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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어쩌면, 여기서, 어쩌면
작성일 : 19-09-04 10:28     조회 : 46     추천 : 0     분량 : 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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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숨을 쉬었다.

 분홍색 질밥에 주름치마에 낡은 군용 백팩을 맨 할머니가 내게 인도네시아어로 뭔가를 말하며 계속 미소 지었다.

 웃을 때마다 온 얼굴에 주름이 꿈틀거렸고 부러진 앞니가 드러났다.

 

 “할머니가 뭐랍니까?”

 “자긴 자바 섬을 돌아다니면서 일 하기 때문에 여기는 1년에 몇 달 살지도 않는답니다. 그러니까 사장님이 계약을 하시면 여기 계속 살게 해달라네요.”

 “할머니를 받아준 세입자가 죽엇는데 건물 주인은 왜 안 쫓아낸 거죠?”

 “두꾼을 다들 두려워하는 거예요.”

 

 할머니가 다시 내 손을 잡고 활짝 웃었다.

 이 세상 누구도 그 순박한 얼굴에 거절의 말을 던질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뜨리마 까시.”

 

 할머니가 말했다.

 감사하다는 말이 인도네시아어로 뭔지 쯤은 나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인사 튀에 뱉어내는 긴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제우스에게 물어야 했다.

 

 “또 뭐랍니까?”

 “이 곳은 자기가 마법으로 보호하고 있고 여기 계시면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답니다. 미래와 현재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네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저도 몰라요. 신경 쓰지 마세요. 두꾼들은 헛소리를 하고 다니는 양반들이니까.”

 

 두꾼 할머니는 반둥에 가야 한다며 백팩을 들고 건물을 나갔다.

 캐서린이 다시 영어로 물었다.

 

 “계약은 언제 하실 거예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충동적으로 떠나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폐허 위에 있었다.

 계약을 한다면 다 쓰러져 가는 건물에 쥐들과 미친 마법사 할머니를 거느리고 살아야 한다.

 돌아갈 생각은 없지만 꼭 이곳이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제우스와 캐서린에게 말했다.

 

 “밥이나 먹죠.”

 

 **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나는 적도 이남에 와서 지구의 자전 속도를 실감했다.

 정각 여섯시에 해가 지기 시작했는데, 그 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몇 분 만에 주변이 깜깜해졌다.

 더운 날엔 해가 늦게 지는 북반구인의 감각으로는 낯선 풍경이었다.

 

 삽시간에 깔린 어둠의 장막 너머로 아잔(이슬람 사원의 기도 소리)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뭔가를 애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윽박지르는 것 같기도 했다.

 

 “아잔이 신경 쓰이죠? 저게 새벽 네 시에도 울려서 한동안은 잠을 설칠 겁니다.”

 “밤에도 이렇게 크게 들려요?”

 “확성기로 때리니까요. 한국인들 동네에선 확성기를 아파트 반대 방향으로 돌려달라고 뇌물을 주기도 해요. 저게 자장가로 들리면 인도네시아에 적응한 겁니다.”

 

 제우스가 뭔가 더 허세를 부리려 할 때 밴이 도착했다.

 우리는 아까 지나쳤던 대형 쇼핑몰로 갔다.

 

 “한식당으로 갈까요?”

 “아뇨. 나시고랭좀 먹어보죠.”

 

 우리는 3층 식당가에서 가장 큰 로컬 식당으로 갔다.

 지역에서 제법 유명한 식당인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나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나시고랭을 주문했고 제임스와 캐서린은 미고랭이라는 볶음짬뽕 비슷한 면 요리를 시켰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졌다.

 나는 식당 통유리에 부딪치는 물방울들과 머리채를 휘날리는 대추야자 나무를 보았다.

 제우스가 미고랭을 꿀꺽 삼키고 내게 물었다.

 

 “미혼이신가요? 식당 일을 할 땐 부인 역할이 정말 중요한데요.”

 “대기업 때려치우고 자카르타에 식당 차리는 걸 찬성해줄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아, 그렇군요. 그럼 주변에 요리를 해본 분이 안 계신가요? 한식 셰프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한국에서 데려오면 너무 비용이 많이 들고.”

 “아내가 만들어둔 레시피를 가지고 있습니다. 책으로 만들면 두 세권은 될 거예요. 전에 식당을 했었거든요.”

 “미혼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죽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우리는 말없이 식사를 했다.

 나시고랭은 조금 짜고 조미료맛이 강했지만 먹을 만 했다.

 밥알이 따로 노는 동남아 장립종은 볶음밥을 해놓으면 독특한 향미를 풍겼다.

 정적을 참지 못한 제우스가 다시 물었다.

 

 “여기 적응하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죠?”

 “네. 바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엔 생각보다 재미있을 겁니다.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한 동안에는 참을 만해요. 진짜 위기는 모든 게 익숙해질 때 옵니다. 더위도 뻔하고 사람들도 뻔해질 때. 그때 사람들이 ‘뿔랑’을 많이 해요.”

 “뿔랑이 뭔가요?”

