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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07 23:01
[역사] 조선시대 쌀의 용도
  글쓴이 : 스토리야
조회 : 2,212  
   http://story.ugyo.net/front/sub04/sub0402.do [272]
   http://story.ugyo.net/front/index.do [264]
◆ 조선시대 쌀의 용도

1. 쌀
우리 나라에 벼농사가 시작된 시기는 한강 지역의 흔암리 유적(경기도 여주)과 금강의 국송리 유적(충남 부여)에서 대개 기원전 10~15세기경까지로 보고 있다. 이 유적들에서 탄화미가 발견되었고, 이때의 토기에 왕겨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어 이러한 추론을 하게 한다. 그러나 벼를 재배한 시기에 대해서는 학계에 논란이 많다.
쌀은 인디카(Indica)종과 자포니카(Japonica)종으로 나뉜다. 인디카종은 입자가 가늘고 길며 점성이 적다. 자포니카종은 입자가 짧고 점성이 있으며 온대 지역에서 생산된다. 우리 나라는 자포니카종을 경작하고 있다.
점성이 있는 쌀을 좋아하느냐, 푸슬푸슬한 쌀을 좋아하느냐는 기호의 문제이며, 어떻게 조리하여 먹느냐 하는 조리법과도 관련이 있다.
기름에 볶아 고기, 유제품, 채소, 향신료 등을 섞어 먹는 지역은 점성기가 없는 인디카종을 좋아한다. 그러나 첨가하여 볶거나, 볶지 않고 순수하게 밥을 지어먹는 지역에서는 점성이 있는 쌀을 좋아한다.
쌀맛은 쌀 전분의 구성 성분인 아밀로오스의 양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데, 이것이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각국의 쌀맛의 기초가 된다.
쌀의 품종에 따라 아밀로오스의 양이 7~34%에 이른다. 아밀로오스의 함량이 낮은 쌀밥은 점성이 있어 연하고 반짝이는 광택이 있다. 아밀로오스의 함량이 높은 쌀은 푸슬푸슬하고 딱딱하며 광택이 없다. 따라서, 아밀로오스의 함량이 비슷한 쌀을 먹고 있는 사람들은 같은 기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밥
곡물 음식이 발달된 과정을 요약해 보면, 죽, 찐밥, 찐떡, 끓여 짓는 밥의 순서로 보고 있다. 부족 국가 시대에 농사를 짓게 되면서, 특히 벼농사를 짓게 되면서 곡류가 주식의 위치에, 어육류, 채소류가 부식으로 자리 잡아 주·부식의 분리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당시 지금처럼 밥과 반찬의 완전한 분리가 이루어졌다고는 보기 힘들며, 정확히 어느 시기부터 주·부식의 분리가 이루어졌다고 정의를 내리기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소형 용기(小形容器)가 이 시기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주·부식의 분리를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전의 수렵·채집의 단계에서 농경이 보급됨으로써 주·부식의 분리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삼국 시대 고분에서 대형의 쇠솥(鐵釜)이 출토된 것과, 벼의 생산량이 많았다는 기록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밥짓기가 시작되고 보급되는 이 시기에는 장, 포, 해를 위시하여 각종 찬물이 보편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기에 쌀, 보리, 조 등을 끓여서 밥을 지어 주식으로 하고, 장, 포, 해 등을 찬물로 한 일상식의 기본 구조를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죽과 떡의 형태는 분식형(粉食型)이며, 찐밥과 찐떡은 입식형(粒食型)인데, 쌀의 조리는 분식형에서 입식형으로 발달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이유는, 현재에도 전기 밥솥이 끓여 짓는 밥의 형태로 밥을 짓도록 고안되어 있는데, 이는 쌀을 가루로 내어 시루에 찌는 형태든지 그냥 낟알의 형태로 찌는 것은 조리하는 데 연료의 소모가 많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나 끓여 짓는 밥의 형태는 도정한 쌀에 직접 물을 붓고 가열하면 쉽게 밥이 되므로 찌는 방법보다 시간과 연료의 손실이 적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양의 밥을 할 경우에는 찌는 형태를 취하고는 있으나, 이 모두가 쉬운 형태인 입식의 형태이다. 밥이 일상 주식의 자리를 잡게 되자 떡은 의례식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3. 병과류(떡)
떡의 기원은 낟알을 가는 돌확과 찌는 기구인 시루를 사용했던 청동기와 철기 문화 시대인 고조선 부족 국가 시대로 알려지고 있다.
