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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늘 푸른 은하에 해적선 하나
작가 : 과하객
작품등록일 : 2018.9.29

대강 줄거리

26세기 지구세계의 종교전문가 수선013은 우주상선 복분자호의 선원으로 배에 타지만 실은 해적선의 선원으로 차출된 것이다. 복분자호는 해적선 신천지호의 변신 중 하나로 수선013은 갈등 끝에 해적선의 목회자로 자리 잡는다.
지구인의 태양계 탈출 1호 우주선으로 세간에 알려진 신천지호는 타이탄의 중간물질 인드라 광산을 탈출한 죄수 수송선의 이름을 딴 해적선이다. 이 이야기는 해적선 신천지호의 이야기를 수선013을 비롯한 일단의 필자들이 신천지호의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는 연작소설이다.
신천지호가 외계 우주를 향해 떠나게 된 이유가 이 이야기의 시발 이유가 된다. 신천지호의 선장 김진욱과 재생 의료 전문가 간디는 친구 류우의 아버지 선대 류우가 정치적 목적으로 재생시킨 예진의 두뇌를 타임캡슐에 담아 우주로 쏘아 올렸고, 그것을 찾아 우주를 헤매는 일단의 해적들과 그들의 분열 복제 후손들이 빚는 온갖 사연들, 그들을 사랑하는 타이탄의 여인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그들을 추격하는 정적 류우의 복수담 등이 이 이야기의 주요 화자 중 하나인 수선013의 시각을 빌어 서술된다.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수많은 우주전쟁과 새로운 우주학의 등장이 있고, 우주시대에 있음직한 철학과 재생 의료학, 다차원 물리학 등의 등장과 그것을 이용한 새로운 전쟁 방법과 생명 복제 방법 등이 차례로 고안되지만, 이야기는 결국 보통 인간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사랑, 욕망, 이별, 배신, 재회, 죽음 등의 세사를 우주시대에 펼친 것으로 귀결된다. 친구 류우의 아버지의 첩을 사랑하는 김진욱의 고뇌와, 두 친구의 대결 속에서 한쪽 편을 들 수밖에 없는 간디, 아버지의 첩 예진의 유전인자가 복합된 연인 흑장미가 친구인 김진욱을 사랑하는 데 대한 류우의 절망, 그로부터 시작되는 복수극 등이, 은하 우주라는 광대한 세계를 배경으로 엮어지는 것이다.

(등장인물과 작품의 시대 설정 등에 대해서는 따로 항을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제18장. 종말의 일기(1)
작성일 : 18-12-20 05:36     조회 : 404     추천 : 2     분량 : 8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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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장. 종말의 일기(1)

 

 #1. 우주력 7세기. 어느 우주. 우주선교선 장미13호. 우주선교사 수선013과 용병 론775의 대화

  -이제 어떻게 될까요?

  -혼돈이 극에 달하면 갈 곳은 한 곳뿐이지.

  -……

  -예로부터 우주가 마련해 놓은 결론이야. 넘치도록 중력을 흡수한 블랙홀이 폭발하여 자신을 버리듯이.

  -……

  -그게 신의 뜻이겠지. 후에 무엇이 남을지는 모르지만.

 

 #2. 우주력 7세기. 어느 우주의 어느 성계. 해적선이 있는 풍경

  ‘홀연 내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이 내 탄생의 시작이었다. 어머니의 눈물과 아버지의 호통소리가 기억에 있는 듯도 싶지만, 현실계를 보는 순간 나는 백지 상태에 있었다.

  낯선 경치를 대하는 두려움 탓이었을까. 나는 세상을 보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어둠은 편안한 것. 누구나 태어나기 전의 기억으로 그걸 갖고 태어난다지.

  눈을 떴다. 스스로 뜬 것이 아니라 뜨도록 강요받은 결과였다.

  “빛을 보라! 빛을 보라!”

  끝없이 반복되는 명령에 나는 눈을 떴다.

  “성장 완료! 활력도 100%! 지성도…… 지성도 미완성! 불량 재생 판정!”

  변화된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재생 재시도! 지성 교정 시술 시작!”

  다시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 잠겨들어 어떤 그리움을 찾아 헤맸다.

  어머니가 있었다. 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또 나였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가졌지만 처음부터 나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리웠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그리고 또 무언가가 그리웠다. 태어나기 전의 내 세계는 그 크기와 형체를 알 수 없는 어두움 그대로의 것이었지만 그리움의 늪에 빠진 내게는 무한인양 큰 세계였다. 나는 무작정 그 큰 세계를 헤집고 다녔다.

  홀연 한 척의 배가 어두움의 바다 속에 나타났다. 해적선이로군. 맞아. 나는 저 배에 타야 할 사람이었어.

