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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이,보라색
작가 : Riley
작품등록일 : 2020.8.1

이 소설은 저에게 많은 '처음'을 선물해 주었어요.
여러 '처음'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건 역시 '첫 소설'인 것 같네요.

이 글을 쓰면서 제가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어요.
그건 바로 '운명'인데요, 아마 이 후로도 계속 글을 쓰게 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운명'에 대해 쓰지 않을까 싶어요.
[이,보라색]은 '운명'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를 궁금해하며
써 내려갔던 저의 첫 중편소설입니다.

너무너무 부족하지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연히, 또는 운명처럼, 읽어주실 분들께도 미리 인사 전할게요.
감.사.합.니.다.

 
#2.1
작성일 : 20-08-02 23:57     조회 : 238     추천 : 1     분량 : 3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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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버스 정류장은 ‘분홍목욕탕’이다. 그 자리에 목욕탕은 더 이상 없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사라졌던 것 같다. 10살 즈음까지 엄마와 봄과 함께 다니던 목욕탕이었는데, 건물 외관을 분홍색 페인트로 칠해 놓아 갈 때마다 촌스럽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어느 날 서울의 다른 동네에 있던 분홍색 백화점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자 목욕탕 건물 외관 공사를 시작했다. 말끔한 화강암으로 바꿔 버리더니 목욕탕도 없어지고 어떤 무역회사가 들어섰다. 그러고도 몇 번이나 다른 직종의 회사들이 그 건물을 거쳐 갔다. 더 이상 분홍색도, 목욕탕도 찾아볼 수 없게 됐는데도, 정류장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앞에 ‘구’자를 덧붙였을 뿐이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오른쪽 다리에 통증을 느꼈다. 어제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가, 왜 이러지 하는데, 어제 우산공원에서의 일들이 떠올랐다. 출근 준비 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는데 다시 머릿속을 헤집었다. 가방에 있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새로운 메시지가 하나도 없다. 전원버튼을 눌러 화면을 껐다 켠 후 한 번 더 확인했다. 아까 지우려다 만 ‘오늘의 운세’나 보라는 광고메세지가 다시 눈에 거슬렸다. 가방에 휴대전화를 아무렇게나 넣었다. 오늘따라 버스가 오지 않는다. 길게 숨을 내쉬고 건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늘진 화단에 맥문동이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여름이 지칠 때쯤이면 맥문동이 꽃을 피운다. 처음 맥문동을 봤을 때 유난히 긴 종류의 잔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늦여름에 보라색 꽃을 피우는 걸 보고 아빠의 식물도감을 뒤져보았다. 잔디도 분명 꽃을 피우긴 하겠지만, 보라색은 아닐 것 같았다. 한참을 뒤적인 후에야 ‘맥문동’이라는 걸 알아냈다. 그리고 매년 맥문동 꽃이 피길 기다리게 됐다. 내 이름이 ‘보라’이기 때문에 보라색 꽃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보라색 꽃을 좋아했던 건 엄마다. 내 이름이 특정 색을 가리키게 된 것도 나를 가졌을 때 엄마가 보라색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특히 연보라색이 좋았다. 그래서 ‘이연보라’라는 이름으로 짓고 싶었는데, 아무리 불러 봐도 ‘이연보라’는 이상했다고 한다. 남편이 ‘연’씨가 아닌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화낸 적도 있었다고, 아빠가 여전히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얘기해 주었다. 만약 내가 ‘이연보라’였다면, 나도 ‘구 이연보라’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자 웃었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얼른 고개를 돌리고 입을 손으로 가렸다. 내 앞에 정장을 입고 운동화를 신은 남자의 색이 점점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남자의 색은 서류가방이 생각나는 옅은 갈색이다. 왼손에 들고 있는 휴대전화를 계속 본다. 1분도 안 되는 시간 단위로 휴대전화를 한 번씩 볼 때마다 색 덩어리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지고 형태는 점점 더 뾰족해졌다. 톤도 좀 짙어지는 것 같다고 느낄 때, 마을버스가 ‘구 분홍목욕탕’에 도착했다. 버스에 오르는데 다리가 저릿했다. 제대로 멍 든 것이 분명하다. 하필 오늘 7㎝ 하이힐을 신었다. 후불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가져다 대자 누적 요금이 세 자리였다.