부여, 동옥저, 마한 등의 부족 국가에서 오곡이 생산되었음을 말해 주는 기록이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있고, 이 책의 '변진조'에 오곡급도(五穀及稻)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시기에 이용된 떡의 재료는 황해도 지탑리와 평양 남경리 유적지에서 발견된 석기 시대 곡물인 피, 기장 조, 수수, 콩이나 보리 등의 잡곡과 함께 쌀이 이용되었으리라 추적된다.
이 곡물들은 갈돌에 갈아 시루에 쪘다면 이 음식이 가장 먼저 만들어진 떡의 기본형이 될 것이고, 이 기본형은 시루떡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 시기에 찐 떡류 이외에 친 떡류, 지진 떡류, 삶은 떡류 등 조리법을 달리한 원초적 떡 종류도 있었을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즉, 곡물을 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찌면 시루떡과 같은 찐 떡류가 되고, 시루에 찐 다음 안반에 치면 인절미, 절편 같은 친떡류가 될 것이고, 가루를 반죽하여 지지면 지진 떡류, 반죽한 것을 삶으면 삶은 떡류가 되었을 것이다.
또, 농경 중심의 부족 국가였던 부여, 옥저, 마한 등은 기복, 기풍, 추수 감사 등의 제천 의식, 애니미즘(animism)의 우주관에 입각한 제신에 대한 신앙 의식에 바탕을 둔 영고, 무천, 동맹, 시월제 등의 제천 의식이 발달하였고, 이 때 바쳐진 음식의 한 가지가 곡물로 만든 떡이었을 것이며,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무속 행위나 고사 행위 또는 부락제 등에서 시루떡을 시루째 놓고 제를 지내는 풍습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족 국가 시대에 등장했던 떡은 삼국 시대로 오면서 벼농사 중심의 농경 경제 사회에 힘입어 더욱 발전된다. 신라 시대에는 명절 음식과 계절식이 있어 대보름에 약밥, 단오에 쑥으로 만든 수리취떡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떡은 삼국 시대에 이르러 밥과 반찬으로 차리는 주·부식 분리형의 일상식 구조가 형성되기 이전까지는 상용식의 하나였으나, 조리법이 간편한 밥짓기법이 발달되어 일상식으로 밥이 주식화되자, 떡은 의례 음식 또는 별미 음식으로 옮겨졌다고 추정된다.
이렇게 원시 농경 시대에서 시작된 떡은 삼국 시대를 거치면서 통일 신라 시대, 고려 시대에 이르러 양곡 증산에 의한 일부 계층의 경제적 여유와 숭불 사상에 입각한 상하 계층간에 구분 없이 육식 절제 풍습으로 절기에 따른 밤설기떡 등 특미의 떡을 다양하게 발달시켰다.

1)의례 음식에 쓰이는 떡의 의미
출생 21일째인 삼칠일에는 백설기를 만들었고, 외조모가 찰떡과 시루떡을 해 주는 풍습도 있었는데, 이때는 밖으로 축의 음식을 내지 않았다. 이는 아기와 산모가 아직 성스러운 신계에 속해 있음을 의미한다.
백일, 돌 때에는 백설기, 팥, 수수경단, 오색송편, 인절미 등을 만들어 이웃에 돌렸는데, 특히 백일 때는 100집에 백일떡을 나누어 먹어야 명이 길어진다 하여 백설기를 돌리는 풍습이 있었다.
송편은 속을 넣은 것과 안 넣은 것을 만들었는데, 이는 속이 있는 것은 아기의 속이 차라는 의미이고, 속이 빈 것은 뜻이 넓어라는 의미였으며, 찰떡은 차지고, 단단해지라는 기원이 담겨 있었다.
의례 음식에서 쓰이는 백설기는 원시적이고 종교적인 떡으로 흰색의 관념에 의한 신성 관념의 상징적 제물의 의미로 본다. '희다'라는 형용사는 해(태양)라고 하는 명사에서 온 것으로 우리 민족의 흰색 숭배 사상인 태양 숭배 사상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고, 붉은 팥고물의 붉은 색은 잡귀를 멀리 하고 액을 제한다는 뜻이며, 오색은 만물의 조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혼례시의 봉치떡은 붉은 팥시루편을 준비하는데, 이는 찰것처럼 부부금실의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이고, 붉은 팥은 잡귀와 액을 피하는 의미이다.

