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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낯선 자들의 밤
작가 : 환상좀비
작품등록일 : 2018.11.16

신화의 존재들이 생존한 세계.
암암리에 출몰하는 그들의 존재는 인간들의 암인가, 새로운 지성체들인가?
구마사제 준영은 끊임없는 시험 앞에 선택을 종용받게 된다.

 
18화. 천국의 계단
작성일 : 18-12-20 19:52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5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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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구름 한 점 찾기 힘든 하늘이다. 그 아래 불어오는 시리도록 맑은 바람은 머릿속에 남아있는 걱정거리들을 우주 아래 한낱 먼지처럼 저 멀리 날려버렸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준영이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방금까지 무슨 생각을 했던가. 곰곰이 생각해도 결국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렴 어때. 준영은 자신 앞에 펼쳐진 넓은 광야를 둘러봤다. 기름진 푸른색과 잘 익은 노란색을 띠는 드넓은 광야 너머 지평선 끝에는 해가 걸려있었다.

 

 준영은 문득 이 고요함이 지루해졌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세상이 팽이처럼 빠르게 돌았다. 준영 자신만을 남겨두고 거대한 세계가 한바탕 뒤집혔다. 바다가 가라앉고 땅이 솟구쳐 올랐다.

 수평으로 돌던 세계가 이번에는 수직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종의 개벽開闢처럼 한쪽 면이 사라지면 다른 면에서 새로운 세계가 등장했다.

 결국에 세계가 다시 수평을 돌아오자, 일출의 세계는 일몰이 되었고 준영 자신은 노랗게 익은 농염한 햇살을 등지고선 수도원 앞에 섰다.

 

 그곳에서 준영은 어린 꼬마였던 과거의 자신을 마주했다. 자신도 모르게 어린 준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린 준영은 그 손길을 피하기라도 하는 듯 그를 지나쳐 빠르게 내달렸다.

 

 어린 준영이 달려가 닿은 곳은 수도원의 정원, 그곳에서 채 신부가 어린 준영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꼬마 신부님?”

 

 채 신부의 다정한 말에도 어린 준영은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다만 그 작고 여린 손은 채 신부의 신부복을 꼭 붙잡고 있었다. 웅얼거리는 어린 준영의 목소리에 채 신부는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췄다.

 따뜻한 채 신부의 시선이 어린 준영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구마 사제. 저도 그것이 되고 싶어요. 신부님처럼.”

 

 “악마와 귀신들이 무섭지 않아요? 그것들을 아주 힘쎄고 강한데?”

 

 채 신부가 짐짓 악마 흉내를 내며 장난스럽게 어린 준영을 겁주었다. 하지만 어린 준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채 신부를 응시했다.

 

 “그들이 보여요. 하지만 무섭지 않아요.”

 

 어린 준영의 말에 채 신부는 흠칫 놀라며 괴물 흉내 내던 양손을 슬그머니 내리고 준영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처럼 뜨거운 채 신부의 눈빛에 어린 준영은 겁이 났지만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악마와 귀신의 존재에 다가갈수록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도 강해지는 법. 네 말이 사실이라면, 너는 나를 이을 좋은 재목이구나.”

 

 채 신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특하다는 듯 어린 준영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그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앞으로 내 뒤를 따르도록 하렴.”

 

 채 신부의 말에 어린 준영의 동공이 커졌다. 아이는 신이 난 듯 채 신부의 뒤를 좇으며 말했다.

 

 “그럼 저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예?”

 

 “그저 내 뒤에 숨어있거라. 그것이면 된단다. 네가 자라난 세상에는 악도 잡귀도 너와 너희 가족을 괴롭힐 수 없을 것이야. 그것이 나의 소명이니.”

 

 준영은 돌아선 채 신부의 표정이 궁금했다. 급히 채 신부를 향해 달려보았지만, 늪에 빠진 듯 발이 무거웠다. 도저히 닿지 않는 채 신부와 자신의 거리에 준영은 속이 탔다.

 ‘대체 당신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채 신부는 잠시 상념에 빠진 듯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만약에 말이다. 내가 소명에 닿지 못한다면. 그땐..”

 

 순간 세상이 진동했다. 마르지 않는 수채화를 뒤흔든 것처럼 자신 앞의 세상이 퍼지고 뭉개지고 짓이겨졌다.

