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은 오감이 찌릿하면서 어제 상상한 그 현상이 또 나타나 화장실부터 먼저 가고 싶었지만 일어설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겠는데 알아듣기 쉽게 말해 줘”
“그 참! 출근하자마자 이런 말부터 시작하면 안 되는데. 할 수 없죠. 언니가 하루 종일 그 생각에 몰두해 일을 못하면 안되지. 귀 좀 더 바싹 붙여봐요”
시원이가 자리에서 일어서 아예 쪼그려 앉아 귀를 대고 있었다.
“걔 거기가 항상 발기된 상태로 있는 것처럼 보여서 교장선생님이 붙여준 별명이었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발기라니”
시원이가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지현이가 시원이 가슴을 검지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깜짝 놀란 시원이가 다른 자리를 두리번거리고는 다시 소곤대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나처럼 크단 말이야?”
지현이가 까르르 소리 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원이가 굉장히 공격적인 질문을 했다.
“너! 본적 있어?”
지현이가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눈을 잠시 감고 그때 그걸 떠올리는 것 같았다.
“당연한 말씀. 우리 신랑보다 더 많이 봤지. 우리가 부끄러움을 알 때까지”
“그게 무슨 말이야? 부끄러움을 알다니? 그럼 너도 그 놈과 사귀었어? 숙이라는 사람이 애인이라고 했잖아. 너는 알면서도 만났어?”
지현이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시원이는 더 깨물어 싶어하는 지 다리가 저릴 때도 됐는데도 계속 쪼그려 앉아 묻고 있었다.
“언니! 무슨 상상을 하셔? 제 말은 개울에서 놀 때 얘기야. 남자 여자 구분 없이 놀 때. 팬티가 젖었다고 혼을 맞기 싫었던 시절에 얘기입니다 요”
그때서야 시원이가 헛웃음을 한번 세게 치고는 자기 자리에 가 앉아 허탈한 듯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볼 건 다 봤네”
“당연하지. 그런데 언지! 걔한테 관심이 많은 것 같아. 내가 다리 한번 더 놔줄까? 서러운 건 언니일 텐데. 그래도 괜찮겠어?”
시원이 미간이 좁혀졌다. 언짢은 표정이 역력히 드러나 보였다. 평소 성격이 나왔다.
“내가 서러울 게 뭐가 있어?”
지현이가 잠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양팔을 겨드랑이 밑으로 넣고는 시원과 눈을 마주쳤다.
“언니! 동생 봤지. 걔 각시”
시원이 코에서 바로 웃음이 쳐지고 있었다. 입술을 툭 내밀었다.
“게임도 안 된다는 말이네. 그래! 인정. 그런데 이상한 건 숙이라는 그 사람은 자존심도 없어? 왜 계속 그 놈을 찾지. 내 같으면 죽을 때까지 보기 싫어 할건데”
지현이가 씁쓸하게 입을 한번 다시고 말을 그 집안의 특성을 설명했다.
“숙이가 내 친구고 좋은 애는 맞아. 그런데 그 집안이 문제야. 굉장히 이기적이야. 언니도 알잖아. 걔 이모도 더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아. 자기들이 필요한 게 있으면 간이 빼줄 것처럼 살살거리다가도 손해 본다 싶으면 언제 봤냐는 식으로 바로 돌아서는 그런 집안이야. 숙이만 그런 점이 없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면 조금 덜하다 뿐이지 똑같아.
이해는 하고 있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원이 생각도 숙이 집안과 비슷한 걸 지현은 느꼈다.
“사람들이 다 그렇잖아. 나도 그렇고. 고객들 만나보면 말은 전부 청산유수처럼 바른 말만 하지만 자기가 손해 본다 싶으면 그들 입으로 욕한 사람들보다 더 심하게 욕 들어 먹을 짓을 하잖아”
지현이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목소리도 약간 흥분이 돼 있었다.
“그래! 언니! 바로 그거야. 방우가 지금 나서지 않고 숙이 동생에게 숙제를 내 준 건 상대 진영의 약점을 주고 너는 그렇지 않는지 확인하라는 말이야”
시원이가 고개를 숙여 어슴푸레한 눈으로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지현이가 묻는다.