2)떡의 분류
- 찐떡
가장 전통적인 우리 떡 중의 하나이다. 시루떡이라고도 하는데, 쌀이나 찹쌀을 물에 담갔다가 건져 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앉힌 뒤 김을 올려 익힌다. 이 떡은 찌는 방법에 따라 설기떡과 켜떡으로 구분된다. 설기떡은 멥쌀가루에 물을 내려서 한 덩어리가 되게 찌는 떡으로 백설기가 대표적이다.
켜떡은 멥쌀이나 찹쌀가루를 고물을 얹어 가며 시루에 켜켜로 앉혀 찐 떡이다.
- 친떡
곡물은 찐 다음, 안반에 놓고 매우 쳐서 만든 것이다. 주재료에 따라 찹쌀도병과 멥쌀도병으로 구분되는데, 찹쌀도병으로 대표적인 것은 인절미이고, 멥쌀도병의 대표적인 것은 절편이다.
- 삶은 떡
쌀가루나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모양을 내어 찌거나 삶은 것으로 송편, 경단, 단자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단자는 반죽한 찹쌀가루를 익혀 꽈리가 일도록 치대어 유자청 건지와 대추를 곱게 다져 소를 넣고 빚어 고물을 묻힌 떡이다.
- 지진떡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모양을 만들어 기름에 지진 것으로 화전, 부꾸미, 주악 등이 있다. 화전은 익반죽한 찹쌀가루를 둥글넓적하게 만든 뒤, 꽃잎을 붙여 기름에 지진 것이다. 부꾸미는 찹쌀, 찰수수, 녹두 등을 불렸다가 갈아서 익반죽하여 빚어 지진 뒤 소를 넣어 반달처럼 접은 떡이다. 주악은 찹쌀을 익반죽하여 깨, 곶감, 유자청건지 등으로 만든 소를 넣어 빚어 기름에 튀긴 떡이다.
- 술로 부풀린 떡
익반죽한 쌀가루에 막걸리를 넣고 발효시킨 뒤 틀에 넣고 고명을 얹어 찐 떡으로 증편이 대표적이다.

3)과정류(菓釘類)
우리 나라에서는 전통적인 과자류를 과정류라고 하며, 외래의 과자와 구별하여 한과류라고도 한다.
과정류의 주재료는 대개 곡물과 꿀과 기름이다. 식품사상 이 세가지 재료가 모두 갖추어진 것은 삼국 시대이지만 이 재료들을 응용해서 과정류가 만들어진 것은 삼국 통일 이후이다. 그것은 본래 과정류가 차에 곁들이는 음식으로 만들어졌고, 음다풍습이 성행된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 신라 시대이다.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 시대에는 차를 마시는 풍속과 함께 과정류가 한층 더 성행하였다. 고려에서는 특히 유밀과가 발달되어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 크고 작은 행사에 고임상으로 쌓아올려졌고, 유밀과는 고려병이란 이름으로 외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유밀과는 밀가루에 꿀을 듬뿍 섞어서 반죽하여 일정한 모양으로 만들어 기름에 지지고 다시 꿀을 묻힌 것으로, 중국에서 나온 것이었으나 고려에서 발달시킨 약과류(藥果類) 중의 하나이다. 연등회나 팔관회 등 국가적인 큰 행사나 크고 작은 연회, 제향에 유밀과가 쓰여 사치와 낭비가 극에 달해 명종 22년 유밀과의 사용을 금지시켰고, 공민왕 2년에 다시 금지시켰다.유밀과는 본래 제사에서 과일 대신 쓰인 대추, 밤, 배, 감 등과 같은 과일모양으로 만든 조과(造果)이지만, 둥글어서 고배상을 괼 때 불편하므로 모나게 썰어 국화 모양의 약과판에 찍어내어 다식과라고도 하고, 만두 모양으로 하여 만두과자라고도 불렀다.
고려 시대에는 차와 함께 다식(茶食)도 발달하였는데, 차는 물에 달여서 마셨다가 송대에 가서 차잎을 쪄서 일정한 무늬를 가진 틀에 박아 고압으로 쪄내어 다병(茶餠)을 만들게 되었고, 이것을 가루를 내어 마셨다고 『성호사설』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다식이다.
그러다가 차 대신 곡물에 꿀을 섞어서 반죽하여 다병 만들 듯이 다식판에 박아 내어 제찬, 연회식, 음다례 등에 쓰게 되면서 이름만 다식으로 남아 있고 실물은 바뀌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과정류는 임금이 받는 어상을 비롯하여 한 개인의 통과 의례를 위한 의례 상차림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되었다.
