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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자오의 세계로부터
작가 : 모어데반
작품등록일 : 2019.10.22

또 다시 다가온 세기말의 풍경.
가까운 미래, 서기 2086년, 겨울.

대한민국의 평범한 빚쟁이 종군기자 이시해는 다시금 위험 지역으로 취재 파견을 강요당한다.
<베트남 한국인 인부 실종사건>의 전말을 파해치기 위해 밀입국까지 감행한 시해.
그러나 잠입 취재 도중 시해는 <베트남 해적단>에게 붙잡히게 되고, 어딘가로 팔려가는데...
그리하야 도착한 곳은......이세계?
정의감 투철한 빚쟁이 종군기자의 이세계 생존기!

#SF판타지#이세계물#이능력물#미스테리#스릴러

 
음습한 둥지(3)
작성일 : 19-11-07 12:58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8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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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해가 따라간 곳은 쓰레기 더미의 중간을 파내 만든 동굴 같은 장소였다.

 이런 곳에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니, 문명인에게는 실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딱 벌레의 이미지에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인 감상을 둘째 치고 실질적인 정보를 검토해보자면, 이곳은 매우 습하고 어두웠다.

 아니, 축축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그리고 동굴에는 많은 이종족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 종류도 조금 전에 보았던 바로우들 말고도 다양해보였다.

 언젠가 보았던 두더지처럼 생긴 포유류도 보였고, 아르마딜로처럼 생긴 녀석도 있었다.

 그들은 종족별로 모여 팀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한쪽 구석에서는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가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쓰레기들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무언가 접착제 비슷한 것을 바르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시해가 말했다.

 

 “여긴?”

 “둥지! 칼마!”

 “칼마?”

 

 집이라는 의미인가 하고 생각하는데 돌연 에스카가 머리칼 밖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시해! 있다! 크록!”

 “크록?”

 

 에스카의 말에 주의깊게 주의를 둘러보았지만 크록과 비슷한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 아니, 그보다 크록들은 지금 감시 대상인거 아니야? 의심을 확인도 안 해보고 그런 데를 데려와 준다고?”

 

 왜?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시해는 일단 에스카의 동족을 찾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진짜 크록이라면 인간의 언어를 더 수준 높게 구사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 존재가 여기 있었다면 쓰레기 공장에서 이종족들이 겪었던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해주지 않은 게 이상하다는 모순이 생기지만 뭐든지 이유는 갖다 붙이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계속 둘러봤지만 여전히 에스카와 비슷한 이종족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앞서가던 바로우가 뒤를 돌더니 바람이 불었다.

 곧장 시해에게 물었다.

 

 “뭐래?”

 “온다.”

 “온다고? 뭐가 온다는 거야?”

 “깬다!”

 “······?”

 

 정신없이 말을 내뱉는 에스카가 천장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은 그런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

 쓰레기로 만들어진 천장.

 그 천장의 쓰레기들이 흐물흐물 형태가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끈적끈적한 덩어리가 졌다.

 

 “······!”

 

 점액질의 덩어리가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리더니 바닥으로 쭈욱 하고 늘어져 내렸다.

 

 “우왓!”

 

 갑작스런 크록의 등장에 시해가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시해가 물러난 그 공간 바로 앞으로 점액질 덩어리가 내려앉더니, 다시 그 형태를 바꿔 이번에는 다리가 생기고, 눈동자가 생겨났다.

 최종적으로 변형이 마무리됐을 때 그 모습은 마치······

 

 “개구리?”

 

 에스카가 소리쳤다.

 

 “왔다!”

 

 그러나 에스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깜짝 놀란 시해는 눈앞의 존재에 정신이 팔려 비슷한 무언가를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려 집중하고 있었다.

 

 “아니, 두꺼비인가?”

 

 

 + + +

 

 

 시해의 눈앞에 등장한 에스카의 동족, 그러니까 크록은 개구리나, 두꺼비 같은 양서류로 보였다.

 조금 전까지 전체가 말랑말랑한 질감이었는데 등을 보니 두꺼비 같은 등 색깔에 딱딱해 보이는 게, 거북이 등딱지처럼 보였다.

 다리는 네 개 달려있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얇은 막으로 붙어있는 것이 영락없는 양서류의 발이었다.

 눈에 해당하는 부분이 달팽이의 촉수처럼 튀어나와 있고, 거대한 눈동자가 배에 하나 달려있다는 점만 빼면 두꺼비라 불러도 될 것 같았다.

