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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8.31

문 여는 자는, 영계에서 넘어오지 않아야 할 영들이 넘어오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두 남녀 주인공이 선택되고 모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현대판타지물입니다.
두 남녀 주인공, 민호와 은지는 로마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만난 사이인데, 한국에 돌아와 둘이 같이 해결해야 일을 떠맡게 됩니다.
건너편 세상에서 온 108개의 영혼을 다시 되돌려 보내거나 소멸시키도록 임무를 부여받고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여러 어려움을 무릅씁니다. 그 여정 재미나게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38
작성일 : 20-10-19 07:22     조회 : 275     추천 : 0     분량 : 9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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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여기 어디라던데. 민호는 앞서 걸으며 뒤를 따라오는 은지를 돌아본다. 은지는 미심쩍게 주변을 관찰하는 중이다.

  “물에 빠질 곳은 아닌 거 같아. 주변에 풀은 시들어가고 개천도 말라 있고. 잘못 온 거 아니야?”

  “여기 맞는데. 분명히 물레방앗간 하던 곳이랬어. 아까 그 떡집 아주머니가 그랬잖아. 여기 물레방아가 있었다고.”

  은지는 그 말에 확신이 가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며 멀리 보이는 낡은 건물을 가리킨다.

  “그런 장소가 저거 하난데 저기서 물난리 날 리가 없잖아?”

  민호는 은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무너지기 딱 좋은 곳이네. 정말 귀신 나오겠다. 그러니 가볼 만하잖아?”

  은지는 뒤따라가며 등을 살짝 밀친다.

  “하여튼, 넉살은 좋아요.”

  민호는 과장되게 밀리는 척하며 앞으로 튀어나가 건물 앞에서 멈춘다. 뒤따라서 은지가 그 옆에 선다. 들어가는 입구는 활짝 열려 있고 그 안으로 트여진 공간은 어둑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음, 들어가야겠지?”

  “찜찜해 보이긴 한데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갈 수도 없잖아. 시간 들인 것도 아깝고.”

  은지가 성큼 안으로 들어서자 민호는 조심스레 그 뒤를 따른다. 시간이 흐르면 나무가 삭는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장소다. 금이 간 곳이 끝없이 이어지고 축대를 세웠던 자리에는 그 기둥의 반만 남았다. 언제 꺼질지 몰라 그 위를 걸어 다니기 겁이 날만 하다. 민호는 앞으로 나아가는 은지를 제지하기 위해 대뜸 손을 낚아챈다.

  “어디 푹 꺼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렇게 막 돌아다녀. 아래 보면서 조심해.”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 살던 곳인데 그렇게 약할까 봐?”

  아무래도 민호는 안심이 되지 않는지 은지의 앞을 둘러봐준다. 은지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은지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그 손이 거슬리는지 비틀어서 빼내려고 애쓴다.

  “계속 잡고 있을 거야?”

  어라, 라며 그제야 민호는 손을 내려다본다.

  “언제, 우리가 손을 잡았지?”

  “방금.”

  은지가 손을 비틀어 빼내자 민호는 머쓱하게 자기 손을 거두어 옷 위를 쓱, 하고 훑는다.

  “옷에다 손은 왜 닦아? 내 손에 뭐 묻었을까 싶어?”

  “아니 무슨 그런 말을…….”

  시간이 지날수록 은지의 손이 거기에 있었다는 게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지 민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만 있다. 은지는 앞서 나가서 한때 식기구로 보였을 그릇들이 놓여있는 자리로 가 살핀다.

  “이야, 이거 진짜 오래돼 보이네.”

  뒤따라간 민호는 그릇을 집어 올려 이리저리 훑는다. 갈라져 금이 바닥까지 이어진 그릇을 내려놓고 옆에 놓인 젓가락을 들어 벽에다 살짝 문질러 본다. 서걱, 소리를 내며 벽 한쪽이 떨어져나가자 급하게 손에 든 것을 내려놓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를 뜬다. 은지는 그 앞, 아궁이었을 자리로 보이는 근처에 무릎을 굽히고 앉는다.

  “여기 재가 있는데. 예전에 나무를 넣고 불을 때서 밥을 지었던 것 같아.”

