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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소야의 노래
작가 : 설중사우
작품등록일 : 2020.7.31

본디 연이 없는 두 남녀가 월하빙인(月下氷人)의 술주정으로 인연이 이어져 ‘꿈’에서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

황제의 나라 북성(北星)이 간신들의 난립으로 망국의 길을 걸어가니,
나라를 지키어 번성시킨 열 명의 영웅들이 각자의 야심을 드러내었다.
사분오열된 땅 위에 군벌의 깃발이 꽂히고
설원에 치열하고도 잔인한 핏방울이 흩뿌려지던 시기,
소녀는 거칠게 휘몰아치는 내란의 화마를 뚫고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3회| 징조(徵兆)
작성일 : 20-08-02 19:50     조회 : 222     추천 : 0     분량 : 5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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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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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탉의 첫 울음은 짧고 굵었다. 때는 오경(五更)을 넘기지 않은 시각, 조금 긴 두 번째 울음이 들리고 이어 세 번째 울음이 새벽공기를 갈랐다. 아정은 곧바로 활과 화살을 챙겨들고 앞마당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바로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귀를 바싹 세워 해금(解禁-금지가 풀림)의 북소리를 기다렸다. 통행금지가 풀리기도 전에 길을 나섰다간 범야(犯夜)라 해서 십중팔구 순찰병에게 잡혀갔다. 운이 나쁘면 수옥에서 조사를 받다가 하루를 날린다.

  “언제 치는 거야. 하여간 게을러.”

  아정이 참을성 없이 투덜거리던 그때, ‘둥둥-둥둥둥’하고 묵직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승진까지 했는데 더 빠릿빠릿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정은 이 새벽 성벽 위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친구를 향해 잔소리를 하고 쯧쯧 혀까지 차주었다. 그가 직접 들었다면 열이 받아 ‘네가 한 번 해보라’며 북채를 들고 쫓아왔을 테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무서울 게 없었다. 간신배가 황제의 면전에 대고 욕을 하는 세상인데 뭔 말을 못 하겠어, 안 그래?

  그녀는 북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당당히 집 앞 길목을 나와 작은 하천의 목교를 건넜다. 삼거리의 복판길을 통과해 동중로(東中路)에 접어들고 나서는 드문드문 오가는 행인들 틈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부지런히 걸어 동문에 이르니, 성 밖으로 나가려는 수레와 마차의 행렬이 길게 꼬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성내에서 가장 바쁘고 근면한 상인들이었다.

  “자리가 있으려나….”

  아정은 동중로와 동문 사이의 공터에 세워진 천막으로 향했다. 좁아터진 노점 안은 개문을 기다리며 배를 채우려는 손님들로 만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엄연히 선객이 있는 자리로 걸어가 빈 의자에 앉더니, 양해도 구하지 않고 음식부터 시켰다.

  “오늘 연밥 되죠?”

  “되지. 국은 뭐로?”

  “배춧국이요.”

  “손님 많아. 좀 기다려.”

  “얼마든지요.”

  아정은 시원스레 답하며 맞은편 선객의 조반에 눈을 두었다. 밤이 섞인 연밥과 된장국에서 고소한 김이 올라와 코를 간지럽히니 알아서 입맛이 돌았다. 그녀는 잠깐을 참지 못하고 숭늉 그릇으로 손을 뻗었고, 선객의 젓가락이 잽싸게 그녀의 손등을 내리쳤다.

  “어딜, 직접 떠와.”

  아정이 눈살을 찌푸리고 맞은편의 소방지를 노려봤다. 그는 사내치고는 곱상하게 생긴 청년이었는데, 훤칠하고 건장한 체격과 볕에 탄 피부가 의외로 호쾌하고 건강한 인상을 줬다.

  “아침 댓바람부터 여긴 웬일이야?”

  소방지가 ‘귀찮게’라는 뒷말을 붙이며 턱을 들어보였다. 분명 올해로 열아홉이 되었으니 그녀보다 두 살이 많은 셈인데,

  “그럼 댁은 언제 여기까지 내려왔대? 발 한 번 빨라?”

  아정은 말을 높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댁?”

  “그래, 대-액!”

  두 사람은 나이를 불문하고 한 동네에서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동네친구였고, 어릴 때부터 자주 사소한 일로 부딪쳤다. 어려서나 나이를 먹어서나 유치하고 치사한 말싸움은 잦았고, 대부분 그가 한 발 물러나며 흐지부지 끝이 났다.

  “출성하려고?”

  소방지가 조금 누그러진 기색으로 묻자,

  “어.”

  아정도 금방 골이 빠진 듯 순순히 답했다. 그때 그의 눈길이 그녀가 어깨에 메고 있는 활대에 머무른 뒤 떼어졌다.

  “사냥?”

