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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인코그니토
작가 : BD번
작품등록일 : 2019.9.1

추기경 살해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귀족 청년 에드먼드. 무죄를 증명하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그의 이야기.

 
2. 거래(3)
작성일 : 19-10-02 11:14     조회 : 67     추천 : 0     분량 : 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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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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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새벽부터 많은 일이 있었으니 피곤하지? 우린 저녁에 다시 올 테니 좀 쉬고 있어.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지금 말하고."

 

  라나는 그리 말하며 피로에 잔뜩 절어 있는 에드먼드만 남겨 놓고 베네딕트와 함께 록센 호텔을 떠났다.

  호텔의 804호 객실은 역시나 위치만 꼭대기 층이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방이었다. 방 한쪽에는 퀸사이즈 침대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고, 머리맡 옆에는 라디오가 놓인 보조 테이블이 있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엔 적당히 편해 보이는 암체어와 작은 테이블이, 다른 쪽 벽면에 위치한 겉보기만 고급스러워 보이는 수납장과 그 옆에 세워진 옷걸이 하나. 방 안에 있는 가구는 그게 전부였다.

  에드먼드는 몸이 지쳤다기보단 정신적으로 지쳐있었기에, 침대에 눕기보단 의자에 앉는 걸 택했다. 의자의 팔걸이에 기대고는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공작이..."

 

  물론 귀족들 사이에서도 당파가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론 다른 주장, 이해를 한 이들이 사적으로 교류하는 것 또한 전혀 문제될 건 없다. 이것은 나아가 귀족과 성직자 사이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실질적으론 경쟁 관계긴 하나, 래컴 교주도 원래는 후작가의 사람이었고, 귀족과 성직자가 교류하는 건 이상할 게 없었다. 오히려 대놓고 서로를 배척하는 게 이상한 거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교 레벨 안의 이야기다. 두 사람이 암호를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건 전혀 경우가 다르다. 두 집단의 수장 격인 인물이 무언가를 공모하고 있단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교회는 현재 귀족 계급의 가장 큰 정적이지만,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원인이었다. 이미 대다수의 국가가 공화정으로 돌아서고 있는 흐름에, 브리카 왕국이 왕국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교회의회의 존재였다.

  귀족 의회를 견제하고 평민의 의견을 대변해줄 수 있는 집단인 교회의회가 존재한다는, 정치적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 현 체제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해왔다. 하지만 라나가 말한 문서의 존재는, 그에 대한 신뢰를 뒤흔들어버리는 물건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에드먼드는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은으로 만들어진 동전의 가운데엔 브리카 왕실을 상징하는 장미 문양 새겨져 있고, 그 주변을 12개의 방패 문양이 둘러싸고 있었다.

  손에 든 동전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에드먼드의 표정은 어딘가 서글퍼 보였다.

 

 "그 문서의 존재도 왕실을 위한 겁니까? 아니면 왕실에 대한 당신의 맹세가 거짓이었습니까?"

 

  하소연하듯 동전을 향해 중얼거렸지만, 당연히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에드먼드는 또 한참을 가만히 동전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얼굴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제길! 혼잣말로 물어본다고 무슨 답이 나오나."

 

  에드먼드는 동전을 손에 한번 꽉 쥐고는 도로 품속에 넣었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창가로 향했다. 아침의 햇빛이 그대로 들어오는 창의 방향은 그나마 합격점을 줄 만한 요소였다. 8층밖에 되지 않더라도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보니, 마치 전망대에 올라온 것 같은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 풍경이 절경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도심의 모습은 비유하자면 시계 장치 안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든다. 바쁘게 돌아가는 수많은 톱니바퀴로 인해 복잡해 보이지만, 정교하게 짜여있고 그 규칙들로 인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그 모습과 닮아있다. 하지만 이곳은 고장 난 시계에 비유하는 것조차 과분하다고 느껴졌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생기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아침부터 길바닥에 늘어져 있는 주정뱅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일터로 향하는 공장 노동자들의 모습에서도 그 축 처져있는 어깨만 봐도, 보는 사람마저 같이 힘이 빠질 것 같았다. 그들의 꾀죄죄한 차림새는 그런 무기력한 모습에 한층 더 얹어주었다.

 

 "이런 구질구질한 동네에서 언제까지 있어야 할지..."

