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들이 누구지? 거기는 또 어디지? 공중 전화 부스 같기도 하고 시내버스 주차장에 있는 긴 의자 같기도 했는데……. 그런데 시내버스 주차장 대기실에도 그런 사각으로 된 유리가 있었나? 그 속에 앉아 있는 애들은 누구고, 옆에 앉아 있는 애들은 누구고, 밖에서 서성거리는 애들은 또 누구지? 안개 속으로는 왜 또 사라졌나?

　백두산도 한라산도 설악산도 지리산도 단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데 왜 그런 절경이 나왔을까? 그렇다고 등산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갈 겨를도 없었다. 그래도 산에는 자주 가야만 했다. 엄동설한에 뜨끈뜨끈한 구들목에 등을 지지려면 낙엽이 돼 산을 수북이 쌓은 솔잎도 솔가지도 필요해서도, 소 똥과 섞어 퇴비를 만들 톱밥에 필요한 죽은 나무가 필요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월동 준비를 하는 아버님의 호통이 무서워서 산에 올라갔다.

　명산(名山)이라고는 한번도 가 본적 없이 촌 구석에서 논이나 갈고, 밭이나 갈고, 소 똥이나 치우는 내가 왜 그런 산꼭대기에서 어리벙벙하게 앉아 있는 꿈을 꾸었을까? 성화는 왜 또 나왔을까? 성화 손을 잡고 있는 여자 애는 누구일까? 자식이 명문대학에 갔으면 공부나 할 것이지 연애 질을 하는 가? 그래도 부럽다. 아니다. 절대 부럽지 않다. 그 여자 애는 절름발이였다. 똑똑하고 잘난 놈이 뭐가 아쉬웠어? 도대체 어찌 된 꿈인가? 그럼! 그 앞에서 얼쩡거리다가 안개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애는 또 누구였나? 수현이 이었나? 아니지! 수현이는 절름발이도 아닐뿐더러 임자 있는 남의 남자나 탐하는 그런 화냥년을 떠나 내가 있는 데, 발정 난 수캐 같은 짓을 할 리가 없지. 절대 아니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수현이의 명예를 훼손하는 짓이지. 아이고 미친놈!

　그런데 그 여자 애는 누구일까? 여동생도 없는 무녀독남인 내가 왜? 그 애를 잠시라도 틈을 주지 않고 졸졸 따라다니는 어리광으로 가득한 여동생으로 여겼던가? 왜 내한테 빨리 집에 가자며 발을 동동 굴리면서 짜증을 냈는가? 누구지?

　남쪽의 어느 작은 지방 대학에 다니는 김근수가 찬바람 쌩쌩 부는 1985년 2월 4일 새벽 5시에 방금 전 꿈에 나와 잠을 깨우게 한 이수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녀와 있지도 않은 여동생 같은 그 애를 생각하며, 높은 산 정상에 해발 몇 미터란 문구를 넣어 꽂아둔 안내문 같은 학교 도서관으로 꾸역꾸역 기듯이 돌입하고 있었다.

　왜 거기가 나왔을까? 허리를 바짝 숙여 탱자나무로 된 울타리 아래를 도둑 고양이처럼 빠져 나가 뚜벅뚜벅 걸으면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거기가 어디지? 꿈속에 나온 친구들이 거기를 설악산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거기에 한 명도 없었을까? 누가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정말 거긴 한 명도 없었다. 단지 뿌연 안개뿐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형체 없는 친구들이 있었고 다정하기까지 했다. 그 애들은 또 누구였을까? 재잘대는 애는 누구였나? 그런데 왜?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까?

　수현이 같기도 하고 성화 같기도 한 그들 주위에 있던 친구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본 사람도 분명히 있었는데 그는 인사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그들은 뿌옇게 흩날리는 안개 속에서 바쁘게 웅성거리기도 했다. 뿌연 안개 속에 나온, 알 듯 말듯한 친구들과 형체들을 생각하면서, 그 애도 생각하면서, 의자에 앉았다. 잠시 두 주먹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 넣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콧바람이 책상 위를 뿌옇게 흐려놓고 있었다.

　“잘 잤어?”

　“응!”

　같은 과 친구인 이수경이 옆자리에 가방만 내려 놓으며 어깨를 툭 치고 나가자고 했다.

　“춥다. 네가 가서 뽑아와라.”