  불에 그슬린 자국이 남아있는 솥을 들어 살피더니 제자리에 두고 주위를 돈다. 거칠게 쏠린 것 같은 자리가 드문하게 눈에 띈다.

  “쥐가 돌아다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별로네.”

  “쥐, 바퀴벌레, 뱀. 윽, 다 싫어.”

  “그런 게 나오면 용맹한 남자로서 잡아줘.”

  “요즘에 남녀차별하면 미개인 취급 당하지 않나.”

  밉지 않게 눈을 흘기는 은지를 못 본 척하며 민호는 오른쪽에 나 있는 공간으로 옮겨간다.

  “여기는 뭐지?”

  위에서부터 스르륵 뭔가 아래로 떨어진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어 고개를 내밀며 확인하던 민호는 은지에게 들리라는 듯 크게 말한다.

  “이쪽에 물 새는 거 같아. 어디 수도가 터졌나?”

 은지는 민호가 있는 곳에서 좀 더 멀어지며 답한다.

  “이런 옛날 집에 수도관이 있기나 하겠어. 뜬금없이 무슨 물이 샌다고……. 물?”

  물, 이라며 묻던 입이 멈춘다. 민호는 은지가 꺼낸 말에 반응 없이 잠시 멈췄다 표정을 바꿔 은지를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애들이, 여기서, 물벼락을 맞았댔잖아?”

  “왜 물이……, 여기에?”

  은지가 민호에게로 향하는 사이 민호는 젖어가는 저편을 보기 위해 문을 열어젖힌다. 거기 너머에 아래 위 하얀 한복을 입은 할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할머니 어깨는 구부정하게 굽었고 앞으로 숙인 머리 뒤에는 색깔을 알 수 없는 비녀가 꽂혀있다. 주변이 어두워서 그런지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그 위에 서린 감정도 알아챌 수 없다. 민호는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있다 은지가 뒤로 다가서자 그 앞을 막아서며 걸음을 멈추게 한다.

  “응?”

  민호는 말없이 턱을 들어 건너편을 가리킨다. 은지는 민호가 가리키는 방향을 좇다 어머, 라는 탄식으로 노인을 발견했음을 알린다. 그녀가 움직이는 발걸음을 따라 그 양 옆으로 물줄기가 번진다. 발을 갖다 대면 가볍게 젖을 정도다. 민호는 은지 앞에서 팔을 뒤로 빼서 뒤로 물러나라며 신호를 준다. 건너편을 바라보던 은지는 뒤에서 생각에 잠겼다 민호의 옆으로 가 함께 선다.

  “어쩌려고?”

  민호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 한 채 은지는 노인을 향해 조심스레 느린 걸음으로 다가간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여기서 뭐하세요?”

  노인의 눈동자가 서서히 초점을 맞추며 은지를 마주한다. 물이 흘러 은지의 신발에 닿는다.

  “우리, 우리…….”

  은지는 고개를 끄덕여 자신이 노인의 말에 경청하고 있음을 알린다. 다리를 끌다시피 걷는 노인의 보폭에 맞추듯 은지도 서두르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석재를, 찾는데.”

  “석재요?”

  “우리 아들, 석재. 아가씨 봤어요?”

  밑을 내려다보는 은지의 눈에 물이 튀어 젖은 신발이 들어온다. 옆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조금 전보다 폭이 넓어진 듯하다. 다가가는 발걸음에 물이 튀어오른다.

  “아니요. 여기 들어오며 마주친 사람 없었는데요.”

  “내가 걔를 마지막으로 보고 그만 정신줄을 놓았는지 흐릿해져서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

  “그러세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드님 찾으신다구요?”

  거의 손이 닿을 정도로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민호는 그런 은지를 보면서 더욱 안절부절 못하고 거리를 두며 뒤를 따른다. 민호의 신발도 물에 젖어간다.

  “내가 석재랑 함께 있었는데 그만 잃어버렸어.”

  “아, 염려 마세요. 요즘에는 사람 찾기 쉬워요. 금방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자기 입술 정도 높이에 위치한 노인의 눈을 마주하기 위해 은지가 살짝 무릎을 굽히다 오른손으로 노인의 왼쪽팔을 건드린다. 은지는 당황한 얼굴로 그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물이 쓸려 손바닥 안에 배어있다.

