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재성아. 글쎄, 어떡할까?”
재성은 어제도 도아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전화를 걸었었다.
“나는 가야 한다고 생각해.”
도아가 답했다.
“수민이가 없는 데도 갈 거야?”
수화기 반대편에서 재성이 말했다.
“말했듯 가야 한다고 생각을 해. 난 갈 거야.”
도아의 내부에서 어떠한 힘이 강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 힘이 도아로 하여금 호수의 별장으로 이끌고 있었다. 휴웅 하고 바람이 되었던 벨즈는 다시 독수리가 되어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그럼 나도 가야겠네.”
재성이 말했다.
“그 사람은?”
“화수 형 말이구나. 그 형도 간대.”
“데리러 갈까?”
“그래 줄래?”
“그래.”
전화를 끊은 도아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보발은 이미 차 정비를 끝낸 상태였다. 도아는 뒷좌석에 올랐다.
“좀 덥긴 하지만 좋은 날씨네.”
“그런 것 같습니다.”
“걘 어디로 사라진 걸까?”
“수민 양 말씀이시지요? 아마 곧 돌아올 겁니다.”
“왠지 걔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긴 거 같은 예감이야.”
“불행히도 도련님의 예감은 잘 맞는 편이지요.”
“아, 보발…….”
재성은 반팔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가 보발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타.”
재성은 도아 옆에 앉았다. 도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말수가 없어지자 차창에 매달려 바깥 풍경을 감상했다. 화수는 따로 호수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간에도 화수는 이부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밤새 방안을 칼과 함께 서성인 결과였다. 찢어진 책과 옷이 온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보경이 나오는 악몽을 잠깐 꾸었지만 그 뒤로는 편했다.
그의 눈이 살짝 떠졌다. 그는 팔다리를 움직이려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떤 여자가 현관 앞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몸을 뒤틀었지만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자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다리 한 번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몸이 완전히 뒤로 돌아갔다. 그는 가위에 눌리고 있다는 걸 알지만 머리를 늘어트린 보경이 다가오자 겁이 났다. 손발을 흔들었지만, 묶여 있는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의 목에 붉은 손자국이 나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서 호수로 가.”
보경이 입을 움직였지만 거기서 나오는 목소리는 그의 것이었다.
보발의 차는 도로 양옆으로 자라 있는 나무 그늘 속을 달렸다. 나뭇가지의 그림자들이 앞유리창에서 연이어 지나갔다. 숲을 벗어나자 어두웠던 주위가 환해졌다. 해가 높이 떠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 몇 조각이 떠 있었다. 새가 무리를 지어 날았다.
“저기 호수 아니야?”
도아가 말했다.
“아, 저기구나.”
재성이 앞유리창 너머를 보며 말했다. 에메랄드빛 호수가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자 별장처럼 보이는 건물이 나타났다. 흩어져 있는 부락들도 보였다. 별장과는 한참 떨어져 있었다. 차에서 내린 둘은 숨부터 깊게 들이마셨다.
“공기 좋지 않아?”
재성이 말했다.
“글쎄, 내가 사는 곳도 이런 곳이라서. 호수는 없지만 말이야. 보발 이젠 됐어. 그만 가도 돼.”
보발은 인사를 하고 차에 탔다. 그들은 멀어지는 차를 보다가 물 끼얹는 소리에 호수로 고개를 돌렸다. 다리가 기다란 새 두 마리가 호수의 얕은 곳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물속으로 긴 부리를 밀어 넣더니 물고기를 물고 나왔다. 머리를 흔들어 물고기를 위장 속으로 털어 넣었다.
“미온이는 어떻게 됐어?”
재성이 물었다.
“관두기로 했어.”
“관뒀다고?”
“오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지.”
재성이 잠시 도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방을 벗었다. 도아는 빈손이었다.
“음료수 마실래?”
“좋지.”
재성이 탄산음료를 건넸다. 둘은 호숫가를 걸었다. 재성이 돌멩이를 주워 물수제비를 떴다. 도아도 따라 했다.
“난 잘 안 되네.”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
“어, 된다.”
