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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자오의 세계로부터
작가 : 모어데반
작품등록일 : 2019.10.22

또 다시 다가온 세기말의 풍경.
가까운 미래, 서기 2086년, 겨울.

대한민국의 평범한 빚쟁이 종군기자 이시해는 다시금 위험 지역으로 취재 파견을 강요당한다.
<베트남 한국인 인부 실종사건>의 전말을 파해치기 위해 밀입국까지 감행한 시해.
그러나 잠입 취재 도중 시해는 <베트남 해적단>에게 붙잡히게 되고, 어딘가로 팔려가는데...
그리하야 도착한 곳은......이세계?
정의감 투철한 빚쟁이 종군기자의 이세계 생존기!

#SF판타지#이세계물#이능력물#미스테리#스릴러

 
모이라이(6)
작성일 : 19-10-25 08:02     조회 : 208     추천 : 2     분량 : 7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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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폭풍과도 같았던 실랑이가 지나가고 방역실 안으로 들어가자, 거기엔 대기실로 보이는 넓은 공간과 카운터, 그리고 카운터 안쪽으로 진료실, 기재실, 약재실 등등과 같은 이름표가 붙은 방들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여성들이 각자가 데려온 남성들에게 한두 명씩 들러붙어서 진료실 앞에 줄을 섰다.

 

 “시해. 시해. 시발. 비켜. 내가. 먼저. 어머어머. 흥흥~”

 

 귓가에서 자꾸만 에스카의 목소리가 웅웅대며 들려왔지만, 주변이 시끄러운 탓인지 주목을 끌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저 입을 틀어막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딸려왔다.

 그래서 다시 한번 머리를 정리하는 척 에스카를 툭툭 쳤다.

 

 ‘자꾸 불안하게 이럴 거야, 너?’

 

 그러나 에스카는 이번에도 이빨을 세울뿐 몸에서 떨어지려고 하지는 않았다.

 에스카와 투닥거리며 두피로 그녀가 드리민 이빨의 감촉을 느끼며 대기 줄에 합류한 시해는 곧 진료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싶었는데, 마이가 생각보다 이 여성들 안에서 (여러가지 의미로)힘있는 사람인 것이 문제였다.

 그런 시해의 마음과는 별개로 마이는 기분이 좋은 듯 아까전부터 콧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머릿속에서 메아리가 울리듯 에스카가 따라했다.

 

 “흥흥~”

 “흥흥~”

 ‘그만······!’

 

 마이는 청각이 그다지 좋지 않은 탓인지 눈치채지 못했지만, 시해는 어쩔도리 없이 식은땀이 흘렀다.

 진료실로 들어가자, 안에는 여성 의료인 한 명이 데스크 앞에서 등받이가 없는 원형 의자에 앉아 일행을 맞이했다.

 하얀 가운을 입은 것을 보면 의사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그보다도 시해의 신경을 끈 것은 그녀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질병 검사를 위해 물에 젖은 사람들에게서 피를 뽑아간 여의사였다.

 하기사, 이런 곳에 오고 싶어하는 의사가 많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여기선 보기 드문 서양인 여성이었음에도, 그녀와의 첫 만남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레드 와인 색으로 물들인 머리칼은 잠을 설쳤는지 사자머리가 되어 있었고, 가녀린 얼굴상이었음에도 컬러 콘텍트처럼 딱 정중앙에 떠 있는 검은 눈이 전체적인 인상을 괴이하게 바꾸어놓았다.

 게다가 붉은 기미, 주근깨까지 있으니 정말 마녀 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다.

 건강검진을 위해 피를 뽑거나 예방주사 같은 것을 놓는 그녀의 모습을 봤을 때의 소름 끼침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하나 다행인 것은, 그때는 평상복 차림에 야매 시술사 느낌이었는데, 깨끗한 가운을 입고 있으니 조금은 의료인 느낌이 났다.

 아무렴 소름끼치는 분위기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누그러진 느낌이었다.

 이 여성의 이름이 마이가 방역실 앞에서 큰 소리로 부르던 리벳이겠지 하고 생각하는 도중, 마이가 한마디를 남기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럼! 잘 부탁해, 리벳!”

 “······”

 

 의료실에 적막이 감돌았다.

 에스카도 주변이 조용해진 것을 의식했는지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랄까, 얄미웠다.

 답지 않게 에스카에게 분개하는데, 리벳이 말없이 빈 주사기를 들어올렸다.

 그 모습에 시해의 입에선 무심결에 신음을 흘렸다.

 

 “또?”

 

 이어서 리벳은 신속하게 시해의 팔을 고무줄로 묶고는 주사기를 거침없이 박아 넣었다.

 빈 주사기의 피스톨이 후진하며 안에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해가 의문을 표명했던 것을 들었는지 리벳이 피를 뽑으며 대답했다.

