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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능력 소년
작가 : 하시문
작품등록일 : 2018.12.11

하도아- 영원을 살아온 초능력자다. 지적이고 냉소적인 그지만 남모르는 따뜻함도 가지고 있다. 절대 악인 ‘배키’를 제거하는 것이 그의 숙원이다.
박재성- 도아의 학교 친구다. 도아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은 아이인 그는 남을 해칠 줄 모른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수민- 도아의 학교 친구다. 내심 도아를 짝사랑하지만, 굳이 티 낼 만큼 지고 들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폐가 동호회를 주최한 장본인이자 배키가 된 중형의 마지막 희생양이다.
김중형- 민경의 스토커이자 배키가 깃든 인간이다. 은밀히 잠재해 있던 배키가 표면에 등장하고부터 살인귀로 변모한다. 대상의 머리를 먹을 때마다 그 대상의 기억도 훔친다.
성미온- 도아가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도아를 좋아하고 있다.
보발- 한때는 르와 교도였다가 도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부터, 500년 이상 도아를 보필하고 있다. 화수의 손에 죽게 된다.
벨즈- 그의 활동 주기는 24시간 중 단 3시간이다. 그 3시간 동안 짐승의 형태로 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바람이 된다. 그는 감시자다.
팽화수-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대상을 특정 짓지 않으나 남자만 노린다. 우연한 기회에 도아 일행을 만나고부터 도아에 대한 살해 의지를 가지게 된다.
강민경- 미래가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3살 여자다. 벨즈의 감시를 받는다.

 
23. 겨냥
작성일 : 18-12-20 09:08     조회 : 273     추천 : 0     분량 : 8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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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수는 헉헉거리며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세면기에 찬물을 틀어 식은땀을 씻어냈다. 꿈에서 보경이 나왔다. 꿈에서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는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방안을 서성댔다. 그는 목덜미를 손으로 쓸며 제자리에 섰다. 불안해하고 있는데 칼이 눈에 들어왔다. 가서 확 집어 올려서는 칼날이 나오는 미묘한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여기서 버튼을 누르면 칼날이 눈깔을 후벼 팔 판국이었다.

 “너는 내가 죽인다.”

 그는 도아를 생각했다. 폐가 동아리라니 아주 죽으려고 용을 쓰는 것이었다. 폐가는 대게 외딴곳에 있다. 그런 곳에서라면 범죄 행위도 아주 용이했다. 어쨌건 그들과는 이번 주 목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앞으로 삼 일 남았다. 그때까지 그는 칼을 쓰지 않고 잠자코 있을 작정이었다. 사복 경찰들 때문이었다.

 앞으로 재밌게 될 것이다. 폐가는 경찰들이 생각하는 것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을 것이다. 폐가 동아리라니 하고 속으로 말하면서 그는 귀를 만지작거렸다. 수리를 하긴 했지만 디지털도어가 망가진 후부터 작은 소리에도 밖이 신경 쓰였다.

 ‘그건 괴물이었어. 말이 안 되는 거야.’

 고양이 킬러가 생각난 것이다. 그는 눈에 힘을 주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때는 잘못 본 것이라며 자기 위안하며.

 

 재성과의 통화를 끝낸 도아는 인상을 썼다. 수민이 행방불명이라니. 재성은 이번 목요일에 관련해서 수민에게 문자를 보냈었다. 그러자 전화가 왔고 받아 보니 그녀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도아를 진짜 놀라게 한 것은 벨즈였다. 벨즈는 이 층 창문에 부딪혀 떨어졌다. 그는 벨즈를 저택으로 들였다.

 “보발! 보발!”

 금방 달려온 보발은 상황을 깨닫고 벨즈를 누였다. 상태를 확인했다.

 “무슨 일이야, 벨즈? 어떻게 된 거야?”

