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해에게 도망칠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부분에서 크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 것이다.
단지, 이미 너무 많은 강을 건넌 시해가 취할 수 있는 수단에도 기본적인 위험이 따르게 됐다는 점이 문제였다.
크록들을 따라 같이 도망을 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폭발음이 들린 위치를 보았을 때 이대로 가다가는 따라잡혀 둘 다 목숨을 잃을 것이 뻔히 보였다.
그렇다고 크록들에게 이 방법을 제안하자니 조금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구하러 왔다고 떵떵 거렸으면 마지막까지 떵떵 거리며 끝내야 하는 것이 도리였으니까.
구차하게 위험을 분담해달라고 말하면 가오가 안 살지 않는가 말이다.
무엇보다도 시해가 혼자 남기로 결정한 것은 자포자기의 심정이 어느 정도 있었다.
그리고 네오 트라이앵글인지 뭔지 하는 놈들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은 호승심도.
이 점에서는 크록들의 말이 옳았다.
인간은 호승심이 아주 강한 종족이었다.
자기 자신을 불사를 정도로 강한 호승심이 시해의 분노에 기름칠을 했다.
+ + +
감시자들은 이미 두 무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뒤쪽에서 포위망을 좁혀오는 무리와 앞서가는 별동대.
별동대는 해럴드가 지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필이면 괴물들이 설치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부비 트랩이 걸려서 결국 한 명의 동료가 중상을 입었다.
해럴드의 눈가에 분노가 타올랐다.
“개자식!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해럴드보다 앞서가던 부하가 다가와 보고를 건넸다.
“최전선 별동대로부터 보고가 왔습니다. 흔적을 따라 쫓아가보니 막다른 길로 접어든 것 같다고 합니다.”
“막다른 길?”
“예. F-37구역입니다.”
부하가 지도를 들어 해럴드에게 보여주었다.
지도를 보니 뉴타히티 시의 외곽으로 뻗은 쪽이었다.
그쪽이라면 지대도 높고 빠져나갈 구멍도 없을 터였다.
해럴드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좋군. 뒤에서 포위망 깔고 오는 놈들도 집결시켜.”
“하지만 혹시 함정일 가능성도 고려를 해보시는 게······”
해럴드가 눈을 부라렸다.
“그깟 괴물 놈들이 우리들 무기 조금 가져갔다고 뭘 할 수 있겠어? 기껏해야 대응 사격? 어디서 우리 무기를 훔쳤는지 모르지만 나중에 군수 관리처에 쌍욕을 날려주겠어! 수류탄에만 조심하면 돼! 방패 들고 와!”
“해럴드님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부비 트랩을 설치해놓은 걸 살펴봤는데······”
부하가 그를 말렸지만 해럴드의 시야엔 이미 부하의 충고는 들리지 않았다.
“너도 불복해! 어서 가져오기나 해!”
해럴드의 닦달에 부하가 하던 말을 삼키고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