 

  그나마 이 구역이 햄필드 안에서 가장 번화한 장소라는 건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이미 최악이라 생각되는 것보다 더 최악인 것을 누가 보고 싶을까? 차라리 시선을 조금만 올리면 드넓은 하늘 말곤 보이는 것이 없단 사실이 위로되었다.

  에드먼드는 창에서 시선을 돌려 침대에 거칠게 걸터앉았다. 재킷과 베스트를 벗고 넥타이를 풀었다. 셔츠의 윗단추를 풀어 보다 편안한 모습이 되어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전날 재판을 받던 때 그대로의 복장이다 보니 얼른 갈아입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갈아입을 옷은 없었다. 아까 라나가 필요한 물건을 얘기하라 했을 때 옷 정도는 얘기하는 게 나았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침대 위에 소지품을 늘어놓던 에드먼드는 잠깐의 생각에 빠졌다. 한 벌의 정장과 회중시계. 그리고 지갑. 그의 소지품 구성은 매우 단출하기는 했지만, 금액적인 측면에선 전혀 단출하지 않았다.

  정장의 경우 왕성에 납품까지 하는 이름난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소재부터 시작하여 굉장한 고가품이었다. 단지 그가 가진 옷 대부분이 그런 것인 만큼 이 한 벌이 그에게 있어 특별한 옷은 아닐 뿐이다. 지갑도 오랜 전통을 가진 가죽 장인의 손은 거친 물건이었고, 안에 남은 액수도 아직 제법 있었다. 단지 이곳 록센호텔에선 2, 3일 묵을 정도의 돈이었기에 아까는 지갑의 돈을 쓰지는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도 나름 특별한 게 있다면 아까의 동전과 회중시계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도 특별한 물건이었다. 전 세계에 얼마 있지 않은 에테르 장치로 되어있는 시계. 어마어마한 고가품인 데다 그 희귀성 덕에 손에 넣을 때까지 상당한 경쟁이 있었던 물건이었다.

 

 "지금 같은 때에 쓸모 있는 건 하나도 없네."

 

  에드먼드는 신경질적인 투로 중얼거렸다. 분명 자금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아까 호텔비를 지불하던 식으로 그의 차명계좌를 이용하면 된다. 불완전하지만 아직 그의 재력의 일부는 유효한 상태로 남아있다. 하지만 문제는 새벽부터 내내 그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이 호텔에 머무르게 된 것도 본인의 의사는 아니었기에, 그 비용을 낼 수 있었단 사실은 그렇게 중요치 않았다.

  결국 믿을 건 자신의 두뇌와 몸 밖에 없다. 물론 에드먼드는 평소 매사를 돈으로 해결하던 그런 졸부 같은 사내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큰 무기 중 하나가 무력해진 상황이 달가울 리 없었다.

 

 [무려 77층이나 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의 완공식 소식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빌딩의 소유주인 월터 회장에 따르면...]

 

  라디오를 켜자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새벽에 있었던 소동은 아직 뉴스에서 흘러나오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아직 언론에 사건이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 보도를 제한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에드먼드는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는 채널 그대로 놔두고는, 침대에 누워 슬며시 눈을 감았다. 유치장 안에서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새벽부터 많은 일이 있어 피곤한 덕에 금방 졸음이 몰려왔다. 분명 이대로 잠이 들면 분명 악몽을 꿀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감은 눈을 다시 뜰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경위로 죄수 에드먼드 모젤이 경찰 호송 중 피랍되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당국에선 아직 구체적인 답변이 없는 상황입니다.]

 

  에드먼드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방안이 제법 어두워진 뒤였다.

  정말로 악몽이라도 꾼 건지 에드먼드의 셔츠는 땀에 축축이 젖어있었다. 눈을 뜬 뒤에도 한동안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건지, 그의 두 눈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자신의 이름이 겨우 현실로 그의 의식을 끌어올려 주었다.

  몇 시가 된 건지 시간을 확인하려다 방안에는 시계가 없단 사실을 확인하고, 옆에서 놓아둔 회중시계를 들여다봤다. 방안은 제법 어두워졌지만, 시계는 에테르가 만들어낸 희미한 빛 덕분에 현재 시각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시곗바늘은 어느새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에디? 방에 있어?"

 

  방문 너머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그다지 익숙해지고 싶지 않을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드먼드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목소리의 주인이 별로 반갑지 않기 때문인지, 또 한 번 노크 소리가 들려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상에 방에 불 좀 켜놓고 지내지. 설마 여태까지 자고 있었던 거야?"

