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알파벳 G 밑으로 ‘디·저·트·공·방’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는 간판이 눈에 들어 왔다. 광이 나지 않는 짙은 회색 페인트로 간판의 배경을 말끔하게 칠해 놓았다. 그 위에 타자기 활자 같은 대문자 G를 붙였다. 재질은 부식된 금속이다. G는 얇은 금속 다리로 세워 높이를 주고, 핀 조명 세 개를 비춰 선명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디·저·트·공·방’이라는 다섯 글자도 같은 재질과 같은 형태의 폰트로 되어 있었는데, G보다는 크기가 작고, 다리도 낮게 만들어 그 만큼 그림자도 작게 드리워졌다. 내 한쪽 팔 길이만한 유리 네 폭이 이어져 있는 너비의 가게였다. 그 중의 맨 오른쪽이 하얀색 출입문이었는데, 출입문의 안쪽 유리는 철망이 들어 있었다. 유리 테두리와 간판과의 경계에는 단순한 형태의 몰딩을 둘렀고, 밖에서도 가게 안쪽의 디저트가 보이도록 외관 유리에 테이블을 바짝 붙여 놓았다. 유리 위로 회색 시트지를 붙여 아치형 창문과 창살을 표현했다.
간판에 달려 있는 G와 같은 형태의 회색 아크릴 손잡이를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내부 역시 차분한 분위기였다. 회색 우레탄 페인트가 칠해진 바닥 위를 걸어 진열대에 다가갔다. 오픈한 뒤 하얀색으로 칠해 놓은 천장 아래로 반투명 유리 덮개를 씌운 직사각형 조명이 나란히 줄을 지어 달려 있었다. 벽면은 회색이 많이 섞인 채도가 낮은 파란색이다. 다양한 종류의 제품이 짙은 티크 원목 가구 위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가게 안은 대여섯 사람만 있어도 가득 찼다. 한 쪽 구석에서 천천히 진열된 제품을 살펴보고 있었더니 금세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한산해졌다.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만이 케이크가 진열되어 있는 냉장 쇼케이스 옆 계산대 앞에 남아 있었다. 제품은 크게 타르트와 파이로 나눠져 있었다. 타르트 쪽에도 파이 쪽에도 모두 견과류가 얹어진 디저트가 있었는데, 둘의 차이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양쪽에 회색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나무 쟁반 위에 일단 두 가지 모두 담고 바라보고 있었다. 타르트 쪽이 좀 작을 뿐이었다.
“저희 가게는 처음이시죠? 특별히 찾으시는 게 있으세요?”
등지고 있는 계산대 쪽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호두파이가 맛있다고 해서.”
대답하면서 뒤돌아보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느새 내 옆에 와 있다.
“호두파이요? 쟁반에 담으신 게 맞아요. 그런데 피칸타르트도 담으셨네요? 맛이 비슷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는데, 과일 얹은 제품은 어떠세요?”
목에 파란색 띠가 있는 회색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파이 쪽에 있던 제품을 하나 짚어 두 손으로 소중하게 들고는 뭔가 말하고 있었다. 그 남자를 보고 잠깐 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유리컵에 나 혼자 갇혀 있었다. 눈을 꼭 감았다가 천천히 다시 떴다. 동시에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머리에 묻은 건가.”
그렇게 말하면서 들고 있던 타르트를 왼손에 옮겨 들고, 오른손으로 자기 머리를 살짝 털었다.
“네?”
“빤히 쳐다보셔서 뭐가 묻은 줄 알았어요. 제가 이상하게 생겨서 그러시는 건 아니죠?”
멋쩍게 웃어 보인다.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제가 잘 몰라서.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는데, 추천해 주실래요?”
“그럼요. 호두파이 사신다고 하셨죠? 그리고 사과파이 어떠세요? 달달한 걸 찾으시면 사과 얹은 제품이 좋아요. 아니면, 에그타르트도 괜찮아요. 저희 가게에서 제일 인기 있습니다.”
“네, 그럼 호두파이 두 개랑 에그타르트 두 개랑, 그리고 사과파이도 하나 주세요.”
남자의 손에서 사과파이를 뺏어 쟁반에 올려놓았다. 그러다 손이 살짝 스쳐 얼른 오므렸다. 왼손에 힘이 빠져 쟁반이 한 쪽으로 기울면서 떨어질 뻔 했다.
“제가 할게요.”
남자는 웃으면서 쟁반을 잡았다. 그러다 다시 손이 스쳤다. 얼른 손을 빼고 쟁반을 남자에게 넘겼다. 남자는 피칸타르트를 진열대 위에 되돌려 놓았다. 서둘러 계산대 앞에 섰다. 더 이상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문을 열자마자 봄의 볼멘소리가 들렸다. 말없이 호두파이가 든 비닐 백을 넘겨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 위에 앉아서 핸드백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는 숨을 골랐다. 주방에서 봄이 뭔가 말하고 있는 듯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언니! 밥 먹자, 얼른 와.”
반응이 없자 결국 데리러 왔다. 내 앞에 서서 얼굴을 들이민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놀란 사람처럼. 얼른 밥 먹자.”
“아, 아무 일 없어. 배 안 고픈데. 나 오늘은 그냥 가고 토요일에 다시 올게.”
“섭섭하게 왜 그래. 호두파이라도 한 입 먹고 가. 금방 가져 올게.”
괜찮다는 대답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봄은 주방으로 가서 하얀색 물방울무늬가 있는 노란색 접시에 호두파이를 담아 왔다.
“먹어 봐.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라고 SNS에 소문이 자자해. 거기 베이킹클래스도 진행하는데 호두파이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나 봐.”
“클래스? 아… 그럴 수도 있겠다.”
“맛있네! 언니도 얼른 먹어 봐.”
봄이 건네 준 호두파이 조각이 얹어진 포크를 입 안에 넣었다.
“맛있네. 많이 먹어. 또 사다 줄게.”
황급히 인사하고 현관으로 갔다. 급하게 움직이는 나를 따라잡느라 봄의 슬리퍼 한 쪽이 벗겨졌다. 그러는 바람에 왼쪽 발은 까치발이 되어 있었다.
가쁜 숨을 고르며 느티나무 공원 안 어두운 구석을 찾아 섰다. 가게 안을 들여다보려고 이리저리 움직이다 발을 삐끗해 왼쪽으로 넘어졌다. 일어서려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지금 뭘 하고 있지 싶어 얼굴을 찌푸렸다. 손으로 여기저기 털어 내고 크게 심호흡을 한 후에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밖으로 나왔을 때 내 손에는 호두파이와 에그타르트가 담긴 비닐 백과 질감이 느껴지는 무광의 회색 명함 한 장이 들려있었다. ‘파티시에 이상우’라고 적힌 것을 소리 내지 않고 한 자 한 자 읽고는 고개를 들었다. 몸을 돌려 다시 가게 안을 들여다봤다. 이상우는 계산대 앞에서 뭔가 하고 있다. 이 남자의 머리 위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명함을 보았다. 그 때 핸드백을 통해 진동을 느꼈다. 휴대전화를 꺼내면서 손에 들고 있던 명함을 지갑에 조심스레 넣었다.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봐, 내일 금요일인데, 저녁 어때?
‘구 남태평양’이었다. 나는 사람들 머리 위에 있는 그들만의 고유의 색을 보는 이상한 눈을 가졌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 내 이상한 눈에 이상한 두 사람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