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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늘 푸른 은하에 해적선 하나
작가 : 과하객
작품등록일 : 2018.9.29

대강 줄거리

26세기 지구세계의 종교전문가 수선013은 우주상선 복분자호의 선원으로 배에 타지만 실은 해적선의 선원으로 차출된 것이다. 복분자호는 해적선 신천지호의 변신 중 하나로 수선013은 갈등 끝에 해적선의 목회자로 자리 잡는다.
지구인의 태양계 탈출 1호 우주선으로 세간에 알려진 신천지호는 타이탄의 중간물질 인드라 광산을 탈출한 죄수 수송선의 이름을 딴 해적선이다. 이 이야기는 해적선 신천지호의 이야기를 수선013을 비롯한 일단의 필자들이 신천지호의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는 연작소설이다.
신천지호가 외계 우주를 향해 떠나게 된 이유가 이 이야기의 시발 이유가 된다. 신천지호의 선장 김진욱과 재생 의료 전문가 간디는 친구 류우의 아버지 선대 류우가 정치적 목적으로 재생시킨 예진의 두뇌를 타임캡슐에 담아 우주로 쏘아 올렸고, 그것을 찾아 우주를 헤매는 일단의 해적들과 그들의 분열 복제 후손들이 빚는 온갖 사연들, 그들을 사랑하는 타이탄의 여인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그들을 추격하는 정적 류우의 복수담 등이 이 이야기의 주요 화자 중 하나인 수선013의 시각을 빌어 서술된다.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수많은 우주전쟁과 새로운 우주학의 등장이 있고, 우주시대에 있음직한 철학과 재생 의료학, 다차원 물리학 등의 등장과 그것을 이용한 새로운 전쟁 방법과 생명 복제 방법 등이 차례로 고안되지만, 이야기는 결국 보통 인간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사랑, 욕망, 이별, 배신, 재회, 죽음 등의 세사를 우주시대에 펼친 것으로 귀결된다. 친구 류우의 아버지의 첩을 사랑하는 김진욱의 고뇌와, 두 친구의 대결 속에서 한쪽 편을 들 수밖에 없는 간디, 아버지의 첩 예진의 유전인자가 복합된 연인 흑장미가 친구인 김진욱을 사랑하는 데 대한 류우의 절망, 그로부터 시작되는 복수극 등이, 은하 우주라는 광대한 세계를 배경으로 엮어지는 것이다.

(등장인물과 작품의 시대 설정 등에 대해서는 따로 항을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제19장. 태양계, 꽃으로 지다 (2)
작성일 : 18-12-24 06:51     조회 : 434     추천 : 1     분량 : 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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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장. 태양계, 꽃으로 지다 (2)

 

 #10. 흑장미064의 회상. 화성. 우주력 원년 5년 전.

  지구력 2100년 1월, 아주연방 우주개발부 화성 이민국 소속의 우주여객선이 화성의 스키아파렐리우주공항에 도착했을 때 일단의 보안군이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안군은 승객 중에 나그네족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김진욱이 섞여 있다는 첩보를 접하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자에게는 예방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한 보안법의 규정에 따라 출동한 것이었다.

  김진욱은 화성에 상륙하는 신분으로 영화작가를 표방하고 있었다. 공간예술의 극치라고 하는 입체 영화의 등장 이후 영화는 2차원 영상의 한계를 극복한 현실감 높은 환상세계를 관객들에게 제공했으므로 영화 작가는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고급 신분이었다. 실제로 김진욱은 몇 편의 환상극을 세간에 선보이기도 하였는데, 그가 만든 영화는 기존 작가들의 그것과는 달리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 개개인의 상상력과 이해 정도에 따라 이야기가 바뀌도록 구성되어 끝없는 분열이 가능했으므로 새로운 형태의 파괴예술로 각광을 받았다.

  환상극의 관람객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그네족들은 김진욱 영화의 특성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방랑벽을 합리화하는 영화들을 다수 만들어 냈다. ‘관객들의 의지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을 신조로 삼고 예술 활동을 하던 김진욱은 나그네족들의 그러한 장르 파괴 행위를 방관하였고, 자연스레 그들의 우상으로 변해 갔다.

  김진욱은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빈약한 체격의 30대 후반의 남자로 보안군의 검색망에 쉽사리 걸려들었다. 그는 ‘취재를 위한 단순 내방’이라고 항변했지만 보안군은 사전 검속을 가능토록 한 신법을 배경 삼아 구속을 강행했다. 보안군이 우주공항에서 범죄자를 체포하는 일은 흔한 풍경이었으므로 양팔을 잡혀 끌려가는 김진욱의 볼품없는 모습을 다른 승객들은 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김진욱의 곤경을 구해준 이는 류우와 그의 친구인 간디였다. 두 사람은 최근에 화성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아주연방 행정청 소속의 고급관리들이었다. 간디는 학자풍의 사람으로 대단한 신분이 아니었지만 류우의 경우 가문의 배경이 예사롭지 않아 사태는 쉽사리 수습되었다. 놓여난 김진욱이 두 사람의 호의에 감사하며 길잡이를 자청한 탓에 세 사람은 일행이 되었다.

