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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소야의 노래
작가 : 설중사우
작품등록일 : 2020.7.31

본디 연이 없는 두 남녀가 월하빙인(月下氷人)의 술주정으로 인연이 이어져 ‘꿈’에서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

황제의 나라 북성(北星)이 간신들의 난립으로 망국의 길을 걸어가니,
나라를 지키어 번성시킨 열 명의 영웅들이 각자의 야심을 드러내었다.
사분오열된 땅 위에 군벌의 깃발이 꽂히고
설원에 치열하고도 잔인한 핏방울이 흩뿌려지던 시기,
소녀는 거칠게 휘몰아치는 내란의 화마를 뚫고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4회| 불가침의 경계(1)
작성일 : 20-08-03 20:56     조회 : 203     추천 : 0     분량 : 5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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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는 누군가와 언쟁을 벌이던 중이었는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한층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북성(北星)이 어떤 나란가? 장대한 단야(團野)가 생기고 처음으로 단일의 기조를 품은 나라요, 과거 은성제(銀星帝)께서 온갖 고생을 해서 일통한 나라거늘, 지금의 꼴을 보게! 빌어먹을 선황이 폐정(弊政)으로 광폐황의 전철을 밟은 일도 기가 막힌데, 작금 유일한 단야황족의 혈통이라며 황위에 앉혀놓은 양황제(羊皇帝)의 나이가 이제 겨우 열 넷일세!”

  아정은 저 아저씨가 우담을 삶아 먹었나 싶어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다 여겼다. 이렇게 듣는 귀가 많은 자리에서 황제와 선황을 욕한다니, 수 년 전만해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야가 그랬었지. 황궁에 희대의 간신과 요녀가 있어 가히 하늘을 옮기는 쥐와 해를 바꾸는 여우와 비견되었다고….’

  아마도 쥐는 선황 목선제(木扇帝)의 후궁인 상여부인을, 여우는 황제의 장인 상작(尙雀)을 이름일 것이다. 상여부인은 목선제 재위삼년에 궁인으로 입궁하여 뛰어난 미모와 재주로 황제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는데, 후궁이 된 그해에 지방 관리에 불과했던 아비 상작을 황궁으로 불러들였다.

  직후 상씨 부녀는 암암리에 황궁을 장악하여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리고, 조정 안팎을 제 사람들로 채워갔다. 그에 여우를 등에 업은 간신배들의 횡포가 극에 달하였고, 충신과 인재들은 하나같이 ‘황도에선 어딜 가나 술이 시다’는 문장을 새긴 목패를 문간에 걸어놓고 황도를 등졌다. 그나마 황도에 남은 몇몇의 충신들은 부녀의 사나운 짓거리를 막아내지 못했으니, 목선제의 조강지처인 황후가 유폐당하고 그 장자인 태자가 역모의 누명을 쓰고 처형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참담한 사건은 열 명의 웅호(熊虎)들이 분분이 들고 일어나는 선본사변(善本事變)의 분수령이 되었다. 사웅육호(四熊六虎)라, 네 곰과 여섯 호랑이라 일컬어지던 이들은 선대의 황제들이 친히 임명한 지방의 대군장(大君長)이며, 또 북성의 단야일통에 공을 세운 명장들의 후손들이었다. 만인의 지지를 앞세운 그들은 각기 대군을 이끌고 모여들어 첩첩이 황도를 포위했고, 단 이틀 만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입성해 상작과 상여부인의 목이 베어 거리에 내걸었다.

  -허나 이는 달성 서가(達城徐家)의 희생과 결단 덕이라.

  그로부터 삼일 후부터 세간에는 이런 비사가 돌았다. 당시 청색 관복의 노인이 수십 명의 가솔들을 이끌고 나와 분투 끝에 성문을 열고 열 명의 대군장들을 맞이했는데, 알고 보니 그가 바로 상장(上章-재상)을 지낸 조정의 대원로 서육(徐六)이라더라.

  서육은 상작의 갖은 핍박과 위협 속에서도 황도를 떠나지 않은 우직한 충신이니, 문을 여는 과정에서 가솔들뿐 아니라 두 아우와 다섯 아들을 잃었다. 하지만 그 시신을 수습하기보가 열 명의 대군장들과의 담판을 우선시했다. 목선제의 후사(後事)에 관한 것이었다.

  서육에게 있어 이는 크나큰 불충이었으니, 바로 신을 벗어놓고 맨발로 돌길을 걸어가 목선제를 알현했다. 그는 약 일다경이 지나 하나의 성지를 받들어 나왔고, 무릎을 꿇은 대군장들에게 황제가 열여섯째 아들에게 선위하였음을 선포하였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목선제가 비통해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하여 당년 다섯 살이 된 황자 성요(星曜)가 황위에 올랐으니, 그가 당금의 양황제였다.

