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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22세기
작가 : paulpark
작품등록일 : 2016.9.19

22세기가 됐다. 주인공은 소속된 프로야구단에서 해고통지를 받는다. 당장 먹고 살 것이 걱정인 그가 맞닥뜨린 22세기의 풍경은 가혹하다. 집권한 총리는 자신의 국정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갖가지 정책을 펴고 그와 맞서는 사람들은 거세게 항의한다. 주인공은 그들 중 한 명과 사랑에 빠진다. 쉽지 않은 하루하루가 펼쳐지는 22세기, 그 속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2. 손톱의 비밀 - 5
작성일 : 16-09-22 12:38     조회 : 405     추천 : 0     분량 : 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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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우찬8이 마리3을 만난 다음 날, 손톱을 이식해줬던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 속 남자의 음성은 귀를 다듬어 듣지 않으면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며칠 전과 달랐다. 그래서 우찬8은 한 참 동안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자신을 짧게 설명하는 남자의 말을 듣고서야 입을 열었다.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자세44’라고 말했다. 자세44는 간단한 안부를 물어본 다음 크게 가래를 뱉어낸 후 요점을 말했다. 죽으려는 사람이 한 명 생겼으니까 일을 시작하자는 요청 반, 명령 반의 문장이 그의 귀로 들어왔다.

 

  그는 마리3을 생각했다. 완전한 기쁨에 속해 있어 어두운 기색이 하나도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긍정적인 눈빛과 선한 입술, 숭고한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말투와 행동들이 떠올랐다. 진리와 사랑에 관해 말할 때는 입술이 단단해져서 거짓말 같은 것을 섞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생각났다. 그리고 남자가 시키는 일이 마리3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 거라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자존심을 약화시킬 수 없었다.

 

  어제 그녀를 만나면서 쪼그라든 그의 자존심은 그대로 있기를 거부했다. 그는 좋은 차를 다시 사고 싶었고 그녀를 최고급 식당에 데리고 가고 싶었고 자신의 미래가 누구도 부러워 할 정도라는 것을 나타냄으로 그녀가 자신에게 공손하게 말하며 경의를 표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돈이 없다. 그래서 우찬8은 자세44의 제안을 꼼꼼히 따져보며 질문을 늘여 나갔다.

 

 "내가 받을 수 있는 돈은 얼마지?"

 "그건 내가 얼마에 파느냐에 따라 달라. 네가 꺼낸 장기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많아질 수도 적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지. 그래서 앞으로 이 일을 하다보면 좀 더 젊은 사람을 죽이고 싶을 거야"

 "경찰에게 잡히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벌써부터 잡힐 생각을 하면 안 되지. 긍정적으로 생각해. 나는 조금 미리 죽을 사람의 장기를 꺼내서 한시가 급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라고 생각하면 일이 재밌고 보람도 있고 오래 할 수도 있어."

 "언제 하면 돼."

 

  우찬8은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밤이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하늘은 조용하고 어두웠다. 하지만 곧 엔진이 터질 것 같은 소리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소리가 조용한 하늘을 채우기 시작했다. 죽으려는 사람이 있는 곳은 그의 집에서 멀지 않았다. 망가진 차로 가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리였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고 어떤 감정도 가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남자가 시킨 대로만 하면 쉽게 끝날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핸들을 일정한 속도로 때릴 뿐이었다. 그는 도시 외곽에 허름한 주택가의 한편에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봤다. 죽으려는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혹시 자신을 미행한 경찰이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발가락에 힘을 주어 걸어 나갔다. 팔도 적당히 흔들면서 자살을 결정하고 곧 그렇게 될 사람이 사는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에 들어서서 세게 힘을 주면 없어질 것 같은 계단을 올라 그 사람의 집 앞에서 발끝을 모았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노크를 했다. 노크할 때 빠진 손톱부위에 통증이 밀려와서 참는데 힘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색 없이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무릎을 꿇고 몸을 낮췄다.

 

  고양이 같은 체구가 작은 동물이 드나들 정도로 밖에 열리지 않은 문 안에서 숨소리가 거칠게 났다. 우찬8은 기회를 엿보다 그림자가 밖으로 나오려 할 때 문을 잡아당겨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곧 다시 나왔다. 집 안에 있던 여자는 머리카락이 엉덩이를 덮을 정도로 길었고 긴 머리카락만큼 힘이 셌다.

