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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자오의 세계로부터
작가 : 모어데반
작품등록일 : 2019.10.22

또 다시 다가온 세기말의 풍경.
가까운 미래, 서기 2086년, 겨울.

대한민국의 평범한 빚쟁이 종군기자 이시해는 다시금 위험 지역으로 취재 파견을 강요당한다.
<베트남 한국인 인부 실종사건>의 전말을 파해치기 위해 밀입국까지 감행한 시해.
그러나 잠입 취재 도중 시해는 <베트남 해적단>에게 붙잡히게 되고, 어딘가로 팔려가는데...
그리하야 도착한 곳은......이세계?
정의감 투철한 빚쟁이 종군기자의 이세계 생존기!

#SF판타지#이세계물#이능력물#미스테리#스릴러

 
음습한 둥지(4)
작성일 : 19-11-09 06:44     조회 : 206     추천 : 0     분량 : 8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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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전?”

 

 시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무언가 중요한 사실이 떠오를 듯 말 듯 했다.

 카푸가 말한 ‘항전’이라는 단어 자체도 그랬지만, 그 사실과 맞물리는 사실을 시해는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시해의 머리칼 속에서 에스카가 돌연 시해의 손으로 뛰어내렸다.

 갑작스런 에스카의 행동에 시해가 놀라 손에 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엇!”

 

 그리고 에스카는 시해의 손을 거쳐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으로 다시 뛰었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뒤, 시해를 올려다보았다.

 

 “······”

 

 그 모습에서 시해는 머릿속을 간질이는 정보를 캐치해냈다.

 바트와 바트를 때려눕힌 감시자 간의 대화를.

 그는 분명 바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 작전’에서 빠지라고······.

 

 “작전······”

 

 무언가 작전을 치르러 간다는 말을 그냥 흘려들어 버렸었지만, 내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어서 자신이 손에든 무기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본래 바트가 장비하고 있었던 물건이었다.

 바트가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전투를 치르러 간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무슨 작전이기에 오밤중부터 작전을 준비하는지 조금 이상하게 생각되긴 했다.

 아침 일찍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에 이른 시해가 급히 카푸를 보며 말했다.

 

 “그 사실을 네오 트라이앵글이 알고 있나요?”

 

 카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카푸와 대면한 채 서있는 시해에게 전자음이 들렸다.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내리자 어느새 에스카가 스마트폰을 조작하여 무언가를 찾아내고 있었다.

 에스카가 스마트폰을 작동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충분히 놀랄 일이었지만, 에스카가 스마트폰에서 찾아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에스카는 스마트폰에서 하나의 메신저를 찾아냈다.

 이어서 화면에 뜬 내용을 시해에게 들어보였다.

 

 “이거! 이거! 시해! 시발! 이거!”

 

 ‘뉴타히티 시 지하수로 B32구역에 숨어든 반란 분자에 대한 소탕 작전의 개요를 알림. 작전의 구체적인 실행은 다음의 순서에 따라···생략···결행일은 2086년 12월 18일 03시 00분이며 모든 참가 인원은 00시 00분부터 결행을 사전 준비를 시작할 것. 또한 해당 인원은 결행 3일 전에는 참여 여부를 답신할 것.’

 -12월 01일 09시 30분-

 

 시해의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스마트폰에 뜬 시계를 보니 12월 18일 00시 28분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소탕 작전 결행까지 앞으로 2시간 30분이 남은 것이다.

 시해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오밤중인 00시에 완전무장을 하고 작전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작전이 오늘 밤에 결행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작전 실행을 보통은 낮에 진행하리라고 시해가 넘겨짚은 탓에 완전히 오판을 내리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고개를 들어 말이 없는 카푸를 바라보았다.

 

 “막아야 해요. 네오 트라이앵글은 당신들이 이미 항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이대로 넋 놓고 지하수로에 숨어만 있다가는 개죽음입니다!”

 

 묵묵부답이던 카푸가 대답했다.

 

 “항전이란 본디 그런 것이네.”

 

 시해가 본인도 알지 못하게 언성을 높였다.

 

 “원래 그런 거라는 건 없습니다! 개죽음에 의미 같은 건 없어요! 계획이 실패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목숨을 내버리는 건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그러나 카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대명률에 의한 결정은 오로지 대명률에 의해서만 번복될 수 있네.”“그딴 규칙이 뭐라는 겁니까! 목숨보다 중요해요? 당신 목숨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니구요!?”

 

 그러나 카푸는 이 이야기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 했는지 시해의 말을 무시하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촉수가 천장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천장과 맞닿은 부분이 융화되듯 달라붙었다.

