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사진관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배경을 뒤에 두고 찍은 인물 사진들이 높낮이를 달리 해서 입구 양 옆으로 전시돼 있다. 칼라로 인쇄된 사진들 사이로 흑백 처리된 것도 보인다. 사진관 건물 자체는 오래된 목조로 지어져 낡았지만, 깔끔하게 관리된 주변 모습은 그 건물 주인의 성격이 어떠한지 드러낸다. 한 남자가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다 그 앞에 멈춘 후 사진들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마침 사진관 주인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손에 들고 문을 열고 나오다 남자와 마주친다.
“아이구, 안녕하십니까?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아, 예. 잠시 볼 일이 있어서요. 어째 장사는 잘 되시는지요?”
허허. 주인 남자는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어디 요즘 같은 불경기에 잘 되는 장사 있겠냐며 쓰게 입맛을 다신다. 남자는 손에 들었던 청소용구를 한쪽으로 내려놓고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라며 밖에 서 있던 남자를 재촉한다.
“손님이 적은 시간이라 한산합니다. 잠시 들렀다 가시죠.”
마지못한 척 사진관 주인을 따라간 남자는 바로 자리에 앉지 않고, 주인 남자가 음료를 준비하는 동안 유심히 가게 안에 걸린 사진들을 관찰한다. 그러다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는지 멈춰서 뚫어져라 바라보는 사이, 주인이 쟁반에 두 개의 찻잔을 얹어서 내온다.
“이게 선물 받은 쌍화차인데 마실 만하더군요. 한 번 시음해보시죠.”
남자는 주인이 나오자 짐짓 아무렇지 않게 자리로 가서 앉더니, 주인 남자의 대접에 감사해하며 차를 입에 대보고 그 맛에 대해 칭찬을 건넨다. 주인 남자는 요즘 이 맛에 중독 돼서 거의 한 잔씩 매일 마신다며 너털웃음을 짓고, 동네 얘기에 이어 정치, 경제, 야구 등 이런저런 주제를 줄줄이 이어간다. 주로 주인 남자가 화두를 꺼내어 살을 붙이면 마주앉은 남자가 응답을 하며 맞장구를 친다. 사실 그는 그다지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다. 조금 전 주시하던 방향을 흘깃거리며 주인 남자가 이야기하는 중간에도 가끔씩 고개가 움직였다 되돌아온다. 잠시 이야기의 맥이 끊어지고 찻잔이 들렸다 내려지는 소리만 들리는데 남자가 음, 이라고 운을 떼며 느리게 말을 꺼낸다.
“음, 거, 말이죠, 저어기 영정사진. 요즘에 많이들 찍으러 옵니까?”
“영정사진이요? 아, 죽는 일이야 따로 정해진 철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나면 죽는 게 정해진 이치인데 나이 드신 분들 종종 찾아오셔서 미리 준비하시곤 하지요. 주로 가족들 몰래 오세요. 미안해할까 봐서.”
남자는 두어 번 더 흠, 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떼기 어려운 말을 억지로 꺼내듯이 운을 뗀다.
“그게, 거, 말이요.”
“예에.”
“돌아가신 분들 찍었던 영정사진은 쭉 모아둡니까?”
“영정사진이야 한 번 쓰고 나면 버리지요. 사진관에서는 필름으로 보관만 해놓고요. 그것도 오래된 건 다 처분한답니다. 아니 그건 왜 갑자기?”
남자는 또 한 박자를 쉬더니 말을 이어간다.
“제가, ……, 하는 일이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게 주된 일인데, 여름 다 지나고 가을이 돼서 그런가, 가슴이 흉흉한 게 갑자기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 예. 살아있는 분들 위해서 기도하기만도 바쁘실 텐데 돌아가신 분들까지 챙기시는군요. 저 같은 사람이야 어디 그런 생각이 들기나 하겠습니까.”
주인 남자가 감탄하는 얼굴로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키고 내려놓자, 남자는 몸을 앞으로 숙여가며 담담히 다음 말의 음절을 또박또박 뱉는다.
“그래서 하는 얘긴데, 영정사진을, 괜찮으면, 얻을 수 있을까 해서요.”
“영정사진을요?”
“예. 아무런 준비 없이 하는 것보다 기도할 대상을 앞에 두고 하면 더욱 집중도 잘 되고 기도 효과가 크지 않을까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남자가 자못 심각하게 말을 맺자 주인 남자는 들어 올렸던 잔을 내려놓더니 대답한다.
“아, 좋은 일 하시겠다는데 그게 무에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영정사진을 누가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원하시는 만큼 뽑아드리죠. 걱정은 마십시오.”
남자는 염려했던 일이 어렵지 않게 해결되자 마음이 놓였는지 한결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조금 전과 달리 말이 많아진다. 주인 남자도 대화가 활기를 띠자 목소리가 커지고 행동이 부산스러워진다. 이것도 드셔보시라며 다과를 준비해서 내오고 한층 들뜬 기분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얼핏 보면 여기가 사진을 찍는 곳인지 아님 얘기 나누기 좋은 찻집인지 헷갈릴 정도다. 앞에 놓인 차는 점점 식어가지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열기는 더욱 달아오른다. 앞에 놓인 찻잔을 건드려본다면 모를 일이다. 혹시 그 열기를 받아 다시 데워졌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