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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패왕마검사
작가 : 인기영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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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드래곤 시엘.
그가 지키지 못했던 플로렐 공작가와의 언약이 오랜 세월을 흘러
그 후손에게 이어지게 되는 순간 잠들어 있떤 패왕의 피가 다시금 들끓는다.

 
제 14 화
작성일 : 16-07-12 13:47     조회 : 604     추천 : 0     분량 : 5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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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젠의 예상과 달리 카를로스 남작은 자신이 직접 플로렐 공작가를 다시 찾아가려 하지 않았다.

 혹시나 또 그 거지같은 고블린들을 만날까 겁이 덜컥 났기 때문이다.

 대신 연줄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는 꾸준한 선물 공세로 친분을 맺은 베른 백작을 찾아가 플로렐 공작 가문이 자신을 모욕했다며 거짓 보고를 올렸다.

 베른 백작은 아무 힘도 없는 플로렐 공작 가문이 어떻게 모욕을 줄 수 있느냐며 의아해했다.

 카를로스 남작은 얼마 전 플로렐 공작이 5골드를 빌려 갔는데, 좋은 말로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내놓기는커녕 공작이라는 작위를 들먹이며 망신만 톡톡히 주고 자신을 쫓아냈다고 했다.

 힘으로 누르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지만, 아무리 힘이 없기로서니 공작의 작위를 앞세우니 차마 남작인 자신으로서는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고 고한 것이다.

 이에 베른 백작은 코웃음을 치며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될 일이라면서 그의 아들인 루트 베른에게 실력 좋은 기사 한 명과 병사 넷을 붙여서 보내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카를로스 남작은 베른 백작에게 플로렐 영지에 상상 밖의 실력을 가진 도적 고블린들이 돌아다니니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베른 백작은 그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면서 아무 걱정 말고 돌아가 있으라고 이를 뿐이었다.

 루트 베른은 다음 날 곧장 베른 백작의 명을 받아 기사 한 명과 병사 넷을 이끌고 플로렐 영지로 떠나게 되었다.

 

 ***

 

 “이제 슬슬 이 땅도 손을 봐야 할 때가 되었나?”

 난 황폐하기 그지없는 플로렐 영지를 철문 너머로 바라보았다. 호수의 물을 뿌리면 분명히 죽었던 영지가 되살아날 것이다.

 언제쯤 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마차 한 대와 그 마차를 호위하는 말 탄 병사 넷, 기사 하나가 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워어!”

 마부가 말을 멈추자 마차 안에서 누군가가 내렸다.

 난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서 콧잔등을 씰룩였다.

 “루트 베른.”

 2년 전, 헤럴드 공작가의 자제인 스펜달의 생일 축하 파티장에서 내게 고의적으로 와인을 쏟았던 베른 백작가의 장남이었다.

 그가 기사와 병사들을 줄줄이 이끌고 문 앞까지 다가왔다.

 “먼 길을 달려오느라 피곤하군요. 문 좀 열어주시죠? 손님에 대한 예의가 이리 박정해서야 되겠습니까?”

 손님? 웃기고 있군.

 난 조용히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면서 메모리즈 이어링에 마나를 주입시켰다.

 지금부터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고스란히 이어링에 기억될 터였다.

 루트는 문 안으로 들어서며 손수건으로 코를 가렸다.

 “휘유, 먼지투성이군요. 공기도 영 맑지 못하고. 이런 곳에서는 하루도 머물기 힘들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찾아왔는지 용건만 간단히 말해라.”

 “아, 별일 아닙니다. 카를로스 남작이 이번에 플로렐 공작가에 신세를 좀 졌다더군요.”

 결국엔 카를로스 그놈이 고자질을 했군.

 언제 무너질지 모를 공작 가문에서 사건 하나를 일으켰으니 그걸 빌미로 아주 밟아놓겠다는 생각인가 본데… 루트 네놈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플로렐 공작 가문은 변했다. 네 머릿속에 있는 지식들은 모두 예전 것이란 말이다.

 연회장에서 녀석이 내 옷에 와인을 쏟았을 때,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시선을 피하고 홀로 분을 삭였다. 하지만 이제 더 참을 이유가 없어졌다.

 난 루트를 똑바로 노려보고 힘주어 말했다.

