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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각오는 하고 있어
작성일 : 19-09-06 10:23     조회 : 50     추천 : 0     분량 : 4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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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말이야, 찌까랑에 가거든 나한테 이 한 마디는 꼭 해주게. 식당 정리한 돈을 허브 사업에 투자하지 말라고.”

 “허브 사업이요?”

 “그래. 만나면 알게 돼. 그게 날 수렁에 빠뜨렸다네. 허브 사업 따위는 생각도 하지 말고 찌까랑 상가건물에 투자하라고 말해 주게. 물론 나는 듣지 않을 거야. 내가 원래 돈이란 놈하고 사이가 안 좋거든.”

 “원하시면 그렇게 말해 드리죠.”

 “그리고...”

 

 노인이 다시 탁자를 두드렸다.

 뭔가를 생각할 때 나오는 버릇인 것 같았다.

 

 “우리 아들. 동남아시아 문학을 전공한다고 했는데 내가 난리를 쳤어. 최소한 경영학 쪽으로 갈 생각하라고. 어차피 내가 망하는 바람에 국제학교 자퇴하고 힘들게 자기 길을 찾아갈 아이야. 그때 왜 격려해주지 못했을까.”

 

 노인의 목소리가 잠겼다.

 노인은 마른 침을 꿀꺽 삼기고 다시 말을 이었다.

 

 “죽을 때 그게 마음에 걸리더군. 용서를 빌고 싶었는데 그냥 떠나버렸어. 나한테 말해주게. 아들을 응원해달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까?”

 “그리고 술 마시고 나서 아이스크림 먹지 말라고 말해주게. 당뇨가 날 쓰러뜨렸거든.”

 “더 없습니까? 수첩 꺼내서 적을까요?”

 “없네. 더는 없어. 아무 미련도 없어.”

 “그 정도면 미련이 많으신데요.”

 

 **

 

 나는 눈을 떴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아침 7시 반이었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창문으로 따가운 햇살이 들어왔다.

 

 꿈이었을까.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노인의 음성은 꿈이 만들어낸 환청이었을까.

 

 나는 욕실에 가려다 다시 주저앉았다.

 땅그랑(자카르타 북서쪽 위성도시)에서 중고로 사온 침대가 삐걱거렸다.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쓰다듬어 잠을 쫓으며 잠시 망설였다.

 

 “손해 볼 건 없지.”

 

 나는 노트북을 켜 자카르타 한인회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지난 달 가입한 제트넷 와이파이가 천천히 한인회 주소록을 토해냈다.

 이제는 그 느린 속도에 답답하거나 조바심을 내지 않을 만큼 적응됐다.

 

 “제기럴.”

 

 한식당 ‘미가’가 실제로 있었다.

 주소록에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박혀 있었다.

 사장 이름은 박기성이었다.

 

 나는 재빨리 샤워를 마치고 블루버드 택시회사에 전화를 넣었다.

 택시 예약에 필요한 회화는 꿈에 나올 정도로 입에 붙었다.

 

 “사야 마우 빵길깐 딱시(택시 부르고 싶어요).”

 

 블루버드는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파란색 택시다.

 가격이 조금 비싸지만 안전하고 돌아가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다른 택시보다 ‘조금 덜’ 돌아간다는 뜻이다.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블루버드를 타보니 기사들이 인도네시아어를 잘 못 하는 손님을 태우면 이리저리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빡(아저씨)! 띠닥(아니요)! 띠닥 뿌따르(돌아가지 마세요)!”

 

 나는 5분이면 진입할 간선도로를 ㄷ자로 돌아가려는 기사에게 소리쳤다.

 기사는 뻔히 아는 길이면서도 잘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한바탕 사투 끝에 우리는 간선도로에 진입했다.

 

 지까랑은 자카르타 남동쪽에 있는 위성도시다.

 내가 사는 서북쪽 뿌리인다에서 대각선으로 자카르타주를 가로질러야 한다.

 차가 안 막혀도 대략 한 시간이 걸리는데, 오전부터 차가 막히니 몇 시간이 걸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간선도로부터 감시의 눈길을 멈추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수다 다땅(도착했어요)!”

 

 두 시간 쯤 됐을까.

 택시기사의 외침에 잠에서 깼다.

 기사는 내가 건네준 주소와 차창 너머 건물을 가리키며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나는 요금을 치르고 차에서 나왔다.

 

 지난밤의 비로 도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패었다.

 상가 사이의 골목과 집 앞마당도 침수된 곳이 많았다.

 자카르타에선 침수를 ‘반지르’라고 부르는데, 우기 때는 어디어디가 반지르됐다는 말을 인사처럼 나눴다.

 한식당 미가는 이런 난리통 속에 나무 간판을 달고 서 있었다.

 

 나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미가는 한옥 분위기가 나도록 통나무로 인테리어한 고깃집이었다.

 점심때가 다 됐는데 손님 한 명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사장은 빈 테이블에 앉아 머리를 긁적이며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맙소사.

 맙소사, 맙소사.

 

 나는 어젯밤 찾아온 노인의 15년 전 모습을 보았다.

 흰 머리가 검은 머리로 변하고 숱도 좀 많아진 쉰 살 정도의 중년이 거기에 앉아 있었다.