  기실 김진욱과 간디, 류우의 세 사람은 여객선 내의 입체 영화 관람실에서 영화 속의 어떤 여성을 매개로 한 대화로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영화는 예명을 흑장미로 부르는 한 공간무용수의 자전적인 일대기를 그린 것이었다. 주인공인 흑장미가 최근에 ‘화성 바이러스’로 불리는 신종 우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는 탓에 언론이 집중 보도를 하였고, 세 사람도 관심을 갖고 관람하게 된 것이었다.

  “생사지간에 있다는 병자가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나?”

  천상을 나타내는 배경 영상 속에서 하늘에 죄를 짓고 하계로 쫓겨 가는 천사의 안타까운 마음을 춤으로 나타내는 ‘천녀 하강’의 장면에서 흑장미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던 류우가 불쑥 입을 연 것이 대화의 시작이었다.

  “저 영상은 합성된 거요. 실제 저 여인의 춤은 더욱 아름답다오. 영상이 아닌 실제 공연을 다시 볼 수 없게 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오.”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진욱이 답했다. 뛰어난 예인의 최후의 모습을 보는 안타까움이 돌연한 참견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명성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인이로군. 내가 살려볼까?”

  류우를 중앙에 놓고 반대편 옆자리에 앉아 있던 간디도 말을 거들고 나섰다. 그 역시 한 예인의 비극적인 생애를 그린 영상에 취해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다” 하는 감상에 빠져 있던 중이었다.

  “너라면 가능하겠지. 내가 도울 테니 추진해 보는 게 어때?”

  “류우 가문이 뒤를 봐준다면 안 될 일도 될 걸.”

  류우와 간디의 대화였다. 김진욱도 거들었다.

  “능력이 있는 분들이라면 어떻게든 살려보시오. 금세기에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재능을 가진 여인이라오.”

  그 정도의 짧은 대화뿐인 인연이었지만, 그로부터 얻어진 호의가 김진욱이 나그네족으로 분류되는 신분 탓에 검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무조건적인 조력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었다.

  “사실은 흑장미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진작부터 있었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벌어져 있는 인기의 차이 탓에 꿈만 꾸었을 뿐이었지만.”

  서로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친해진 후 김진욱이 류우와 간디에게 한 말이었다. 이때쯤 세 사람은 ‘흑장미를 살려야 한다’를 공통 명제로 갖고, 그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11. 우주력 원년 2년 전. 만주 심양 인근. 류우 가의 별장 장미장원

  “안심하고 즐겨도 좋다구. 우리 이모님 집이야.”

  류우가 김진욱과 간디를 이끌어 안내한 곳은 고대 중국 황실의 별궁을 연상케 하는 장원이었다. 김진욱은 류우의 안내로 타게 된 비행 열차에서 차창을 통해 내려다 본 먼 경치에서부터 강한 호감을 느꼈다. 역에서 내려 류우가 조종하는 비행정으로 갈아탄 후, 장원이 가까워올수록 호감은 기대감으로 바뀌어 가슴을 들뜨게 했다. 시야 안에 연못과 동산과 폭포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는 정원이 들어와 차츰 확대되었기 때문이었다. 장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정원에는 온통 장미가 만개해 있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일세."

  비행정에서 내리며 김진욱이 말한 감탄사였다. 류우는 빙긋 웃고 앞서 갔고 뒤를 따르는 김진욱에게 간디가 대신 답했다. 어떤 감정을 달래려는 듯 나직한 목소리였다.

  "이 댁 여주인의 기호야. 장미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분이고 장미꽃만큼이나 아름다운 분이지."

  간디의 그런 설명을 확인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예의 여주인이 마중을 나왔기 때문이었다.

  "인사해. 우리 이모님이야."

  김진욱은 문득 자신이 그토록 만들고 싶었던 입체 영화 속의 어떤 영상을 발견한 양 굳은 듯이 걸음을 멈추었다. 장미꽃 사이로 장미꽃만큼이나 화사한 외모를 가진 여인이 조용히 서 있었다.

  “어서 오세요. 예진이라고 해요.”

  류우의 소개에 이은 여인의 자기 소개였지만 김진욱은 꿈결인양 흘려듣고 있었다. 간디가 진욱을 대신하여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쓸쓸한 듯싶은 표정이었다.

 

 #12. 현실. 우주력 7세기. 타이탄 지하 갱내의 재생인간 배양실

  아담과 이브가 나란히 서서 재회를 감격스러워 하는 양을 보는 류우459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가 믿던 부하들은 어느새 해적들에 의해 제압되어 있었고, 회랑 안의 공간을 통신 스크린으로 삼아 재생시켜 본 토성계의 우주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도 유리한 편이 못되었다. 은하연방 우주군은 류우459 직계의 황금전함 함대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후 급거 출동한 지구주둔함대의 용전으로 전선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개조된 병사들만으로 이루어진 해적 부대의 적수가 되지 못하여 시나브로 함정을 잃어가고만 있었다.