 아쉽게도 이만한 크기의 두꺼비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배에 있는 눈동자의 동공이 움직여 시해를 바라보았다.

 시해가 인사했다.

 

 “어, 그러니까···안녕하세요?”

 

 손도 흔들었다.

 그런데 기대하지도 않았던 인간의 언어가 들려왔다. 베트남어였다.

 

 “이 말을 할 줄 아는가?”

 “······!”

 

 인간의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이종족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시해의 심장이 뛰었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할 줄 압니다, 베트남어.”

 “그렇군. 자네 나라 말인가?”

 

 뜬금없는 질문에 시해는 잠시 망설이다가 최대한 성실히 질문에 대답해주자고 마음먹었다.

 설득을 하려면 진실성이 필수다.

 거짓 연기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힘이 있다.

 

 “제 나라 말은 아닙니다. 배운 거죠.”

 “그렇군.”

 

 두꺼비의 촉수가 좌우로 흔들렸다.

 이어서 커다란 눈동자가 조금 움직여 시해의 머리를 향했다.

 에스카를 보는 것 같았다.

 

 “그 머리 위에 있는 비싼 조직은 자네와 언제 만났나?”

 

 두꺼비가 물었다.

 비싼 조직?

 갑자기 튀어나온 모르는 단어에 시해가 머리를 감쌌다.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참을 인을 그렸다.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우선 말의 맥을 한 번 끊기로 했다.

 

 “제 이름은···이···아니, 시해입니다. 이시해.”

 

 눈동자가 다시 시해의 얼굴을 향했다.

 

 “그리고 제 머리 위에 있는 이 녀석은 에스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제가 이름을 붙여줬죠.”

 “에스카? 이름을 붙여줬다고? 비싼 조직의 고향이 어디였지?”

 

 또 다시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이다.

 맥락을 뛰어넘어가며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시해는 이 두꺼비의 표정을 어디서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눈동자는 배에 있고, 감정 표현은 촉수가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시해는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 필요성을 느꼈다.

 이대로 휩쓸리면 설득을 하기도 전에 해가 떠버리겠다.

 

 “저희가 이름을 알려드렸으니, 당신의 이름도 알고 싶군요. 크록. 이건 당신들의 종족 전체를 말하는 것일 테니, 제게 마땅히 불러드릴 호칭을 알려주시죠.”

 

 정중하게 물어본 셈이었는데, 두꺼비가 이번에는 시해의 말을 무시했다.

 에스카와 시해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딴 소리를 했다.

 

 “채널이 닫혀있군. 비싼 조직의 고향이 어디였나?”

 

 이에 시해도 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말했다.

 

 “이름을 먼저 알려주시죠.”

 “······.”

 

 시해의 당돌한 모습에 잠시 고민을 하더니 촉수가 살랑살랑 움직였다.

 이내 두꺼비가 말했다.

 

 “편한 데로 부르게. 비싼 조직에게도 이름을 붙여줬다니, 내게도 붙여줘도 되겠지.”

 “······.”

 

 알쏭달쏭한 말이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한 시해가 곧장 생각나는 이름을 입에 담았다.

 

 “좋습니다. 그럼, 카푸. 카푸라고 부르죠.”

 

 프랑스어로 두꺼비라는 의미였다.

 그냥 보이는 대로 부르는 것이었지만 나름 풍미가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듣자마자 카푸라고 이름붙인 두꺼비의 몸에 갑자기 균열이 일어나더니, 세포가 분열하듯 두 마리의 두꺼비가 되었다.

 시해의 입이 무의식적으로 떡하니 벌려졌다.

 그러더니 두 마리로 증식한 두꺼비 중 오른쪽 두꺼비가 말을 꺼냈다.

 

 “자, 이제 누가 카푸인가? 나인가?”

 

 왼쪽 두꺼비가 이어 말했다.

 

 “나인가?”

 

 말장난 같은 언사에 시해의 고뇌도 깊어져만 갔다.

 

 “아니, 이게 지금, 무슨···하아······.”

 

 지금의 카푸의 행동으로 인해서 시해는 크록이라는 이종족이 어떠한 특성을 지녔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카푸도 그것을 의도했는지 몰랐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이 두꺼비에게 주도권을 빼앗겨버리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이래서는 대화에 진전이 없다.

 그래서 대충 말을 맞춰주었다.

 

 “그럼 오른쪽을 ‘카’라고 부르고, 왼쪽을 ‘푸’라고 부르죠. 됐죠?”

