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은비녀
역을 출발한 기차는 저녁이나 되어야 부산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두 도련님은 부산역에서 멀지 않은 우체국 근처의 한 여관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했다. 잡아갈 때는 물건처럼 트럭에, 기차에 실어가더니, 보낼 때는 그냥 나 몰라라 하고 길에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노미는 어릴 때 아버지와 부산에 가 본 적이 있었다. 친척 결혼식이 있어서 갔던 것 같은데 워낙 어릴 때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정화는 이 모든 일이 그저 신기하고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정화는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화는 세상에 태어나 감포읍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정화는 ‘세상이 이래 넓구나.’ 싶었다. 노미는 정화 어깨에 머리를 대고 얼핏 잠이 들었다.
‘꽃같이 고운 우리 형수님,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우리 형수님....’
정화는 노미가 혹시라도 불편할까봐 고개가 떨어지지 않게 가만히 잡아주었다. 그 바람에 노미가 슬쩍 깨었다.
“다 왔어예?”
하고 노미가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더. 더 주무시소.”
노미는 졸음 가득한 눈으로 다시 정화 팔을 붙잡고 어깨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석이형 있는 광주는.... 부산보다 멉니꺼?”
하고 정화가 물었다. 노미가 어슴푸레 눈을 뜨고는 대답했다.
“예, 부산보다 멉니더. 한참 더 멉니더.”
“그럼, 큰형 있는 만주는 그보다 더 멉니꺼?”
하고 정화가 다시 물었다.
“하모예, 그보다 훨씬 훨씬 더 멉니더.”
대답을 하면서도 노미는 참 기가 막히고 답답했다. 어쩌다 우리 형제들이 이래 뿔뿔이 흩어져 있나 싶었다. 하루도 떨어져 못 살던 사람들이, 잠시도 못 보면 안 되는 사람들이 말이다.
“윤화형 있는 일본은.... 일본은 그보다 훨씬 훨씬 더 멀겠지예?”
노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막내 도련님 아픈 마음을, 그 그리움을 도대체 무엇으로 달래줄 수 있겠는가 싶었다.
“걱정마이소. 다들 올낍니더. 다시 다 모이가 살낍니더.”
하고 말해주었다.
“미순이도예?”
순간 노미는 아팠다. 눈물이 찔끔 나게 아팠다.
“하모예, 미순이도예, 미순이도 꼭 올낍니더.”
노미는 그렇게 정화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 말했다. 정화는 빙그레 웃었다. 속으로 ‘우리 형수님 참 거짓말도 잘한다.’ 싶었다. 하지만 그 거짓말이, 그 당당한 믿음이 고마웠다.
기차는 한참을 달려 잠시 어느 역에 섰다. 그때 갑자기 주변이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워졌다. 경찰들인지 군인들인지 우르르 기차에 올라탔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하는 말을 들으니 누군가를 쫓는 것 같다고 했다.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흔하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정화는 바짝 긴장했다. 노미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정화를 안심시켰다.
그때 앞칸에서 총 든 군인이 건너왔다. 군인은 한 사람씩 신분증 검사를 했다. 노미는 괜히 가슴이 쿵쾅거렸다. 드디어 노미와 정화 차례였다. 노미는 얼른 국민증을 내밀었다. 정화도 진화의 국민증을 내밀었다. 두 사람의 신분증을 확인한 일본군은
“夫婦か?”
(후우후카?)
‘부부인가?’
하고 일본말로 물었다. 그러자 정화가
“지 색시입니더. 지 얼라입니더.”
라고 말했다. 노미는 일본말로
“夫婦です。釜山に行く道です。”
(후우후데스 후잔니 이쿠 미치데스)
‘부부입니다. 부산에 가는 길입니다.’
하고 말하며 복권이 준 소개장도 보여주었다. 그 일본군은 소개장을 보더니 별말 없이 소개장과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정화는 노미의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그러자 일본군은 노미에게
“夫実物では写真よりも上品。”
(옷토지츠부츠데와 샤신요리모 조오본)
‘남편 실물이 사진보다 났군.’
이라고 말했다. 노미는 애써 웃었다. 그 일본군이 다음 칸으로 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 노미도 정화도 ‘후’하고 한숨을 쉬었다.
“저 놈이 뭐랍니꺼?”
하고 정화가 물었다. 노미는 피식 웃으며,
“남편 실물이 사진보다 났답니더.”
했다. 정화는 으쓱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는 눈이 안 보이게 웃었다.
“큰형이 만주에서 돌아오믄 내내 놀려줄 거리가 생겼네예. 맨날 지가 젤로 잘생깄다고 지를 막 무시했다 아입니꺼.”
노미는 큭 웃으며
“꼭 그라이소.”
했다.
