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으로 삽을 집어던진 병재가 바닥에 쭈구려 앉아 손으로 조심스럽게 흙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희연이 다가왔다.
"뭐 나왔어요?"
병재가 땀에 흠뻑 젖어 몰골이 엉망인 희연을 슥하고 바라봤다.
"손 끝에 뭔가 걸리는 감각이 있었어"
병재의 말에 희연이 두 눈을 부릅뜨고 바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병재의 손에 의해 조금씩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하얀 물체에 희연이 침을 꿀꺽 삼켰다.
"....돌?"
성인의 머리크기는 됨직한 바위가 나타나자 병재가 침을 탁 뱉었다.
"에이 시팔!"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은 병재가 안 주머니에서 담배를 꼬나물었다.
180cm가 훌쩍 넘는 큰 키와 덩치를 가진 병재가 산적같은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욕설을 내뱉자 주변에 슬금슬금 모여들기 시작하던 대원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희연도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눈쌀을 찌푸렸다.
"하아... 오늘은 조금 쉬고 인원 지원받아서 내일 다시 삽질하는게..."
"있습니다!"
위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말을 멈춘 희연이 휙하고 고개를 돌린다.
"뭐?"
"있습니다! 유골... 유골이 있습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외치는 어린 의경대원의 모습을 보며 희연과 병재가 위쪽으로 뛰어 올라갔다.
큰 소리로 외친 대원이 있는 장소에 도착한 희연이 중얼거렸다.
"이건..."
약 1m 가량 파여있는 구덩이 안에서 조금씩 형태를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분명 사람의 유골이었다.
"그만!"
병재의 외침에 삽질을 계속 하려던 대원이 멈칫한다.
"삽으로 계속 파면 유골이 훼손될 수 있다"
병재의 말에 대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희연아"
"네, 선배"
"지금 바로 1)감식불러. 팀장님한테는 내가 전화할게"
"지금 바로 할게요"
휴대폰을 꺼내 드는 희연을 바라보던 병재가 옆에 있는 대원에게 말한다.
"대원아"
"상병 박찬식"
"차에서 폴리스라인 좀 가져와라. 애들이랑 같이 이 구덩이 주변으로 넓게 쳐. 나무가 많으니까 나무 사이사이로 묶으면 될거야"
"예 알겠습니다"
병재의 말에 대답한 대원이 버스가 있는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후임으로 보이는 3명의 대원들도 함께 뛰어갔다.
구덩이 안으로 조심스럽게 뛰어 든 병재가 바닥에 있는 흙을 손으로 고르기 시작했다.
슥, 슥, 슥, 슥
이제는 머리 부분이 완전히 드러난 유골은 분명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어린아이의 유골이었다.
"희연아, 감식에 연락은?"
"했죠. 하던 일 마무리하고 오는데 한 40~50분 정도 걸릴 것 같다네요"
희연이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차에 혹시 장갑 있나?"
"있습니다!"
대원이 병재의 물음에 대답하며 뛰어 내려가자 병재가 다시 구덩이 밖으로 몸을 빼냈다.
"희연아 카메라 안가져왔지?"
"아 네, 설마 이렇게 빨리 발견할 줄은..."
희연의 대답에 병재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찰칵, 찰칵, 찰칵
병재가 휴대폰 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했다.
사진을 모두 촬영한 병재가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자 밑에 내려갔던 대원이 장갑 한 쌍을 가지고 올라왔다.
장갑을 건내받은 병재가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한 대하고 시작하자"
불을 붙이는 병재를 보며 희연이 물었다.
"선배"
"후우....왜?"
"저기 있는 유골... 민채린 양이 맞겠죠?"
희연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다는 듯 물었다.
"정황상 퍼센트로 봐야 겠지"
"어떻게 친 이모라는 년이 이런 미친...!"
아직 차량에 타고 있을 박미현과 박경숙을 떠올린 희연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런 미친 짓을 할 수 있는 거죠?"