 

 그 대답을 듣고 카와 푸가 이번에는 다시 합쳐졌다.

 

 “재밌는 친구로군.”

 

 촉수가 출렁였다.

 기쁘다는 의사표현인가 싶었다.

 

 “이번에는 내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겠지. 비싼 조직과 언제 어디서 만났나? 고향이 어디지?”

 “우선 용어를 정리하고 가도록 하죠. 비싼 조직이라는 건 에스카를 말하는 겁니까? 아까 채널이 닫혀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그건 무슨 뜻이죠? 그걸 모르면 자세히 대답을 해 줄 수가 없겠군요.”

 “······”

 

 카푸의 눈이 다시 에스카와 시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카푸의 말문이 열렸다.

 

 “크록들은 대화를 나눌 때는 반드시 대법률에 따라야하지. 너와 내가 나누는 방법으로 대화를 나눠서는 안 돼. 그게 채널이네.”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중요한 내용이 없는 설명이었다.

 

 “대법률은 또 뭡니까?”

 “규칙은 규칙이네.”

 

 시해가 머리를 짚었다.

 

 “흐음···좋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지금 에스카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말이죠?”

 “내가 너와 지금 이렇듯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그것을 굳이 확인해야 하는가?”

 

 뭔가 대화가 맞물리지를 않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쨌든 조금 비아냥대는 것 같기는 해도 긍정하는 말이라는 것은 이해가 되었다.

 왜 그 채널을 통해서만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 채널이란 게 대체 뭔지, 닫혀있다는 건 또 뭔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였지만, 한 번에 많은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독이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목적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만 알면 된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단어가 아직 하나가 더 있었기에 시해는 마저 물어보기로 했다.

 

 “비싼 조직은요?”

 “비싼 조직은 비싼 조직이네. 희귀한 조직이지. 귀한 거네.”

 

 시해는 이번에도 대충 흘려버리듯 얘기하는 카푸의 이야기에서 대충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유추했다.

 

 “에스카가 특별하다는 말인가요?”

 

 그러자 이번에는 카푸가 한숨을 쉬었다.

 

 “흐음······내가 너와 이렇듯 대화를 나누는데도 그것을 또 확인해야 하는가?”

 ‘미치겠군.’

 

 대충 찰떡같이 알아들으면 긍정이라는 얘기였다.

 시해의 질문이 끝났다고 느꼈는지 카푸가 다시 질문을 해왔다.

 

 “비싼 조직의 고향이 어디였나? 언제 만났지?”

 

 이제는 대답을 더 피할 방법이 없어 보였기에 솔직히 대답했다.

 

 “에스카와 어디서 만났는지는 잘 모릅니다. 하얗고 큰 성벽이 있는 도시였어요. 거기서 만난 것 같네요. 성벽 앞에 바다가 있구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군. 모든 도시는 크든 작든 성벽이 있고, 멀던 가깝던 앞에 바다가 있네.”

 

 미칠 것 같은 대화 진행에 시해의 정신 줄이 풀려버렸다.

 

 “그게 무슨 개똥같은 말입니까? 해안가에서 바로 성벽이 보일 정도로 성벽이 크고 가까운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벽이 아주 하얬어요! 됐습니까?”

 

 카푸는 그제야 시해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이 촉수를 끄덕였다.

 

 “<헬트파이로>로군. 이해했네. 언제 만났나?”

 “두 달쯤 됐을 겁니다.”

 

 설마 정확한 날짜까지 말하라고 하지는 않겠지 하고 의심하는데 카푸가 여지없이 딴지를 놓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해도 납득할 만한 이유였다.

 

 “달이 뭔가?”

 “······? 아.”

 

 달이라는 개념은 지구와 달의 관계를 알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개념이었다는 걸 깜빡했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개념이 서로 다른데 무슨 수로 시간을 알려줄 수 있을까.

 이 난제에 대해서는 카푸가 간단히 힌트를 제공했다.

 

 “시간으로 말하게. 그건 이해 할 수 있지.”

 “음······하루가 24시간이고, 일주일이 168시간이고······한 달이······.”

 

 암산을 하려다가 문득 바트에게서 훔쳐온 것이 화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린 시해가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두 달 간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데 둔해진 듯했다.

 다행히 스마트폰에는 잠금장치가 걸려있지 않아서 바로 계산기를 이용 할 수 있었다.

 10,080시간이었다.

 

 “대충 만 시간 정도 전이네요.”

