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 반해 이 녀석! 해숙은 달랐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구급차에서 내린 후에 며칠 지나서 눈물을 또 쏟아 내야 했다. 비단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만물이 같다고 본다. 자기의사대로 세상에 나오는 만물은 없다고 본다. 태어날 때 그렇게 태어나듯이 갈 때도 그렇게 갔다. 인간이 잉태하고 태어나는 데는 열 달이지만 떠나는 날은 예고가 없었다. 마치 번개 불에 콩 볶듯이 이들은 떠났다. 마치 교통사고 나서 가는 거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죽음을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다. 이보다 더라는 비교 어휘를 절대로 쓰면 안될 선량한 사람들도 정말 말도 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온 가족이 한꺼번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 본다. 그 분들에 비하면 이들의 죽음은 더뎠고, 안타까움이 아니라 환호를 받아야 한다. 비록 그들의 가족에겐 불행이지만 그들 가족들도 이 정도는 감수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의 벌에 대한 처벌이 감옥이나 죽음이나 차이뿐이다.
해숙이 신랑은 그렇다지만 인걸은 무슨 죄가 있냐며 의아해 할 문상객들도 있을 것이다. 그는 죄질은 어떻게 보면 임정훈보다 더 고약하다. 성욕에 둘러 쌓여 있는 탐욕을 위한 이간질.
미소에 가려진 그의 흑심을 충족하기 위해 해숙에게 접근했다. 그것도 해숙이 가장 힘들어 할 시점에 그가 나타났다. 그의 욕구는 단 하나다. 어린 시절 짝 사랑한 해숙과의 몇 번의 잠자리. 그리고 그는 해숙을 버리고 그의 가정으로 돌아가 버린다.
우리는 주위에는 이런 파렴치한 놈들이 아주 많이 어슬렁거리는 걸 알면서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남자에겐 위로하는 척 접근해 돈을 뜯어가고 여자에겐 접근해 육신에 대한 탐욕만 충족하고 사라진다.
해숙이 신랑인 임정훈과 해숙이를 좋아했던 인걸은 그날 그 사고로 며칠 터울 사이로 해숙을 홀로 두고 떠났다.
죄 받았다.
한가지 천만다행인 것은 누가 먼저 잘못이라는 법정 다툼으로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해숙을 귀찮게 하지 않은 것. 그 것이었다. 이런 사람과는 오빠가 절대로 어울릴 사람이 아닌데도 같이 죽마고우의 의리를 지키는 이유를 신랑에게 들었다. 오빠는 외적으로는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에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오빠가 강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건 오래 전이었다. 친척이나 지인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오빠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될 고인인대도 눈물을 흘렸다.
그렇지만 마땅히 눈물을 흘려야 될 고인의 영전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철저히 구분을 했다. 이렇게 철저히 구분을 하는 사람이 인걸과 친한 척하며 지낸 이유는 외톨이가 될 까 두려워서 그렇게 지낸다고 신랑이 말했다. 언제나 강해 보이는 오빠도 홀로는 싫어하는 면모를 가진 이중적인,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오빠! 아니 인걸을 오빠는 싫어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저 안타깝다고 했다.
오빠를 자랑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게 아니고 인걸이란 사람을 오빠가 꺼려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이 말을 하려고 한다. 인걸이란 오빠는 친구들 사이에서 오빠와 경쟁을 많이 시켰다고 했다. 하다못해 신랑과도 경쟁을 시켰다고 했다. 신랑과 오빠의 체격을 비교하면 오빠가 조금 더 크고 덩치도 좋다. 그리고 주먹도 굉장히 셌다. 그건 어린 시절부터 골목대장 역할을 하는 걸 봐서 잘 안다. 운동도 특출이 잘 하지는 못하지만 인걸이 오빠나 신랑보다는 잘했다고 했다.
그런 오빠를 인걸은 항상 이기고 싶어했고, 그러다가 포기를 했다고 했다. 그 후로 경쟁을 시키는 걸 좋아하다가, 그 버릇을 오빠와 신랑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주위 사람들에게 까지 적용시켰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지인들 사이에 간사한 이간질 꾼으로 낙인 찍혔고 기피대상이 되었다고 했다. 그 기피대상에 되기 전에 오빠는 신랑에게 부탁을 했다고 했다.
자기가 그런 짓을 아무리 부드러운 어투와 인상으로 하지 마라고 해도 그는 오빠의 선천적인 인상 때문에 오빠가 화를 낸다는, 오히려 뿔뚝한 고약한 성질머리를 드러내더라는 말을 지인들에게 해 버려, 오히려 오빠만 나쁜 놈이 될 것 같다며 대신 얘기해 달라고 했다고 했다.
신랑도 그 사람의 그런 부분을 잘 알고 있고, 오빠가 우려하는 그런 오해 받을 까 싶어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 때문에 화가 나 집에 오는 경우도 많았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죽마고우들이었지만 이젠 그런 스트레스를 오빠도 신랑도 겪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빠도 남편인 영철도 해숙이 신랑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인걸이 장례식에만 참석해서 애도를 했다. 아마 오빠였으면 영전 사진에 대로 엿먹으라는 주먹 짓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날 은희는 해숙이 신랑 영전에서 눈물을 쏟아내다가 상주. 그러니까 해숙이 자녀들의 부축에 끌려 빈소를 나와야 했다. 그들은 아마 오해를 했을 것이다. 자기 아버지를 추모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건 절대 아니었다. 그 동안 잘난 죄로 무시당하고 구타당한 해숙이가 불쌍해서 눈물을 쏟아냈다.
자신의 열등감에서 분출된 자괴와 자기 증오를 해숙이 탓으로 돌려 괄시한 나쁜 놈.
눈물의 의미를 똑바로 알고 가라는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다. 영전 사진을 노려는 볼 수가 없었다. 움찔해졌다. 살아 있을 때 해숙에게 했던 폭력의 준비태세 같은 눈빛이었다. 그래도 눈물의 의미를 똑바로 알고 가라고 하고 싶었다. 해숙이가 깨어나서, 지금 여기 신랑 영전 앞에 앉아, 빈소를 지키며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은희와 같으리라고 감히 단정을 지어 주었다. 해숙이와 그 자녀들에게 미안하지만 복수를 했다는 환희에 찬, 너무 기뻐서 흘린 눈물도 섞여 있었다. 더 이상 가식에 찬 눈물을 흘리지 말자는 생각을 가질 때쯤 신랑이 나오라고 했다. 신랑도 오빠와 마찬가지였다. 이런 장례식에 오는 게 쓸데없다고 욕설할 인간들이었다.
신랑은 집으로 가지 않고 차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가고 있었다. 의례적인 행사가 아닌 보통 때처럼 나온 김에 어디 가는 줄 알았는데 차는 해숙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이었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 둘이 있다면 이 사람과 오빠였다. 그래도 친구를 찾아와 주니 고마웠다. 병원 출입문을 들어서자마자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렇게 도착한 병실 앞에서 은희는 숨이 턱 멎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