 도아는 벨즈의 두 눈을 보았다. 벨즈의 부리가 열렸다가 닫혔다. 중형에게 당한 날개는 다시 자라 있었지만 제 기능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배키구나! 수민이……? 혹시, 아니야, 아니야. 아닐 거야.”

 도아는 괴로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겠지. 수민인 다시 돌아올 거야.”

 그가 머리를 흔들었다.

 “무슨 일이시지요, 도련님?”

 보발의 물음에 그가 수상한 정황을 설명했다. 보발도 심각해져서는 무의식적으로 옆머리를 연신 쓸어 넘겼다.

 “친구분이 사라졌단 말입니까?”

 “가출은 아닌 것 같아.”

 도아의 뇌리에 잠깐 미온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보발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주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려는 의도에서였다.

 “어쨌건 이제 시작이야. 배키를 없애야 해.”

 “도련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건 보발이 전적으로 내 사람이라는 뜻이지.”

 보발이 고개를 숙였다.

 도아가 민경의 전화를 받은 건 그 날 늦은 오후에서였다.

 “제가 믿음을 얻게 된 건가요?”

 도아가 물었다.

 “오해해서 정말 미안해요. 저는 도무지 이런 일을…… 맙소사, 납치를 당할 뻔했어요. 그 사람이 너무 무서워요.”

 “두려워 말아요. 오늘 당신을 데리러 가겠어요. 지금 당장이요.”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저와 함께 있을 거예요.”

 “제가요?”

 그녀의 말투에서 자신감이 없었다.

 “그게 안전한 길이에요. 적어도 배키를 없앨 때까진요.”

 “없애다뇨? 그를 죽일 거라고요?”

 도아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나쁜 일을 하긴 했지만 죽임을 당할 정도로는…… 차라리 재판을 받게 하는 게 어떠세요? 정당한 벌을 받게 하는 거예요.”

 “그는 이미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였을 거예요. 그리고 과연 누가 우리말을 믿어 주겠어요? 재판요? 배키를 감옥에 가둔다? 어림도 없는 소리! 백번 양보해서 경찰이 우리말을 믿어줘서 배키를 법 아래 두더라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요. 피해자만 늘 뿐이라고요.”

 “확신하세요?”

 “완전히요.”

 도아가 힘주어 말했다.

 “아무튼 지금 가겠어요. 당신은 위험해요.”

 그녀는 상상력을 동원해 디지털도어가 부서진 상황을 재현하고 있었다. 침입한 후 무슨 짓을 했을까. 그녀는 작은 방을 둘러보았다. 하나하나 뒤져보는 인영이 눈에 어렸다. 순간 소름이 끼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빨리 와주세요.”

 그녀의 음성이 떨렸다. 전화를 끊은 그녀는 불안 속에서 도아를 기다렸다. 해가 지고 있었다. 문득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뭔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뭐지 하고 있는데 현관에 불이 들어오더니 중형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빨간 중형차가 국도를 달렸다. 중형은 운전대를 거의 끌어안듯 잡은 채 도로의 방향에 따라 좌우로 돌렸다. 옆에 앉은 민경을 보며 만족감에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신발 차림으로 침입한 그가 입을 떡 벌리자 그만 정신을 놓고 쓰러진 것이다. 그녀는 지금 테이프로 몸이 감긴 상태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민경아 기대해. 우리 신혼집은 거기가 될 거야.”

 그는 호수에 딸린 별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수민의 기억에서 나온 별장이었다. 조만간 거기로 떨거지들이 모일 예정이었다. 거기서 다 먹어 치워버릴 생각이었다. 화수를 생각하자 입이 동했다.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니 앞으로 삼십 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거의 같은 시간에 도아는 민경의 빌라 앞에 있었다. 자동문은 잠겨 있었지만 주차장으로 해서 통하는 문이 열려있어 상관없었다. 그는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동작을 멈췄다. 디지털도어가 사라져 있는 것이다. 문손잡이를 꺾어 내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없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들려오는 건 안내 음성이었다.

 ‘어쩌면 수민이 너도…….’