  “아가씨가 도와준다고?”

  “네, 할머니. 어쩌다가 아드님 잃어버리셨어요?”

  “걔랑 왔다가 말이지. 가만, 여기 왜 왔더라.”

  노인이 생각을 짜내기 위해 앞이마를 찌푸린다. 민호는 염려스러운 얼굴로 눈을 작게 오므리고 아랫입술을 잘근 씹는다.

  “내가 말이여, 그러니까, 물을 만났나? 석재랑 그러니까…….”

  민호는 웅얼거리는 노인의 소리를 들으며 은지의 뒷모습을 주시한다. 눈이 피로한지 왼손을 들어 눈동자를 지긋하게 누르는데, 갑작스레 은지가 뒤를 돌아본다. 영문을 모르는 민호에게 은지의 얼굴이 아차, 하는 당황스러움을 보이며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기도 하고 미안하다는 사과 같기도 한 메시지를 표정으로 전한다. 은지 앞쪽으로 민호의 시선이 옮겨가자 노인의 등 뒤로 그 키를 넘겨버린 두 가닥의 물로 된 소용돌이가 위로 솟구치는 것이 보인다. 노인의 옆에서 시작된 물보라는 벽을 치고 두 사람을 향해 퍼지며 흩어진다. 노인이 얼굴을 부여잡고 그러니까 석재랑 내가, 라는 말을 내뱉고 이어 기겁하듯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상체를 숙이자 뒤에 있던 물의 소용돌이가 정면으로 들이닥친다.

  먼저 물을 맞은 건 은지였다. 세찬 기세에 몸이 허공으로 떠서 뒤로 밀리자 엉겹결에 다가선 민호가 그 등을 받아보지만 오히려 두 사람이 함께 떠밀려버린다. 은지는 물에 젖어 미끄러운 바닥 위에서 어렵게 균형을 잡으며 바로 넘어질 듯 반쯤 무릎을 꿇었다. 그런 은지를 지탱하던 민호 위로 이번엔 소용돌이와 함께 공간을 가득 채우는 파도가 함께 덮쳐오자 민호는 뒤로 은지를 밀쳐내며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등으로 받는다. 계단 아래로 떨어진 은지가 기는 걸음을 하며 위를 올려다본다. 민호가 소용돌이에 밀려 완전히 균형을 잃고 뒤로 누워있는 자세로 높게 들어찬 물의 공간 안에 둘러쌓였다. 팔과 다리를 휘저으며 세차게 쏟아지는 물살 안에서 어떻게든 자세를 잡아보려 노력하지만 거의 배영하듯 넘어가버린 몸이 균형을 지탱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민호야!”

  은지는 힘겹게 일어서서 계속 흘러넘치는 물줄기를 피해가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민호를 바라본다. 다급한 마음에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손으로 이마를 짚어가며 애를 태우지만 민호를 돕기는커녕 물을 피하는 것만으로 급급하다. 간신히 앞으로 나아가 자신이 내처졌던 곳 근처까지 이르렀지만 허우적거리는 민호에게 닿기 위해 내미는 손을 물길이 계속 밀어낸다. 민호는 어렵게 몸을 세우기는 했지만 물의 흐름에서 벗어나기 벅차 조금 위로 올랐다 아래로 내려가기만 반복한다. 입 안에서 새어나오는 공기방울로 민호가 점점 산소를 잃어가고 있음을 감지한 은지의 얼굴에는 이제 필사적인 빛이 떠오른다. 맞은편에서 얼굴을 부여잡고 몸을 떨고 있는 노인을 달래보려 하지만 물줄기가 솟구치는 사이를 헤치고 나아갈 방법이 없다. 물살은 이미 기세가 너무 커져버려 방 안 전체로 물이 넘쳐나고 방 밖으로도 거칠게 뿜어져 나간다.

