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에요, 형사님?”
형사님과 난 손님이 많지 않은 식당에 마주 앉아 있다. 총 15개의 테이블 중에 우리 외에 두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다. 점심 시간에도 이 정도면 식당 유지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운터에 앉은 주인 아저씨의 표정도 굉장히 어두워 보였다.
우리는 순대국 2개를 주문했다. 형사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조바심에 다시 한 번 물었다.
“형사님,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사고라니요? 무슨 사고 말씀하시는 거 에요?”
“음… 그게… 일단 선우 학생, 학생이 보낸 문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해줄 수 있어요?”
나는 내가 겪은 임실장에 대한 일들과 소문, 그리고 신발에 대해 형사님에게 자세히 말했다.
“지금 말한 거 다 사실이죠?”
“그럼요, 제가 형사님한테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음…”
형사님은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잘 들어요, 선우 학생. 어제 밤에 사고가 났어요.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어요. 손가락이 잘린 사고였는데 그 사람이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근처 길거리에서 나눠준 음료수를 마시고 갑자기 잠이 쏟아졌대요.
그래서 피곤해서 그런가 싶어 잠들기 전에 빨리 집에 들어가려고 서두르면서 문을 연 순간 어디서 사람이 달려와 자신을 집 안으로 밀었대요.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 저항도 못하고 곧바로 잠이 들었는데 잠 들기 바로 전에 사람의 형체를 봤대요. 그런데 그게 바로…”
“검은 정장입은 사람이군요.”
“맞아요. 역시 선우 학생은 벌써 눈치를 챘네. 정장인지 까지는 확인을 못 했지만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봤대요. 그리고 한 참 뒤에 눈을 떠보니 자신의 손가락이 하나 잘려 있었대요…”
“하아… 사고가 아니고, 사건 아닌가요 그럼?”
“근데 그게 좀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애매한 부분이요? 그게 뭔데요?”
“자작극일 가능성이 존재해요.”
“예? 그게 무슨…”
“사고 난 사람이 사고 한 달 전에 보험을 들었어요… 그래서 보험회사에서 약간 의심을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경찰에서도 백 프로 그 사람 말을 신뢰하기가 힘든 상황이에요…”
“돈 때문에 자기 손을 직접 자른다고요?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선우 학생이 아직 세상 경험이 적어서 모를 수도 있는데, 세상에 정말 우리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힘든 사람들도 많고, 말도 안되는 경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아요.”
“그럼 절 찾아오신 이유가 뭐에요?”
“선우 학생 얘기를 들은 것도 있고, 일단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확인을 해 보려구요.”
형사님과 밥을 먹으며 얘기를 더 나눴다. 사고 난 사람은 유도 선수였다고 한다. 유망주에서 국가대표 선발 바로 전에 부상을 당해 재활치료를 하며 다음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형사님은 그런 사람이 자신의 손가락을 자른 것이 이해가 안 간다고 하였다.
우린 식사를 마치고 헤어졌다. 형사님은 헤어지기 전 내게 위험하니 더 이상 접근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당부를 했다. 만약 내 말이 사실이라면 임실장은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더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 본인 연락을 기다리라고 했다. 무언가 더 밝혀지면 연락 주겠 노라며…
나도 이번엔 뭔가 느낌이 달랐다. 여태까지 사건은 사고로 위장한 것이었다면 이건 본인이 직접 사람을 해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뭘까?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아니면 거듭된 악행으로 점점 악마가 되어가는 것일까? 후자라면 내 주위의 사람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정누나, 그리고 보육원 아이들… 형사님 말 대로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도 될까? 그러다 주위 사람이 다치면 죄책감을 어찌하지? 불안과 걱정으로 내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급격히 추워진 날씨 탓만은 분명 아니었다. 마음 속 깊은 곳부터 한기가 올라오는 듯 오한이 계속 들었다. 감기인가 싶어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두꺼운 이불을 덮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임 실장…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그가 한 일이 맞다면, 도대체 이유가 뭘 까?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사고당한 사람들은 앞으로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삶을 살 텐데… 왜 이런 고통을 주려고 하는 것일까. 악마가 아니고 서야 무슨 이유로…
‘응? 잠깐?’