 대답은 영어였다.

 아무래도 혼잣말도 영어로 했던 게 흥미를 끈 것 같은 반응이었다.

 

 “전에 한 검사는 이쪽 세계에서 걸리기 쉬운 질병을 검사하려고 뽑았던 거고, 이건 성병 검사야.”

 “그, 그런가요.”

 “원래는 안 해도 되는데······. 밖에 있는 여자들, 응, 엄청 시끄러워서 해주는 척이라도 하는 거지.”

 “···에, ···네? 해주는 척이요?”

 “그래, 해주는 척. 사실 성병 검사한다고 기재는 들여놨는데, 지금 다른 데 사용 중이라.”

 “······”

 

 당당히 자신이 사기를 치는 중이라고 말하는 여인의 고백에 시해는 다음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것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전에 만났을 때는 묵묵히 할 일에만 집중하던 그녀였으나 지금 어쩐지 먼저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신호, 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지금 입이 간지러운 지도 모른다.

 시해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잠깐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 거라면 그냥 피도 안 뽑아도 되는 거 아닌가요?”

 

 리벳은 바로는 아니었지만, 조금 뜸을 들이고 입을 열었다.

 

 “주사 자국이 없으면 귀신같이 알더라고. 자국을 보고 어떤 주사기인지도 맞추던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

 “헤, 헤에···그거 신기하네요.”

 

 시해는 좋은 느낌으로 대화가 진행되어 감을 감지하자마자 바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절 데려오신 분, 마이 씨···라고 하던데, 감시자들이 쩔쩔매던데, 대단하네요.”

 

 리벳은 시해의 말에 불쾌감을 표명했다.

 

 “대단하기는. 그냥 그런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거지. 밖에 있는 여자들 다, 그 마이라는 여자도 그냥 운 좋게 팔의 눈에 들어서 길러지고 있는 것뿐이야. 남자들이 어쩌지 못하는 것도 그냥 그런 이유인 거지. 주인이 기르는 개가 부하들보다는 그래도 좋은 대우를 받는 법이니까. 그래 봤자 주인 마음 바뀌면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건데, 참 맘 편히 산다니까. 질리지도 않고 계속 새 남자를 데려오고 말이야. 생각이 없는 건지 포기를 한 건지······”

 

 아무래도 밖에 있는 여자들에게 어지간히 쌓인 게 많은 것 같다는 것을 시해는 그녀의 말에서 흘러나오는 노기를 통해 간신히 알 수 있었다.

 표정보다는 말에서 드러나는 게 더 많은 성격인 듯했다.

 시해는 조금만 주제를 확장시켜 보기로 했다.

 

 “그런 가요······그런 것 치고는 다들 당차고 활기차 보이던데요. 그리고 깜짝 놀라기도 했구요. 이런 곳에서까지 베트남 사람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영어도 할 줄 알고 베트남어도 할 줄 알아? 너야말로 베트남에서 온 거야?”

 

 리벳이 지그시 시해를 바라봤다.

 시해는 긴장감에 몸이 굳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대응했다.

 

 “베트남에서 살기도 하고, 필리핀에서 살기도 하고 했죠. 영어는 필리핀에서 배웠어요. 알다시피······거긴 영어하는 사람이 많아서······별로 특별할 것도 없죠.”

 

 자신의 정보를 감추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진실(시해와는 전혀 상관없지만 진실은 진실이니까)을 말해주면서도 전혀 특별할 것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방법도 그중 하나였다.

 상대는 곧 그 정보를 중요하지 않게 여기고 잊게 되리라.

 그 대답에 리벳은 잠시 실눈을 떴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듯 했다.

 

 “걔네들 베트남 사람 아니야. 지난 남중국해 전쟁 때 전쟁을 피해서 여기로 건너온 사람들이 꽤 되는데, 아마 그 사람들한테 배운거겠지. 잘은 몰라. 여기선 베트남어가 제2 외국어 쯤 되는 것 같더라고.”

 “리벳 씨는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되셨나 봐요?”

 “글쎄······그런 것 까지 알고 싶어?”

 

 시해가 숨을 들이켰다. 까다롭기는······.

 쉬운 상대는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지만, 그만한 상대와의 대화에는 가치가 있었다.

 재빨리 의심을 완화시키기 위해 환기를 시도했다.

 

 “아, 아뇨. 그게 아니라, 리벳 씨한테서는 뭔가 밖에 있는 사람들이랑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부라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에 적당하리라.

 

 “다르다고?”

 “네, 뭔가 목적이 있어서 여길 온 것 같은 사람 같으세요. 저 같은 사람은 알 수 없는······그런 목적이요.”