 머리와 주름살 말고는 노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깡마른 체형에 긴 얼굴에 툭 튀어나온 광대뼈까지 그대로였다.

 

 남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드러난 뻐드렁니마저 노인과 똑같았다.

 

 “누구십니까?”

 “박기성 사장님 되시죠?”

 “그런데요.”

 “식당을 준비하는 사람인데 뭘 좀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박기성 사장이 자리를 권했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다시 한 번 얼굴을 살폈다.

 몇 번을 봐도 지난밤의 노인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여길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식당 중에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골라서 왔습니다.”

 “한국에서 식당 하다 온 분인가요?”

 “아내가 식당을 했는데 세상을 떠났어요. 저는 경험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양반이 외국에서 와서 식당을 하시려고요?”

 “무턱대고 왔습니다. 그래서 힘듭니다.”

 “흐음.”

 

 박 사장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똑똑똑, 노인의 손가락에서 주름살만 지운 손가락이 똑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조언을 해주십시오. 전 아무 것도 모릅니다.”

 “하핫!”

 

 박 사장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드러난 이빨에 누런 담뱃진이 보였다.

 박기성이란 남자는 죽는 날까지 골초로 산 게 틀림없었다.

 

 “잘못 찾아오셨네. 저는 이 식당 곧 접을 거예요.”

 “그래도 조언을 해주실 수 있지 않나요?”

 “오늘 술 먹을 일이 생겼군요. 갑시다.”

 “어디로요?”

 “어디긴 어디에요. 술집이지.”

 “대낮인데요.”

 “점심도 먹고 술도 먹죠. 따라와요.”

 

 박 사장이 기사를 불렀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그의 밴을 탔다.

 

 **

 남자카르타는 서울의 강남 같은 곳이다.

 쇼핑몰과 유흥가가 밀집해 있고, 최고급 맨션과 아파트와 저택이 즐비하다.

 한국 교민 중 돈 좀 있는 사람이나 대기업 주재원들이 이곳 아파트에 모여 산다.

 

 나는 박 사장을 따라 남자카르타 세노파티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은 큰 한식당들이 모여 있는 한식 거리다.

 현지인들도 제대로 된 한식을 맛보고 싶으면 이곳을 찾는다.

 

 박 사장은 나를 골목 후미에 있는 고기집으로 안내했다.

 인테리어라 할 것도 없이 드럼통 너덧 개에 숯불을 넣은 허름한 식당이었다.

 우리가 앉자마자 현지인 종업원이 메뉴도 묻지 않고 돼지 갈비를 날라 왔다.

 

 “나는 이집이 좋아요. 여기가 청기와나 본가보다 맛있어요.”

 “고기라면 그냥 사장님 식당에서 먹어도 될 텐데요. 제가 팔아드릴 수도 있고요.”

 “우리 집 고기보다 여기가 맛있어요. 있던 고기도 벌써 다 치웠고.”

 

 나는 박 사장 앞에 앉아 꿈이 만들어준 기이한 인연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이 꿈인지 아니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꿈인지 나는 도통 알 수 없었다.

 내가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뭘 그렇게 빤히 봐요?”

 “아뇨. 잠깐 딴 생각을 했습니다.”

 

 박 사장이 빈땅 맥주와 소주를 주문했다.

 나는 한 달 만에 한국 소주를 마셨다.

 무슬림 국가라 주세가 높아 수입 주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작정하면 못 마실 것도 없지만, 한 병에 7만 루피(약 7천원)씩 하는 진로 소주를 마시기엔 아직 한국물이 빠지지 않았다.

 

 “그래, 왜 식당을 하려고 하쇼?”

 “하고 싶어서요.”

 “하고 싶다고 맘대로 되는 게 아닌데.”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박 사장이 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자카르타에선 술집이나 식당을 물론이고 쇼핑몰 카페에서도 마음껏 담배를 피워댔다.

 

 “그거, 하지마쇼.”

 “뭐 말입니까?”

 “식당 말이에요. 그거 하지 마요.”

 

 박 사장이 시원하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이 작은 식당은 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숯불 연기와 담배 연기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자카르타에 한식당이 많이 생기는 건 아시나?”

 “예. 알고 있습니다.”

 “생기는 수만큼 망하는 것도 아시나?”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자카르타에 한식당이 30~40%나 늘었다.

 그것은 동남아에서 가장 한류가 오래 가는 나라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카르타 최저임금은 2년 만에 60%나 올랐다.

 임금 상승 압박을 견디지 못한 봉제공장들이 망해가고 있다.

 이곳에서 20년씩 사업을 운영해온 공장 사장들은 아무런 기반 없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가장 만만한 새 사업이 무엇일까?

 바로 식당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고 자본도 적게 드는 식당에 교민들이 몰리고 있다.

 그러나 수요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망해가는 식당도 늘어난다.

 한국이나 자카르타나 자영업은 위험한 직종이다.

 

 “알면서 왜 하냐는 거요.”

 “제대로 망해보려고요.”

 “식당이 어디요?”

 “서자카르타 뿌리인다에요.”

 “하핫. 정말 망하려고 작정을 하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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