  나는 해적이었다. 그러므로 저 배에 타야 한다. 그렇게 판단하고 해적선으로 판단한 배를 향해 헤엄쳐 갔다. 끝없이. 끝없이.

  배가 달아나고 있었다. 다가가는 것보다 열 곱절 스무 곱절 빨리……

  “재생 불량! 지성의 최고 완성도 55%! 재생 불가!”

  내가 진정한 어둠 속으로 빠져든 것은 그때였다. 나는 죽었다. 나는 태어나는 도중에 죽은 해적이었다.

 

 #3. 앞 장면의 연속. 또 다른 신천지호

  한 척의 조각배에 한 사람의 선장, 때문에 승무원도 하나. 그리고 해골 깃발……

  문득 자신을 찾았을 때의 모습이었다. 나는 해적선의 선장이었고 내 배를 몰아 우주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해적이었으므로 상선이나 여객선을 찾아 약탈행위를 해야 할 터였다. 나는 열심히 사냥감을 찾아 헤맸다.

  내 배는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속도가 느렸다. 멀리 상선이 보여 다가갈 양이면 상선은 어느새 우주 저편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몇 번의 실패가 거듭된 후에 나는 내가 진정한 해적이 아님을 알았다. 내 배는 그저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배였을 뿐 해적선은 되지 못했다.

  내가 소리를 들은 것은 그때였다.

  “재생 불가! 지성의 완성도 85%! 상승효과 없음!”

  순간 내 배는 동력을 잃고 무한한 어둠의 세계를 향해 추락했다. 나는 해적이었지만 해적의 본령인 약탈행위를 해보지 못하고 죽었다.

 

 #4. 앞장면의 연속. 또 다른 해적선 신천지호

  연방 우주군의 순양함으로부터 추적을 당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 배는 50만 광년 이상의 거리를 도망쳐 왔다. 적은 우리 배의 뒤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추격해 왔다. 간간이 포격을 가하여 우리 배의 돛대와 돛폭 등에 상처를 입히기는 했지만, 특별히 적의를 보이지 않는 조롱기 가득한 추격이었다.

  “대장! 싸우다 죽읍시다! 우리도 명색이 대해적 신천지호 아닙니까?”

  부하 해적의 말이었다. 그러나 적은 우리 배의 몇 곱절에 달하는 동력과 화력을 갖고 있는 일급 순양함이었으므로 반격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모욕을 느끼는 감정이야 선장인 내가 몇 십 곱절 더했지만 일순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천여 명이 넘는 식구를 위험에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참고 또 참으며 도망쳐 온 50만 광년이었다. 도망치다 보면 어떻게 살 길이 열리겠지 하는 희망으로, 혹시 동료 해적을 만나게 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섞인 도주였다.

  그러나 끝이었다. 우리 배는 우주의 끝을 보고 말았다. 은하우주와 안드로메다대성운 사이의 150만 광년에 달하는 죽음의 우주가 어두움의 장막으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싸우다 죽읍시다!”

  부하들의 말이었다. 무역선 중에 성능 좋은 몇몇은 죽음의 우주를 건너 안드로메다대성운을 오고 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배는 겨우 해적선이었고 오랜 시간 약탈행위를 하지 못해 동력과 식량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싸우다 죽거나 굶어서 죽는, 양단간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절박한 현실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적 순양함으로부터 출격한 단승 공격기들이 토해 낸 육전대에 의해 전원이 죽음의 길로 인도되었다. 연방 우주군의 육전대는 우리 배에 상륙하여 우리와 육탄전을 벌인 끝에 우리 모두의 가슴에 칼날을 찔러 넣었다.

  나는 해적선의 선장이었다. 그래서 전투의 마지막을 장식하여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 원자로 분해되는 배의 사령실 안에서 나는 내 몸이 원소로 화하는 것을 느끼며 문득 적들이 주고받는 통신문의 내용을 전해 들었다. 채 파괴되지 않은 통신기가 마지막 성능을 발휘한 덕택이었다.

  “또 속았음. 표적은 가짜 신천지호의 하나였음.”

  그랬군. 우리는 가짜였어. 그래서 그렇게……

  그러나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나는 해적선 신천지호의 선장으로 태어났고, 이렇게 신천지호의 선장으로 최후를 맞고 있는데.

 

 #5. 앞장면의 다른 시공에서의 연속. 또 다른 이야기

  처음 여인을 대했을 때, 나는 예사롭지 않은 운명이 찾아왔음을 알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은 전생, 혹은 그 이전부터 이어온 인연이 금생에 이루어진 것일 뿐 우연의 산물은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여인을 만나는 순간 위대한 예언자의 말씀인양 인연이야기를 가슴에 새겼다.

  여인은 아름다웠고, 익숙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여인에게서 오랜 세월 헤어져 있던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의 환희를 얻었다.