 

 혹시 너무 많이 치켜세운 것은 아닐까하고 입술을 적셨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들려온 말은 다행히 날카로운 반응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뻐하듯 웃음을 지어 보이며 리벳이 자랑하는 것 같은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후후후, 당연하지.”

 

 속으로 호재를 부르며 시해가 되물었다.

 

 “그게 뭐죠?”

 “넌 나를 동네 간호사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난 사실 의료인 면허 따윈 갖고 있지 않아. 그나마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어서 하고 있을 뿐이지. 하지만 난 정말 이런 야매 의료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값진 일에 종사 중이야. 당연히 밖에 있는 여자들이랑은 차원이 다르지.”

 

 소름 끼치는 사실을 면전에 대고 말하다니, 기함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가까스로 억누른 시해가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 아아, 네에···그렇군요.”

 

 그러든지 말든지, 말보가 터진 리벳이 팔짱을 끼고 콧바람을 불었다.

 

 “듣고 놀라지나 마. 난 이세계 생태연구와 이종족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를 하는 중이야.”

 “···이종족···연구?”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시해의 머리가 급회전했다.

 

 “그 말은, 그러니까, 그, 저희가 전투 중에 만났었던 다른, 이종, 아니, 괴물들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전투? 아, 며칠 전에 전투가 있었다고 했지. 그래, 맞아. 그런데 괴물이라니, 흠, 뭐,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들 괴물이라고 불러대지. 하지만 아니야. 그들은 말을 할 줄 아는 것은 물론이고 고도의 사회와 문명을 이룩한 존재들이야. 지금까지 파악된 종족의 종류만도 자그마치 십여 종이 넘는다고. 심지어 갈래만 다른 형제 종족들이 아니야. 뿌리부터 전혀 다른 이종족들이 십여 종이 넘어! 이게 뭘 의미하는 지 너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겠지.”

 

 리벳은 그 사실을 알아낸 자신이 자랑스러운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를 도취했다.

 

 “······”

 

 그리고 리벳의 말을 들은 시해의 목울대가 상하로 크게 요동치며 입이 열렸다.

 

 “···달팽이.”

 “음?”

 “···달팽이 같은 것을 봤어요. 사람처럼 크긴 했지만, 껍질도 있고 점액질에······”

 

 의심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마음이 급해진 시해가 자신이 본 것을 허둥지둥 설명했다.

 그러자 리벳은 설명을 듣고 눈을 빛내며 기꺼워했다.

 

 “달팽이 같은 외관을 하고 있었다면, <크록>일거야.”

 “크록?”

 “그래. 스스로 그렇게 불러달라고 하더라고. 전에 얘기를 해본 적이 있어.”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놀라온 사실에 시해의 눈동자가 커졌다.

 

 “얘기를 해봤다구요?”

 “아까 말했잖아. 말도 할 줄 안다고.”

 

 그 얘기를 듣고 시해는 에스카도 인간의 언어를 배우는 데 적극적이었음을 떠올렸다.

 만일 그것이 에스카만이 가진 특이함이 아니라면 크록이라는 이종족이 인간과 의사소통을 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에 인간이 정착한 지 얼마나 됐는지는 알 수 없어도 이 정도의 기반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었고, 그만큼의 시간이면 얘기를 나눌 정도로 언어를 익히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하자, 한 가지 더 궁금한 것이 시해의 머릿속에서 피어났다.

 

 “그 크록들······이 도시 안에도 살고 있나요?”

 “응? 아니, 지금은···”

 

 쿵! 쿵! 쿵!

 

 “아직~? 안에서 농땡이 피우고 있는 거 아니지, 리벳! 팔한테 또 이를 거야!”

 

 그러나 시해의 궁금증은 갑작스럽게 끼어 들어온 불청객으로 인해 해소될 수 없었다.

 도중에 얘기를 멈춘 리벳이 작게 중얼거렸다.

 

 “칫! 쉴 시간을 안 준다니까.”

 

 그러고는 시해에게 더 이상 흥미가 식었는지 축객령을 내렸다.

 

 “가 봐. 피 뽑은 자국 보여주면 안심할 거야. 네가 말했다시피, 죄다 멍청하니까.”

 

 

 +++

 

 

 검사하지도 않을 피를 뽑은 뒤, 방역실에서 나와 시해가 끌려온 곳은 딱 봐도 여자들이 쓰는 냄새가 풀풀 나는 그런 곳이었다. 은은한 화장품과 달콤한 향수의 냄새가 곳곳에서 풍겨왔다.

 거대한 공간에 양탄자와 침대처럼 거대한 쿠션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여있고, 그보다 작지만 여전히 사람만큼 큰 쿠션도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왼쪽 벽면에는 화장대처럼 보이는 거울 달린 가구가 네 개정도 서 있다.

 

 “여긴······?”

 “어서 와, 금남의 성역에.”