 

 카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렇다면 채널이 닫힌 건 넉넉히 아흐레 길라스 전이겠어.”

 

 또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가 나왔다.

 타종족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구만, 이 녀석.

 머릿속으로 한 번 푸념을 한 시해는 겨우 한 바퀴를 돌아온 자신의 차례에 의지를 불태웠다.

 한 번에 안 끝내면 이 한 바퀴를 다시 돌아야 한다는 생각에 진절머리가 났다.

 때문에 곧바로 본론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제가 말 할 차례인 것 같군요. 제가 여기에 온 이유는 하나입니다. 당신들을 도와주려고 왔어요.”

 

 시해도 이들에게서 정보를 얻을 것이기 때문에 마냥 대가없이 도와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원래 협상이라는 것이 상대가 혹할만한 것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순서다.

 시해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어서 카푸가 대답을 하기 전에 용건을 빠르게 털어놓았다.

 

 “여기 있는 이종족 여러분들이 감시자들에게 필요 이상의 폭력을 당하는 것은 의사소통의 부재 때문입니다. 제가 그 간극을 메워드리죠. 저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드리겠다는 얘기입니다. 그것만 알면 여러분들이 발길질을 당하는 횟수가 그래도 조금은 줄어들 거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푸카 씨에게 그 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푸카씨가 다른 이종족 분들께 전파를 해주시면 될 것 같군요.”

 

 본래는 에스카를 통해 전파하려는 생각이었지만, 이렇듯 멀쩡히 통역이 가능한 존재가 있다면 상황은 별개였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이용해야 했다.

 시해도 마냥 선인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시해의 얘기를 듣고 푸카의 행동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느릿하게 촉수를 흔들거리던 카푸가 말했다.

 

 “의사소통의 부재? 우린 그런 것을 겪고 있지 않네.”

 “······?”

 

 시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분리수거 하나 제대로 못해서 얻어맞고 있잖아요. 혹시 카푸 씨, 여기 있는 다른 이종족 분들이 저 쓰레기 공장에서 어떤 취급을 받으며 일을 하는지 모르시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카푸가 대답했다.

 

 “우린 우리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네. 그리고 그건 우리가 원했던 바야.”

 

 시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뭐라구요?”

 “대명률에 의거해 결정된 사항을 행하는 것인데 무엇이 잘못되었지?”

 

 질리지도 않고 튀어나오는 모르는 단어는 대충 흘려버리고 알 수 있는 말을 주워들었다.

 

 “그러니까······뭐, 말 안 듣는 반항이라도 하고 있다는 건가요?”

 “반항이라는 단어는 적절치가 않군. 자네들의 단어 중에 적절한 단어를 찾자면 ‘정책’이라 말 할 수 있겠지.”

 

 의외의 사실이었다.

 그 모든 것들이 의도된 행동이었다고?

 일부러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서 협력하지 않은 거라고?

 믿기 힘든 일이었다.

 이종족들의 지적 수준을 인간에 비하기는 했지만, 이렇듯 인간도 하기 힘든 일을 당연한 듯이 말하는 것이 믿기 쉬운 일은 아니리라.

 순간 의심의 눈길을 거둘 수 없었던 시해가 다시 질문했다.

 

 “그 정책이라는 것에 여기 있는 모든 종족이 동의하고 따르고 있다는 말인가요?”

 

 시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행색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무언가를 걸치고 있기는 해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고, 이부자리를 플라스틱 통들로 깔아 놓았는가 하면, 아예 그 통들을 덮고 누워있는 자도 있었다.

 이들 모두가 그러한 취급을 받으며 저항하는 일에 동의를 했다는 말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군말 없이 따르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그랬다.

 그러자 이 대화에 갑자기 조용히 있던 에스카가 한 마디를 꺼냈다.

 

 “대명률! 따른다! 다! 못 한다! 도리도리!”

 

 싸늘한 시선이 카푸를 향했다.

 

 “카푸 씨의 독단은 아니구요?”

 

 시해는 주먹을 바로 쥐었다.

 설사 그렇다한들 외지인인 자신이 구태여 그러한 관행까지 깨가며 이들을 돕고자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도가 넘은 행위에 해당하므로.

 이들에겐 이들 나름의 규칙이 있을 테니 말이다.

 대명률인가 뭔가 하는 그것이 모두가 합의하는 규칙에 해당하는 것이겠지.

