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혁은 사무실에 있던 형사3팀원에게 방금 전 있었던 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상황은 이랬다.
민교가 이쁘장한 얼굴로 사근사근 웃어주며 조사를 진행하는 희연에게 '자고로 여자는 일본인처럼 순종적인 맛이 있어야해, 아가씨가 딱 그럴거 같네, 나한테 시집올래?' 등의 말을 하며 치근덕거렸고 희연의 성질을 돋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히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3팀원이 언제 희연의 성질이 폭발할지 몰라 조마조마 하고 있는데, 희연이 의외로 잘 참고 조사를 잘 진행했다고 한다.
조사가 중반 쯤 진행되었을 때부터 민교가 '커피가 마시고 싶네, 입이 텁텁해서 조사를 못 받겠네' 라는 식으로 똥배짱을 부려서 희연이 어쩔 수 없이 민교의 커피를 타주기 위해 정수기로 움직이는데 민교가 의도적으로 지나가는 희연의 엉덩이를 슬쩍슬쩍 건드렸단다.
그 과정에서 희연이 결국 폭발했고 이후의 상황은 준혁이 옥상에서 내려와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본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
"그 새끼 유치장에서 어디 하나 부러지는거 아닐까.."
"아니요, 누나 성격이면 최소 두 군데는..."
경일의 중얼거림에 준혁이 대답했다.
나중에 알게 될 사실이지만 훗날 조사를 마치고 검찰로 송치된 민교가 희연을 상대로 불법체포를 당해 억울하다는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물론 직접 법원에 출석한 희연이 사무실 내 설치된 CCTV를 USB에 담아 증거로 제출하고, 지금 이런 상황이 너무 수치스럽다며 눈물을 흘리는 여우주연상급 연기에 민교는 법원을 기만했다는 괘씸죄까지 가중되었다는 여담이다.
준혁과 경일이 얘기하고 있을 때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용진이 들어왔다.
"뭐야? 둘 다 서서 뭐해? 무슨 일 있어?"
"아 그게.. 현행범체포 1건 있습니다."
"현행범이야 조사하고 빨리 석방하면 되지. 뭐 큰 건이야?"
"걱정하실만한 큰 건은 아니고요"
경일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용진에게 설명했다.
"죽으려고 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팀장님"
팀장의 깔끔한 감상평에 경일이 대답했다.
"음.. 오랜만에 팀회의 해야하는데 상황 보니 지금 당장은 안되겠네."
"무슨 일 있습니까?"
용진의 말에 준혁이 물었다.
"아무래도 큰 건 하나 생긴 것 같다"
김민교 사건으로 희연의 조가 빠지는 바람에 팀 회의는 다음날 아침에 진행되었다.
아침 일찍 소회의실에 형사2팀 5명 전원이 둥근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김희연"
"예, 팀장님"
"살려는 놨지?"
희연이 씨익 웃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안 다치게 일처리 깔끔하게 하고, 뭐 너니까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그럼 회의 시작한다"
용진의 말에 형사2팀 모두 볼펜을 손에 들었다.
"어제 여청에서 공조수사 요청왔던 거는 알고 있지?"
"예, 전화받고 바로 그 쪽 사무실에 가셨잖아요"
용진의 말에 희연이 대답했다.
"그래, 아무래도 관내에 여자아이 1명이 실종된 것 같다"
"실종요?"
"작년부터 교육부에서 미취학아동 전수조사 실시하고 있는 거는 다들 알고 있지?"
희연이 생각이 났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네, 평택에서 행방불명 신고됬던 아이가 알고 보니 계모한테 학대 당해서 죽었고, 그 것 때문에 한동안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작년부터 8살이 됬는데도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키지 않는 가정이 있으면 교육부에서 조사하고 있죠?"
희연이 대답에 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에 교육부에서 우리 관내에도 미취학아동에 대한 대대적인 전수조사를 실시했는데 총 3가정에서 아이를 입학시키지 않았다"
"그럼 그 3가정 전부?"