 

 “준영 씨!”

 

 창기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내리쳤다.

 번뜩하며 눈을 뜬 세상에 준영은 아연실색했다.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신 그는 손 그늘을 하고서 창기를 올려다봤다.

 

 “오래도 주무시네. 여기가 편하신가 봅니다.”

 

 비꼬는 창기의 말투에 준영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꿈인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채 신부에 대해 조금 더 다가가고 싶었다. 준영은 한숨을 내쉬며 이부자리를 갰다.

 

 “꿈을 좀 꾸느라.. 제가 많이 잤나요?”

 

 “해가 중천입니다. 제롬 씨도 정신이 들었어요. 어제 피를 한 바가지 흘린 양반보다 늦게 일어나셨어.”

 

 창기는 계속해서 툴툴댔다. 준영은 그 이유를 알기에 별말은 하지 않았다. 이곳은 아직 밀교의 본당, 준관에게 뒤통수가 다 깨지도록 두들겨 맞았던 창기가 이곳에 호의를 보이긴 힘들 것이다.

 

 “벌써요? 어서 씻고 오겠습니다.”

 

 “에이~ 천천히 해요. 정신만 돌아온 것이지 원체 심하게 두들겨 맞은 지라 아직 몸을 움직이는 건 힘들어 보이더군요.”

 

 “예.. 그래도 다행입니다.”

 

 묘덕과 낭광 로렌스 일당이 사라진 자리는 혼돈 그 자체였다. 곤은 결말이 나지 않은 싸움에 포효했고, 제롬은 피를 많이 흘려 기절했다.

 준관은 겨우 몸을 추스르고 나와 묘덕이 납치됐단 사실을 알고 뒤늦게 분노했다. 불의 씨가 다시 깨어나 요동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벌겋게 흥분한 준관의 모습은 로렌스가 보여준 야성과는 다른 의미의 공포를 보여주었다.

 

 장창을 꺼내 당장이라도 제롬을 죽일 것처럼 달려들던 준관의 모습에 주변 승려들과 준영은 기를 쓰며 그를 말려야 했다. 제롬에게 분노를 풀지 못하자 이번에는 그 화가 승려들을 향했다. 공포에 질려 로렌스를 막지 못한 승려들을 수차례 구타를 한 준관은 씩씩대며 창을 바닥에 놓았다. 그도 결국 불가를 따르는 승려였고 폭력과 살생에 대한 본능에 가까운 거부감이 그의 머리를 빠르게 식혔다.

 

 준관은 제롬을 옮겨 치료하라 명하고 재빨리 부상자들을 안으로 옮겼다. 또한, 발 빠른 승려들을 밑으로 보내 로렌스 일당의 흔적을 추적토록 했다.

 준영은 준관의 이성적인 모습에 찬사를 보냈고, 그에게 뒤통수가 깨진 창기와 곤은 이곳에서 하루를 더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비명을 질렀다.

 

 “몸은 좀 어때요?”

 

 간단히 씻고 나온 준영은 바로 제롬에게 달려갔다. 좌식 테이블에 기대어 산속 풍경을 바라보던 제롬은 말없이 손을 들며 인사를 건넸다. 핏기없이 파리한 안색에는 어젯밤 전투의 여파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준영이 그의 맞은편에 앉자, 창기가 쪼르르 달려와 둘 사이에 끼어들 듯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거인족은 남다르네요. 그렇게 얻어맞고도 하루 만에 벌떡 일어나고.”

 

 “죄송합니다. 어제 제가 흥분했던 건에 대해 두 분께 사과드리고 싶군요.”

 

 농담처럼 건넨 말에 제롬이 정색하며 사과하자 머쓱해진 창기가 뒤통수를 긁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준영이 테이블 아래로 창기의 허벅지를 찌르며 눈치를 줬다.

 

 “의뢰는 받기 힘들 것 같습니다.”

 

 “예?”

 

 “제게는 이제부터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장 수사님의 추가 의뢰는 받기 힘들 것 같네요.”

 

 “아, 네.”

 

 차분한 지리산 아침의 고요와 그보다 차분한 절터 안에서 그보다 더 차분한 제롬의 분위기가 준영을 숨 막히게 했다. 마치 한참을 물속에서 잠수하다 나온 사람처럼 준영은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의뢰받습니다!”