 

  라나는 애초에 에드먼드의 대답 따위는 상관없었던 것 같았다.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곤 문가에 있는 스위치를 올렸다. 에테르가 만들어낸 환한 빛이 방안을 밝혔다.

 

 "멋대로 들어올 거면서 노크는 왜 한 거야."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 약간은 준비할 시간은 주는 게 예의잖아?"

 "뭐야, 그 얼토당토않은 예의는..."

 

  하나부터 열까지 제멋대로인 라나의 언행에 조금 지친듯싶었다. 에드먼드는 그 이상 투정을 부리지 않고 가만히 침대 위에 걸터앉아 라나와 베네딕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라나의 뒤를 따라 들어온 베네딕트의 손에는 몇 벌의 옷 꾸러미와 종이봉투가 손에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방 한구석에 위치한 테이블 위에다 올려놓았다. 그리곤 곧장 다시 문가로 가서 망이라도 보듯 서 있었다.

  땀투성이인 에드먼드를 바라본 라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 좋은 꿈이라도 꿨나 보네. 그렇게 땀에 흠뻑 젖어선. 마침 갈아입을 옷들 가져왔는데 잘됐네. 사이즈는 조금 안 맞더라도 작지만 않으면 되겠지?"

 "당신이 한 행동 중에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짓이네. 검은색만 있는 게 아닌 걸 보면, 저 흑백밖에 없는 녀석의 옷은 아닌가 보네."

 "죽은 남편이 입던 거라 유행은 한참 지났겠지만... 그래도 그때 제법 돈 주고 산 것들이니까 불평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겉보기엔 밝게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 어딘가엔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만만찮게 자기중심으로 보이는 에드먼드라도 그런 표정을 읽어낼 눈치는 있었다. 에드먼드는 잠깐 뭔가를 고민하는가 싶더니, 뒤통수를 긁적이며 짧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 남편 말인데... 스콧 중사의 건은 유감이야. 진심으로."

 

  라나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에드먼드의 얼굴을 쳐다봤다. 지금, 이 순간의 에드먼드의 얼굴에선 늘 그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던 오만함은 사라지고, 진심으로 숙연하게 과거의 사건에 애도를 표하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됐어. 당신한테 그런 얘길 들으려고 데려온 건 아니니까."

 

  라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물론 남편의 사건이 그녀가 귀족을 비롯하여 계급과 권력을 증오하게 된 원인이지만, 그 책임을 에드먼드라는 단 한 사람에게 물을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당신한테 그런 말 들어봤자 내가 하는 일들을 그만둘 생각은 없고."

 "그건 그렇겠지."

 

  에드먼드도 그런 목적으로 꺼낸 얘기는 아니었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괜히 머쓱해진 분위기에 라나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래도 고마워. 살다가 귀족에게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네."

 "아무래도 지금 와선 그 사건이 남의 일만 같지는 않아서 말이지."

 "동병상련이란 건가. 그의 경우와 당신의 경우는 완전히 같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뭐, 그런 생각이 들만하다고도 생각은 해."

 

  남편 얘기를 계속하다 보니 그가 그리워진 걸까, 라나의 눈가가 조금 젖어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을 보여주기 싫은 게 그녀의 자존심인가 싶었다. 괜히 고개를 돌려 베니가 서 있는 문가로 갔다. 그리고 조금 능청을 떨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난 잠시 나가 있을 테니 옷 갈아입도록 해. 그러고 있다간 감기 걸리겠어. 대체 무슨 꿈을 꿨길래 그렇게 흠뻑 젖은 거야?"

 

  에드먼드는 대답 대신에 쓴웃음으로 답했다. 라나는 그 이상 물을 생각은 없는지, 어깨를 으쓱하곤 방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몇 벌의 옷을 보며 에드먼드는 그냥 맨 위에 놓인 옷을 골라 갈아입었다. 라나의 말대로 옷은 아주 살짝이지만, 그에게 조금 컸다. 그렇다고 옷이 흘러내릴 만큼은 아니라 입을만한 정도였다.

  갈아입은 옷에선 세탁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냄새가 났다. 분명 라나의 남편 스콧 중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이 10년 가까이 되는 과거의 일이었다. 그 냄새에서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자유혁명군에 몸에 담고 있는 건지, 에드먼드는 조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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