용진의 물음에 병재가 되물었다.
"아니, 교육부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 두 아이는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어서 부모들이 조금 더 치료를 시키고 학교에 입학을 시키겠다고 했단다. 물론 병원에 아이들이 잘 있는지도 확인되었고, 문제는..."
"나머지 한 가정이네요?"
"맞아. 이상한 건 아이는 마산으로 주소가 되어 있는데 얘내 부모들은 경기도 용인으로 주소가 되어 있는거야. 교육부에서 알아보니까 아이가 4살이 되었을 때 마산에 있는 이모집에 맡겨진거더라고"
물로 목을 축인 용진이 계속 말했다.
"이유는 뭐, 아이 부모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혼을 했고 서로 제 입 하나 풀칠하기 힘드니까 서로 아이를 안 맡으려다 결국 이모 손에 맡겨졌나봐"
희연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서요?"
"서류상 아이부모는 그 때 부터 아이를 한 번도 데려간 적이 없고, 결국 아이 이모가 4살 때부터 아이를 쭉 키워왔다는 얘기인데..."
"초등학교에 입학해야할 아이가 없어졌다?"
"그래. 교육부 관계자가 아이 이모를 직접 만나보니까 아이 이모는 안그래도 아이가 몇 일전에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부모한테 버림받아서 삐뚤어져서 그렇지 심성은 착한아이라고 꼭 좀 찾아주라며 울고 불고 난리를 피운다고 하더라고"
"그런데도 교육부에서 경찰서에 수사의뢰를 했다는 말은 이모 말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래. 조준혁?"
용진이 생각에 잠겨있는 준혁을 불렀다.
"예, 팀장님"
"총각인 너한테 이런거 물어보는게 좀 이상하지만, 만약 니가 아이가 있는데 몇 일이 지나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
"112에 신고를 하겠죠"
옆에 있던 경일의 대답에 용진이 인상을 찡그렸다.
"왜 니가 대답해? 아무튼.. 아이가 몇일 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데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타관내에 접수된 사실이 있는지 확인해보려고 실종아동 프로파일링시스템(전국에 접수된 실종아동들의 인적사항과 실종경위 등을 조회할 수 있는 전산망)을 돌려봐도 전혀 실종 접수된 사실이 확인 되지 않는데?"
"확실히 이상하네요"
희연이 대답했다.
"그리고 하나 더. 이건 그냥 참고사항이니까 말 그대로 참고만 해. 괜히 선입견은 갖지 말고"
"네, 뭔데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희연을 보며 용진이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가 아이의 이모집에 방문했을 때 거실에 나뭇가지를 휘어 만든 회초리가 최소 20자루는 넘게 있었단다. 일반적인 집에 회초리 1자루씩 가지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마치 때리다 부러졌을 때 여유분을 충분히 확보해놓는 것처럼"
"아이 이모의 학대가 의심된다는거죠?"
"정황상 추측이라고만 해두자. 선입견을 갖고 시작하는 수사만큼 무서운건 없으니까. 증거재판주의 알지? 특히 준혁이는 이 말 명심하고"
"예, 팀장님"
"그리고..."
"뭔가 또 남았나요?"
희연이 물었다.
"음.. 그리고 이건 정말로 참고사항인데"
"..."
"그.. 아이 이모집에 방문했던 교육부 관계자가 아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며 울고 불고 난리를 피우는 이모 모습이 너무.. 기괴했다고 하더라고"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서럽게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하는 아이 이모를 보면서 그 때 당시에는 아이 이모를 달래주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조금 있다 집을 나서면서 인사하려고 아이이모를 돌아 봤을 때 순간 소름이 돋았다고 하더라고"
"..."
"순간 돌아본 이모의 표정이 너무 무표정해서..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무표정하게 있던 사람이 자기가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순식간에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 너무 기괴해서 소름이 돋았다고..."
용진의 말이 끝나는 순간 소회의실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