“언니! 왜? 내가 잘못 집었어?”
“그게 아니고 방우가 상대 진영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지 않고는 그들 약점을 상세히 조사할 일이 없잖아”
지현이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반대야. 상대가 약점을 가지고 있어서 아예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하는 거야. 상대를 언니도 본적이 있어. 지난번에 자기 친구들을 한 무더기로 데려와 보험 가입한 남자 기억나지?”
인상을 찌푸려 생각을 하다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내한테도 야한 농담으로 시답잖은 소리하던 사람 말이지?”
“맞아. 준우라는 동기인데 걔가 방우를 알면서도 직접 도움을 청하지 않고 무영이라는 친구에게 부탁을 했어. 걔를 통해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한 게 걔한테는 치명적인 실수였어. 말하자면 너 같은 시답잖은 놈과 말하기 싫다는 마음을 전한 것 밖에 안된 셈이지. 그 놈 약점을 방우가 꽉 쥐고 있지만 나서지 않으려고 하는 건 그랬다가는 숙이와 방우 관계가 다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돼 있어. 방우가 생각하고 있는 건 언니 친구 있잖아. 숙이 이모. 방우가 준 자료를 숙이 이모가 세상에 터트려주길 바라고 있어. 한방에 모조리 제거하려고 한다고 하더라”
시원이가 얼른 이해를 하지 못하고 물었다.
“복희가 무슨 힘이 있어 터트려? 이해가 안되네. 또 그 성격에 나서려고 할까?”
꺼내기 싫은 말을 할 때 지현은 항상 뚫어지게 쳐다보는 습관이 있었다.
“하기 싫으면 하지마. 내하고 관련된 일도 아닌데 뭐”
지현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니! 언니하고도 관련될 수도 있지. 그건 언니가 방우를 아예 만나지 않을 때 일이야”
시원이 눈이 크게 떠졌다. 몸을 바짝 붙여 지현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이유를 얼른 듣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 동네가 더럽잖아. 정치하는 놈들. 방우도 그쪽 습성을 잘 알아서 선수를 치려는 거지. 첫 번째 희생자가 숙이 이모고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근식이와 숙이 이모의 불륜. 방우가 그걸 가지고 숙이 이모를 압박하려고 하는 거야. 그리고 언니!”
지현이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시원이 손을 잡았다. 시원이 입 꼬리가 헛웃음과 함께 한쪽으로 치켜져 올라갔다. 눈치를 벌써 차렸다는 의미였다.
“방우 그 놈 무서운 놈이네. 무슨 말인지 알았다. 내가 복희에게 말을 할게. 그런데 근식이가 가만히 있을까? 그래도 연인인데”
지현이가 전혀 엉뚱한 질문으로 시원을 이해시켰다.
“언니가 보기에 어느 놈이 더 바람둥이 같아?”
“그야 당연히 근식이지. 걔 정말 웃기는 놈이야. 어떻게 둘을 한꺼번에 가지고 놀아. 정미 걔도 웃기는 년이야. 복희하고 근식이 사이를 알면서도 끼어들어 사랑놀이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돼”
지현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말리지 않은 건 근식이 잘못이 아니라 그 여자들 잘못이라고 지현은 보고 있었다.
“언니! 내 친구를 절대 욕할 수는 없어. 알면서도 근식에게 매달리는 그 사람들 잘못이라고 봐. 그리고 근식이와 방우는 생각이 똑같아. 자기들은 절대 피해를 안 보려고 해. 그 말은 상대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고. 그러니까 언니가 숙이 이모에게 말해줘. 준우라는 애가 나한테 하는 짓 봤지. 한번 도와 줘”
시원은 한숨을 내쉬고 허탈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정말 무서운 놈들이네. 내가 나서지 않으면 나도 피해를 본다는 말로 들린다. 이 참에 년 놈들 사랑놀이도 끝내야 된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럼! 나는 뭐야? 좀 억울하네”
지현이가 야릇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입술을 쑥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