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즐거운 편지'
-----
영실은 볼펜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노트에 적은 시를 눈으로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짧은 글을 적을 때는 모니터와 키보드보다 종이와 펜을 더 선호하는 그였다.
영실은 의자에서 일어나 서재를 나섰다.
거실로 나오니 창문으로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지난 시간 동안 매일 아침 늘 그래왔듯이, 오늘도 자신에게 이야기하였다.
"행복하자."
(프롤로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