  “겸사겸사, 두섭이가 화화봉 망대 쪽에서 흰여우를 봤대.”

  “화화봉이면 꼬박 하루는 걸릴 텐데, 아주머니는? 허락은 받고 나온 거야?”

  “몰라, 자겠지.”

  아정이 모르쇠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소방지가 답답한 한숨을 흘렸다. 두 달 전에도 가타부타 말도 없이 출성해 사라졌다가 이틀 만에 큼지막한 사슴을 끌고 돌아와 그 난리가 났었건만, 도무지 겁도 없고 반성도 몰랐다.

  “걱정 좀 그만 끼쳐.”

  “나도 그러고 싶지 않네요. 눈만 마주치면 시집가란 잔소리부터 하는데….”

  “그럼 그 소리 듣기 싫어서 새벽부터 집을 나온 거야?”

  “하, 어젠 나보고 갈대국수집 강씨 아저씨 둘째아들 어떠냐고 물어보대? 괜찮으면 사주단자부터 보내자고?”

  소방지는 막 씹어 넘기려던 밥알을 죄다 뱉어낼 뻔했다. 짧은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다섯 자 단구(短軀)라는 애처로운 별명이 스쳐지나갔다. 그 순박하고 복스러운 인상의 총각은 어릴 때부터 짧은 다리와 양털 같이 질긴 곱슬머리로 인해 여러모로 놀림을 당했었지.

  “그 친구, 손으로 면 잘 뽑는다던데….”

  “잘 뽑아서 뭐?”

  “그럼 장사도 잘 될 거고….”

  “잘 되면 뭐?”

  “그러면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겠지.”

  “그 누이가 나고, 매부는 그 자식이냐?”

  아정이 왼편 어금니를 악물고 노려보니, 소방지는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고 숟가락으로 국을 뒤적거렸다. 이거 괜히 벌집을 들쑤셨구나 싶어 뜨끔했는데, 과연 그녀는 두씨 마님을 향해 분통을 터트렸다.

  “누가 시집 안 간데? 가지 말래도 갈 거야, 시집! 근데 이왕지사 치를 혼사면 제대로 고르고 싶다고, 까다롭게! 더구나 소야 때문에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져서 아주 저 위로 승천할 지경인데, 적어도 낭군 될 사람 정수리 위치가 나보다는 높아야하지 않아?”

  “그래, 맞아. 그래야지.”

  소방지는 듣는 둥 마는 둥 대충 맞장구를 치며 숟가락질을 했는데, 잠깐 숨을 고르려 멈칫한 그녀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안 듣지, 너?”

  “아니, 들어. 듣고 있어.”

  마침 막 나온 연밥과 배춧국이 상에 놓였다. 재빨리 눈치를 챙긴 소방지가 통에서 수저를 꺼내 그릇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잠깐.’

  그때 아정이 가만히 소방지의 복색을 훑어보았다. 머리에 쓴 얇은 두건과 무릎까지 내려오는 윗도리, 발목이 좁아지는 고는 전부 흐린 재색인데, 보급품치고는 천의 재질이 중상이었다. 또 자투리 가죽을 꼬아 만든 줄은 허리를 맵시 있게 조였고, 줄의 매듭이 가슴과 등을 보호하는 가죽 갑과 연결되어 있었다. 허리 오른편에는 검집을 묶어놓았는데, 특이하게 철검의 손잡이가 뒤쪽을 향해 있었다.

  ‘그 사이 키가 컸나, 잘 어울리네.’

  말단직인 성문지기이긴 해도 나름 수비군 소속의 군병이다. 열 살의 나이에 조실부모하여 빠듯한 살림이지만, 워낙 씀씀이가 크지 않아 그간 제법 돈을 모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또 승진하게 되면 그만큼 녹봉도 늘어날 거다.

  ‘이만하면 두씨 마님의 기준에도 얼추 맞을 것 같은데….’

  골똘히 생각을 이어가던 아정은 숟가락으로 찐득한 연밥의 반을 떼어내 국에 적신 뒤, 살짝 풀어진 밥알을 흐물흐물한 배춧잎과 함께 떠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한참을 오물오물 움직이던 그녀의 입이,

  “방지야.”

  불쑥 장난기가 스민 호선을 그렸다.

  “너 나한테 장가올래?”

 

 * * *

 

  아정은 인근 촌락으로 향하는 상인 행렬에 끼어 참성을 나섰다. 갸우뚱 흔들거리는 짐수레 뒤에 몸을 실고 한 시진을 이동하니 금방 날이 밝아왔다. 뱃속은 두둑하고 햇볕은 따스했다. 그녀는 늘어지는 기지개를 펴고 왼다리를 나무판에 얹었다. 남은 오른다리는 아래로 늘어뜨린 채, 한적한 바람을 느끼려 옆으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 사이로 거친 갈대들이 스치자 줄기 하나를 잡아 뚝 끊어버렸다. 그 얇은 줄기 끝을 이 사이에 물고 힘을 줘 마구 내씹었다.