 

 보발은 생각에 잠긴 채 뒷좌석에 들어앉는 도아를 룸미러로 살폈다.

 “혼자이신지요?”

 “없었어. 아무래도 납치를 당한 거 같아.”

 도아는 잠시 말을 잃었다.

 “설마 배키가?”

 “맞아.”

 “무슨 생각일까요.”

 “모르겠어.”

 “배키의 존재는 제사장의 존재를 의미하는 걸까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모르겠어.”

 보발은 차를 출발시켰다.

 “제사장이 있을 턱이 없는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보발은 르와 교도를 찾아다녔던 과거의 일들을 떠올렸다. 그는 추운 나라에서 심각한 동상을 얻었고 더운 나라에서 말라 죽을 뻔했다. 섬에서는 마른 익사 직전에 살아났고 식인종의 저녁 식사가 될 뻔한 적도 있었다. 르와 교도는 없었다. 있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르와에 관한 역사는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게 르와였다. 르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거였다. 지금에 와서 보발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중에 벨즈가 다시 나타나면 그때 제대로 물어야겠어.”

 저택에 도착한 도아가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복도를 휘돌던 바람이 코알라가 되었다. 벨즈의 이야기를 듣던 도아는 보발이 있는 곳으로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벨즈가 제사장으로 의심하는 게 보발이었던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으로선 가장 합당한 의심이지요. 솔직히 말해 다른 가능성은 도무지 생각할 수조차 없습니다.”

 “보발?”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는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도련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오랫동안 르와 교도들을 찾아다녔지요.”

 “하지만 찾을 수 없었지.”

 보발이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르와의 최후 날 저는 제사물의 피로 얼굴을 씻었습니다. 제사장은 배키를 외치고 있었지요.”

 보발은 공상에 잠겼다.

 “배키는 소환수에 가깝잖아? 보발은 그런 걸 소환할 수 없어. 주문을 모르니까. 알아도 소환을 할 사람도 아니고.”

 보발이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벨즈의 팔다리가 짧아졌다. 작은 생쥐가 된 벨즈는 보발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보발이 움직이자 그림자도 따라 움직였다.

 “혹시 마지막 의식에서 배키가 응태 된 것은 아닐는지요.”

 보발은 다소 충격에 휩싸인 듯했다. 왜냐면 당연한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수십 년 전까지도 도아는 배키 청소를 했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그 의식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배키가 쏟아져 나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배키는 인간의 악한 마음과 더불어 존재했다. 인간의 더러움을 받아먹고 자라는 악몽이었다. 땅에서 태어나 그 위의 것들을 지배하는 인간처럼 인간에 의해 태어난 배키는 인간들을 부리는 몽마였다. 파괴 본능이야말로 배키를 설명하는 데 최적의 표현이고 고대 도시 국가의 전원이 가진 악의는 배키 하나한테도 되지 않았다.

 도아의 생각을 완결했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삶에 대한 집착은 당연하다. 이제껏 그가 상대한 건 토네이도나 쓰나미, 화산 폭발이나 지진이 아니었다. 생과 사를 반복하는 그런 자연법칙이 아니라 인공적이고 가공된 거였다. 그가 근 천 년 동안 퇴비로 만든 배키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주술로 세상에 나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이어질 보발의 말을 예상하고 눈을 피했다.

 “저의 존재가 곧 배키의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그 말은 배키의 죽음은 보발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보발의 죽음은.”

 “곧 배키의 죽음이 되는 것이지요.”

 벨즈가 그림자에서 나왔다. 꼬리가 커지더니 고양이가 되었다. 보발은 주춤하더니 소파에 앉았다.

 “이런, 보발.”

 도아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멈췄다.

 “한편으론 다행이야. 어찌 되었든 배키만 없애면 되는 거잖아. 그러면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고.”

 “배키가 몸속에 든 사람을 제외한다면 말이지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도아가 말했다.