드디어 기차가 부산에 도착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에서 바다 냄새가 났다. 생전 처음 보는 큰 도시가 정화는 신기하기만 했다. 노미는 마음이 급했다. 복권이 알려준 여관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다행히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여관은 대문을 열면 중앙에 작은 마당이 있고 마당 주위로 방이 빙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 노미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며
“계십니꺼? 계십니꺼?”
하고 소리쳤다.
“형수님!”
목소리를 알아듣고 주인보다 태화와 민화가 먼저 뛰어나왔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 나와 노미를 끌어안았다. 노미는 그렇게 두 도련님을 부둥켜안았다. 꿈만 같았다.
노미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두 도련님 얼굴부터 살폈다. 민화는 눈가에 퍼런 멍이 들었고 태화는 입술이 찢어져 있었다. 노미 눈에서 불이 튀었다.
“그놈들이 이랬습니꺼? 시상 고운 얼굴을.... 이게 모꼬!! 그 씹어먹을 놈들이 이랬습니꺼?”
태화랑 민화는 형수님이 그렇게 화가 난 것도 처음 보았고, 그렇게 무섭게 욕을 하는 것도 처음 보아서 깜짝 놀랐다.
“이마를! 아니 눈을! 이 멍! 이 썩을 놈들이! 시상에!”
하며 민화 이마에 난 멍을 안타깝게 어루만졌다. 민화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태화가 옆에 있다 자기 입술을 쑥 내밀었다.
“지는 요기, 요기가 찢어졌습니더.”
노미는 이번에는 태화 터진 입술을 보고는 눈이 또 휙 올라갔다.
“이 이쁜 얼굴을! 시상에!! 다 쪼사 놓고!! 우야믄 좋노!”
하며 노미는 화를 참을 수가 없어서 울그락불그락했다. 그러자 민화가 노미에게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형수님, 지가 결핵이랍니더. 곧 죽는답니더.”
노미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곧 정신을 가다듬고 민화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안 죽습니더. 그거이 죽는 병 아닙니더. 지가 그 병 잘 압니더. 지 할아버지가 경주 제일 가는 명의십니더. 다 살렸습니더. 지가 반드시 우리 도련님 살릴낍니더. 그 병은 잘 묵으믄 됩니더. 잘만 묵으믄 절대로 안 죽습니더. 아시겠습니꺼?”
노미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두 도련님 얼굴을 와락 쥐고서 평소와는 사뭇 다른 노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 다시는 우리 도련님들 안 뺏깁니더. 누구도, 아무도 우리 도련님들 내한테서 다시는 못 뺏어갑니더.”
노미의 눈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노미는 지금까지 사람을 미워하거나 해치고자 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었다. 그러나 그 순간 노미는 봄날 같은 마음만으로 내 사람들을, 내 자식들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는 노미의 이글거리는 눈을 보며 태화도 민화도 다케가 말하던 여자 장군님이 이런 모습이었나보다 싶었다.
그때 민화와 태화의 눈에 뒤에 서 있는 정화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부터 서서 두 형을 눈물 가득한 큰 눈으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정화야!”
하고 민화가 불렀다.
“정화야!!”
하고 태화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불렀다. 매일 싸우고 매일 투닥거리면서도 한시도 떨어져 지낸 적 없는 세 사람이었다. 정화는 주춤주춤 형들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눈물이 터져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는 니 큰형인 줄 알았다.”
하며 민화가 정화를 끌어안았다. 태화도 정화를 끌어안았다.
“으앙~!”
하고 정화 울음이 터졌다. 세 사람 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노미는 제일 먼저 태화랑 민화를 솜옷으로 갈아입혔다. 홑저고리만 입고 붙들려 간 것이 내내 한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겨울 두루마기에 벙거지를 쓰고 목도리까지 둘둘 둘러매 놓고 나니 둘 다 빵빵한 ‘호빵’ 같았다. (호빵맨~)
그런데 신발이 마땅치 않았다. 노미 만 친정에서 가져온 털 달린 가죽신을 신었고 도련님들 모두 그저 솜버선에 짚신을 신고 있었다. 노미는 도련님들 털신부터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노미는 도련님들을 다 이끌고 근처 시장으로 향했다. 신발도 사고, 밥도 먹일 참이었다. 도련님들은 신이 나서 형수를 뒤쫓아갔다. 노미는 눈에 띄는 국밥집 한 곳에 도련님들과 함께 들어갔다. 도련님들은 벌써 입에 침이 가득 고였다. 그 유명한 부산 돼지국밥집이었다.
“여기 잠깐 계시소. 국밥 나오거든 내 기다리지 말고 먼저 퍼뜩 드시소.”