  해적들은 장기로 삼는 적선에의 상륙으로 육탄전을 벌여 지구함대의 병사들을 무차별 살육했다. 류우459는 직할 함대에 육전대를 충분히 남겨 놓지 않고 타이탄에 전원 상륙시킨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그때에야 적의 ‘힘을 분산시켜 약화시킨 후 각개 격파’하는 작전에 휩쓸려 들었음을 알았다.

  타이탄에 상륙했던 육전대의 사정은 더욱 가관이었다. 주점‘언제나 장미가 피어 있는 곳’에 백기가 오름으로 승리를 확신하여 기강을 잃었던 육전대는 우주공간에서 함대 전투가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고 즉각 장기로 하는 로마 군단의 진용을 펼치기 위해 집결을 시작했지만 진용이 정비되기도 전에 기습전을 펼쳐 온 해적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손해를 입었다. 항복했던 시민군의 합세로 기세가 오른 해적들은 반나절 남짓한 짧은 시간의 전투로 류우459가 ‘죽음의 별 성역에서의 공멸’ 이후 절치부심 하여 길러온 육전대를 재기 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놈!”

  류우459는 계속 신음 같은 소리를 뱉어냈다. 무언가 저주의 말을 하고 싶은데 저주의 크기가 너무 강하여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만들어진 비명이었다.

  “놈!”

  전라의 김진욱이 역시 전라인 흑장미064의 손을 끌고 다가왔다. 한 오라기의 옷도 걸치지 않은 두 남녀의 나신은 원초적인 본능이 얼마나 큰 예술이 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류우459는 다시금 신음소리를 뱉었다.

  “네 놈은?”

  “나는 090일세. 각 개체의 지성 전송으로 하나가 되는 전체 생물의 한 분자이지.”

  전라의 김진욱이 자신을 소개했다. 류우459는 언제나 자신을 앞서 나가던 숙적이 새로운 진화를 이루었음을 알았다.

  “그건 우리 역시 마찬가지지. 아마 우리의 오랜 친구도 대차가 없을 걸.”

  간디068이 앞으로 나서며 류우459를 조롱했다. 지성의 공유는 무한히 가능하지만 다중 육체의 순간전송이 불가능한 류우가(家)의 현실을 빗댄 모욕의 말이었다.

  “놈들……”

  류우459는 다시 한 번 신음소리를 냈다. 너희가 감히……

  “지금 우리의 다른 몸들은 그대의 부하들과 전쟁 놀음을 하고 있지. 지금쯤 끝을 보았을 듯싶은데……”

  간디068의 조롱이 이어지며 회랑 안에 다시금 입체영상이 펼쳐졌다. 토성계 주위의 우주 공간은 온통 해적 깃발이 가득한 함정들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놈!”

  순간, 류우459의 비명 같은 신음소리에 섞여 또 하나의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류우 가의 사람들은 본래의 우리를 잃고 있네. 그걸 인정하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미래가 없네. 증오만 더욱 키울 뿐……”

  배양기 속에서 새로운 류우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타이탄의 장미장원이 배양시킨 류우460이었다.

  류우459가 처절한 신음소리와 함께 김진욱090을 덮쳐 간 것은 그때였다.

 

 #13. 앞 장면과 같은 시각. 태양계의 이웃인 프록시마성계 주둔 은하연방우주군 연합함대의 사령실

  태양계의 외곽, 별이 없는 공간에는 은하연방우주군의 총사령부가 이동해 있었다. 타이탄을 비롯한 태양계 전역에서 전투가 시작된 후 이웃 성계의 우주군 모두가 결집하여 연합함대를 이루고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사실상 은하연방의 모든 군력이 집합해 있는 셈이었다.

  타이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을 시종 주시하고 있던 연합함대의 사령관 류우459는 타이탄 지하 갱내의 류우459와 지성을 공유하는 전체 중의 하나였으므로 엉뚱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 호응하여 노호를 터뜨렸다.

  “이놈들이 감히!”

  은하연방 전역의 류우 가의 사람들은 지성을 공유하는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류우459의 분노는 전체 류우들의 분노를 불러 한 순간 은하우주 전역은 류우들의 노호로 뒤덮였다.

  그가 인식한 타이탄의 상황은 김진욱090에게 덤벼든 류우459가 오신078과 알렉산더093 등의 해적들에게 팔이 붙잡혀 분노를 삼키고 있는 것이었다.

  “함대의 동력을 최대한 가동해서 태양계의 타이탄으로 향한다!”

  타이탄 점령의 승전 소식을 전해 듣고 자축 파티를 열고 있던 은하연방 우주군 연합함대는 사령관의 돌연한 출동 명령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연방 우주군 제일의 정예 함대답게 진용을 정비하여 일약 태양계를 향한 공간 도약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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