 카푸가 등장했을 때처럼 다시 사라져버리려 한다는 것을 직감한 시해가 한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이봐요! 카푸 씨!”

 

 카푸의 몸이 촉수에 의해 떠오르며 투명히 변해갔다.

 

 “설사 대명률에 의한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고 한들 누가 그들을 데려오겠는가. 그대가? 아니면 비싼 조직을 보낼 텐가?”

 

 일순간 시해의 말문이 막혔다.

 

 “그건······!”

 “좀 전에도 부탁했지만 비싼 조직을 잘 부탁하네. 그대가 선택받은 이유가 있을 테니. 그 또한 대명률에 의한 결정일 테지.”

 

 에스카가 내게 온 이유가 대명률로 정해져있는 거라고?

 묻고 싶은 것도, 말하고 싶은 것도 한 무더기였지만 카푸는 시해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잠깐만요! 카푸 씨!”

 

 카푸의 몸이 천장과 가까워지며 점점 최초의 점액질 덩어리로 되돌아갔다.

 

 “만나서 반가웠네. 비싼 조직의 숙주 되는 자여. 부디 그대의 삶이 우리들의 본질에 가까워지기를······”

 

 그 말을 끝으로 카푸는 쓰레기로 된 천장에 스며들어 사라져버렸다.

 

 “이···! 이···! 제기랄!”

 

 퍽!

 시해가 땅바닥을 걷어찼다.

 

 

 + + +

 

 

 노기를 가라앉힌 시해가 스마트폰과 그 위에 올라탄 에스카를 집어 들었다.

 푸카의 말 대로였다.

 설사 항전을 결심한 크록들의 죽음이 헛되더라도 그들을 구출하러 가기에는 사실상 이미 늦었다.

 스마트폰에 표시된 시간은 00시 35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지금부터 구하러간다고 하더라도 그들 또한 카푸가 그랬던 것처럼 대명률인지 뭔지 하는 규칙에 매달릴 것이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더라면 설득해볼 만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변수가 많았다.

 운이 좋아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더라도 도주까지 시켜하는데, 2시간 30분은 모자라도 너무나 모자란 시간이었다.

 불가능했다.

 그 불가능성에 알지도 못하는 크록들과 같이 몸을 불사르는 것은 사양이었다.

 그런 생각을 담아 눅눅히 젖은 눈빛을 에스카에게 보냈다.

 그러나 에스카는 시해를 쳐다보지도 않고 피부를 기어올라 다시 머리칼 속으로 돌아갔다.

 에스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그들을 구하러 가고 싶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말려야만 한다고 시해는 생각했다.

 

 “오늘은 그냥······돌아가자.”

 

 생각한 대로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시해는 정보원을 확보하겠다는 일차적 목표조차 완수하지 못한 채로 발길을 돌렸다.

 

 

 + + +

 

 

 이종족들의 음습한 동굴을 뒤로한 채 시해는 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 돌아왔다.

 시해가 돌아가려고 하자, 그 뒤로 처음 시해를 동굴로 안내해주었던 바로우들이 뒤따라왔다.

 그러나 네오 트라이앵글의 본부에 가까워지자 어느 샌가 모습을 감췄다.

 바로우들이 사라진 뒤, 시해는 혹시나 바트가 깨어나서 자신을 찾아다니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몸을 숙여 쓰레기가 쌓여있는 곳에 가까이 접근했다.

 다행히 바트는 아직 정신을 잃은 채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바트가 혹시 깨어나지 않도록 조용히 자신이 밖으로 나왔던 쓰레기 구멍을 관찰했다.

 구멍은 건물의 2층에서 3층 높이 정도에 뚫려있었다.

 벽은 매끄럽게 마감되어 있어서 타고 올라가기 어려워보였지만 운 좋게도 그 옆으로 파이프라인이 위쪽으로 뻗어있었다.

 파이프라인을 기어올라 다시 구멍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감시 카메라를 의식해서 곧바로 컨베이어 벨트 밑으로 숨었다.

 

 “후우······”

 

 바트의 시야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조금은 긴장이 풀렸다.

 천천히 발소리를 내지 않고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걸었다.

 에스카가 행동을 개시한 것은 바로 그즈음이었다.

 시해의 머리칼 속에서 돌연 에스카가 뛰어내린 것이다.

 

 “엇!”

 

 에스카의 행동을 눈치 챈 시해가 목소리를 깔고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돌아와, 에스카!”