  “당신은……”

  여인은 떨며 말했다. 내 감정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증거였다. 나는 기꺼이 자신을 밝혔다.

  “연방 수상 직할 조사실 소속 수사관 류우입니다. 상부의 명으로 부인을 모셨습니다.”

  내 경험으로는 조사실 소속 요원이라는 신분과 류우라는 이름은 여성들의 호감을 사는 데 최고의 위력을 가진 것이었다. 이름을 공유하는 또 다른 나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우리 가계의 방계에 이르기까지 류우를 표방하는 모든 남성들은 연방 내 젊은 여성들에게 최고의 사냥감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인은 달랐다. 내가 신분을 밝힌 순간, 여인은 잠깐 놀라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 나이도, 이름도, 여인에게서 알아 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얻은 것은 여인의 그러한 침묵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찌른다는 사실뿐이었다.

  상부의 명령은 여인을 두뇌 분석기에 걸어 지성을 해부해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 직위를 걸고 명령을 거부했다. 중범죄자도 아닌 연약한 여인을 아무런 혐의도 없이 체포한 것도 불의일진대 어찌 그러한 폭거까지 행하랴……하는 이유 탓이었다.

  나는 해고되었다. 이름과 지성을 공유하는 또 다른 류우가 내 임무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의 지성은 이런 유의 일에 맞게 교정이 이루어져 있어서 최고의 적임자라고 했다.

  그날 나는 또 다른 류우의 지성을 훔쳤다. 류우는 말하고 있었다.

  “이 여인의 지성에는 어떤 제재가 가해져 있어 회상이 불가함. 추측컨대 뛰어난 실력자의 지성 교정이 있었던 듯함. 여인의 신분은 우리가 짐작한 바와 같았음.”

  여인은 재생시설로 후송되었다. 두뇌를 수술하여 봉쇄된 지성을 열려는 의도일 터였다. 그때쯤 나는 자신의 신분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으므로 여인의 뒤를 추적하여 곤경에서 구해 볼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마음뿐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돌연 지성교정 처분을 받고 교정기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내게 그러한 체벌성의 처분이 내려진 데는 최고 지도부의 명령이 있었다고 했다.

  후일 나는 여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여인은 몇 차례의 두뇌 수술로도 봉쇄된 지성이 풀리지 않아 정신불량자 수용 시설로 옮겼는데, 그 과정에 누군가의 도움으로 탈출을 시도했고, 탈주가 실패로 돌아가자 스스로 숨쉬기를 거부하여 생을 마감했다고 하였다.

  이상은 내가 일생에 단 한 차례 누군가를 사랑했던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이제 나는 다시는 사랑 같은 것을 못할 것이다. 나는 지성교정 중에 교정의 대상인 지성이 불량이었던 것으로 판정되어 새로운 지성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인물로 분류되었고, 해체를 위해 수술대 위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6. 우주력 7세기. 앞장면의 다른 시각에서의 연속. 은하연방의 수도 ‘제2지구’

  “누군가 적아를 가리지 않고 생명을 살려 우주로 뿌리고 있다. 의도를 밝혀내도록.”

  류우459는 은하연방 최고지도부의 이름으로 명령을 내렸다. 류우 일가의 복제들은 은하우주의 모든 곳에 존재하는 다중생명으로 전체가 하나이고 하나가 전체인 초이성적 존재였다. 때문에 명령은 곧 필요한 정보로 돌아왔다.

  류우459는 복제의 하나로부터 얻은 정보에 주목하고 정신을 옮겨 이동했다. 류우 가의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의 법칙을 초월하여 원하는 곳에 주체를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지 오래였다.

 

 #7. 우주력 7세기. 태양계 제6행성의 위성 타이탄. 주점 ‘언제나 장미가 피어 있는 곳’

  덩굴장미를 아치형으로 올려 귀한 손님을 맞는 문을 대신하는 풍습은 고대 지구의 귀족들 중 일부의 기호에서 비롯되었다 하였다. 그 행사에 상징성을 부여한 이는 타이탄의 장미장원의 주인 흑장미 가계의 선대들이었다. 흑장미002를 시조로 하여, 당대인 흑장미063에 이르기까지 장미장원의 여주인들은 주점 ‘언제나 장미가 피어 있는 곳’의 정문에 덩굴장미를 얹어 아치형 꽃 대문을 만들어 왔다. 지난 700년 세월 동안 끝임 없이 품종을 개량하여 환경에 구애받음 없이 피고 짐을 되풀이하는 장미를 개발한 선대들 덕택에 지금의 주점 ‘언제나 장미가 피어 있는 곳’은 온 우주에 꽃과 술을 파는 전통명가로 소문이 높았다.