　추운 것보다 머리 속에는 온통 수현이와 성화로 변해버린 그들과 그들 주변의 인물이 있는 그 곳뿐이었다. 왜 나왔을까? 거기가 어딜까?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있던 근수가 귀찮은 듯이 수경이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수현이와 성화는 근수와 달리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대학을 학교 성적으로 따지면 그들과 근수는 전교 일등과 꼴찌의 차이였다. 그래도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건 같은 촌 동네에서 태어나 같이 자라면서 한때는 근수도 이들 부류에 있어서였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온 수경이가 근수 어깨를 툭 치며 따라오라고 했다. 일어서던 근수가 꼭두새벽부터 수경이 비위를 상하게 하는 말부터 쏙 골라서 하루를 시작한다.

　“야! 이 엄동설한에 수영하러 가냐? 꼴린다. 임마! 좀! 가려라.”

　이수경이 눈도 깜짝하지 않고 밖으로 고개를 까딱하고 앞서 가면서 말했다.

　“야! 그 소리 이제 지겹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따라 와!”

　앞서서 걸어가는 이수경은 꿈에서 나온 작달막한 이수현과 달리 늘씬한 서양식 몸매를 가진, 엉덩이는 오리인 섹시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오리 궁둥이가 신기하기도 하고 어떤 땐 엔도르핀을 끌어내기도 해 김근수는 늘 뒤에서 걸으며 음탕한 상상을 즐기기도 했다. 이수경도 김근수에게 자기 엉덩이를 보면 거시기가 불뚝거린다는 소리를 워낙 많이 들어서 이젠 식상해진 상태였다. 오늘도 많이 즐기기나 하시오 하듯이 엉덩이를 한층 더 실룩거리며 앞서 가고 있었다. 뒤에서 수경이 엉덩이만 보며 걷던 근수 머리에서 또 수현이가 나타났다. 꿈 탓일까? 수경이 엉덩이 탓일까? 아주 어렸을 때였다. 두메산골에 살았기 때문에 또래 친구라고는 수현이 밖에 없었다. 성화는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어서 가끔 만나는 사이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붙어 있었던 친구는 수현이 뿐이었다.

　“머슴아가 구멍에 손 넣는 게 뭐가 무섭다고. 비켜! 내가 해볼게.”

　수현이가 손가락을 구멍 속으로 깊숙이 쑤셔 넣다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벌렁 나자빠져 버렸다.

　“으악! 징그러! 축축한 뭔가 꿈틀거려!”

　그때가 여섯 살 때였다. 모를 심기전인 봄이었다. 논바닥에 쪼그려 앉아 흙 속에 있는 미꾸라지를 잡던 중이었다. 논 구멍에 손을 넣다가 놀라서 뒤로 나자빠져 있는 수현이 다리 사이에도 뽀얗고 벌건 구멍이 보였다. 그때 근수는 신기해서, 수현이를 놀라게 해 넘어지게 한 논 구멍에 손을 넣지 않고, 수현이 거시기구멍에 손을 쑤셔 넣다가 수현이를 한번 더 기절시켜 버렸다.

　“으악! 아파!”

　바로 손을 뺐지만 그날 수현이는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근수는 그날 양가 아버지에게 몽둥이 찜질을 당했지만, 그날 후로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수현이와 근수는 서로의 거시기를 만지는 걸 재미있어 했다. 그러다가 그게 나쁜 짓이란 걸 알게 되면서 그 짓은 하지 않았지만, 어른이 되면 실컷 넣고 만지자 하면서도, 고등학생 때부터는 실컷 넣는 예행연습을 하다가 실전도 신혼 부부처럼 했던 사이였다. 그때의 수현과의 추억보다 수현의 음부에만 몰두해있던 근수는 수경이가 여러 번 부르며 묻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야! 무슨 생각해. 들어가자!”

　커피를 다 마신 줄도 몰랐다. 수경이가 일어서면서 정독 실로 고개를 까딱할 때서야 종이컵이 비어 있는 줄 알았던 근수는 수현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응! 그래! 수현아! 가자!”

　벌떡 일어서던 근수가 깜짝 놀라며 다시 앉으며 다급하게 말을 했다.

　“야! 수현아! 먼저 들어가라. 생각할 게 좀 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뭐? 수현이? 이 자식이…….”

　날카로운 칼날 같은 눈으로 노려보다가 한 소리를 했다.

　“너 지금 꿈 꾸냐? 정신차려 임마! 수현이 같은 소리하고 쳐 자빠졌네. 날 샜다 자식아!”

　이수경과 이수현! 하필이면 끝 자만 다른 이 두 사람의 성격은 아프리카와 시베리아라고 근수는 간혹 구분을 짓기도 했다. 그런데 아닐 때도 있었다. 가끔씩은 둘이 엇비슷한 중간의 기온을 가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사 계절과 똑 같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어! 아니다. 어릴 때 친구가 새벽에 꿈에 나와서 그 애 이름이 불쑥 나왔네. 미안! 먼저 들어가!”

　이수경이 김근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이런 성격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