중형은 별장의 금 간 창문을 통해 호숫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수면제 처방을 받은 민경은 지하실에 있었다. 생각보다 반항을 좀 했다. 그는 화가 났지만 곧 잠드는 그녀를 보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의 아내가 될 사람이었다. 여기서 아기를 가질 생각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에 터전을 마련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가 보면 귀신이 산다고 해도 믿을 만큼 살풍경했지만 그는 흡족해서 큰 미소를 지었다.
“들어 가 볼까?”
도아가 별장을 가리켰다. 재성이 도아 쪽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없겠지?”
도아가 말했다.
“처음 모임에 들었을 때는 폐가에 간다는 사실에 긴장을 했는데, 몇 곳 다니다 보니까 고만고만하게 느껴지지 않아?”
“재성이 너 긴장한 얼굴인데?”
“내가?”
“농담이야.”
“사실 약간은 긴장이 돼.”
“긴장할 게 뭐 있어.”
“폐가니까.”
“고만고만하다면서?”
“근데 도아 너도 얼굴이 좀 굳었는데?”
재성의 말은 사실이었다. 도아의 얼굴이 어두웠다. 불길했기 때문이다. 이 어딘가, 어쩌면 그의 마음속에 불온한 뭔가가 싹트고 있었다. 새 한 마리가 쭉 미끄러져 날아갔지만 벨즈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호수에 도착하고 거의 한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그는 언젠가부터 흐르던 땀을 닦아내며 호수에 돌멩이를 던졌다. 납작한 돌멩이가 수면 위를 여러 번 스치고 날아갔다.
별장은 얼핏 보면 폐건물이 아니라 영업 개시 전의 숙박업소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금 간 창문이라든지 관리가 안 돼 부서져 내린 벽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건물은 붉은색 계통이었다. 앞뜰의 나무들은 잎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 주변에는 나뭇잎이 듬성듬성 떨어져 있었다. 그들은 한때 포도나무가 엉키었을 쇠 울타리 안으로 들어섰다. 별장까지 판석이 이어져 있었다. 주위에는 자갈이 깔려 있었고 잡초도 무성했다.
“출입문은 잠겨 있는 걸?”
재성이 말했다.
“괜찮아. 창문이 열려 있어.”
도아의 말대로 가까운 창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얇은 커튼이 하늘거렸다. 창문을 완전히 위로 올리고 도아가 먼저 들어갔다. 재성도 뒤따라 머리부터 집어넣었다. 그들은 묘한 냄새가 나는 넓은 거실에서 주변을 살폈다. 집기들은 거의 그대로 있었다. 눈높이보다 높은 곳에는 짐승의 머리뼈 장식이 걸려 있었다. 재성이 스위치를 건들었지만 당연하게도 불은 켜지지 않았다.
바닥에는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었다. 오래되어 결이 눌어붙어 있었다. 탁자 위에는 컵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껍데기만 남은 파리가 들어 있었다.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볕을 통해 먼지 알갱이가 선명하게 보였다. 현관의 신발장에는 구두 한 짝이 들어가 있었고 바닥에는 슬리퍼 두 켤레가 있었다.
열려 있는 방문이 보였다. 문 옆에는 귀퉁이가 깨진 그림 액자가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거실에서처럼 묘한 냄새만 날 뿐이었다. 방에서 나온 그들은 벽의 굴곡을 따라 걸어갔다. 식당이었다. 재성이 싱크대의 이곳저곳을 열어 보았다. 웬만한 집기들이 거의 그대로 있었다. 칼집에는 칼도 여러 벌 꽂혀 있었다. 재성이 꺼내보니 녹이 슬어 있었다. 손잡이가 헐렁해서 빠지는 것도 있었다.
식탁보는 벗겨져서 둘둘 말려 있었다. 의자 몇 개는 식탁 깊숙이 들어가 있고 몇 개는 뒤집혀 있었다. 창문에는 통통한 파리 몇 마리가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사업이 망했던 걸까?”
재성이 냉장고를 열어 보며 말했다. 냉동실은 행주로 닦은 듯 깨끗했지만 냉장실은 식재료들이 세월만큼 묵혀서 기분 나쁜 영상을 보여 주었다. 재성은 냉장고를 닫았다. 냉장고 문에는 몇 개의 장식물이 자석으로 붙어 있었다.
“별로 폐가 같은 느낌은 아닌데.”