 “그 사람한테도 그럴까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그냥 마음이 복잡해서 그렇습니다.”

 “배키가 이 시기까지 있다는 건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굶주림의 희생양이 되었단 소리야. 김중형이라는 사람은 우리 현시대의 마지막 배키야. 배키 자체라고. 미래에는 없어야 할 사악한 힘이야. 정신 차려, 보발.”

 “과연 그가 마지막일까요? 제가 있지 않습니까? 아직 배키가 있다면…… 오, 그걸 이제야 알아채다니! 배키가 끊임없이 주위에 있었던 건 바로 제가…….”

 “그만해. 더 이상 참고 들어 줄 수 없을 거 같으니까.”

 “물을 마셔야겠습니다.”

 

 불 꺼진 방에서 재성은 천장만 물끄러미 보았다. 뒤척인 지 벌써 한 시간째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그는 양반다리로 앉았다가 일어났다. 방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대문을 열고 나왔다. 조용한 주택가의 골목을 걸어 나와 밤길을 걸었다. 근처 여중학교의 교문은 잠겨 있었다.

 불 꺼진 상가들을 지나치며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다. 어릴 때는 아무 느낌을 주지 않던 개인상점들이 커갈수록 덩달아 큰 의미를 주는 듯했다. 가난한 그가 이런 가게들을 꾸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커서 뭐가 될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럴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잘하는 것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할 줄 아는 재주가 없다고 여겨졌다.

 길가에는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도로는 드문드문 불빛이 들뿐 한적했다. 술 취한 직장인들이 무리를 짓고 있었다.

 “빨리 집에 기어들어가, 개새끼야.”

 삼십대 후반의 직장인이 말하자 동료들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재성은 긴장한 채 그들 곁을 얼른 지나쳤다. 다행히 시비는 걸리지 않았다. 달은 밝았고 별은 많았다. 건물들의 간판도 심하게 번쩍거렸다. 네온사인이 인도를 은근히 물 들이고 있었다. 택시가 오자 연인이 손을 들었다. 재성은 가로등을 올려다보았다. 갖가지 날벌레들이 불 밝힌 가로등에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하늘에서 비행기 불빛이 깜박이며 천천히 지나갔다. 가로등에 붙은 나이트클럽 홍보 전단지가 바람에 퍼덕거렸다.

 ‘수민이는 어떻게 된 걸까.’

 오늘도 몇 번이나 수민을 생각을 한 그였다. 목요일에 호숫가의 별장에 가기로 했다. 그녀가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폐가를 탐험하는 것을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학교에서는 활기가 넘치는 아이였다. 모범생이기도 했다. 사교성이 좋은 데다 교사나 어른들한테도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그런 그녀가 가출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 나쁜 일에 휘말린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인터넷을 하다 보면 납치 괴담 같은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이를테면 모르는 할머니가 짐을 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다. 할머니를 따라가 보면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남자들에게 납치를 당하게 되는 식이다. 그런 비슷한 도시 괴담이 설치는 건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그런 글들을 읽을 때마다 살이 떨렸다.

 그녀처럼 딱 부러진 애라고 그런 일을 당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녀는 심성이 착하니까 남을 잘 도와줄 것이었다. 만약 재성이라면 할머니의 부름을 못 들은 척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왜냐면 그는 낯을 많이 가렸기에 그랬다. 순간 꼭 자신이 나쁜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방금 지나간 여자를 뚫어지라 응시했다. 화장을 하고 머리가 길었다. 향수 냄새에 알코올 냄새가 미약하게 섞여 있었다. 스치듯 봤을 때는 수민과 흡사했지만 다시 생각하니 전혀 아니었다. 그는 저만치서 굴러오는 신문지를 발을 들어 피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이십사 시간 영업을 하는 김밥 전문점이 보였다. 순간 허기를 느꼈지만 수중에 돈이 없었다.

