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훈의 1심 재판
훈의 1심 재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희연은 교회로 김 목사를 찾아왔다. 김 목사는 예배당에서 손자를 위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희연은 김 목사가 기도를 마치기까지 뒤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기도를 마친 김 목사는 희연이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왔니? 너한텐 정말 미안하구나. 그 녀석이 너한테 그런 짓까지 할 줄이야.”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전 괜찮으니까. 가시죠, 목사님. 제가 차 가져 왔어요.”
두 사람은 희연이 주차해 놓은 검은 색 그랜저가 있는 곳으로 가서 차에 올라탔다.
법원에 도착한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세간의 관심을 끄는 사건이어서 방청석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두 사람은 비어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조금 후 재판이 시작됐다. 검사와 변호사는 열띤 설전을 벌였고 판사는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훈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김 목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딸을 먼저 저 세상에 떠나 보냈는데 손자마저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저 하늘에 있는 딸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았다. 김 목사와 희연은 법정을 나왔다.
“괜찮으세요?”
희연은 김 목사가 걱정되어 물었다.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최종 판결이 난 건 아니니까.”
“그래.”
김 목사는 애써 마음을 추스렸다.
1심 재판이 있은지 이틀 후 희연은 지현이의 집을 찾아갔다. 때마침 지현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현은 희연을 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부탁이 좀 있어서요.”
“부탁이요? 저한테요?”
“훈이한테 면회를 가게 되면 이걸 전해줬으면 해요.”
희연은 지현이한테 성경책을 건네 주었다.
“그렇게 할게요. 고마워요.”
다음 날 지현은 훈이 수감되어 있는 서울구치소를 찾아갔다. 면회를 온 사람이 있다는 말에 훈은 면회실로 나왔다.
“여긴 뭣 하러 온 거야?”
훈은 면회를 온 사람이 지현이인 것을 보고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가씨가 성경책을 전해 달라고 했어요.”
“그 아가씨라니?”
“당신한테 인질로 잡혔던 아가씨요.”
“그 년을 또 찾아갔던 거야?”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면 못 써요. 그 아가씨는 당신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 것 같던데.”
“넌 아무 것도 모르고 있어. 그 인간은 가까이 하지 말아. 이용 당하고 싶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 아가씨는 당신을 이미 용서했는데.”
“뭐? 미쳤군. 나도 이젠 모르겠으니 니 하고 싶은 대로 해.”
면회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도 훈은 그렇게 말하고는 면회실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