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어요"

　"네?"

　"흑..모르겠어요. 저도 채린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미현이 잠시 진정되기를 기다리던 희연이 다시 물었다.

　"그럼 나머지 1명이 민채린 양인 것은 맞다는 말씀이시죠?"

　"....예"

　".. 뭔가 알고 계신게 있는 것 같은데 저한테 말씀해 주실 수 없을까요?"

　희연의 간절한 표정을 보며 미현이 결심을 굳혔다.

　"제가 채린이를 마지막으로 본게 그 집을 나올 때니까 아마.. 작년 3월정도 되었을거에요"

　그 때부터 미현의 얘기가 계속 되었다.

　2014년 박미현과 박경숙이 아이들을 데리고 옷가게 사장인 오경옥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 위해 갔을 때 당시 5살인 민채린이 오경옥과 함께 살고 있었다.

　처음 그 집에 도착했을 때 민채린은 무언가 겁에 질린채 거실 한 구석에서 몸을 잔뜩 웅크려 떨고만 있었고, 그 모습에 민채린이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고 생각해 걱정하고 있었는데 몇 일이 지나자 민채린이 박미현과 박경숙의 아이들과 금방 친해졌고, 또래끼리 서로 어울리며 잘 지내게 되었다.

　그모습에 안심한 박미현이 민채린에게 친해지기 위해 몇 번이나 다가갔는데 이상하게 박미현이나 박경숙이 민채린에게 다가가면 몸을 웅크리고 경계했다.

　처음에는 박미현도 단순히 민채린이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유치원에 가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면 민채린의 낯가림이 어느정도 없어지지 않을까 싶어 박미현이 오경옥에게 채린이도 자신의 아이들처럼 유치원에 보내자는 얘기를 몇 번이나 했지만 오경옥이 한사코 거부했고, 박미현은 오경옥이 항상 오후 1시에 가게에 출근했기 때문에 오전에 오경옥이 직접 민채린을 교육시킨다고 생각했다.

　박미현이 오경옥의 집에서 3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한 때는 민채린의 온 몸에 피멍이 들었던 것도 몇 번 봤지만 단순히 오경옥이 아이를 엄하게 키운다고 생각했고, 특히나 오경옥은 박미현과 박경숙이 집에 있을 때는 절대 민채린을 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때 까지만 해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던 중 민채린이 7살이 되던 작년 3월, 박미현이 일을 하다가 몸이 좋지 않아 일찍 집으로 돌아온 날이 있었는데 베란다 의자에 온 몸이 묶인 채 축 늘어져 있는 민채린을 발견했고, 그 모습에 놀라 허둥대는 사이 오경옥이 다방에서 일하고 있던 정미숙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박미현이 119를 부르려고 하자 오경옥이 자신의 행동을 제지하더니 자신이 직접 병원으로 옮기겠다며 정미숙과 함께 늘어져 있는 민채린을 들어 차로 이동하는데, 박미현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 민채린을 보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산 고려병원으로 민채린을 옮긴다는 말에 오경옥이 차를 몰아 출발하는 것을 보며 바로 택시를 타고 몰래 오경옥의 뒤를 밟았는데 오경옥의 차가 집에서 약 20km 떨어진 야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택시를 집으로 되돌렸다고 한다.

　그 길로 집으로 돌아온 박미현은 꼭 필요한 귀중품만 챙겨서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경옥의 집을 나왔으며, 박미현의 얘기를 들은 박경숙도 그 날 바로 그 집을 나왔다고...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셨어요?"

　"흑...죄송합니다. 너무 무서워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미현을 보며 희연이 짧게 한숨 쉬며 옆에 앉아 있는 병재를 바라봤다.

　마침 병재도 박경숙에 대한 대략적인 조사가 끝났는지 희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희연이 입모양으로 미현과 경숙의 진술이 같냐고 물었고, 병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희연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박미현씨, 잘 들으세요"

　"흑..흑...네.."

　"만약 박미현씨의 진술이 전부 사실이라면... 오경옥씨는 물론 그에 대한 죗값을 치를거에요. 그리고... 박미현씨랑 박경숙씨도 상황에 따라 방조죄로 같이 처벌받을 수 있으니 수사에 협조 잘 해주셨으면 해요"

　자신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말에 눈을 크게 뜨던 박미현이 이내 채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흑..네"

　흐느끼며 대답하는 박미현을 보며 희연이 용진을 돌아봤다.

　"팀장님?"

　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경옥이랑 정미숙이에 대한 체포영장 신청해"

　************** 

　용인북부경찰서 수사과 사무실.

　"행님"

　"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준혁의 부름에 모니터를 바라보던 경일이 고개를 돌렸다.

　"이거 이상한데요?"

　준혁이 자신의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가?"

　"민경우요. 국외출입국사실조회는 물론 구치소수감조회에도 아무런 기록이 없고 가족도 이혼하기 전에 오재희와 민채린이 전부였어요. 외동아들에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셨구요"

　경일이 준혁의 모니터를 바라본다.