 “카를로스 남작님께 신세 갚을 일 있으면 직접 찾아오시라고 전해라.”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루트는 잠시 당황하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 하하하! 못 보던 사이 많이 대담해지셨습니다?”

 루트는 플로렐 영지를 빙 둘러보았다.

 “카를로스 남작은 플로렐 공작 가문에게 부당한 모욕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에 합당한 처우를 카를로스 남작은 바라고 있습니다. 뭐, 대단한 건 아닙니다. 단지 남작에게 돈 몇 푼 쥐어주면 되는 일인데…….”

 녀석의 한쪽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이런 땅이나 가지고 있는 플로렐 공작가에서 그만한 푼돈이라도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뭐, 어쩔 수 없이 귀족 재판소에 출두해주셔야겠군요. 거기서 내려지는 판결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할 것입니다. 카를로스 남작도 이런 황무지랑 민둥산 하나를 가지고 싶어 하진 않을 테니 다른 방향으로 처벌이 내려질 테죠.”

 난 살짝 조소를 지었다.

 “민둥산? 어디가?”

 그제야 루트는 초목이 푸르른 산을 보고서 조금 놀란 듯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조롱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능력 참 좋으십니다? 어떤 노력을 들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근성 하나는 대단하네요. 저런 작은 산 하나 살려 봤자 그다지 이득도 없을 텐데요. 하기야 지나가는 똥개나 거지들도 먹음직스러운 음식 앞에서는 근성을 보이니까요.”

 뚝.

 내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네가 미쳤구나.”

 루트가 미간을 확 찌푸리더니 상당히 언짢은 목소리로 반문해왔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귓구멍이 막혔느냐? 아니면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냐?”

 “하하, 이것 참. 이보세요, 아르젠 님, 그나마 경어라도 써주는 걸 고맙게 아셔야지요. 플로렐 가문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잊으셨나요?”

 “네가 했던 말들, 모두 취소하고 정중이 사과해라.”

 “살다 보니까 이렇게 더러운 일도 당하네. 추후에 소환장이 날아올 것입니다. 날짜를 어기는 일 없이 귀족 재판소로 나와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만 가자.”

 루트가 등을 돌려 마차로 걸어가려 했다.

 그 순간 난 몸을 날려 루트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

 

 “억! 뭐야!”

 아르젠이 손을 끌어당기자 루트의 몸이 뒤로 붕 날았다. 아르젠은 그대로 뛰어올라 루트의 복부를 팔꿈치로 내리찍었다.

 퍽!

 “커억!”

 루트의 몸이 철퍼덕! 소리를 내며 지면에 처박혔다.

 순간 기사와 병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그러나 아르젠은 녀석들을 완전히 무시한 채 쿨럭거리는 루트의 옆구리를 힘껏 걷어찼다.

 “크흡!”

 “멈추시오!”

 기사가 소리쳤지만 아르젠은 듣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 더 루트를 걷어찰 뿐이었다.

 그러자 기사의 눈짓을 받은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아르젠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루트에게 말했다.

 “다음부터 병사들 교육 똑바로 시켜라. 플로렐 가문의 사람에게 대들 경우.”

 4명의 병사들이 지척에 다다른 순간 아르젠의 주먹과 발이 빠르게 움직였다.

 퍼퍼퍼퍽!

 그들은 명치와 턱, 옆구리와 낭심을 얻어맞고 그대로 나자빠져 버렸다.

 “이렇게 된다고.”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카렐!”

 자빠져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루트가 소리쳤다.

 카렐이라 불린 기사가 병사들보다 날랜 동작으로 달려들었다.

 순간, 아르젠이 빠르게 테르제스를 뽑아내며 코앞까지 다가온 카렐의 검을 쳐 냈다.

 검을 쥔 카렐의 손이 바깥쪽으로 크게 휘둘러졌다.

 ‘강하다!’

 손목에 적지 않은 무리가 오자 카렐은 아르젠이 상당한 실력자임을 알았다. 카렐의 미간에 심한 세로줄이 생겨났다.

 그런 카렐의 귀로 아르젠의 낮은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네 녀석들은…….”

 아르젠이 테르제스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검신에서 푸른빛의 전류가 파직거리며 튀었다.

 그것은 테르제스가 내재하고 있는 능력이었다. 주입된 마나를 모두 뇌전으로 치환시켜 버리는 것이다.