 

 오랜만에 정시에 퇴근했다. 우산공원으로 향했다. 사무실 앞에 새로 생긴 공원이다. 개장한지 벌써 몇 주나 지났는데 좀처럼 둘러 볼 수가 없었다. 7월과 8월 내내 외근도 없이 사무실에 붙잡혀 있었다. 인쇄된 종이를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나 복합기로 향할 때나 블라인드 틈으로 생긴 조각난 창문을 통해 한 번씩 공원을 바라볼 수 있었다. 유리 창 너머 세상에 있던 새로운 공간이었다. 어제 처음 공원에 들렀지만, 태영을 발견하는 바람에 제대로 보지 못 했다. F호텔이 보이는 벤치를 찾아 앉았다. 만난 지 꼬박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 아무 연락이 없다. 먼저 메시지라도 보내 볼까 싶어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날 알아본 거 맞아? 이보라가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았었나? 그냥 다 큰 내가 멋있어서 따라온 거 아니냐?

 어제 ‘구 남태평양’이 했던 말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먼저 연락은 못 하겠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연락이 온다는 보장도 없다. 5학년 때의 남태평양을 데려다 내 옆에 앉혔다. 그리고 머리 위를 봤다. 예전에 스쳤던 어두운 빨강과 어제 놀랐던 불그스름한 안개를 차례로 얹어보았다. 안개 쪽이 자연스러웠다. 키가 완전히 다 자라기 전까지는 안개처럼 희미한 색 덩어리를 많이 만났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된 후엔 한 번도 없었다. ‘구 남태평양’이 어떻게 달라지는 색을 가질 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지 못하겠다. 연락은 아쉬운 쪽이 먼저 하는 법이다. 내가 먼저 연락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할 수가 없다. 복잡해진 머리를 들어 괜히 하늘만 바라봤다. 이제 저녁 여섯 시가 넘으면 천천히 어둑해진다. 서서히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는 태양이 구름에 섞여 수 백 가지 색을 만들어 냈다. 나무들은 새로 심어진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잔디 위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기운이 눈에 보일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손에 들려 있던 휴대전화에서 진동 알림이 왔다. 얼른 확인했다.

 -몇 시쯤 올 거야?

 봄이었다.

 

 몇 해 전부터 집근처에 작은 가게들이 생겨났다. 수십 년간 주거지만 밀집되어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버려진 철길 위에 공원 조성 공사가 시작되더니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작은 공방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향초, 비누, 액세서리, 초상화, 가죽, 자수, 패브릭 등 다양한 수제품들이 쇼윈도에 자리했다. 그 다음에는 유기농 식품, 디저트, 수제 차, 초콜릿 등 다채로운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들어 왔다. 작년 5월에는 공원이 정식으로 개장했고, 그 후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끌만한 새롭고 낯선 물건들까지 진열되었다. 동네의 변화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역시 봄이었다. 여전히 직장 생활로 바쁜 엄마나, 어느 덧 8년차이지만 아직도 일에 쫓기는 나는 아니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 지금까지 살고 있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집에서 평생 살겠다는 아빠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빠는 급격한 동네의 변화에 반감을 가진 쪽이었다. 3년 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린 봄만이 가족 중 유일하게, 변화를 넘어 변신하고 있는 동네의 지도를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주 지도 정보를 업데이트 했다. 봄의 그런 점은 나에게 부작용을 가져왔다.

 -언니, 우리 집 뒤쪽에 있는 느티나무 공원 알지? 그 근처에 맛있는 디저트 가게가 생겼다더라고. 그 집 호두파이가 진짜 맛있대. 다리도 아프고 몸도 무거운 나를 위해 파이 좀 사주라. 우리 튼튼이 안 보고 싶어? 내일 저녁에 퇴근하면서 꼭 사 와.

 어젯밤 여덟시쯤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 왔다. 그러더니 대뜸 하는 말이었다. 나는 요즘 바쁘고, 그 가게는 너희 집에서 훨씬 가깝고, 너에게는 먹고 싶은 걸 사다줄 충분히 착한 남편도 있고, 튼튼은 아직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논리적으로 반박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러더니 오늘 내 퇴근 시간에 맞춰 문자를 보낸 것이다. 오늘 내가 정시 퇴근할 거라는 걸 이봄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야근이라고 답해 버려야지 하다 잠시나마 느꼈던 여유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복잡한 머리를 달콤한 걸 먹으며 잊고 싶기도 했다. 숨을 한 번 내쉬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가게 이름이랑 주소 보내. 호두파이 말고 다른 건?

 -봐서 맛있어 보이는 걸로. 언니 사랑해.

 공원 벤치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메시지를 확인하며 걷느라 내 옆을 황급히 뛰어가던 사람과 부딪쳐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 했다. 가볍게 목례라도 하려고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몇 걸음이나 거리가 생겼다. 버스정류장에는 버스 한 대가 정차해 있었고 사람들이 줄을 지어 올라탔다. 나와 부딪친 남자는 마지막으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타도 될 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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