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말을 꺼내지 말던가 할 것이지 항상 궁금증을 유발시켜 놓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답을 내버리는 습성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오히려 점잖다, 양반이다, 선비다, 모든 평가가 칭찬 일색이다. 그러나 같이 사는 사람에겐 앞에서 말한 짜증을 내게 하는 짓이고 그 다음으로 걱정을 유발 시키는 짓이고, 나는 왜? 외롭게 만들고,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인가? 자책하게 만들고, 고통도 같이 가져 오게 하는 잘못된 배려이다.
가끔씩 나를 정말로 쓸모 없는 인간이 돼 나 자신을 증오하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이 행위는 정말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배려인 줄은 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아내에게 할 행동은 아니라고 은희는 생각하고 있었다. 차라리 오빠처럼 가감 없이 쏟아 부어 버리고, 바로 뒤에 사과를 받는 게 훨씬 편했다. 또 은희는 어릴 때 그렇게 길들여져 있었다. 또 기다려야 하나? 같이 늙어가는 주제에 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는 걸 강력히 직시시켜주기 위해 눈에 힘을 잔뜩 주고는 빤히 노려본다.
기어이 콧방귀 뀌는 소리를 들려 주고 시작했다.
“오래 전일인데 어떤 놈이 당신 오빠 일기장을 보고는 ‘너! 누구 좋아하는구나’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모조리 불살라버렸잖아’
그 말에는 정숙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도 같이 내쉬었다.
“맞아! 군대 가기 전날 오빠가 어릴 때부터 써오던 일기장을 나만 아는 곳이 넣고는 자물쇠를 걸었어. 그리고 그 자물쇠를 뒷산 밤나무 아래에 묻는 걸 내가 봤어. 궁금해서 보려고 했는데 숫자가 적힌 봉인표로 꽁꽁 봉인을 해둬 못 봤어. 그런데 그 안에 내용이 그 언니겠지? 그렇지?”
“당연하지. 그 놈이 일기장만큼은 서랍장에 넣어 자물쇠로 꽁꽁 채워뒀는데 우리가 결혼하지 며칠 전이었어. 같이 한잔하고… 아! 그때 당신도 같이 마셨어. 내가 당신 옆에서 잔다고 하니까 때려 죽일 기세로 노려 보더라. 우리가 벌써부터 같이 잔 사이인 줄 눈치챘으면서도 그날따라 엄청 동생을 아끼는 오빠인척 하더라. 그래서 그 놈 옆에서 자는 척하다가 당신 방으로 가려고 하는 데 일기를 쓰고는 바로 골아 떨어지더라. 살짝 훔쳐봤는데 그건 일기장이 아니고 거의 20년 동안 쓴 장편 소설이더라. 그 속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애 이름만 있더라. 그걸 소설이라고 하긴 좀 그렀지?”
“혹시 내 이름도 있었어? 어떻게 적혀 있던데?”
“안타깝게도 당신 이름도 내 이름도 없는 가슴서린 하나의 짝사랑 일기더라. 그걸 불사르지 않고 출판사에 내면 그 놈은 평생 일안하고도 먹고 살 건데 그 놈의 불뚝하는 소갈머리 때문에 이 모양 이 꼴로 살지. 아이고 등신 새끼”
은희가 이를 꽉 깨물었다가 원위치로 돌리고는 노려본다.
“그런 말 하지 말랬지. 등신은 그렇다 손치더라도 오빠가 사는 꼴이 어땠어? 도둑질을 해? 사기를 쳐? 오빠보고 골프 비를 내라고 한적이 있어? 왜? 왜? 우리 오빠가 어디가 어때서…….?”
그리고는 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울기만 했다.
“여보! 내가 그 놈하고 친하다가 보니까 그 놈한테 일상적으로 하는 말을 했어. 미안해. 미안! 미안! 내가 당신 오빠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당신도 알잖아”
이 말은 달래려고 하는 말이었으나 전혀 반대의 의미를 가졌다는 걸 알고는 말한 본인도 ‘아차’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런 반응도 없이 잠시 노려보다가 더 울기만 했다. 신랑이 한 말은 틀린 말은 절대로 아니었다. 또 오빠는 쓰러지기 전에는 등신은 절대로 아니었다. 사는 꼴도 절대로 이런 삶이 아니었다. 쓰러지고 난 뒤에는 이 오빠! 신랑이 하는 말이 전적으로 바른 말이다.
그래도 은희는 오빠가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다.
급성심근경색에도 살아온 게 대단한 것이 아니고 그 병은 사라졌지만, 뒤 따라온 기억상실증으로 오빠는 처자식 말고는 모든 걸 잃었다. 건강을 잃고,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그 후유증으로 폐업을 하고 전 재산을 날려 먹고, 빚더미에 올라서도 그런 병에 한번도 걸리지 않은 사람과 똑같이 살고 있다. 오히려 그런 병에 걸리지 않거나 그런 부도가 나보지 못한 사람보다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게 살고 있다. 돈도 마찬가지다. 그전보다는 못하지만 같이 살고 있는 이 오빠보다는 조금 적지만 중산층 중에는 상위다.
그런 오빠가 사는 꼴이 어땠어? 기억상실증에 걸려 퇴원하고 오빠는 3년 동안 하루 세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았다.
사라진 추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빠는 사라진 자아를 되찾으러 다녔다. 자기가 누군지도 뭐 했던 사람인지도 모르고 다시 세상에 나온 오빠는 자아를 찾던 중 자아보다 자신이 뭐했던 사람인지를 아는 게 우선이라는 걸 깨닫고 사무실에 있는 책이란 책은 모두 끄집어내 읽었다고 했다. 그 동안 새 언니는 병실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릴 때보다 더 조마조마했다고 했다. 저러다가 영영 남편을 잃을까 두려워 사무실 앞 출입구에서 한번도 앉지를 못하고 서성여야 했다고 했다. 그렇게 3년을 보내면서 오빠는 자기분야에 다시 전문가가 되었다고 했다.
그때 오빠는 먹고 살기 위해서는 다시 석유화학제품 시험 분석을 위해 화학과에도 가야하고 선박관련을 일을 하기 때문에 조선과도 다시 가야 된다고 고등학생처럼 공부를 하다가 화학책을 다시 보면서 기억이 살아났다고 했다. 물론 선박관련 서적을 보면서 다시 기억이 살아났다고 했다.
딱 3년이 걸렸다.
그 사이 조카들은 남들 다 가는 학원 한번 가보지도 못하고 대학에 진학했고 막내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런 오빠가 사는 꼴이 어땠어? 등신도 기억상실증으로 된 등신도 과거의 일이다. 무슨 이유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과거의 상처를 기억해내고 그걸 적용시키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등신이 아니면 오빠보다 사는 꼴이 수백 배는 잘 살아 되는 게 아닌가? 이 생각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휴대폰 진동 소리에 눈물을 멈추어야 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당연히 받지 말아야 할 전화였다. 그러나 감정이 너무 북받쳐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 오빠를 보는 시각을 일깨워준 고마운 사람의 전화였다.
“은희야! 정말 미안한데….”
해숙이가 목이 젖은 목소리였다.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화가 났다. 등신도 아니고 오빠처럼 저런 꼴로 사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리고 은희는 오빠와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