 

  그는 그녀의 힘에 내팽개쳐져서 복도를 굴렀고 저벅저벅 걸어오는 거구 앞에 몸을 움츠리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스스로 죽지 않으면 결코 누군가에 의해서 죽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단단한 사람을 죽이러 온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여자는 그의 후회가 만든 낮은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점점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주먹으로 멱살을 잡아 공중으로 그를 들어 올린 여자가 두꺼운 입술을 움직이며 말을 꺼냈다.

 

 "누군데 남의 집에 막 들어와, 너 누구야?"

  우찬8은 의외로 당당하게 대답했다.

 "너를 미리 죽이려고 온 사람이다."

 "뭐? 네가 날 죽이겠다고? 왜? 네가 뭔데 날 죽여!"

 "넌 어차피 죽을 거잖아, 아무도 모르는데서 죽으면 네 장기는 썩어서 없어질 뿐이야. 하지만 내가 너의 장기를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너도 좋고 네 장기를 받는 사람도 좋고 나도 좋다고. 그러니까 어서 죽어!"

 

  여자는 그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여자의 팔에 있는 혈관이 터질 듯 튀어나왔고 우찬8의 얼굴도 터질 것 같이 변했다. 여자는 그가 죽으면 그의 장기를 꺼내 필요한 사람에게 파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 어쨌든 여자의 힘은 계속 세졌고 그의 육체는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육체가 흐느적거리자 정신도 몽롱해졌다. 그의 눈은 감겨졌고 숨을 쉬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부족한 산소 때문에 온 몸이 게을러 진 것이다.

 

 "그게 정말입니까?"

  우찬8이 눈을 떴을 때 다비3이 한 말이다. 우찬8은 다비3의 집에서 잃었던 정신을 되찾아 몸을 일으켰다. 우찬8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과 눈빛으로 다비3을 쳐다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다비3은 차근차근 몇 시간 전 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설명했다. 자살 하려던 여자의 바로 옆집이 다비3의 집이었고 쓰러진 우찬8을 그녀가 집으로 들고 가려할 때 다비3이 그것을 봤다.

 

  다비3은 여자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여자는 눈물을 말에 섞어가며 자신이 죽을 뻔 했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그는 여자를 진정시킨 후 우찬8을 자신의 집으로 들고 왔다. 다비3은 우찬8을 빨리 깨우기 위해 한 일이 없다. 그냥 깰 때까지 자게 내버려 두었다. 물론, 호의를 베풀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살인미수의 죄를 지은 사람이 두렵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다비3은 창조론을 믿는 우찬8이 어떻게 그런 잘못을 했는지 궁금했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가 깰 때 까지 질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말로 사람을 죽이려고 한 거예요?"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저씨"

 "교회에 다녔다면서요. 그냥 왔다갔다만 했나요? 아니면 신을 믿나요?"

 "……."

 "만약 신을 믿는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죠? 어떻게 사람을 죽이려고 생각할 수가 있냐는 말입니다."

 "돈이 없어서……."

 

  우찬 8은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기 말을 씹었다. 돈이 없어서라는 솔직한 고백에 그는 스스로를 모욕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돈과 생명을 같은 수준에서 이해하는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것을 말해버린 것이 부끄러웠다.

 

  자신이 정말로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서 들어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서 들어났기에 부끄러웠다. '이젠 돈이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벌레 같은 놈이 됐어, 나에겐 이제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남아있지 않아, 나는 쓸모없는 놈이야, 젠장, 살아갈 이유가 없어, 내겐 내일이 없어.' 라고 우찬8은 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마음을 저 어두운 곳으로 내리고 있었다.

 

 "고개 들어요. 부끄러워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에요."

  이 말에 우찬 8의 맘은 1밀리미터 정도 올라갔다. 1밀리미터를 더 내려가면 지옥에 도착할 쯤에.

 "다신 안 그런다고 약속하면 그 여자도 나도 경찰을 부르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나 나나 그 여자나 오늘 보단 내일이 더 좋아야 하니까."