불현듯 어떤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스쳤다. 말이 되지 않는 생각이지만,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이해가 되었다.
난 날이 밝자 마자 외출 준비를 했다. 그리곤 내가 처음 사고를 목격한 남성 분을 찾아갔다. 그 분은 심각한 표정을 하고 갑자기 찾아온 나를 불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장님, 혹시 남한테 원한 살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있나요?”
“응? 선우 학생,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혹시 주위의 누군가를 화나게 하셨던가, 섭섭하게 만드신 적 없으신 지…”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없지. 특별히 그런 기억 없네.”
“잘 생각해보세요. 진짜 없으세요?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없어, 선우 학생 갑자기 왜 이래. 몸이 어디 안 좋은가?”
“아니요, 저는 멀쩡해요. 솔직히 말해주세요. 혹시 장애가 있는 사람들한테 미움 살 만한 행동 한 적 없으세요?”
“……”
그 남성은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며 다시 말을 꺼냈다.
“음… 선우학생이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모르겠는데… 그건 나의 실수였다네.”
“자세히 좀 말씀해주세요.”
“내가 조그만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아는가? 거기에서 일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어. 외국인에 지능이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낮았지만 아주 성실하고 착한 친구였지. 지각 한 번 한 적 없고 매일 끝까지 남아서 나를 도와주던 친구야. 나도 그를 고용해 나라에서 지원금도 받고, 그 친구도 스스로 돈을 벌면서 자존감을 키워 나가는 윈윈 관계였지. 어느 날은 그 친구가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거야. 난 둘을 응원했고, 어느덧 둘은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 내가 주례까지 서서 둘의 결혼을 축복해줬다네. 둘은 알뜰하게 아주 행복하게 살았어.”
“근데, 그게 왜 실수에요?”
“실수는 그 이후라네. 갑자기 경기가 안 좋아져서 공장이 힘들어 지기 시작했어. 원가 절감을 아무리 하고 일을 늘려보려 해도 속수무책이었다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내보내야만 했지. 설상가상으로 무슨 이유에선 지 나라에서 나오던 지원금까지 줄여 버리더라고. 그래서 불가피하게 그 친구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그 친구는 펑펑 울며 아내와 뱃 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얘기했지. 자신의 월급을 줄여도 좋다고 말이야. 제발 내보내지만 말아 달라고… 하지만 나도 상황이 급박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그 후로 그 분은 어떻게 되셨어요?”
“들리는 소식으로는 아내가 뱃 속의 아이와 함께 고향으로 갔다고 하더라고. 그 후로 그 친구는 폐인처럼 지내고…”
“고향이라면…?”
“맞아. 아내가 외국인 신부였어. 그 친구가 모아 논 돈도 거의 다 들고 갔다고 하더라고.”
“그럼 경찰에 신고하면 찾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 나라에서도 워낙 지방에 살아서 찾기가 힘들 거라더군. 경찰들이 설명도 정확히 못 하는 그 친구를 위해 수사를 해 줄 리도 없고… 나도 거기까지였어. 그 이상은 내가 더 도와줄 수가 없었어. 그 친구가 나를 원망하고 있다고 들은 거 같긴 하네만…”
“아 그렇군요…”
“근데, 이 얘기가 선우군에게 어떤 도움이 된다는 겐가?”
“그건 지금 당장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엄청난 도움이 될 것만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혹시 아까 그 분 연락처 랑 집 주소를 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알려 주겠네.”
“예, 감사합니다. 제가 조만간 또 연락 드릴게요.”
“그러게, 그럼 조심히 가시게.”
미안함이 서려 있는 그 분의 씁쓸한 표정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무엇인가 실마리를 잡은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