 매달 정부에서 돈이 나왔다. 고등학생인 입장에서는 충분하고도 남는 돈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솔직히 그는 대학에 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비정규직이나 알바를 전전하는 것도 싫었다.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회사에 취업하고 싶었다. 아까의 직장인들처럼은 되고 싶지 않지만.

 그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반대쪽 차선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신경 쓰였다. 남자는 곧바로 재성 쪽으로 다가왔다. 왠지 모르겠지만 재성은 아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위협을 느꼈다. 재성은 애써 딴 곳을 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너 재성이 아니야?”

 “어? 화수 형 아니세요?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내가 할 말인데? 넌 여기서 뭐 해, 것도 이 시간에?”

 “……잠이 안 와서요.”

 “똑같은 상황이네.”

 “가까운 데 사세요?”

 “아니, 여기서 좀 멀어. 그러는 넌 가까운 데 살고?”

 “조금요.”

 재성은 화수가, 집에 놀러 가도 되냐고 물을까 봐 겁이 났다.

 “뭐 먹지 않을래? 뭐가 좋을까?”

 “전 괜찮아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그럼, 뭐 마실 거라도……?”

 “전 정말 괜찮아요.”

 “부담가질 필요 없어.”

 “방금 뭐 먹고 와서요.”

 “그럼 편의점에 가서 음료수라도 사 먹자.”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날 것 같아서 재성은 화수를 따랐다. 둘은 차가운 음료수를 각자 들고 밖에 나왔다.

 “좀 앉자.”

 화수가 편의점 밖에 있는 테이블에 먼저 앉았다. 의자가 네 개 있었는데 하나에는 음식쓰레기가 담긴 비닐 봉투가 있었다. 화수가 그걸 보며 혀를 쯧 찼다.

 “이번 목요일 날 너 올 거지?”

 “목요일에요?”

 순간 재성은 무슨 말인지 몰랐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못 갈지도 몰라요. 수민이…….”

 “수민이가 왜? 말해 봐.”

 “사라졌어요.”

 “사라지다니?”

 화수의 눈썹이 서로 가까워졌다.

 “모르겠어요. 어떻게 된 건지는.”

 “그냥 사라졌다고? 가출이냐?”

 화수의 말에 재성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도아는 어쩐대?”

 “아마…….”

 “그러지 말자. 가기로 한 거니까 가는 거야.”

 “수민이가…….”

 “나도 수민이가 걱정이 돼. 하지만 말이야, 아, 도아한테는 아직 제대로 물어보지 않은 거지? 가기로 했으면 가야 해.”

 재성은 음료수만 만지작거렸다.

 “내 말이 틀린 건 아니지?”

 “네.”

 “기분 나빠?”

 “모르겠어요.”

 “야, 그런 대답이 어딨냐?”

 재성은 말이 없었다.

 “수민이는 돌아올 거야. 잠시 방황하는 거겠지. 이 모임을 처음 만든 것도 걔라면서? 걔를 위해서라도 가기로 한 거는 가야 해. 갔다 와서 걔한테 정보를 주면 되잖아. 걔도 좋아할 거야.”

 재성이 고개를 들어서 화수를 보았다. 화수는 다른 곳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화수가 고개를 돌리는 것 같자 재성은 눈을 내리깔았다. 화수가 다리를 꼬았다. 그러자 금속성의 뭔가가 바지에서 나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는 황급히 주워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재성의 눈치를 살폈다. 재성도 봤지만 뭔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알 리가 없는 게 당연했다. 떨어질 때 잘못되어 버튼이 눌러졌다면 좀 놀랐을까. 칼날이 달빛에 예리하게 반사되어 툭 튀어나왔을 때에는.

 ‘꼭 가야지. 난 그 새끼를 죽여 버릴 거거든.’ 화수가 고개를 숙여 미소를 감췄다. ‘어쩌면 너도.’

 순간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차라리 미소를 보여 주었다. 재성과는 처음부터 어색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런들 무슨 손해가 있으랴. 그의 칼날은 처음부터 도아를 겨냥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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