이런 과정류는 재료와 제조 방법에 따라 유밀과류, 강정류, 다식류, 숙실과류, 과편류, 엿강정류로 구분된다.
- 유밀과류
밀가루나 메밀가루에 참기름과 꿀, 술 등을 넣어 반죽하여 모양을 만들어 기름에 지지거나 튀긴 후 꿀에 담갔다가 건진 것이다. 유밀과에 속하는 것은 약과, 연약과, 박계, 다식과, 만두과, 매작과, 계강과 등이 있다. 이 중 약과는 유밀과의 대표적인 것으로 밀가루에 참기름, 술, 꿀 등을 넣고 반죽하여 약과판에 박아 기름에 지져 익힌 후 집청에 담갔다가 꺼낸 것이다.
- 강정류
일명 유과(油菓)라고도 하며 찐 찹쌀반죽을 꽈리가 일도록 치대어 썰어 말린 뒤 기름에 튀겨 고물을 묻힌 것이다. 찐 찹쌀 반죽을 얇게 펴서 써는 과정에서 갸름하게 썰은 것은 강정이고, 네모로 편편하게 썬 것은 산자이다. 또한 강정과 산자를 만들고 난 찌꺼기를 팥알만큼씩 썰어 기름에 지져 엿으로 서로 밀착시킨 다음 썬 것은 빙사과라고 한다.
- 다식류
곡식가루, 한약재, 꽃가루, 녹말가루 등에 꿀과 조청을 넣고 반죽하여 다식판에 박아 낸 것이다. 다식판은 무늬가 선명하도록 하기 위하여 박달나무나 배나무, 피나무에 조각한 것을 많이 쓴다.
다식의 종류에는 깨다식, 콩다식, 진말다식, 강분다식, 갈분다식, 녹말다식, 승검초다식, 송화다식, 용안육다식 등이 있다.
- 전과류
정과라고도 하는데, 비교적 수분이 적은 식물의 뿌리나 줄기 또는 열매 등을 끌인 설탕물이나 조청에 오랫동안 조린 것이다. 전과에는 수분이 있게 축축하게 만드는 진정과와 조린 것을 설탕에 묻혀 말린 건정과로 나눌 수 있다.
정과의 종류에는 생강, 도라지, 인삼, 연근, 무, 박, 동아, 유자, 모과, 행인, 청매, 귤 등이 있다.
- 과편류
신맛이 나는 과일을 삶아 걸러서 설탕과 꿀에 조려 엉기게 한 뒤 썰어 놓은 것이다. 앵두편, 산사편, 살구편, 녹말편, 모과편, 복분자편이 있다. 잘 엉기게 하기 위해 녹말가루를 섞어서 쓴다.
- 숙실과류
과일을 익혀 꿀에 조린 것으로 초류와 난류로 구분된다. 초류는 과일을 통째로 익혀 그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도록 설탕물에 조린 것이다. 초류에는 밤으로 만든 밤초와 대추초가 있다. 난류는 과일을 익힌 뒤, 으깨어 설탕이나 꿀에 조려 다시 본 형태와 비슷하게 빚은 것이다. 난류에는 대추로 만든 조란, 밤으로 만든 율란이 있다.
- 엿
한자로는 이(飴), 당(糖)이라 쓰는데, 곡식(찹쌀, 멥쌀, 좁쌀, 수수 등)으로 밥을 짓고 이를 엿기름으로 당화시켜서 오랫동안 조려 둥글게 빚거나 길게 늘인 것이다. 조청(造淸)이란 찹쌀엿을 고아 꿀처럼 만든 것으로 꿀 대신 쓴다. 조청을 되게 조려서 그대로 검게 굳힌 것을 갱엿, 자꾸 잡아 늘여 공기가 들어가게 하여 희게 만든 것을 흰엿(백당)이라 한다.
엿강정류 : 견과류나 곡식을 가루를 내지 않고 그대로 엿을 녹인 것이나, 설탕과 물엿을 섞어 끌인 것으로 버무려 서로 붙게하여 굳혀서 썬 것이다. 엿강정은 호두, 깨, 콩, 들깨, 잣으로 만든다. 엿강정은 엿물이 너무 많으면 딱딱하고 바삭한 맛이 없으므로 서로 잘 붙을 정도의 양만을 사용해야 한다.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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