 “돌아간다는 뜻이에요. 인도네시아가 익숙해지면 그때부터 회의가 시작되죠. 내가 여기서 뭐 하나,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나.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도 그리워지고.”

 

 그때까지 있을 것 같지도 않다는 말을 하려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회의는 이미 그 낡은 건물을 볼 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계약 하시면 제일 먼저 비자 문제를 처리해야 합니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에서 비자 받기가 가장 까다로운 나라에요.”

 “비자를 받으려면 뭘 먼저 해야 하나요?”

 “먼저 법인을 세워야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현지인 파트너와 법인을 만들고 그 법인의 동업자로 등록해야 비즈니스 비자가 나와요. 여기선 주식회사를 뻬떼(PT)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식회사를 만들려면 일이 너무 복잡해지고 돈도 많이 들어요. 그래서 그 아랫단계인 쩨베(CV)를 만드는 게 좋습니다. 일종의 유한회사죠.”

 “그럼 제가 그 쩨베인지 뭔지를 만들어야 하나요?”

 

 제우스가 옆자리의 캐서린을 가리켰다.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캐서린이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캐서린이 이미 째베를 가지고 있습니다. 식재료 무역법인인데 거기에 동업자로 등록해놓고 편법으로 식당을 운영하면 됩니다.”

 “대가로 뭘 줘야 합니까?”

 “매출의 5% 정도를 주시면 될 겁니다. 이면 계약을 작성해야죠. 일단 쩨베에 동업자로 등록되면 노동허가를 받고, 사업비자를 받고, 마지막으로 외국인 체류 허가증인 ‘끼따스’를 받죠. 그 단계 단계마다 이민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줘야 합니다. 뇌물을 주면 한 달 안에 해결되지만 안 주면 1년이고 2년이고 책상 밑에서 썩어가죠.”

 “비자문제도 처리해 주십니까?”

 “제가 맡은 건 식당 계약까지지만 원하신다면 아는 현지인 대행업자를 연결해서 비자도 처리해 드리죠. 식당 인테리어나 인력관리도. 하지만 대행료를 따로 더 주셔야 합니다.”

 

 제우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법적 용어를 나는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건건이 대행료를 요구하는 제우스와 매출의 5%를 챙겨가는 캐서린이 과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들이 내 저축통장에 들러붙은 거머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캐서린은 이름만 빌려주고 5%를 받는 겁니까?”

 “캐서린은 식당 회계나 인력 채용 등을 도와드릴 겁니다. 외국인은 이곳 세금이나 회계 문제를 건드릴 수도 없어요.”

 “그건 반가운 소식이네요.”

 “캐서린은 인도네시아의 여러 식당법인에서 일했어요. 원래 화교들은 태어날 때부터 회계장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것 같은 사람들이죠.”

 

 제우스가 캐서린에게 인도네시아어로 우리의 대화를 요약해 들려줬다.

 캐서린은 습관처럼 안경을 고쳐 쓰고 내게 영어로 물었다.

 

 “왜 식당을 열려고 하죠?”

 “아내가 식당을 했습니다. 아내의 레시피를 버리기 싫어요.”

 “식당은 힘든 일이에요. 아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캐서린도 화답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식당법인과도 일해본 적 있는데 힘들었어요. 한국인들은 조금의 불편함도 못 참아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소리부터 치죠. 식당 손님들도 그래요. 처음엔 놀라고 무서웠어요.”

 “여기 사람들은 소리를 안 지르나요?”

 “인도네시아인들은 소리치고 화내는 사람을 보면 귀신 들린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식당을 둘러보았다.

 한국처럼 각오한 표정으로 사방을 노려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대추야자의 넓적한 나뭇잎 사이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처음에 식당에서 일할 땐 매일 밤 울면서 잠들었어.”

 “일이 힘들어서?”

 “아니. 손님들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식당에 올 때 단단히 각오하고 오는 것 같아.”

 “무슨 각오?”

 “내게 조금의 불편함이라도 끼치면 용서치 않겠다 하는 각오.”

 “한국인만 그런 건 아니겠지.”

 

 아내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을 때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식당 안은 포크를 든 내 손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해졌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태연했다.

 음식을 뒤적이거나 접시를 옮기는 소리는 멈췄지만, 손님들은 두런두런 하던 이야기를 계속 했다.

 

 “정전이 자주 있나요?”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서 정전이 일상이죠. 자카르타 시내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에요.”

 

 몇 분 뒤 불이 다시 들어왔다.

 사람들은 다시 포크와 스푼을 들고 음식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나도 몇 숟갈 남지 않은 나시고랭을 마저 먹었다.

 

 마지막 한 수저를 들었을 때 다시 전기가 나갔다.

 이번엔 손님들이 태연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박수를 쳤다.

 어둠을 틈타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는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아내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여기서, 어쩌면.’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

 제우스의 대머리가 다시 반짝거리고 턱수염에는 미고랭 소스가 묻어 있었다.

 나는 제우스에게 말했다.

 

 “계약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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