  -과연 서육의 결정이 옮았을까?

  작년 칠석전야의 꿈에서 소야가 던진 질문이었다. 그때의 아정은 약하고 어린 양황제의 모습을 상상하며 무겁게 대답했다.

  -다른 대안이 없지 않았을까요. 황제를 지키기 위해선….

  상여부인의 악행으로 살아남은 황족의 수가 채 열이 넘지 않는다. 교육이라는 어중간한 명분을 내세워 황제를 학자들의 성지인 중랑사(中郞社)로 보낸 이유가 뭐겠는가. 오직 서육을 위시한 달성 서씨의 일가만이 황제의 뒤를 따른 이유는 또 뭐겠는가.

  -두 명의 선대 황제를 모신 자였다. 어린 황제에 대한 지극한 충정으로 보일 지라도, 그 뒤에는 명확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어.

  소야의 발언은 아정의 좁은 생각을 깨우쳤다. 중랑사 출신의 명사들이 입을 모아 서육을 ‘응당 당대의 육정신이라 할 만하다’고 평하였지만, 소야의 이야기 속 모습대로라면 그는 상작보다도 정쟁에 뼈가 굵은 위정자가 아니었을까? 그런 걸물이 웅호들의 골수에서 꿈틀거리는 야심을 읽지 못했을까? 아니, 어쩌면 서육이 중랑사로 떠나기 직전 대군장들에게 제안한 선본회의(善本會議)도 계략의 일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계략일까?

  소야가 선명한 미소를 보이며 물었고,

  -지연책이요!

  아정이 그의 팔뚝을 세차게 두드렸다.

  -국정을 고스란히 그들의 손에 넘기는 척하면서 중랑사라는 지붕으로 숨어든 거예요. 양황제의 안위를 도모하고 시간을 번거죠! 소야가 방금 말했잖아요, 선본회의의 의결은 반드시 만장일치 되어야 한다고.

  권력이란 본디 가족과도 나누지 못하는 법인데, 이제 갓 고기를 탐하기 시작한 맹수들이 양보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선본회의가 제 기능을 한 적이 있었나? 오히려 대군장들이 서로 물고 뜯는 분쟁의 장이 되지 않았나?

  ‘모든 일은 결과를 보면 된다고….’

  삼년 전의 회합이 파하자마자 대군장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약속하나 한 듯 각 주둔지 사이에 경계를 만들어 가문의 깃발을 세웠다. 순식간에 하나였던 땅이 열 개로 나뉘고 병권이 열 개로 쪼개졌다. 어느 순간 호기 넘치는 곰이 칼을 빼들었고 중부의 호랑이가 이에 맞섰다. 두 웅호가 사사로이 군을 움직여 강토를 뺏고 빼앗기는 전쟁을 시작하니, 그 불길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져갔다. 호해가 급격히 혼란에 빠졌으며, 곳곳에 무도한 도적떼가 들끓었다.

  “결국 죽어나는 건 정쟁에 휩쓸리는 우리 같은 백성들 아니오!”

  “거 그만 좀 하게! 자네들끼리 침 튀어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라고!”

  한창 기세가 오른 사내의 열변이 좀처럼 멈추지 않자, 상인 방씨가 빽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쓸 데 없는 걸로 싸우고 있어!”

  사내는 화들짝 입을 닫았다. 한순간 주위가 찬물을 뿌린 것처럼 조용해졌고, 반대로 수레바퀴의 삐걱거림과 말발굽소리가 선명해졌다. 사실 행렬 안에서 방씨의 말을 받아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했는데, 이유인 즉 이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염소수염의 방씨가 무려 황도 출신의 소귀족이기 때문이었다.

  “자네도 말이야, 그런 불길한 소린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상인 방씨는 젊은 짐꾼을 향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더구나 여긴 국성령(菊城領)일세. 저 살벌한 북천산맥의 야인들도 바로 꼬리를 말고 도망간다는 남축(南築) 대군장께서 떡하니 버티고 있는 땅이란 말이지! 헌데 감히 누가 국성의 경계를 넘겠는가?”

  아정은 조용히 방씨의 말을 긍정했다. 단야대귀족의 한 줄기인 송성 남가(宋城南家)가 이끄는 국성군에겐 북천산맥 남쪽과 신강(新江) 일대를 아우르는 이 방대한 영역을 지켜온 경험과 힘이 있었다. 더불어 맹장 남축은 이웃에 있는 두 패자의 충돌을 중재하여 북부의 균형과 평온을 유지해온 또 한 명의 걸물이었다.

  ‘그런데 변란?’

  아정은 쌀쌀한 침묵 속에서 문득 소야와의 대화를 반추했다. 꿈에서 별 뜻 없이 ‘시장에 말이 없다’는 말을 했을 때, 그는 분명히 뭔가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문제는 그 뭔가가 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거다.

