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임마! 쓸데없는 놈 얘기를 여기서 왜 해? 물어보려면 아까 물어보지. 신경 꺼. 여기 분위기 잡친다”
아주 잠시 분위기가 썰렁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은희 입장에서는 분위기를 반전시켜 준 인걸이가 고마웠고 눈치 없는 창훈은 미웠다. 역시 아군은 신랑밖에 없었다. 오빠의 응징을 예상한 은희가 쫓아와서는 영철이 옆에 딱 붙어 앉아 벌써 애교를 떨면서 눈을 부라려 수리를 노려보고, 수리는 어이없는 얼굴로 이들 부부를 쳐다보고 있다. 수리가 작심을 한 듯이 은희를 노려보고는 입을 연다.
“은희야! 네가 출가외인이라서 너 시집간 뒤로 내가 잔소리를 한번도 한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잔소리를 꼭 해야겠다. 박서방도 잘 들어”
그때 갑자기 ‘푸’ 소리와 함께 창훈이 입에 들어갔던 소주가 밖으로 튀어 나갔다. 긴장해서 귀를 기울이는 영철이가 우스웠던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영철이 잔에 소주를 따르고는 장난끼로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는 약을 올리듯이 말을 한다.
“야~~ 이 집! 위계질서가 확실한데. 허허허. 그래야지 가정이 편하지. 허허허”
수리가 그 말을 들은 척 만 척하며 미간을 한 곳으로 잡아 당기고는 입술을 한번 지긋이 물고 간단히 설교를 시작하고 마쳤다.
“은희야! 오빠가 어릴 때부터 네가 귀가 닳도록 한 말이 뭔지 기억나?”
“응! 공부할 땐 조용히 하라고 했지”
“그래! 바로 그거야! 오빠나 네 신랑이 공칠 때는 제발! 부디! 절대! 전화하지마. 그리고 박서방 자네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공이 안 늘지. 공 칠 때는 휴대폰을 아예 들고 오지마. 내가 정신이 산만해서 모처럼 공치러 가서 공을 쳤는지, 화만 냈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창훈이와 인걸이 입에서 동시에 웃음을 빵 터졌고, 물었고, 간단히 수리가 대답을 한다.
“야 임마! 그렇게 심각하게 인상을 찡그리고 하고 싶었던 말이 겨우 그거야?”
“그래!”
영철이가 입 꼬리를 한쪽으로 한참을 비틀어 올리고 쳐다보다가 ‘그래 내가 잘못했다’는 표정을 짓고는 반격을 시작한다.
“야! 임마! 너도 마찬가지야. 공을 치러갔지 사진 찍으러 갔냐? 네가 칠 차례인데도 그 놈의 사진에 빠져 있는 동안 얼마나 짜증나고 지루했는지 알아? 그 바람에 리듬도 다 잃었고. 정말 짜증나고 열 받고 네 놈 동생 전화에 곤혹스런 하루였다. 이놈아!”
“허! 이 놈의 집안에 질서가 좀 잡힌 줄 알았더니 아니네. 아주 개판이네. 잔디서 쌓인 감정은 거기서 풀고 와야지. 이 놈들 뒤 끝이 고약한 놈들일세. 그런데 내까지 왜 불렀어. 설마 우리 이런 개판인 집안입니다 라고 자랑하려고 부른 건 아닐 테고. 뜸들이 말고 얼른 시작해”
그때 수리가 오른 손들에 턱을 괴고는 인걸이 뚫어지게 쳐보고는 묻는다.
“해숙이가 누군데? 그 신랑이 또 뭐고? 인걸이는 알 거 아냐? 같은 선생인데? 내 기억에 너와 그 애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인걸이 눈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수리는 예리하게 잡아냈다.
“글쎄! 해숙이가 누군데? 처음 듣는 이름인데. 선생이 한 둘이냐?”
그때 창훈이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인걸을 빤히 보며 묻는다.
“혹시! 옛날에 네가 좋아하는 후배가 수리 저 놈 좋아하는 걸 알고 네가 싫어했잖아. 그 애가 혹시 해숙이 아냐?”
“그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 내가 좋아한 후배가 어디 있었어”
정색을 하며 눈살을 찌푸려 창훈을 노려보는데 영철이가 끼어들어 인걸을 애매모호하게 옹호해주었다.
“그래! 어릴 때 저 놈은 공부한다고 여자애들에게 관심이 없었어. 너! 기억나냐? 한문 선생님이 천자문 다 외우는 사람 손들어 봐 했을 때, 내가 하늘 천 땅 지를 알아서 손을 들었는데, 네가 끝까지 외우라고 했잖아. 그때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기특하다며, 안 해도 된다고 해서 내가 망신을 안 당했지. 그때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때 너도 안다고 했는데 한번 외워봐. 자식이 그때 생각하면 지금 한 대 꽝! 한문 선생 하면 내가 인정을 하는데 난데없이 네가 영어선생이야”
영철이가 주먹을 머리에 올리는 시늉을 하고 인걸이는 얼른 피하려고 하고, 영철이가 계속 말을 잇는다.
“야야! 다른 데로 말 새 나가게 유도하지 말고 집중해. 특히 너! 인걸이! 입 다물어. 그건 창훈이 네가 잘 알 거 아냐? 영식이 이름이 나오고 도와 달라는 게 나오고.. 빙 돌리지 말고 딱 부러지게 말해. 도와줄 수 있어? 없어?”
창훈이 잠시 고민을 하는 듯 보였다. 그건 도움을 주고 안 주고의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설명을 할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머리 속에서 퍼즐을 맞추고 있었고 먼저 결론부터 얘기를 한다.
“내보고 그 사람을 도와주라고 하는 말은 나는 망하라는 말과 같다. 영식이 공장에서 얼마 전에 폭발 사고가 난 건 알고 있지?”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고 창훈이가 난감한 목소리로 설명을 한다.
“그 사고로 지금 생산이 중단됐어. 내가 그 석유화학제품을 너희들에게 얘기해도 이해를 못하니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 너희들도 잘 알지만 내가 그런 제품들을 수입해서 국내에 팔아서 먹고 살고 있잖아. 물량이 모자라면 영식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그 제품을 내가 사서 팔기도 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영식이에게 미안할 때가 많아. 어떻게 보면 내가 그 회사의 경쟁사지. 그런데 내가 이번에 알았는데 그 해숙이란 후배의 신랑이 그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어. 우리 중학교 동기 중에 그 회사에 근무하는 놈이 하나 있어. 내보고는 아는 척도 안 하는 놈인 그 놈의 고등학교 후배 중에 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이 근무하는 회사가 내 경쟁사이기도 해. 참! 은희야! 해숙이 신랑이 건설한다고 안 했어?”
“예!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도움을 청해서 의아해하고 있어요”
‘아~~’
얇은 떨림이 섞인 한숨 소리와 심각하게 변해가는 표정이 편한 술자리가 아닌 당장이라도 해결해야만 하는 난관에 부딪힌 일에 다 같이 고민하는 회의 자리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니었다. 이 아닌 설명에 수리는 어떤 말도 할 자격이 없다. 오히려 창훈이 단호하게 한 마디로 ‘안돼!’를 기다리고 있다. 이건 창훈이를 위해서이지만 자신을 위한 중요한 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