 

 그러나 시해의 머리칼에서 뛰어내린 에스카는 중력에 이끌려 포물선을 그리며 쭈욱 나아갔고, 땅바닥에 닿자 미끄러지듯 전진했다.

 

 “어디가!”

 

 시해의 부름에도 아랑곳 않고 나아간 에스카가 다다른 곳은 쓰레기를 세척할 때 쓰이는 물이 빠지도록 해놓은 구멍이었다.

 즉, 하수구였다.

 

 “에스카······”

 

 그제야 에스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이 잡힌 시해는 그 모습에서 더 이상 에스카에게 돌아오라고 말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에스카에게 동족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에스카가 지금 자신들의 동족을 찾아가는 것이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걸 모를 정도로 에스카는 사리판별이 안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시해는 가면 개죽음이라고 말하려고 하는 목울대를 부여잡았다.

 그러나 가지마라고 말하고 싶었다.

 애처로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시해에게 에스카가 말했다.

 

 “온다! 돌아! 곧!”

 

 딱 한 번 뒤돌아 그렇게 말한 에스카가 단단하게 하수구 속으로 뛰어들었다.

 

 

 + + +

 

 

 에스카는 더러운 음식물 찌꺼기와 뭔지 모를 것들로 가득한 수로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나 에스카는 거리낌 없이 그것들을 피해 하수통로를 전진했다.

 크록에게 있어서 ‘더럽다’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에게 더러움이라는 개념은 위협이 되거나 피해야 하는 것을 구별해내는 기제가 될 수 있었지만, 크록들은 병균이나 독성 물질에 비교적 영향을 적게 받았기 때문에 구태여 더러움이라는 개념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인간에게 더러워 보이는 하수통로라도 에스카가 보기에는 그저 자신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가득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가는 길을 방해하는 물건이 있다면 피해가면 그만이었다.

 좁은 수로는 길지 않았다.

 에스카는 얼마안가 희미한 빛을 보았고, 그 빛을 따라가자 지금보다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퐁-! 찰팍!

 에스카가 나온 곳이 서른 두 조직(카푸)가 말했던 지하수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지하에 있는 공간인 것은 확실했다.

 꾸오-!

 에스카는 크록들만이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조직들을 불러보았다.

 대명률에 따르면 채널이 닫힌 에스카는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그것은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는 했지만, 규칙보다 더 존귀한 것이었다.

 에스카가 비싼 조직일지라도 대명률에 반하는 행동은 삼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스카가 다른 조직들과 대화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대명률에 있는 예외적 지침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 지하수로의 조직들이 항전을 명받았다면, 대명률에 의거한 전시 상황에서의 예외를 인정받을 가능성도 높았다.

 조금 전 푸카 와의 대화에서는 전투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예외적 지침을 이용할 수 없었지만, 전투를 앞두고 있다면 사정이 다르다.

 어쨌든 그러자면 조직들과 대면할 필요가 있었기에 에스카가 다시 한 번 울부짖었다.

 꾸오옹-!

 이어서 멈추지 않고 이동을 개시했다.

 에스카가 작은 몸집에 비해 빠른 속도로 물길을 헤치며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하수로를 내달리며 찾아다녔을까 싶을 때, 에스카의 눈에 다른 조직들의 흔적이 보였다.

 크록들은 다른 종족들보다 뛰어난 오감을 가진 만큼 이를 활용하는 방법도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바로 보이지 않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었다.

 크록이 머무른 자리에는 크록에게만 보이는 형광색의 자취가 남았다.

 바로 그 형광색의 자취를 발견한 것이다.

 에스카가 그 흔적을 따라 몸을 날리며 더 큰 목소리로 조직을 불렀다.

 꾸오오옹-!

 그러자 흔적이 있던 곳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답신이 들려왔다.

 꾸오오오오오오······

 에스카의 날카로운 목소리와는 달리 낮고 깊은 울림이 울려퍼졌다.

 곧이어 그들과 마주한 에스카가 입을 열었다.

 에스카의 입으로부터 인간의 언어도, 다른 여타 종족과의 언어와도 다른 파장과도 같은 울림이 퍼졌다.

 

 「헬트파이로의 티슈, 그리고 중첩된 마흔 아홉 조직의 권한으로 대명률, ‘예외적 조례’의 적용을 ‘언노운 티슈’에게 요청합니다.」

 

 그러자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존재로부터 답신이 돌아왔다.

