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사춘기가 오기 시작한 것은 아마 중1, 중반부터였던 것 같다.
한참 보조기를 끼기 시작되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때, 그리고 미애원에서 나오게 되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과 엄마께 자꾸 걸려오는 의문의 협박 문자와 전화..
이런 것들이 계속 나를 괴롭히면서 스트레스가 계속 계속 쌓이고 있었다. 보조기를 끼는 스트레스가 제일 심했던 나는, 그때 엄마께 결코 해서는 안되는 말을 했다.
“보조기 너무 하기 싫다, 왜 해야 하는건데?, 나랑 소진이는 쌍둥인데 왜 나만 이렇게 아픈건데?, 타라리 이렇게 아프게 태어나게 할 거였으면, 그냥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죽이지 그랬어.”
이런 말을 하면서, 그리고 말하고 나서도 계속 하염없이 울었던 적이 있다. 그때 흘렀던 눈물은 아마, 후회의 눈물과 그간의 참아왔던 설움일까..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고, 엄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내가 받은 그간의 설움은, 보조기를 새로 바꿔 끼게 되면서 시작됐다. 미애원에서 있을 당시, 목 수술을 했을 때, 엄마가 샀던 그 보조기가 점점 헐거워지더니, 더 이상 못 쓰게 될 지경까지 갔다. 역시 그런 보조기를 미애원에 나갈 때까지 꼈고,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나는 그때 당시, 당연히 척추측만증 예방을 위한 보조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한 보조기가 아니란 걸 알고, 그리고 척추측만증이 점점 더 심해졌던 이유로 보조기를 새로 맞추게 되었다.
척추측만증 역시, 내가 가지고 있는 희귀병 때문이라는 걸 알았을 땐, 고2때였고,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자세를 바르게 하지 않았던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조기를 끼게 된 것은 내 잘못이니 하며 늘 받은 스트레스를 참았던 나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 새로 바낀 보조기를 착용하는 게 그렇게도 싫었다. 그 보조기를 착용을 하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봐 내가 그 무대의 주인공이 됐고, 여름에는 너무 더워 답답할 뿐더러, 옷도 마음에 드는 옷을 입지 못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 해 아무리 맛있는 걸 먹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보조기를 끼는 시간 중 잘 때 착용하는 보조기가 중요해 꼭, 잘 땐 보조기를 껴야 했는데, 편하게 자지 못할 뿐더러 자려고 침대에 눕는 그 순간부터 일어날 때까지 계속 시체처럼 자게 되었다 이 밖의 여러가지 등의 이유로 보조기가 너무 미친듯이 싫었다. 게속 그 설움과 스트레스가 점점 쌓이다 보니, 그 화가 괜히 엉뚱한 곳으로 가 아직도 게속 후회 중이다. 그리고 나는 계속 그런 말을 한 걸 후회하고 또 후회하면서 엄마께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하며 뉘우치고 반성하며 살 것이리라..
그때, 그런 말을 한 자리에는 엄마와 언니, 그리고 동생까지 다 있던 자리였다. 그래서 내가 한 말을 다 들어 언니가 놀랐는지 내게 카카오톡 문자를 길게 보내왔다.
소영아.. 니가 많이 힘든 거 안다ㅠㅠ... 니가 그럴수록 니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고... 우리들도 힘들다ㅠㅠ 니가 그럴때마다 우리도 힘들고 속상하다... 소영아, 사람 일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거다
니가 지금보다 더 좋아줄 수도 있는데... 니가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지...... 니가 힘들면 우리 가족도 힘든거 알제??ㅎㅎ
소영아... 그만 울고... 언니도 니가 그렇게 엄마 앞에서 너무 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속상했다......ㅠㅠ 소영아.. 힘내고!!!! 울지 말고...
이러한 문자를 받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평소 표현도 잘 하지 않고, 무뚝뚝했던 언니가, 그리고 우리에게 소영아~ 소진아~ 라고 부르는 것조차 오글거려 절대로 그렇게는 안 부르고 꼭 성 까지 붙혀서 불렸던 언니가 나에게 저런 긴 문자를 보내주워 너무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 문자를 보고 나는 더 눈물이 났지만, 아마 그 눈물은 언니가 보낸 문자에 대한 고마움과, 엄마께 말한 나의 후회의 눈물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