도아가 말했다. 그가 손짓을 하자 뒤집혀 있던 의자가 다른 의자들처럼 질서를 찾았다.
“오히려 그래서 더 기분이 이상한 거 같아.”
“그렇긴 하네. 기분이 나쁜 건 매한가지야.”
“이런 데가 진짜 사연이 있는 곳 아닐까?”
“설마.”
도아가 피식하며 말을 이었다.
“귀신같은 건 없어.”
“있을지도 몰라. 어렸을 때 본 적이 있거든.”
“나도 있으면 좋겠다만.”
“귀신이?”
“재밌잖아.”
“나는 별로…….”
재성이 말하며 손에 붙은 파리를 쫓았다.
식당에서 나온 둘은 일 층의 나머지 방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지하실도 있는 거 같은데?”
재성이 철제 바닥 문을 발견했다. 잡아당겨 보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그 밑에서 중형이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아야 힘 좀 써 봐.”
“저런 데는 별로야.”
“초능력 말이야.”
“알아, 무슨 말인지. 이 층이나 둘러보고 나가자.”
그들은 나선 계단을 올라 이 층 복도에 들어섰다. 방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있었다. 둘은 하나씩 열어 보았다.
중형은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심적 갈등을 하고 있었다. 화수가 나타날지 안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냥 저 둘을 먹어 치울까 하는 것이다. 좀 전부터 배가 꼬르륵거리고 있었다. 몸이 변하고부터는 허기가 시작되면 뱃가죽이 등에 금세 달라붙었다. 그는 흐르는 침을 핥으며 바닥 문을 살짝 들어 올렸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서 입으로 빨았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좌우로 움직였다.
“배고파. 배고파.”
그의 뱃속에서 천둥이 쳤다.
“잠깐만.”
도아가 말했다.
“왜 그러는데?”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그들은 발코니에서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소리를 들었어.”
심각한 도아로 인해 재성은 불안해졌다. 둘은 서로 딴 곳을 보며 멈춰 서 있었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순간 재성은 비명을 질렀다. 끼에에엑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발코니 창으로 독수리가 화살처럼 날아드는 것이었다.
“배키가!”
도아가 외치는 것과 동시에 벨즈는 문으로 들어오는 중형의 팔에 부리를 꽂았다. 발로 중형의 팔을 찍으며 부리를 빼기 위해 날개를 퍼덕거렸다.
중형이 고통으로 인해 괴성을 질렀다. 그가 벨즈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과 함께 두툼한 팔이 변형을 일으켰다. 피로 물든 거무스름한 칼날이 팔뚝 살을 뚫고 나오자 빈 거죽은 포도 껍질처럼 축 늘어졌다. 벨즈가 튀어 오르자 그 날개를 낫 모양의 칼날로 싹둑 잘랐다. 도아가 주먹 크기의 물방울을 몇 번 터트려 중형의 주의를 돌린 후에 슬라이딩으로 벨즈를 안아 올렸다.
“재성아 정신 차려!”
도아가 소리치자 발코니 창이 와장창 깨졌다. 수백 개의 유리 파편들이 중형에게 날아들었다. 중형이 사마귀 앞발 같은 양쪽 팔을 들자 거기에 두두두 박혔다. 그 틈에 도아와 재성은 복도로 벗어났다. 중형이 괴성을 내지르며 쿵쿵 달려왔다. 벨즈의 몸뚱어리에서 쏟아진 피가 도아의 상의를 적셨다. 오십 센티미터쯤 되는 칼날이 재성의 옆머리를 대각선으로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재성아 이것 좀!”
간신히 벨즈를 재성에게 넘겼지만 도아는 뭐를 해보기도 전에 중형의 팔에 맞고 난간을 부서트리며 일 층 거실로 날아갔다. 바닥에 닿기 전에 나비로 변하는 데 성공한 그는 한 번에 부풀어 올라 다시 인간 형태를 회복했다. 재성은 벨즈를 안은 채로 계단을 굴러내러 왔다.
“재성아 빨리 일어나!”
