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제가 화가 나서 보낸 문자이니 삭제해주세요’ 라고 다시 임운영에게 보내고 임운영은 실시간으로 중개하듯이 김동원에게 보냈다.
“형님! 이 문자 좀 보세요”
강성호 같은 회사의 인수 문제로 부쩍 자주 권태를 회사를 찾은 수리가 한 다리 걸쳐 전달 받은 문자를 보며 빙긋이 웃으며 동원을 쳐다 본다.
“살살 다루지. 바로, 바로 보고하네. 허허허. 이리 줘봐”
휴대폰을 넘겨 받은 수리가 문자를 두드리고 있다.
‘아직도 세상은 남자의 불륜에는 관대하고 여자의 불륜에는 절대 관대하지 않습니다. 임자 없던 시절의 불타는 사랑은 과거였고 임자 있는 지금 두 분의 잠자리를 절대 아름답지 못한 하나의 쾌락을 위한 불륜입니다. 그 쾌락도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십시오. 이 문자는 형님에게 전달하지 않고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 추신: 형님이 병원에 가보랍니다. 신랑에게 옮은 것 같답니다. 형님은 성병 치료 마쳤답니다’
“뭐해! 누르지 않고”
휴대폰을 김동원이 주고는 눈을 지긋이 감고 소파에 등을 누울 듯이 기대고 있다.
“형님! 서리 내리면 어쩌려 구요”
“너처럼 우둔한 애 아냐! 영악해”
동원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꾹 눌러버린다.
권태가 휴대폰을 보고는 수리 머리를 한대 쥐어 박고는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일그러져 있다.
수리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변하게 없다고 반성을 하면서도 앙금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놈의 사랑.
오직 연어를 향한 사랑은 아마 죽을 때까지 간직할 것만 같았다.
등신처럼.
그래도 한때는 오빠였다.
이런 식의 눈을 의심할 만큼 노골적인 비아냥을 할 만큼 모진 부분은 절대로 본적이 없었다.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뒤틀어진 인간의 한 부류로 변하게 해버렸는지 안쓰럽기도 했다. 그 중심에 본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주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양아영은 지금의 결과를 가져온 원인을 모를 만큼 우매한 여자는 아니었지만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면 날수록 모든 잘못이 남편의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금의 결과를 가져 온 남편 주위 사람들을 하나, 하나 다시 찾기로 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었다.
그녀의 이름에서 유래된 양아치란 별명을 버릴 수는 없었다.
찾아 나섰다.
먼저 김경일을 찾아갔다.
김경일도 지금 양아영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김경일은 그 놈인 고동우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
“고대리 오랜만이네”
불쾌한지 눈살을 찌푸리지만 그의 얼굴은 내적인 표현을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상처투성인 얼굴로, 그 얼굴은 굳어진 껍질로 변해 있었다.
표정을 알 수가 없었다.
김경일이 피씩 웃음을 보내고 고동우도 마찬가지로 둘만이 아는 음흉한 미소로 보내고 있었다.
김경일 손이 무의식 중에 아랫도리로 갔다. 양아영은 못 본 척 무시했지만 고동우의 야릇한 눈꼬리는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자! 이거 보세요. 제가 그 동안 조사해서 확인한 자료들입니다”
고동우가 선박이 들어 올 때부터 보험처리까지 과정을 상세히 정리해서 내놓았다.
약간은 들떠 있었다.
양아영도 김경일도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동영상만 없을 뿐이지 이 자료들은 그들이 저지른 하나의 CCTV고 블랙박스였다.
그 속에는 그들의 치부만 있는 게 아니고 고동우를 내친 회사의 치부도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주도 면밀하게 기획한 연극에 이들 고동우와 김경일과 강성호는 일개 단역의 역할만 하고 있었다. 이들과 남편이 철저히 희롱 당한 기록들이었다.
“이걸로 뭘 하죠?”
양아영은 고동우와 김경일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만약에 이걸 내세워 윤연어나 정수리를 압박해도 피해는 본인만 지게 된다는 건 불을 보듯이 뻔한 사실이었다.
“야 임마! 새끼가 양아치처럼 또 쏙 빠지려고 해. 지금 당장은 그 놈들이 너를 봐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너도 곧 회사를 그 놈들에게 넘겨줘야 해. 내 같이 피해를 본 회사들이 가만히 있을 줄 알아?”
김경일이 갈기갈기 찢어진 목소리를 언성을 높여 양아영을 설교하듯이 고함을 지르고 양아영은 입술을 비틀어 치켜 올리고는 가련한 듯이 쳐다보고는 오히려 따지듯이 추궁을 한다.
“말조심하세요. 새끼라니! 아직도 30년 전 후배인 줄 아세요. 그러면 더더욱 제한테 깎듯이 고개를 숙여야죠. 창피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당신이 피해본 게 뭐가 있어요? 내가 바보인 줄 알아요? 나도 조사할 만큼 다 해봤는데 당신은 그것 말고는 아무런 피해도 없더구먼”
양아영이 아랫도리를 냉소 섞인 눈으로 쳐다보고 김경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때 고동우가 나선다.
“좋습니다. 나야 뭐 밑질 것도 없으니 이 자료 들고 경찰서로 갈랍니다. 원망 마십시오”
“이 새끼가 겁 대가리 없이 설쳐! 좋을 때로 해”
김경일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고 고동우의 입 꼬리가 씁쓸히 치켜져 올라갔다가 양아영을 쳐다 보고는 묻는다.
“사모님도 빠질 겁니까? 저 새끼와 그렇고 그런 사이던데. 각오는 돼 있죠?”
불쾌하고 역겨운 방법으로 압박을 하는 고동우를 가소로운 듯이 넌지시 쳐다보았다. 이 방법은 얼마 전에 직접 사용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하고 오히려 역공을 맞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세요. 지금이 무슨 가부장적 봉건사회인 줄 아는 모양이죠? 내하고 그 사람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란 걸 알면 이 이야기도 바로 그 사람 귀에 들어간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겠네요. 바로 전화하세요. 치졸한 새끼! 멍청하게”
양아영은 이 놈이 정말로 그 놈에게 전화하기를 바랬다.
할말이 많은데 수신 거부를 해둬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양아영은 악마와 천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느라 정신이 혼미해지고 분열된 것 같았다.
지금은 악마도 천사도 아닌 그 놈이 이놈의 전화를 받는 순간에 휴대폰을 얼른 뺏어 무슨 말이던 해야만 했다.
읍소를 하던 앙탈을 부리던 뭔가는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놈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청하게 쳐다 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 하세요? 빨리 전화하지 않고”
이 놈은 김경일과 같은 놈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시하는 눈알을 만들어 아래로 내려다 보고는 휙 하니 나가버렸다. 나가자마자 다리가 지렁이처럼 늘어뜨려졌다. 의자에 주저 앉아 그 놈이 박차고 나간 출입문을 휴전선을 지키는 보초병처럼 쳐다보고만 있었다.
언제 또 들어와서 약점을 빌미로 파고 들지 모르는 아주 비열하고 독한 바이러스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잘못 건드렸다는 후회만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