"왜 이래? 이것보다 더 한 미친년, 놈들도 많이 봐온 베테랑 형사가"
"최소한 그 중에 피해자가 저렇게 어린 아이였던 적은 없었어요"
희연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담배를 발로 비벼 끈 병재가 다시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며 말한다.
"희연아"
"네"
"세상은 넓고 미친놈들은 많다"
"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희연을 보며 병재가 피식 웃었다.
"군대 있을 때 내 선임이 입에 달고 살던 말 중에 하나야"
"근데 그게 왜..."
"미친놈들을 니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마"
"..."
"니 정신만 피폐해져. 득될 것도 아무것도 없고"
"...네, 하지만..."
무언가 얘기하려던 희연의 말을 병재가 끊었다.
"알잖아? 지금 니가 해야할 일. 미친놈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게 아니라 이런 피해자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
"그리고 지금처럼 이미 일이 벌어진 상황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친년놈들을 잡아 쳐넣어야지. 이미 죽은 아이가 하늘에서도 억울하지 않게"
"..."
"그러라고 국민들한테 월급받고 이 일 하는거잖아?"
"선배 말이 맞네요"
희연이 조금은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고, 병재가 장갑을 낀 손으로 다시 흙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병재가 흙을 골라낸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
어린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의 머리 부분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흙을 파내려가던 병재가 멈칫한다.
"뭐야?"
병재의 중얼거림에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던 희연이 고개를 돌렸고,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유골이...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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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장혜진씨"
문을 열고 나오는 40대 초반의 여자를 보고 준혁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 누구...?"
준혁이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경찰관입니다. 정확하게는 형사구요. 잠시 얘기 좀 하실 수 있을까요?"
혜진이 흠칫 놀랐다.
"네? 형사요?"
"아 너무 놀라진 마시구요. 몇 가지 물어볼게 있어서 찾아 뵌 겁니다."
잠시 생각하던 혜진이 말한다.
"...네, 들어오세요"
거실 바닥에 작은 테이블을 두고 혜진과 마주 앉은 경일이 말한다.
"하하, 너무 경계하지 않으셔도 되요. 저희 나쁜 사람 아닙니다"
"아, 네..."
혜진의 반응에 잠시 멋쩍어 하던 경일을 보며 준혁이 혜진을 불렀다.
"장혜진씨?"
"네?"
"아까 전화로 민경우씨 와이프라고 하셨는데, 맞나요?"
"...네, 맞아요."
"오재희씨. 알고 있나요?"
준혁의 물음에 순간 혜진이 동공을 크게 확장시켰다.
"네? 오... 오재희요?"
혜진의 반응에 준혁이 이제는 확신한다는 듯 물었다.
"네. 오재희씨요. 알고 있죠?"
이제는 혜진이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기 시작했다.
"장혜진씨?"
"..."
"장혜진씨!"
준혁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혜진이 준혁을 바라봤다.
"...아, 아.. 네, 네. 알고 있어요"
"어떻게요?"
"경우씨... 부인이에요"
혜진의 말에 경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그럼... 민경우씨가 유부남인 걸 알고 계시면서도 만났다는 말씀이세요?"
"..흑..네, 죄송합니다. 흑흑, 죄송합니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혜진을 보며 준혁이 혜진을 불렀다.
"혜진씨?"
"흑...흑..네.."
"조금 진정하시구요. 그 것 때문에 혜진씨를 찾아온 것은 아니니까요"
혜진이 붉어진 눈으로 준혁을 바라본다.
"민경우씨.. 진짜 어딨는지 몰라요?"
"...네... 하지만 어쩌면..."
"네?"
준혁의 되물음에 혜진이 무언가 결심을 굳힌 듯 말한다.
"이미 죽었을 수도..."
"네? 그건 무슨 말이에요?"
혜진의 말에 흠칫 놀란 준혁이 다급히 물었다.
"몇달 전에 경우씨와 마지막으로 봤던 날..."
"..."
"경우씨 부인이 저와 경우씨의 관계를 알게 되었어요"
"...!"
"그 이후로 경우씨와 연락이 전혀 되지 않고 있어요. 흑..흑... 형사님 제발 도와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