 아르젠은 더욱 많은 마나를 한 번에 주입시키며 소리쳤다.

 “플로렐 공작 가문을 무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파지지직! 파지직!

 엄청난 전류가 검신을 따라 흐르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이를 지켜보던 루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고, 카렐 역시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감히 백작 가문의 기사 주제에 공작 가문의 차기 가주인 내게 검을 들이댄 죄!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아르젠이 크게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 방출되던 전류가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카렐의 몸을 휘감았다. 미처 피할 새도 없었다. 번쩍하는 순간 그의 몸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악!”

 간질병 환자처럼 버둥거리던 카렐을 한동안 지켜보던 아르젠이 마나를 거두어들였다.

 카렐은 머리가 검게 그을리고, 눈과 코와 입에서 물을 줄줄 흘려 대는 몰골로 기절해버렸다.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충분히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커다란 문제를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게 아르젠의 생각이었다.

 ‘책잡힐 짓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결국 남아 있는 아르젠의 분노는 고스란히 루트에게로 향했다.

 “조금 전에 우리 가문을 거리의 똥개와 거지들에게 비유했었나?”

 루트는 잔뜩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쯤 시끄러운 소동에 집사와 시종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뒤를 이어 아르젠의 부모님들도 허겁지겁 정원으로 나왔다.

 “아르젠, 이게 무슨 소란이더냐?”

 아버지의 물음에 아르젠은 별일 아니라 대답하고서 집사에게 물었다.

 “저택에 남은 와인이 있나!”

 눈치 빠른 집사는 당장 와인을 꺼내와 아르젠의 손에 쥐여 주었다.

 아르젠은 와인의 마개를 따고 그대로 루트의 머리 위에다 뿌려 버렸다.

 꼴꼴꼴.

 “어푸! 어푸푸!”

 한 병의 와인이 순식간에 비워졌고 루트의 온몸은 붉은색으로 물들어버렸다.

 “이런, 거기 있었나? 워낙 존재감이 없어서 말이야. 미처 몰랐군.”

 루트가 연회장에서 아르젠에게 해주었던 대사를 고스란히 돌려준 뒤,

 쨍강!

 “아아악!”

 병으로 그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와인을 뒤집어쓴 루트의 얼굴 위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

 

 “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이라 생각합니까?”

 “아르젠! 지금 뭐하는 짓이냐!”

 아버지가 내 곁으로 다가와 팔을 잡아당겼다. 난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런 걱정도 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방트 선조님이 남기셨던 기록을 기억하십니까?”

 “그 망할 변명으로 가득 찬 일기 말이더냐?”

 “변명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은 사실이었어요.”

 “사실이라니?”

 “지금은 자세히 설명해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절 믿어주십시오.”

 난 의아해하는 아버지를 놓아두고 루트에게 눈을 부라렸다.

 “지금 내게 이러고도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느냐? 너 역시 우리 공작가를 대놓고 모욕한 주제에 무슨 명분으로 날 모함할 생각이더냐.”

 “귀족들이 누구 말을 더 믿겠습니까?”

 난 피식 웃으며 메모리즈 이어링을 오른쪽 귀에 착용했다.

 그러자 방금 전 기억되었던 영상의 첫 부분이 작게 변해 눈앞에 떠올랐다.

 그것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자 허공에 빛으로 이루어진 정사각형의 테두리가 생겨났고, 그 안에서 기억된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멍하니 지켜보던 루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 이건……!”

 “네가 공작 가문의 안마당까지 들어와서 부렸던 모든 행패들은 고스란히 기억되어 있다. 현재의 귀족들이 우리 가문을 어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막나가는 귀족들이라고 해도 이토록 생생한 정황을 담은 증거 자료까지 있는데 마구잡이로 플로렐 공작가를 공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

 “헤럴드 공작 가문의 사람들은 더러운 짓거리를 소리 소문 없이 처리하길 좋아하지. 아, 사 년 전이었나? 헤럴드 공작 가문의 오른팔이었던 매튜 백작이 검은 돈을 세탁하려다 덜미가 잡혀 바로 내쳐졌었지? 이런저런 모함을 받아 백작 작위까지 반납하고 가문 자체가 무너져 내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루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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