 그 모습을 마주보며 카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돌아가게, 친구여. 한 가지 말해두고 싶은 것은, 내 부탁하건대 비싼 조직을 잘 부탁하네.”

 

 이렇게 되면 지속적인 정보원을 얻고자하는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시해는 매달리듯 카푸에게 다시 말했다.

 

 “대명률인지 뭔지 외지인인 제가 뭐라 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번복할 수는 없는 겁니까?

 “할 수 없네.”

 “왜죠?”

 “조직의 수가 부족하니까. 대명률에 참여할 조직이 지금은 나를 비롯해 여기 있는 서른 두 조직뿐이지. 대명률에 필요한 조직은 적어도 한 갈리스는 필요하네.”

 

 대충 해석하면 투표를 해야 하는 시스템인 것 같은데, 투표자 수가 부족하다는 얘기인 것 같았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여기 있는 종족들을 전부 합하면 적어도 삼백 명, 아니, 조직은 될 것 같은데요?”

 

 카푸가 단호하게 받아쳤다.

 

 “그들은 조직이 아니네.”

 

 투표권이 없다는 얘기였다.

 제길, 누가 중세 시대 아니랄까봐서 귀족 통치인가?

 입이 삐죽거리는 것을 간신히 참아낸 시해가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도 중세 시대치고는 투표 시스템이 있는 걸 보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면서 감정을 가라앉혔다.

 상대가 완고히 거부하는 일을 억지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정공법이었다.

 

 “그럼 조직의 수가 충분하면 바꿀 수도 있다는 거군요. 그렇죠? 크록들이 더 있어야 하나요?”

 “조직이라 말하면 그것이지. 자네 머리 위의 비싼 조직이라면 서른 조직에 해당하겠군.”

 

 뭐? 하고 놀라며 시해가 에스카를 올려다보았다.

 

 “하나의 조직이 여러 개의 투표권을 가질 수도 있어요?”

 

 푸카가 의아한 몸짓으로 말했다.

 

 “투표권이 아니네. 조직이지. 그리고 비싼 조직은 하나의 조직이라 말 할 수 없네.”

 

 카푸의 말에 시해는 바로 조금 전에 분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장면을 떠올렸다.

 아마 그런 의미이리라.

 

 “그렇다는 건 에스카도 여러 명으로 분열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또 애매했다.

 

 “비싼 조직은 분열해서는 안 되네.”

 “왜죠?”

 “비싼 조직이니까.”

 “끄응······”

 

 그야말로 기독교 설교에 버금가는 순환 논리였다.

 미치겠군.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지금 다른 조직, 크록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계시나요?”

 

 이번 대답은 비교적 명쾌했다.

 카푸가 촉수를 들어 땅바닥을 가리켰다.

 

 “아래?”

 “지하수로가 있다더군. 그곳에 대명률에 따라 크록들이 숨어들어 있지.”

 

 쓰레기장에 이어서 이번에는 지하수로인가 하고 깊은 한숨이 저절로 쉬어졌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지하수로에 숨어있는 건 알겠는데, 그게 대명률로 정해졌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카푸가 답했다.

 

 “대명률로 정해진 것은 지하수로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네. 그들은 대명률에 의해 인간 종족에 대한 철저한 항전을 명받았네.”

 

 그 대답에 다시 가만히 사태를 관망하던 에스카가 고개를 쳐들었다.

 지그시 자신을 쳐다보는 에스카를 보더니 카푸가 시해에게 이어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비싼 조직을 잘 부탁하네. 그대 또한 조직의 일원이 되는 날이 있을 테니.”

 

 그리고 시해는 그 말을 듣고 멍하니 중얼거릴 뿐이었다.

 

 “······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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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모이라이(3) 2019 / 10 / 25 198 2 5496   
9 모이라이(2) 2019 / 10 / 25 221 2 5872   
8 모이라이(1) 2019 / 10 / 23 212 5 6328   
7 쓰레기 전쟁(6) 2019 / 10 / 23 223 5 6536   
6 쓰레기 전쟁(5) 2019 / 10 / 23 211 5 4663   
5 쓰레기 전쟁(4) 2019 / 10 / 23 211 5 6078   
4 쓰레기 전쟁(3) 2019 / 10 / 23 226 5 5228   
3 쓰레기 전쟁(2) 2019 / 10 / 23 249 5 5212   
2 쓰레기 전쟁(1) 2019 / 10 / 22 225 5 4355   
1 세계의 껍질 2019 / 10 / 22 424 6 4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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