  “니가 걱정해봐야 뭐하니, 괜히 골만 빠지지….”

  아정은 힘 빠진 혼잣말을 하고는 고개를 뒤로 꺾었다. 그녀의 눈길은 갈 길을 잃고 흩어지는 얇은 구름떼를 따라갔다.

  ‘근데 알고 보면 광황도 은성제와 부자지간이잖아. 참 기묘하네.’

  아비는 폭정을 휘두르다가 아우에게 황위를 빼앗긴 광폐황의 뒤를 따랐건만, 과연 그 아들은 은성제의 치적을 본받을 수 있으려나? 뭐, 중랑사를 나와 환궁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둘째 치고 남아있는 지위나 똥통에 쳐 박지 않으면 다행이지.

  ‘아니지.’

  순간 그녀가 퉤하고 갈대줄기를 뱉더니,

  ‘폭풍의 중심에 전란의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면….’

  번뜩 떠오른 모순을 조용히 곱씹었다.

  ‘황제와 달성 서가는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여우 굴에 숨어든 셈 아닌가?’

 

 * * *

 

  참성의 동쪽에 있는 수산(水山)까지는 한나절을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하지만 아정은 운 좋게 수레를 얻어 타 반나절 만에 수림 초입에 이를 수 있었다.

  “좋구나.”

  상인 행렬과 헤어져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지 꽤 지났을 무렵, 그녀는 불연 듯 발길을 멈췄다. 숲은 시끌벅적한 참성과는 달랐다. 급하지 않게 숨을 들이켜자 맑은 공기가 가슴 속을 상쾌하게 채웠다. 남몰래 불어온 산들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갔다. 살짝 고개를 들어보니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찬란한 햇발이 흩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해의 모양새가 중천에서 살짝 서쪽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산속에서는 밤이 빨리 내려앉지.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숨지 말고 이리 나와라.”

  그녀는 간간히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발길을 재촉했다. 그렇게 백스물여덟 걸음을 걸어가니 다양한 수목들 사이로 붉은 기운을 품은 겨울나무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뾰족한 침엽과 나무껍질이 독특한 붉은 색을 띄는 까닭에 화목(火木)이라 이름 지어진 나무였다. 더욱이 이 화목의 자생지가 수산의 최고봉이었는데, 그 형태가 마치 활활 불타오르는 꽃과 비슷해 화화(火花)라 불렸다.

  “여우 주제에, 입맛도 까다롭지.”

  아정은 가장 가까이 있는 화목에 다가갔다. 거칠게 일어난 나무껍질 일부를 떼어내자 틈 사이로 상큼한 향의 진액이 새어나왔다. 화살 하나를 손에 쥐고 촉에 진액을 살짝 묻혔다가 떼었는데, 생각보다 점도가 높아 투명한 실처럼 늘어났다.

  “이건 덜 삭은 거라 했고….”

  그녀는 바로 몸을 돌려 다른 나무를 찾아 나섰다. 시전의 모피 상인에게 건너들은 말로는 북방 흰여우가 오백 살 먹은 화목의 흰빛 수액을 주전부리로 즐긴단다. 꽃향기와 함께 달콤 쌉싸름한 맛이 난다는데, 하필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흰 수액은 입술이 퉁퉁 붓고 혀가 빳빳해지는 정도였지만, 어린 화목에서 나오는 색이 없는 수액은 건강한 사내의 심장을 멈추게 만들었다.

  “더 들어가야 되나?”

  잠시 고민하는 시선이 붉은 빛이 점점 짙어지는 산길로 향했다. 이대로 화화봉에 들어갔다가 해가 지면 돌아갈 길을 잃어 망대에서 밤을 새야 했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새벽이슬에 젖은 나뭇잎을 쓸 듯이 밟아나갔다.

  ‘초이튿날이면 당직이….’

  “하필 고두섭이네.”

  아정은 개구진 인상의 청년을 떠올리고 미간을 찡그렸다. 소방지와 함께 어릴 때부터 어울려 놀던 동네친구였지만, 그와 함께 있으면 주변이 어수선해지고 정신이 없었다.

  최근의 일을 떠올리자면, 가히 몸이 가만히 있으면 입이 바쁘고 입이 조용하면 손발이 바쁜 것으로 악명 높은 이 청년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성주와 같은 성씨라며 신나게 자랑을 하고 다닌 시기가 있었다. 그 탓에 성주가 들었다면 여러 번 뒷목 잡고 쓰러졌을 법한 기괴한 소문이 퍼졌고, 나중이 돼서야 그냥 같은 글자를 쓸 뿐인 ‘남’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문의 당사자가 모르길 천만다행이지, 들었으면 그냥 욕을 얻어먹는 정도로 끝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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