 

 시해의 물음에 마이가 설명했다. 그런데 그 설명에 꼬리를 물고 다른 여성이 툴툴거렸다.

 

 “금남[禁男]은 무슨, 돈이 없으니까 못 들어오는 거겠지. 아, 금남[金男]이라면 맞는 말이 되나? 후후후.”

 

 그러더니 여성은 거대한 쿠션처럼 생긴 침대 중 하나로 땀을 뻘뻘 흘리는 한 남성을 끌고 가서는 그곳에 넘어뜨렸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남성이 앞을 보고 쿠션에 몸이 잠겼다.

 그리고 쿠션 주위로 커튼을 치고는 그녀 자신도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만일 시해의 상상이 옳다면, 이곳은······

 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오리무중인 가운데, 마이가 시해를 이끌었다.

 

 “자, 자기도 가자.”

 

 적극적인 그녀의 행동에 목울대가 거칠게 위아래로 출렁였다.

 몇 걸음 가지 않아 거대한 방 안에 놓여있는 거대한 쿠션 침대 중 하나를 고른 마이는 시해를 침대 위로 걸어 넘어뜨리고는 커튼을 쳤다.

 

 “후후후. 두근두근해? 자기(이우)?”

 “그, 그러니까······하, 하하···.”

 

 마이의 부름에 시해는 조금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시해에겐 이렇게 물어보는 것만이 유일한 저항일 뿐이었다.

 

 “바로?”

 

 

 + + +

 

 

 “은근히 잘하네, 자기?”

 

 커튼 안쪽에서 교성이 흘렀다.

 다만, 우려했던 사태는 아니었다.

 곤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지 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시해였건만, 그것은 크나큰 오해였던 셈이다.

 

 “자, 넘긴다?”

 

 땡~!

 

 “꺄ㅡ앗! 아까워라! 이번엔 나도 있었는데!”

 

 그녀가 꺼내 든 것은 다름 아닌, 보드게임이었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게임.

 <할리갈리>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병균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다면,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조심을 할 테니 말이다.

 달리 말하면, 검사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지만, 지금으로써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검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시해였기에, 만약 그런 때가 오면 리벳에게 들은 것을 다 털어놓는다는 선택지도 고려 중이었다.

 위험한 순간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것은 고맙긴 했지만, 그것과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땡~

 

 “이번엔 내가 이겼다~!”

 

 그나저나 눈앞에서 카드를 손에 쥐고 게임을 즐기는 이 마이라는 여성에 대해 시해는 다소 곤란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한국에서도 이런 문화를 별로 접해본 적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어 있는 분위기를 풀고 싶었는지, 마이는 시해에게 이런저런 말을 수다스럽게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해에게 고향이 어디인지, 하는 일은 뭐였는지, 어떻게 여기로 팔려 오게 되었는지 같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시해는 군말 없이 질문들에 대답해주었고(당연히 거짓말이지만), 어느 정도 기분을 맞춰주기도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그녀가 시해에게 질문을 하는 대화가 한참을 오가고 난 뒤, 더 물어볼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그녀가 시해에게 이렇게 물어왔다.

 

 “자기는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나만 자기가 궁금한 거야?”

 

 그녀가 말을 하며 삐진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기는 했지만, 다분히 의도적인 느낌이 났기에 시해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입에 발린 말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 시해에게 어설프게 능글맞은 칭찬을 하는 것은 무리수에 해당했다.

 그녀에게 던졌던 추파는 솔직하게 말해서 감시자들에게 에스카의 정체를 들킬지 모른다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취한 최선의 행동이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시해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을 에스카가 여태껏 조용한 것이 신경 쓰였지만, 그보다는 마이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먼저였다.

 

 “어어···그럼, 마이 씨는 이세계에 어떻게···왔어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조심스레 질문을 꺼내놓자 시해의 질문에 그녀는 잠시 골똘하더니, “아~그거? 별거 아닌데.” 그러더니, “그거 말고 궁금한 건 없어? 애인은 있는지, 지금 사귈 생각 없는지 같은 거?” 하고 시해를 골렸다.

 시해가 아주 조금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하, 하하하······”

 

 그러자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며 손사래를 쳤다.

 

 “농담이야! 방금 진짜 나랑 사귀는 상상했어, 자기? 후후후!”

 

 정말이지 유쾌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고 시해는 생각했다.

 조금 부담됐지만 폭탄으로 사람을 폭사시키는 것보다야 백배 나았다.

 

 “근데 진짜 별 거 아니야. 난 여기 끌려온 게 아니거든.”

 “그럼······?”

 

 끌려오지 않았다면 자발적으로 왔다는 의미일까 하고 생각하는데, 상상도 못 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난 여기서 태어났어. 그러니까······자기한테 있어서 난 이세계인이라는 얘기지."

 

 그 말에 시해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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