도아의 손짓에 거실의 가구들이 끌려오더니 붕 날아올랐다. 문들은 쉽게 뜯어지지 않고 일시에 열렸다 닫혔다만 했다. 벽장과 서랍들이 중형의 몸을 때리고 부서졌다. 옷감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중형의 등에서 날카로운 금속 뼈대들이 솟구쳐 올랐다. 등뼈가 전갈의 꼬리처럼 구부러져 올라왔다. 가만 보니 벨즈에게 당했던 팔에 파란 핏줄 자국이 얽혀 있고 살이 차올라 있었다. 그런 식으로 중형은 금방 부상을 회복했다.
재성이 식당 쪽으로 기어가고 있을 때, 실타래가 나가듯 중형의 입 주변의 살점이 두두둑 뜯겨 나갔다. 네 방향으로 조각나더니 귀를 찢을 듯한 괴성과 함께 불가사리처럼 활짝 열렸다. 입안 가득 어금니가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배에서는 일 미터쯤 되는 수백 마리의 기생충 같은 것이 솟구쳐 나와 파르르 떨었다. 중형의 무릎뼈가 살과 옷감을 뚫고 나왔다. 마치 톱상어의 주둥아리 같았다. 그 바람에 중형은 제대로 걷지 못하고 삐걱삐걱 움직였다. 어디로 보나 인간의 모습은 오간 데 없었다.
“배키.”
도아가 되뇌었다.
“배키!”
그의 고함과 함께 문들이 반으로 부러지며 경첩을 뜯고 날아왔다. 끝이 모두 커터 칼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하나둘 연달아 배키를 향해 날아갔다. 액자와 짐승의 머리뼈, 금속 걸이도 천장에서 떨어져 나와 배키를 향해 쐐도 했다. 배키가 칼날로 찢어내는 것도 있었지만 다는 아니었다. 얻어맞으면서 한쪽 무릎을 구부렸다. 무릎의 톱날이 층계에 박혔다. 괴물은 난간을 가로로 베며 뚱뚱한 몸을 던졌다. 도아가 뒤로 물러서자 카펫이 날아들어 배키의 몸을 순식간에 둘둘 감았다.
한 무더기의 돌멩이와 자갈이 창문을 깨고 날아와 배키의 몸통과 머리를 갈겼다. 몇 개는 살에 구멍을 내고 반대편 벽에 박혔다. 배에서 나풀대는 것들이 지렁이처럼 죽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비틀거렸지만 상처는 금세 회복되었다. 얼마 없는 머리칼에서 그나마 수북했던 뒷머리 가죽이 바닥에 떨어졌다.
머리 가죽이 떨어진 자리도 회복이 되었다. 도아는 창백해졌지만 지휘자처럼 연신 두 팔을 휘둘러 물건들을 집어 던졌다. 이대로는 수 싸움에서 밀릴 거라는 걸 직감한 도아는 정신을 모았다. 그리고 배키를 번쩍 들어 올렸다. 하지만 바닥에서 오 센티미터 정도 들릴 뿐 괴물을 어쩔 수 없었다. 배키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찢어발겨 진 입을 벌리며 발버둥을 쳤다.
“이런 건 처음이야.”
도아는 뒷걸음질 쳤다. 태어나 이렇게 강한 배키는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순간 도아는 얼어붙었다. 수민은 죽었다. 그 직감이 뾰족한 침처럼 그의 뇌리를 뚫고 나갔다.
“네가 수민이를?”
배키의 넓적한 발바닥이 바닥에 닿았다. 배키는 두 팔을 같은 방향으로 휘두르며 구속에서 풀려났다. 도아가 초능력을 사용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듯했다. 배키가 날아들었다.
보발은 다시 호수로 향하고 있었다. 미스터리한 직감이 가슴 깊숙이 와 닿아 그로 하여금 차를 돌리게 한 것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긴 싫어 도아에겐 전화를 걸지 않았다. 왜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건지 몰랐다. 오백 년 이상을 도아와 함께 하면서 이런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주인이 위험해 처해 있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심장 소리에 주의를 뺏길 정도였다. 멀리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에메랄드빛의 호수는 잠을 자듯 고요했다. 바로 그 평화 속에 버려진 별장이 있었다. 별장 안에서 뭔가가 하얗게 번쩍했다. 순간 보발은 팔의 감각을 잃었다. 그래서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다. 차가 타이어 자국을 내며 멈췄다. 보닛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왔다. 그의 시선은 뿌연 연기 속에서 오로지 별장을 향해 있었다.
“도련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