  “나쁜 놈. 썩을 놈. 잘근잘근 씹어 먹을 놈.”

  “아까부터 누굴 그렇게 욕 혀?”

  결국 듣다 못한 짐수레의 마부가 뒤를 돌아보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동시에 간격을 벌려 뒤따르던 뒤쪽 수레의 상인 방(邦)씨까지 길게 목을 빼고 호기심을 보였다. 다들 오랫동안 참성의 시장통에서 뼈가 굵은 사람들이라 아정이 얼굴을 모를 수가 없었다.

  “있어요, 그런 놈이.”

  “놈이면 사낸데, 누굴 말하는 거여? 말을 혀 봐!”

  ‘누구긴, 괘씸한 소방지 말고 또 있겠어.’

  아정은 갈대줄기를 잘근거렸다. 저는 장난삼아 던진 말이건만, 그놈은 된서리라도 맞은 냥 사색이 되어 국에 숟가락을 떨궜다. 다 식은 국물이 방울방울 얼굴로 날아든 그 순간은…아마 평생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낯부끄러운 기억일 것이다.

  ‘그걸 아저씨한테 말하면….’

  그녀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뒤쪽의 상인을 쳐다봤다.

  “소문낼 거죠?”

  “아이, 소문을 왜 내? 나 입 무거운 사람이여?”

  “거짓부렁은! 저번에 저기 산 밑에 사는 처자가 산삼 캔 거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잖아요, 방씨 아저씨가!”

  아정의 말에 전방과 후방의 일행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그 일로 처자가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데’하며 퉁명스레 말을 덧붙이니, 당황한 상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곧 그는 ‘딱 한 번 술 마시고 실수한 일을 두고두고 우린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 맞다. 방 아저씨, 그건 둘째 치고.”

  “또 뭔 말을 할라고?”

  “최근에 마시장 가봤어요?”

  “무슨 마시장?”

  상인이 연달아 퉁명하게 말을 받았지만, 그녀의 눈은 오직 마차를 끄는 말에 꽂혀있었다.

  “잘 키운 말이 금값이라고 이참에 망아지나 사놓을까 했거든요. 근데 마두 아저씨가 올해는 짐말도 구하기 힘들 거라 하시더라고요.”

  “한 겨울도 아닌데 왜?”

  그제야 상인이 처음 듣는 일이라며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수확된 곡물을 사들여 시전에 되파는 중개상인이니 마시장의 상황에 무지한 건 당연했다. 그런 그를 대신해 짐수레의 마부가 답을 주었다.

  “한동안 큰손이 겨우내 마시장의 어린 말들을 싹쓸이 해갔다는 말도 돌았습니다. 그 뒤로도 자잘하게 사들여간 말도 적지 않았지요.”

  “아니, 그렇게 다 쓸어가서 뭘 한다고? 자넨 그 말을 어디서 들었어?”

  “저야 모릅죠. 그저 마차부들이 떠드는 소문을 귀동냥한 거니. 누군지는 몰라도 암망아지를 쓸어간 걸 보면…나중에서 비싼 값에 전매를 하려는 심산일 겁니다.”

  “저, 허 아저씨.”

  그때 앞쪽에서 걷던 젊은 짐꾼이 마부와 상인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걸음을 늦춰 수레 옆으로 옮겨와 마부 허씨에게 꼬치꼬치 캐 묻기 시작했다.

  “그럼 암망아지가 아예 씨가 마른 거래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열 개 성을 돌아봐도 시중에 나온 암말을 찾을 수 없다하니.”

  “그게 언제부터였대요?”

  “겨울에 시작해서 한 두어 달부터 심해졌다지.”

  “허면 그 말들이 죄다 어디로 갔는지는 들었어요?”

  “아니, 자네가 그걸 알아서 뭐하게?”

  가만히 듣고 있던 상인이 젊은 짐꾼을 타박했다. 수더분한 생김새의 짐꾼은 머쓱하게 옆머리를 긁적이곤,

  “실은 변란이 생기기 전에 말들이 사라진단 얘기가 생각나서….”

  몇 마디 말로 모두를 굳게 만들었다.

  “에이, 그 무슨….”

  “그러게 말이야. 갑자기 변란이라니….”

  그리 마부와 상인 차례로 짐꾼의 말을 부정했을 때였다.

  “그게 다 어린 황제 놈 때문 아니냐고!”

  불식간에 터져 나온 목소리가 세 사내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전방의 무리가 일시에 뒤를 쳐다봤고 아정 역시 허리를 세우고 후방의 상인 무리에 섞인 사내를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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