 

 「힐리스의 티슈, 여든 아홉 조직의 대표의식이 답한다. 용례를 밝혀라.」

 「대명률 21조 예외적 조례 32항에 따르면, 전시 상황이 임박하였고 중요한 적지 정보를 탐지하였을 때 불특정 다수의 티슈는 이를 어떠한 수단을 막론하고 전장의 티슈에게 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대명률의 적용을 고하라.」

 「항전의 목표에게로 대명률에 의거한 결정이 누설되었으며, 이는 시급을 요합니다.」

 「구체적인 적용 수단을 제시하라.」

 「인간의 언어, 영어로의 적용을 바랍니다.」

 「적용의 근거를 제시하라.」

 「부답하겠습니다.」

 

 에스카와 어둠 속에 숨은 크록들 간의 대화는 다른 존재는 들을 수 없는 파장의 교환으로 이루어졌다.

 자신을 힐리스의 티슈라고 밝힌 크록들은 에스카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고 판단했는지 어둠 속에서 촉수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에스카가 요청한대로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채널이 닫혀 있군. 비싼 조직이여. 영어로의 적용을 요청한 근거를 부답한 것은 왜지?”

 

 그 목소리는 여성의 것과 비슷했다.

 촉수의 질문에 에스카가 대답했다.

 

 “숙주! 영어! 말한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촉수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건 대명률로는 허용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미 예외적 지침을 대명률에 의해 결정하였으니 번복할 수는 없겠군.”

 

 이어서 촉수가 에스카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어딘가 분노가 서린 으르렁거림을 담아 말했다.

 

 “인간들이 우리들의 존재를 알았나?”

 “온다! 곧! 돌아갈 수 있나요?”

 “어째서? 그들이 온다면 맞서 싸울 뿐이다. 우리들의 항전이 대명률에 의해 결정된 것임을 그대도 알고 있을 터, 이의를 제기하는 근거가 있는가?”

 “죽는다! 다! 돌아갈 수 있나요?”

 “죽음을 두려워했다면 항전을 외치지도 않았겠지. 그 이유로는 항전의 번복은 불가하다.”

 

 단호한 거부.

 에스카의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하지만···돌아갈 수 있나요!?”

 “아직 인간의 언어를 완벽히 숙지하지 못 한 모양이군. 하지만 채널이 닫힌 그대에게 정보를 아웃풋해 줄 수는 없다. 용건을 정확히 제시해 줬으면 좋겠군.”

 “으응···으응······”

 

 에스카가 안전부절 답답한 듯 몸부림쳤다.

 한참을 적절한 단어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던 에스카가 돌연 언성을 높여 소리쳤다.

 

 “시발! 시해! 한다! 도움!”

 

 그러나 촉수는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몸짓으로 되물었다.

 

 “도움? 시해는 무엇이지?”

 “인간!”

 “그대의 숙주를 말하는 것인가?”

 “그래! 시발!”

 “······불필요한 수사가 섞여있는 것 같군. 어쨌든 그대가 말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면 항전을 불식할 이유로는 불충분하다.”

 

 시해의 요청을 재차 거절한 촉수의 목소리에 노기가 어렸다.

 

 “힐리스의 티슈, 여든 아홉 조직의 대명률은 조직의 죽음에 침묵하지 않으리라 결정하였다. 이것은 죽어간 조직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 되겠지. 그대의 고향은 어떻게 되었나?”

 

 에스카는 대답하지 못 했다.

 

 “······”

 

 그 침묵으로부터 대답을 들은 것이나 다름없는 촉수가 이어 말했다.

 

 “안타까운 일이군. 그 모든 일의 근원이 인간이라는 종족임을 그대 또한 알고 있을 테지. 대명률과의 채널을 끊고 숭고한 의식에 따라 본질이 되고자 하는 그대의 기치는 높이 사겠지만, 우리들의 항전 또한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하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에스카를 향해 이번에는 힐리스의 티슈가 으르렁 고함을 내질렀다.

 

 “헬트파이로의 티슈는 들어라! 우리들의 복수를 막아서는 그 무엇도 용납할 수 없다! 이 한 몸 불살라서라도 그 빌어먹을 인간 놈들에게 본 떼를 보여주겠어!”

 

 동시에 어둠속에서부터 다른 여러 개의 촉수가 더 모습을 드러내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놈들이 이 땅에서 우리에게 안겨준 굴욕을 그대가 안다면 우리를 막아서지 않을 것이다!”

 

 열화와 같이 몰아붙이는 촉수의 포효에 에스카가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바짝 고개를 쳐들었다.

 

 “한다! 도움! 시발! 시해! 한다! 도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을 두들기는 목소리의 폭풍에 부르르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그럼에도 에스카가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3시! 공격! 막는다! 도움!”