  민호를 다급하게 부르던 은지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감당하기 벅차다. 뭔가 각오를 했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떼며 맞은편에서 얼굴을 가린 채 몸을 떨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숨을 깊게 들이쉰 후 눈을 감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고 은지의 옷만 물에 더욱 젖는다. 은지가 눈을 뜨자 절망스런 빛이 그 눈동자 안에 가득하고 물 안에 갇힌 민호의 얼굴색이 퍼렇게 변해가는 것이 보인다. 은지가 다급히 다시 눈을 감고 이번에는 머리에 양손을 얹어 눌러가며 집중하지만 넘쳐나는 거친 물살은 변함이 없다. 결국 포기한 모습으로 젖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감았던 눈을 떼어 민호를 보자 그 움직임은 상당히 둔해져 팔다리를 저어대는 것이 매우 느리고 눈은 반쯤 감겼다. 거의 의식을 잃어가는 것 같고 입에서 나오는 공기방울도 이제 드물다.

  은지는 다급히 앞에 놓여진 물기둥을 손으로 쳐내보지만 그럴수록 물만 튀겨질 뿐이고 자칫하다 오히려 자신도 삼켜질 뻔하자 울상이 된다. 눈물이 차오르고 비틀어진 입술 사이에선 알아듣기 힘든 신음이 새어나온다. 안타까움과 간절함, 절망감이 뒤엉킨 뒷모습이 어깨를 떨구었을 때 고개가 어깨를 따라 떨어지며 오른쪽 벽을 향한다. 노인의 머리 위로 넘어오는 소용돌이와 양옆으로 쏟아지는 물길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물줄기가 짙고 커다란 것이 있고 얕고 작은 것이 있다. 벽 끝으로는 물이 거세게 닿지 않아 그 너머가 보일 정도로 엷게 흘러내린다.

  은지의 시선이 잠시 거기에 머물렀을까, 주저없이 그쪽을 향해 달려든다. 머리와 옷을 모두 적시며 물의 흐름을 지나 건너오자 은지의 몸이 물로 찬 공간 안에 들어선다. 은지가 멈춰선 곳 너머 사람 두 명이 들어갈 정도의 거리에 노인이 웅크리고 있다. 은지는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힘겹게 물살을 견디며 천천히 곁으로 다가간다. 은지는 민호를 보며 그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감지한다. 깊게 숨을 들이키더니 단호히 노인의 어깨를 부여잡는다.

  “할머니! 잠깐만요! 할머니!”

  은지의 손길과 부르는 소리에도 노인은 얼굴을 덮은 손을 떼지 않고 몸만 떨어댄다.

  “할머니! 괜찮아요! 할머니!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은지는 얼굴을 부여잡고 숨이 넘어갈 것처럼 탁한 소리를 내며 사래를 치는 노인의 시선을 끌기 위해 사력을 다해 계속해서 말을 건다.

  “할머니! 할머니 아들 석재요! 석재 보셔야죠! 할머니 제가 찾아드릴게요!”

  얼굴을 덮고 있던 노인의 손이 아들의 이름에 반응한다. 몸은 여전히 떨고 있지만 얼굴 위를 덮었던 손을 은지를 보기 위해 밑으로 내린다. 노인이 탄식하듯 내뱉는 석재를, 이라는 들릴 듯 말 듯 울리는 말을 은지는 한 글자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결사적인 얼굴로 받아들인다.

  “할머니! 걱정 마세요! 아들 찾으실 거예요! 석재 찾아드릴게요!”

  간절함이 담긴 목소리로 급하게 고개를 끄덕여가며 은지가 다짐하고 또 다짐하자 몸을 떨던 노인의 몸동작이 잦아들고 거칠었던 숨이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사납게 소용돌이치던 물줄기도 아래로 떨어지며 잦아든다. 노인의 몸 위로 거의 파묻다시피 고개를 기대는 은지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노인의 몸을 양손으로 쓸어준다. 노인과 은지의 호흡이 같이 안정을 되찾고 고른 리듬을 유지한다. 은지는 고개를 들어 민호가 있던 곳을 쳐다본다. 공간을 가득 채웠던 물은 밖으로 넘쳐흘러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바닥에만 간간히 고였다. 아래로 고개를 파묻고 엎드려 있는 민호를 보자 은지의 표정이 다시 조급해진다. 노인의 몸에 올렸던 팔을 천천히 들어올려 떼어내고 하체에 힘을 실어 일어선다.