하고 단단히 이르고는 노미는 어딘가로 향했다. 아까 오는 길에 봐둔 금은방이었다. 노미는 머리에 꽂고 있던 은비녀를 팔았다. 노미는 흩어진 머리를 대충 묶어 머리 싸개 안으로 밀어 넣고는 국밥집으로 향했다. 도련님들은 이미 국밥을 먹는 중이었다. 노미는 도련님들 먹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형수님도 어서 드시소.”
하고 민화가 노미 앞으로 국밥을 밀었다.
“지는 됐습니더. 도련님 더 드시소.”
하며 노미가 자기 국밥에 든 밥을 정화 그릇에 떠 넣어주려 하자, 정화가 탁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노미를 제법 엄하게 쏘아보며
“형수님! 지는 됐습니더. 형수님 드시소. 지가 뭐라했습니꺼. 아이 가진 사람은 자기 몸부터 단도리하라고 했습니꺼 안했습니꺼.”
정화의 의외의 모습에 민화도 태화도 놀라서 ‘워~!’ 했다. 노미는 하는 수 없이 국밥 그릇을 끌어다 한술 떴다. 도련님들 모두 형수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노미는 볼수록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막내 도련님들이 이렇게 자기 앞에 둘러앉아 맛있게 국밥을 먹고 있었다. 노미는 가슴 속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참말로 참말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했다. 눈물이 올라와 목이 멨다. 정화는 옆자리에 앉은 손님들이 수육을 가득 쌓아놓고 먹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태화도 민화도 어쩔 수 없이 눈이 그리로 갔다. 노미는 그런 도련님들을 한번 휘 둘러보더니
“아지매, 여기 수육 좀 주이소!”
했다. 도련님들이 깜짝 놀랐다.
“묵읍시다. 묵어야 삽니더. 내 오늘 단단히 벼르고 왔으니 도련님들 괴기 한번 배가 터지게 드셔보입시더.”
하며 노미는 빙긋 웃었다. 도련님들 입이 귀에 걸렸다.
산처럼 수육이 나왔다. 절인 배춧잎에 무채, 된장, 마늘과 함께 싸 먹는 수육은 정말 꿀맛이었다. 세상에 어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을까 싶었다. 노미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 안 먹고 도련님들 먹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형수님, 어서 드시소.”
하고 태화가 입에 고기를 잔뜩 넣고 말했다.
“지는 이미 배가 불러서예.”
하며 노미가 자기 부른 배를 손으로 쓸며 혼자 웃었다. 순간 모두 멈칫했다.
“형수님, 클났습니더. 큰형이랑 살더니 나쁜 거 배웠습니더.”
라고 민화가 놀렸다. 그 말에 다들 와하하 하고 배가 아프게 웃었다. 정화는 얼른 쌈을 하나 후다닥 싸더니 노미 입에다 쑥 넣어주었다. 노미도 할 수 없이 한입 가득 고기쌈을 받아 먹었다. 태화도 민화도 한 쌈씩 싸서 노미 입에 넣어주었다. 세상 이보다 더 좋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노미는 세 사람을 데리고 신발가게로 가서 소가죽으로 된 털신을 사서 세 도련님들 발에 신겼다. 암만 뛰어도 안 벗겨졌다. 속에 털이 있어 따듯하기 그지 없었다. 세 도련님들은 털신을 신고는 폴작폴작 뛰며 좋아했다. 그때 정화의 눈에 노미의 흩어진 머리가 보였다. 비녀가 없었다.
“형수님!”
정화는 노미의 머리 싸개를 휙 벗겼다. 대충 맨 머리가 흩어져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비녀가?”
하고 민화가 말했다. 태화도 표정이 심각해졌다.
“비녀를 파신 겁니꺼?”
하고 태화가 사뭇 야단치듯이 말했다.
“아이고, 참, 머리를 판 것도 아닌데 왜들 그랍니꺼. 비녀는 집에 또 있습니더.”
하며 정화 손에 쥔 머리싸개를 가져다 다시 고쳐 쓰며 흩어진 머리를 뒤로 매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빙긋 웃는 노미를 보며 세 도련님들은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노미는 자연스럽게 정화 팔짱을 끼고는 앞서 걸었다. 뒤를 따라가며 민화가 태화에게
“나중에 돈 좀 생기믄 형수님 비녀 꼭 다시 사드리자.”
했다. 그러자 태화가
“근데, 아까부터 형수가 내내 정화 팔짱만 끼는 거 같지 않나?”
하며 흥하고 질투 어린 눈으로 쏘아보았다. 민화는 그런가 싶었다. 태화가 씩씩거리며 따라가더니 형수 다른 쪽 팔짱을 획 끼고는 붙어 걸었다. 민화는 그저 이 좋은 구경을 또 하는구나 하며 따라 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