 "죄가 크면 지옥에 가는 거죠?"

 "삶은 이미 지옥이에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도 용서해 주세요. 당신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한 잘못을 했으니."

 "정말 경찰을 부르지 않을 건가요?"

 "정말이에요. 경찰도 누구를 붙잡아 갈 만큼 깨끗하지 못해요."

 "왜 내게 잘해 주는 것이죠."

 "당신이 죄를 뉘우치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나쁜 마음이 없는 것 같아요."

 

  둘은 맛있는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면서 한 간단한 대화로 우찬8의 마음은 21세기와 같아졌다. 며칠 동안 자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던 문제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마시던 차의 이름을 묻어보기까지 했다. 그는 곧 여유로운 마음이 차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마주하고 앉은 직장을 잃어버린 목사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찬8은 다비3의 용모를 자세히 살펴 나갔다. 줄무늬가 옅게 들어간 모직 바지에 황토색 구두, 느슨한 주름이 겹겹이 새겨진 회색 양말과 유난히 튀어나온 복숭아뼈, 굵은 허리띠와 흰색 셔츠, 그 위에 칼라가 특이하게 생긴 코트.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 하나도 없는 옷과 액세서리에서 눈을 떼어 그의 얼굴을 봤다. 새까만 모공에 기름이 꽉 차있는 피부와 주름으로 세 등분된 이마는 그의 나이를 더 들어보이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 후 코로 시선을 옮겼다. 얼굴의 가로의 길이가 세로의 길이보다 길었고 비대칭이었다.

 

  입술도 투박하고 귀도 못난 그의 얼굴. 하지만 살짝 미소를 지을 땐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이기적이지 않은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적으로 타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는 기회가 된다면 또 이 얼굴을 보고 싶다는 혼잣말을 속으로 했다.

 

  시동을 걸었지만 차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는 거리에 두 발을 딛고 그 중 한발로 바퀴를 세게 찼다. 물컹한 느낌이 발톱 끝에 닿았고 몸으로 들어온 충격이 그의 부러진 뼈를 예리하게 진동시켰다.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어 그 통증을 이겼다. 그리고 주먹을 쥐고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을 정하고 빠른 속도로 무릎을 움직였다. 주위를 걷는 사람들이 그의 속도를 보고 놀랄 정도였다. 그는 입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먹으며 누구도 들을 수 없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우찬7이야.'

 

 

 12

 

  금이빨은 그의 친구와 심하게 다툰 후 술을 먹었다. 이미 많이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마시면 마실수록 몸이 꺾였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혼자서 벌었다고 생각한 돈을 나눠야만 하는 것이 싫어서 계속 마셨다. 이미 많이 가졌지만 더 가져야 조금이라도 기뻐할 수 있는 자신이 싫었지만 더 가지고 싶었다.

 

  더 가질 수 있다면 더 많이 움직여서 더 많은 사람들을 속여야 한다고 그의 안에 있는 나쁜 그가 소리쳤다. 그가 소리칠 때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들이부었고 곧 트림을 했다. 그의 트림 속엔 음식냄새 뿐만이 아니라 쓰레기 썩은 냄새가 났다.

 

  금이빨의 친구는 조금 받은 돈으로 그동안 갖고 싶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샀다. 그리고 곧 죽었다. 그의 장기는 누군가의 손에 들려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전해질 것이다.

 

  자세44는 우찬8이 장기적출에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심하게 화를 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벽을 발로 세게 찼고 주변에 던질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집어 던졌다. 그는 곧 거리로 나와 자줏빛과 빨간빛이 나는 간판들을 둘러보다 빛이 나는 옷을 입고 있는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곁에 있던 여자들은 새어나오는 총리의 목소리에 흥미를 느끼며 귀를 바짝 갖다 댔다.

 

  총리는 그에게 욕 밖에 안했다. 제발 자신의 재임 기간에 되도록 많은 돈을 벌어놔야 너나 나나 나이가 들었을 때 편하다는 말도 얼핏 들렸다. 그는 총리와의 통화가 끝나고 여자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멍드는 자신들의 육체를 보고 낄낄대며 웃었다. 그리고 곧 그도 그렇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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