  “할머니, 잠시만요.”

  “으응?”

  조심스레 두르고 있던 팔을 빼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뒤로 젖히며 일어서는 은지의 뒤에 남은 노인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영문을 모르는 얼굴이다. 조심히 발을 움직여 얼굴은 노인을 향한 채로 뒤로 걸어가다 민호의 바로 옆까지 간 후 몸을 돌려 무릎을 꿇는다. 민호의 얼굴 가까이 귀를 대고 거칠게 터져나오는 숨소리를 확인하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주저앉는다. 입으로 터져나오려는 오열을 간신히 억눌러가며 노인에게 눈길을 줬다 상체를 구부려서 민호의 몸을 흔들어댄다.

  “민호, 야.”

  숨을 내쉬었다 들이쉬는 움직임이 손에 전해지고 있지만 답은 없다.

  “민호야, 정신 차려.”

  손에 힘을 줘서 더 큰 동작으로 민호의 몸을 흔들어댄다. 몸을 움직여 가까이 다가앉더니 떨리는 손과 어깨에 힘을 줘가며 민호의 상체를 최대한 돌려 얼굴이 위를 향하도록 한 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민호야, 눈 좀 떠 봐.”

  이마와 눈 위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쓸어서 밀어올리고 물에 젖은 얼굴을 정성껏 닦아준다. 그러고도 아무 반응이 없자 가슴과 어깨를 주물러댄다. 뭐라도 해야겠는지 팔을 가만히 두지 못하던 은지가 지친 얼굴로 힘을 짜내서 가슴을 누르는데 입에서 물이 튀어나온다. 처음엔 막힌 곳을 뚫듯이 밀어내는 것 같더니 그 다음엔 사래가 걸린 사람처럼 짧은 호흡과 기침을 반복하며 뱉어낸다. 가슴과 어깨가 그 반동으로 같이 움직이며 들렸다 내려온다. 은지는 그런 민호의 동작에 반응해 멈췄다 민호가 최대한 편안히 물을 뱉어내도록 목을 잡아준다. 실눈을 떠서 초점 없는 눈동자를 드러내더니 입과 코에 물과 침과 각종 토사물을 매단 채로 눈에 초점을 잡아간다. 은지를 알아볼 정도가 되고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자 씨익, 하는 엷은 미소를 입에 걸친다.

  “숨 쉬니까 좋다.”

  은지는 웃는 것도 아니고 운다고도 할 수 없게 어눌한 입모양으로 눈에는 눈물을 매달고 헛, 하고 나오는 웃음소리를 낸다.

  “한다는 말이 고작 그거야?”

  “코로 입으로 숨 쉬는 게 이렇게 좋네.”

  흐흐. 그리고 물을 좀 더 토해낸다. 은지가 남은 힘을 짜내 상체를 일으켜주자 민호는 힘겹게 팔로 지탱해가며 뒤로 기대듯이 자세를 잡는다. 노인은 그런 은지와 민호를 주시하며 쭈그린 채로 앉아있다.

  “저 할머니, 괜찮으셔?”

  “응. 내가 아들 찾아드린다고 약속했거든.”

  노인은 은지에게 확답을 얻으려는 듯 묻는다.

  “우리 석재, 진짜로 찾아주는 거야?”

  “네, 할머니. 원하시는 대로 찾아드릴게요.”

  “정말이지?”

  노인의 시선은 은지에게로 갔다 민호에게로 옮겨간다. 눈동자의 움직임이 불안하다.

  “그런데 할머니, 저희랑 같이 안 가실래요? 거기 가면 도와주실 분이 계시는데.”

  “어딜?”

  “제가 지내는 교회가 있어요.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들르거든요. 가시면 여러 사람이 할머니 아들 찾게 도와줄 거예요.”

  “멀리 가면 안 돼. 여기 있어야 해. 우리 석재가 올 거야. 나 찾으러.”

  은지는 계속 달래듯 노인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만 실랑이를 벌이듯 몇 번의 대화가 오고가도 노인의 고집을 꺾기는 어렵다. 민호는 말을 이으려는 은지의 팔을 슬쩍 건드리며 말을 가로챈다.

