에 다다르자, 숲 안쪽 멀리에 사과처럼 보이는 빨간 열매가 탐스럽게 열린 나무가 어렴풋이 보였다.

 공복이라 뱃속에 아무것도 없음에도, 만삭의 임산부의 배에서 느껴지는 찬란한 생명의 발길질처럼 위가 요동친다.

 ―저 열매를 향해 어서 뛰어가라고.

 

 “으히히! 이번엔 진짜 먹을 거다, 먹을 거!”

 

 알고 있는가? 굶주린 좀비는 먹을 것을 향해 미친놈처럼 전력질주 한다는 사실을!

 

 “으켈켈켈! ――헉?!”

 

 오로지 나뭇가지에 매달린 열매만을 보고 가다가, 숲의 경계선에 다다라서야 위화감을 느끼고 급하게 정지를 시도한다.

 ―안되잖아? 어, 정, 정지가 안 돼!

 

 “떠, 떨어지겠어!”

 

 대체 왜 여기에 절벽이 있는 걸까. 아무리 굶주림에 지쳐 정신이 반쯤 나가있는 상태라고 하지만 절벽이 있을지 없을지조차 판단 못하는 놈은 아니다.

 험한 산세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다가 강 하류 쪽에 거의 다다랐기 때문에 절벽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떨어져 죽는다면, 혹시 다시 살아나도 계속 낙사하는 거 아닌가?

 떨어지면서 발버둥 치듯 손을 뻗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애써보지만 휑한 절벽에 만화처럼 나뭇가지 같은 게 나와 있을 리 없지.

 터억―.

 따뜻한 손.

 ―엘리가 떨어지는 내 손을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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