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그런 말을 꼭두새벽부터 할 필요까지 있을까? 그것도 내한테. 기분 더럽게. 등신 같은 새끼! ‘으악!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더러운 기분보다 요동치는 심장을 붙들어 매 안정시키는 게 더 힘들었던 이수경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래 위로 한번 훑어보던 이수경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민망한 것보다 배설물을 밟은 기분이었다. 미친 새끼! 나를 앞에 두고 이불도 아닌 머리 속에서 수현이란 년과 섹스를 했단 말이지. 더러운 새끼! 어이 씨! 저런 걸 친구라고. 너 오늘 하루 종일 그렇게 뻘떡 서 있거라. 절대 죽지 마라. 저걸 붙잡고 싹싹 비비며 빌어줘? 저 상태일 때 본드를 발라버려! 그런데 저 속의 상태는 지금 어떨까? 불뚝 선 남자의 성기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이수경의 눈이 자연스레 김근수의 아랫도리로 내려 갔다.
빨간 립스틱이 임자를 잘못 찾아간 것처럼 수경이 얼굴을 벌겋게 칠한 것 같았다. 못 본 척 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근수보다 자기가 더 민망한 것 같았다. 너는 오죽하랴? 란 생각도 같이 하고 있었다. 아! 꼭두새벽부터 어쩌다가 이런 인내를 요구하는 고통이 오는가? 외면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세계 최고의 요조숙녀처럼 위장도 해야 했다. 위엄차게 걸어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가만! 친구? 수경은 피씩 하는 웃고 말았다.
친구? 암! 암! 맞지. 너와 난 애인이 아닌 단지 친구! 그럼! 얼마 전에도 좋아하는 남학생이 있는데 쳐다 보지도 않는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때 세상 사람 절반은 남자라며, 좋은 남자가 언젠가는 올 거라며, 감싸 안아 위로를 해준 나의 소중한 친구!
그런데 왜 이렇게 자존심이 상할까? 그런데 그건 뭐야? 힘이 좋은 건지 아니면 조절이 불가능해 바로 싸는 놈! 조루? 별별 생각을 하던 중 어느새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애무를 당한 것처럼, 팬티에서 질퍼덕한 느낌을 느꼈던 수경이가 화들짝 놀라는 동시에 가슴도 콩닥거리는 걸 느끼고 있었다.
어이 씨! 이 느끼한 기분. 참을 수 없었던 수경이가 화장실로 불이 나게 쫓아가 젖은 음부 주위를 닦아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손가락이 어느새 음부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근수도 뻘떡 서 있는 거시기를 겉옷으로 가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낑낑거리고 있었다.
‘어이 씨! 꿈 속에서만 있지 말고, 앞에서만 알짱거리지 말고, 둘 중의 하나라도 지금 여기서 필요한데. 어이 씨!’
뒤숭숭한 꿈에서 나온 수현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때 궁둥이를 살랑거리며 앞서간 수경이의 미니스커트 아래로 허옇게 보이는 허벅지와 커피를 마시며 접은 허연 다리 사이로 보일 동 말 동한 미니스커트 속의 세상들이, 겨울도 아닌 봄도 아닌 이불 속도 아닌, 바깥에서는 찬바람 쌩쌩 부는데, 그것도 화장실에서, 옆에 있지도 않는 두 여자와의 동침에서나 나올 욕정을 시원하게 해소한 근수가 한 여름 길바닥이 널브러진 지렁이가 된 채 화장실에서 나올 때, 수경도 똑 같은 상태로 나오다가 근수와 눈을 딱 마주쳤다. 배시시 웃으며 옆에 서서 자기 어깨로 근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너는 어떻게 시도 때도 없이 그러냐? 욕구조절 불가능 장애 환자야?”
“에이 씨!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어. 꼭두새벽부터 도서관에 와서 생각한다는 게 고작 그거냐? 나이도 어린 게 어떻게 갓 시집간 새색시 같은 상상을 하고 있어?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공부를 해라. 공부! 3년은 번개처럼 지나간다. 내가 군대 가서 휴가 나올 때 밥이라고 사줘야 될 거 아니냐! 군바리 휴가비로 밥 사 먹을래?”
“걱정 마! 자식아! 아직 2학년도 안 됐다. 김 세게.......”
“세월 금방 간다.”
“퍽!”
“아야!”
수경이가 어깻죽지나 주먹으로 근수 신체 어딘가를 가격한 건 아니었지만 꼭두새벽에 정신을 가격한 건 맞았다. 지나치던 여학생을 잽싸게 피할 때 근수 다리가 휘청거리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벽을 꽝하고 박아버린 것이었다. 천만다행이었지, 만약에라도 벽이 없었다면 통로에 나자빠져 망신만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학생은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힐끗 쳐다보며 ‘당신 잘못이잖아!’ 란 난처한 표정으로 억울해하면서도 한심한 놈으로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바로 앞 전의 모든 행위를 통틀어 민망했던 근수가 여학생을 희생양으로 삼아, 방귀뀌고 주위 사람에게 덮어씌우듯이 치졸한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이봐요! 쳐다 보지만 말고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죠!”
말만 그랬지 근수의 말에는 기분이 나쁘다는 그런 어투는 없었다. 능글맞게 웃으며 한 싱거운 농담에 불과했지만, 여학생이 오히려 집에서 자기 부모에게 야단을 맞았는지 아니면 여성들에게 정기적으로 오는 그날인지, 굉장히 애민하게 받아들이며 당차게 대들었다.
“제가 박은 게 아니고 아저씨가 비틀대다가 박았잖아요. 남자가 다리 힘이 그렇게 없어가지고…….”
방금 전에 힘만 빼지 않았다면, ‘어~~’, 이빨을 꽉 깨물었다가 풀면서 말했다.
“나! 아저씨 아닌데. 겨우 21살 총각인데…….”
수경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물었다.
“이 아저씨! 아저씨 맞아. 그런데 새내기? 무슨 과?”
“예! 맞아요. 정치 외교학과! 그런데 언제 봤다고 반말 이에요?”
여학생의 눈이 바깥 날씨보다 더 차가웠다. 근수가 먼저 고개를 숙여 “죄송합니다!”하면서 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이 가버렸다. 그러나 이수경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효력을 발휘할 기회를 놓쳐 버렸다. 도망치던 근수가 다시 뒤돌아 와서 수경이 뒷덜미를 붙잡아 질질 끌고 있었다. 수경이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떤 동물처럼, 연명하고 싶어 안달이 난 동물처럼, 발버둥치며, 앙탈을 부리며 여학생에게 되돌아가려고 했다.
“야! 이거 놔!”
“하지 마라. 저 애는 아직 고3! 너는 아직 1학년! 어깨 힘 빠지고 고 3 때를 벗기려면 세월이 필요할 때 아니냐! 저 애는 아직 무서울 게 없는 저 애 학교의 제일 큰 언니! 오케이?”
“어이 씨! 저 과로 전과해서 저년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겠다”
“우리는 공대다. 재수해서 내년에 소 발에 쥐 밟히듯이 가봐야 저 애 후배밖에 더 되겠나? 저렇게 당찬 선배에게 이길 자신 있어? 그냥 가던 길이나 갑시다.”
김근수가 이수경을 대신해 여학생과 눈 깜짝 할 정도의 세월 동안 눈을 마주쳤다가 다시 허리를 구십 도로 굽혀 내려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이수경을 질질 끌고 갔다. 여학생도 끌려가는 이수경을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가는 길로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