 “······”

 

 꽃꽂이 자신을 마주보는 에스카의 행동에서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던 것일까.

 에스카를 위협할 듯 요동치던 수십 개의 촉수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히 가라앉았다.

 이어서 촉수들이 하나둘씩 어둠속으로 가라앉고 남은 하나의 촉수가 에스카에게 다가왔다.

 

 “그 인간이 항전의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잠시 유예를 주도록 하지.”

 

 촉수의 말에 에스카가 솔깃하며 되물었다.

 

 “힐로스의 티슈, 기다려?”

 

 촉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숙주가 우리들의 항전에 도움이 된다면. 그대가 숙주를 데려올 때까지만 인간과의 전투를 삼가도록 하지. 이 정도면 합당한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촉수의 제안에 에스카가 반색을 표했다.

 

 “시해! 도움! 준다! 온다! 에스카! 간다! 데리러! 돌아갈 수 있나요? 지금!”

 “한 시간의 유예를 주도록 하지.”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남은 하나의 촉수도 어둠속으로 미끄러져 사라졌다.

 에스카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번 사실이 기뻤는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데리러 온다! 한 시간!”

 

 이어서 급히 등을 돌려 지하수로의 반대쪽으로 에스카의 작은 몸이 쏜살같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에스카가 사라진 후, 어둠 속에서 촉수 하나가 다시 크록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파장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 파장은 에스카와 대화를 나누던 파장과는 결이 다른 파장이었다.

 

 「대명률에 의거하지 않은 판단은 대표의식의 월권행위에 해당하지는 않는가?」

 

 그것은 대표의식의 하부에 자리한 부분의식이 조금 전의 행동에 대하여 대표의식에게 의문을 가졌기 때문에 깨어나 질문을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서 대표의식은 망설임 없이 반론을 펼쳤다.

 

 「대명률 17조 23항에 따르면, 모든 조직은 본질에 충성하여야만 한다. 그저 비싼 조직의 안녕을 염원하였을 뿐. 월권행위임을 부정한다.」

 

 그러나 대답은 에스카와 대화를 주고받던 파장이 했다.

 그 대답에 다시 또 다른 조직이 질문했다.

 

 「비싼 조직의 안녕을 염원했다면 숙주를 데리러 오라고 말해서는 안 되었다.」

 

 대표의식이 다시 반론했다.

 

 「비싼 조직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비싼 조직의 숙주가 어떤 인간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보통의 인간은 위험을 무릎 쓰면서까지 오려고 하지 않겠지.」

 

 대표의식의 해명에도 하부의식이 아직 납득이 되지 않았는지 이어 질문했다.

 

 「만약 숙주가 온다면?」

 

 하지만 대표의식은 하부의식의 끈질긴 질문에 여유 있게 대답했다.

 

 「온다면? 크록을 위해 위험을 무릎 쓰는 인간이라. 그건 그것대로 비싼 조직의 안녕을 위해 좋은 일이 아닌가?」

 

 이러면 이래서 좋고, 저러면 저래서 좋다는 다소 궤변 같은 말이었지만, 하부의식은 그 말에 납득한 듯 조용히 대표의식만을 남기고 의식을 가라앉혔다.

 혼자 남은 대표의식이 에스카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한 채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감췄다.

 인간과의 전투가 다가오고 있었다.

 준비를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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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녀의 빗자루(1) 2019 / 10 / 29 220 2 4735   
14 모이라이(7) 2019 / 10 / 25 227 2 8560   
13 모이라이(6) 2019 / 10 / 25 210 2 7865   
12 모이라이(5) 2019 / 10 / 25 223 2 5236   
11 모이라이(4) 2019 / 10 / 25 235 2 6663   
10 모이라이(3) 2019 / 10 / 25 198 2 5496   
9 모이라이(2) 2019 / 10 / 25 221 2 5872   
8 모이라이(1) 2019 / 10 / 23 212 5 6328   
7 쓰레기 전쟁(6) 2019 / 10 / 23 223 5 6536   
6 쓰레기 전쟁(5) 2019 / 10 / 23 211 5 4663   
5 쓰레기 전쟁(4) 2019 / 10 / 23 211 5 6078   
4 쓰레기 전쟁(3) 2019 / 10 / 23 226 5 5228   
3 쓰레기 전쟁(2) 2019 / 10 / 23 249 5 5212   
2 쓰레기 전쟁(1) 2019 / 10 / 22 225 5 4355   
1 세계의 껍질 2019 / 10 / 22 424 6 4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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