  “할머니, 그럼 우리가 다시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실래요? 할머니 아들 찾아서 올게요.”

  그러겠다고, 아들을 볼 때까지 자기는 한 걸음도 안 나간다고 다짐을 한다. 민호는 자신을 바라보는 은지에게 코를 찡긋해 보이더니 어렵게 일어서며 은지를 채근한다.

  “가자. 할머니 기다리시니까 우리 빨리 가서 찾아보자.”

  민호를 봤다 노인을 쳐다보던 은지는 민호의 어깨를 붙잡아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할머니, 금방 올게요.”

  힘에 부치는 걸음에도 민호는 노인을 돌아보며 인사를 건네고 끌듯이 발을 밀어내며 나서 문을 지나쳐 바깥으로 나간다. 움직이는 두 사람의 옷에서 물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우리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저 할머니 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잖아.”

  은지는 알겠다는 듯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민호를 부축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 민호의 발걸음은 제대로 걷는 게 아니라 한 발이 앞서면 그 뒤로 다른 발이 따라가는 질질 끄는 모양새다. 집이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 왔을 때 민호의 왼손목에서 뭔가가 툭 하고 떨어진다.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이는 민호를 대신해 은지가 다리를 굽혀 주워준 것은 손목에 차고 있던 은색빛이 도는 시계다.

  “아, 시곗줄 끊어졌네.”

  민호는 건네받은 시계의 끊어진 부분을 살펴보며 아쉬운 표정을 한다.

  “이거 아버지가 군대 갈 때 사주신 건데.”

  은지는 별다른 대꾸 없이 민호가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하도록 부축하려 애쓴다.

  “줄만 갈면 괜찮겠어.”

  “…….”

  민호를 부축하던 은지가 가만히 서서 움직이질 않는다. 멈춰선 은지를 향해 민호가 고개를 돌렸지만 은지는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은지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무너지듯 민호의 한쪽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는다. 민호는 당황한 표정으로 몸이 뻣뻣이 경직되어 그 자리에서 얼어버린다. 조금씩, 볼륨이 한 단계씩 올라가는 마냥, 민호의 어깨에 묻은 은지의 입에서 울음소리가 새어나오고 그에 따라 은지의 어깨가 크게 들썩인다. 그 소리가 더욱 커져가더니 상갓집에 있는 사람이 낼 듯 커다랗게 목 놓아 우는 울음으로 바뀐다. 설움이 북받쳐 터져나오는 것이 본인도 추스르기 어렵다.

  상황이 바뀌어서 하염없이 울어대는 은지를 민호가 부축하는 모양새다. 어색하게 은지의 어깨를 두드려줬다가 흔들리는 머리를 토닥이려고 옮기던 손을 허공에서 멈추고 그저 가만히 기다려준다. 꽤 긴 시간이 흐르도록 은지의 울음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어주는 민호의 입 안에서 맴도는 문장은 본인에게만 들릴 뿐이다.

  “여자들, 울면, ……, 정말, 어쩔 줄 모르겠어.”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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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40 2020 / 10 / 19 274 0 2577   
39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39 2020 / 10 / 19 277 0 3666   
38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38 2020 / 10 / 19 276 0 9196   
37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37 2020 / 10 / 19 278 0 3276   
36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36 2020 / 10 / 19 274 0 5343   
35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35 2020 / 10 / 12 264 0 2971   
34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34 2020 / 10 / 12 263 0 2826   
33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33 2020 / 10 / 12 289 0 2479   
32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32 2020 / 10 / 12 292 0 4836   
31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31 2020 / 10 / 12 291 0 3772   
30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30 2020 / 10 / 5 281 0 1063   
29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29 2020 / 10 / 5 278 0 1535   
28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28 2020 / 10 / 5 283 0 5491   
27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27 2020 / 10 / 5 290 0 3673   
26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26 2020 / 10 / 5 286 0 1023   
25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25 2020 / 9 / 28 277 0 10367   
24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24 2020 / 9 / 28 278 0 1434   
23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23 2020 / 9 / 28 291 0 4915   
22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22 2020 / 9 / 28 287 0 6868   
21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21 2020 / 9 / 28 265 0 2435   
20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20 2020 / 9 / 21 293 0 5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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