　"그래서 민경우에 대한 통화내역도 따봤죠. 그런데.. 5개월 전부터 통화한 기록조차 전혀 없어요. 마치 갑자기 증발한 사람처럼..."

　"눈치까고 튀었을 가능성은?"

　"글쎄요. 거의 없다고 보여지는데요. 경찰에 수사를 받던 상황도 아니었고.."

　잠시 생각하던 경일이 말했다.

　"일단 민경우가 사용하던 폰, 5개월 전에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누구,누구인지 분석해봐"

　"잠시만요"

　잠시 키보드를 두드리던 준혁이 말한다.

　"광고 제외하고 착,발신 번호가 총 3통이네요"

　"몇 개 되지도 않는데 하나, 하나 명의자 확인할 시간 없으니까 그냥 다 전화해봐"

　"네, 일단 이거부터"

　준혁이 3통으로 정리한 민경우의 착,발신 내역 중 첫 번째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안받..."

　달칵

　"여보세요?"

　"...오재희씨?"

　"네, 오재희입니다. 누구..?"

　"아, 아까 전에 뵈었던 조형사입니다"

　"네.. 근데 제 번호는 어떻게...?"

　"오재희씨 집 확인하면서 혹시 몰라서 전화번호도 같이 확인했죠. 혹시 댁에 안계실까봐"

　"아 네... 뭔가 더 하실 말씀이라도...?"

　급히 만들어낸 변명에 스스로 만족하던 준혁이 말한다.

　"아뇨. 특별한 건 아니구요. 혹시 민경우씨 소식 듣게 되면 이쪽으로 전화 좀 주시라고 부탁드릴까 해서요"

　".....네, 알겠습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쉬십쇼"

　"네"

　뚝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준혁이 한숨 쉬었다.

　"뭐야? 오재희야? 그래도 임마, 대충 번호보고 확인은 했어야지"

　"아 나 심장이야. 깜짝 놀랐네"

　"칠칠맞긴..."

　"아 뭐요? 행님이 시간 없으니까 일단 다 돌려보라매?"

　"보라매? 말이 짧다?"

　"보라매요"

　"이걸 그냥 콱! 참자 참아. 전화나 계속 해봐"

　입이 부루퉁하게 튀어 나온 준혁이 2번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네~ 여보세요?"

　수화기 넘어로 40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실례지만 어디시죠?"

　준혁이 전화를 잘못 걸었다는 듯이 쭈뼛쭈뼛 말했다.

　"인력사무소인데요~ 누구시죠?"

　"아 아닙니다 사장님. 제가 전화를 잘못 건 것 같네요"

　"아 그래요? 네~"

　"저기, 잠시만요. 사장님"

　전화를 끊으려는 남자를 준혁이 급히 부른다.

　"예?"

　"혹시... 민경우씨라고 아시나요?"

　"누구...민씨? 민씨 우리 사무실에서 일하던 인부였는데"

　"였는데? 지금은 안나오나요?"

　"안나온지 몇달은 지난 것 같은디요. 근데 누구쇼?"

　"아 아닙니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뚝

　전화를 끊은 준혁이 경일을 돌아봤다.

　"인력사무소인데요?"

　"뭐 없어? 일 안나온데?"

　"네, 몇달 됬다는거 보니까 전화 안쓰기 시작한 날짜랑 얼추 맞네요"

　"결국 건질건 없구만. 마지막 전화 바로 돌려봐"

　"네네"

　준혁이 마지막 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

　달칵

　"여보세요?"

　나이를 정확히 짐작하기 어려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네, 제가 전화를 잘못 건 것 같은데 혹시 누구시죠?"

　준혁이 휴대폰을 조작하여 재빨리 스피커폰으로 변경했다.

　".... 장혜진이라고 하는데요. 누구시죠?"

　준혁이 경일을 돌아봤지만 경일은 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준혁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한다.

　"아.. 제가 전화를 잘못 건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아 네..."

　"저기 잠깐! 그런데 혹시... 민경우씨라고 알고 계신가요?"

　순간 수화기 넘어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여보세요? 사모님? 여보세요?"

　"아, 네. 전화기를 떨어뜨려서. 경우씨, 경우씨에요? 경우씨 내가 잘못했어요. 흑흑"

　경일이 준혁에게 눈짓을 줬고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사모님. 저 경우형이 아니고... 경우형 친한 동생인데요. 형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연락이 안되서요"

　"....경우씨 친한 동생이요?"

　"네. 진짜 같이 일하기로 해놓고 몇 달째 연락이 안되네요. 이 형님 진짜 어딜 간건지 참...혹시 어디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아니요, 저도 경우씨가 어디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 실례지만 혹시 경우형님이랑 어떻게 되시죠?"

　준혁의 물음에 여자가 말한다.

　"경우씨... 와이프에요"

　 준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