 

 준영의 난데없는 선언에 제롬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한참 동안 준영의 말을 곱씹던 제롬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준영을 바라봤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저 장준영 수사와 여기 창기 앤 곤에게 의뢰를 맡기셔도 좋습니다. 뭐, 그 호위 같은 것들 있잖아요.”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고 그러십니까? 이제부터는 장난이 아닙니다. 함부로 나설 일이 아니에요.”

 

 제롬의 진지한 충고에 준영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불안해서 못 두고 가겠습니다. 주님은 가까운 자부터 지키라 하셨습니다.”

 

 “허, 참..”

 

 제롬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준영과 창기를 번갈아 바라봤다. 누가 누굴 지킨다는 것인지. 하지만 둘 다 고집 하나만큼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위인들이 아니었다.

 

 “만약 제가 장 수사님이 생각하는 정의에서 멀어지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잘 타일러야죠.”

 

 “말은 쉽군요.”

 

 제롬은 기가 막히면서도 마음 어딘가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제롬은 눈앞의 어리숙한 두 남자에게 믿음이 생겼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한쪽은 옳은 길이라면 그 앞이 낭떠러지라도 걸음을 옮길 것이고, 한쪽은 원하는 길이라면 그 앞의 저승길이더라도 뛰어들 것이다. 그 맹목적이고 우둔하게 느껴질 정도의 신념이 제롬은 썩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신 나중에 후회하지 마세요.”

 

 합의를 마친 셋은 급하게 짐을 쌌다. 어제 반나절의 등산과 피 터지게 싸웠던 전투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지만, 여기서 지내는 것이 썩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그들이었다. 각자 다른 의미로 준관의 눈치가 보인 이들은 본당 측에서 제공한 아침 식사마저 거른 채 길을 나섰다.

 

 준관은 셋을 한차례 흘겨본 뒤 결계를 열어주었다. 처음 곤이 사자후를 질렀던 그곳으로 연결된 결계라고 했다. 다른 지역의 결계들은 묘덕이 대부분 파손시켜 놓았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추적 중에 누군가가 다칠 것을 염려한 모양이었다.

 

 “만약 묘덕님을 먼저 찾는다면 이쪽으로 연락을 주시게. 난 비록 이곳에 묶인 몸이라 떠날 수 없지만 사회에 남아있는 우리 동지들이 바로 찾아갈 터이니.”

 

 제롬은 고개를 끄덕이며 준관이 건넨 쪽지를 받았다. 준관은 결계 앞에 선 그들에게 한 명씩 정중하게 합장했다.

 

 셋이 동시에 결계 건너편으로 한걸음 내딛자 순식간에 풍경이 변했다. 밤의 풍경과는 많이 달라 보였지만,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 본 그들은 이곳이 어젯밤 그토록 헤맸던 그 장소라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진짜 신기하네요.”

 

 준영은 솔직하게 감탄한 표정을 드러내며 사방을 둘러봤다. 창기도 마찬가지로 신기한 듯 결계 주변을 서성였다. 제롬의 표정만이 썩 좋지 못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얼마나 걸렸죠?”

 

 제롬의 말에 준영의 표정도 급격히 일그러졌다.

 다행히 산행은 어제만큼 힘들진 않았다. 경사 심한 내리막길이 벅차긴 했지만, 아침이 주는 묘한 에너지와 선명하게 보이는 산길은 하산을 제법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셋은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차를 세워둔 곳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갑니까?”

 

 이른 아침 운동에 들뜬 창기가 뒷좌석에 앉으며 물었다. 제롬은 대답 없이 보조석에 앉아 의자를 뒤로 바짝 눕혔다. 창기가 깜짝 놀라며 몸을 피하자 사색이 된 제롬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직 부상의 후유증을 벗지 못한 그는 창기를 향해 입을 웅얼거렸다.

 

 “일단 한숨 자겠습니다. 장 수사님 운전 좀 부탁해요.”

 

 그 말을 끝으로 제롬은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런 제롬을 바라보던 준영은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이 들었는지 준영은 제롬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준영이 행한 것은 제롬을 향한 기도였다. 비록 땀 냄새가 뒤얽힌 좁은 차 안이었지만 준영의 모습은 엄숙했고 영광스럽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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