  “지는 꽃을 서러워 해 무엇하랴. 장미주에 꽃잎 띄워 한 잔 술에 취하면……”

  우주 안의 음유시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랫말이었다. 인공 태양이 빛을 잃은 밤이면 중천에 훤한 토성의 빛을 꽃잎 사이로 훔쳐보며 ‘언제나 장미가 피어 있는 곳’의 미인 여주인들과 더불어 음유시인의 노래를 듣거나 장미주의 잔을 기울이는 주객의 모습은 우주 안팎의 젊은이들에게 유명한 풍류의 하나였다.

  그날, 우주 안에 타이탄의 장미장원이 외계의 나그네를 위해 만든 주점 ‘언제나 장미가 피어 있는 곳’은 언제나처럼 주객으로 붐볐다. ‘죽음의 별’ 성계에서의 회전에서 해적들에게 승리한 은하연방군이 패잔병을 뿌리 뽑을 계획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지만 주점 ‘언제나 장미가 피어 있는 곳’은 변함없이 장미주를 즐기는 손님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전쟁이 있다한들 어떠하랴. 타이탄은 원래 우주 안의 전쟁을 먹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우주 어느 곳에 타이탄의 무기상들이 가지 않은 곳이 있으며 어느 전쟁에 타이탄제 무기가 사용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더구나 타이탄은 우주 유일의 비사법지역인데, 다른 유인 행성이 모두 멸한 후가 아니면 전쟁이 어찌 우리에게 오겠는가. 주객들은 조용히 술을 마셨고 여주인들은 미소로 잔을 채워 주었다.

  제1여주인인 흑장미063이 실내로 들어오자 주점 안은 특유의 장미향이 은은히 퍼졌다. 이름 그대로의 흑장미를 연상하게 하는 미모를 가진 흑장미063은 장미 문양이 수놓인 검은 색깔 비단 치마를 길게 끌며 술손님들에게 목례를 보냈다. 제3여주인인 유라077이 일어나 자신이 접대하던 중년의 술손을 소개했다.

  “특별히 큰언니를 뵙겠다는 분이 계셔서 나오시라고 했어요.”

  술손은 황금색 장미주가 반쯤 담긴 술잔 속에 흑장미063의 얼굴이 비치는 양을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여러 세기만의 만남인데 변함없이 아름답군.”

  순간, 흑장미063의 얼굴빛이 장미주의 색깔만큼이나 붉게 변했다. 그러나 이내 침착성을 회복하고 술손이 앉은 좌석 앞에 섰다.

  “귀한 분이 내방하셨군요.”

  술손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은하연방 태양계 주둔군 사령관의 정장을 한 류우459의 것이었다.

  “그대가 끝임 없이 청하지 않았던가.”

  흑장미063은 어색한 미소로 류우459를 대했다. 잠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여러 세기 수십 세대에 걸쳐 은혜와 원한을 쌓아온 온 눈빛들이 서로의 진정을 읽으려 교차했다.

  “언니. 이 분은?”

  유라077이 그들의 대치를 깨트렸다. 흑장미063은 유라077의 호의를 활용하여 표정을 회복했다.

  “안으로 모셔라. 칠백 년만의 진객이시다.”

  유라077의 표정이 변했다. 술손의 얼굴을 살핀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때의……”

  세 사람이 흑장미063의 응접실에서 마주앉았을 때 샤넬084와 엘리자벳032가 들어왔다. 흑장미063은 그들에게도 류우459를 소개했다.

  “류우 각하이시다. 은하연방 최고 명문인 류우 가계의 당주이시고 은하연방군의 공식우주군이 된 황금전함 함대의 최고사령관인 분이시다.”

  류우459가 흑장미063의 말에 이어 설명을 덧붙였다.

  “정확히 말하면 반쪽 류우459지. 공식적인 신분을 가진 내 분신은 죽음의 별 성계의 전투에서 이미 죽었으니까.”

  죽음의 별 성계의 전투는 반세기 전에 있었던 일련의 우주전이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전쟁의 최종전에서 류우 가의 최고지도자 계보의 한 갈래가 해적선 신천지호와의 전투에서 공멸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류우459의 발언은 그 확인인 셈이었다.

  “물을 게 있어 왔어. 답변해 주면 폐는 끼치지 않을 테지만, 아닐 경우……”

  류우459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뼉을 쳤다. 순간 응접실 안은 우주 공간의 영상으로 가득 찼다.

  장소에 구애받음 없이 수시로 입체 영상을 끌어내는 기술은 상용화된 지 오래였다. 류우459는 입체 영상 속의 경치 중 하나인 양 영상의 중앙에 섰다.

  영상은 타이탄이 속한 토성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흑장미063은 토성의 고리 사이에 숨은 은하우주군의 주력인 황금전함 함대의 대군을 발견하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을 꾸미고 계신 거죠? 설마 타이탄이 우주 유일의 비사법지역임을 모르는 건 아니겠죠?”

  막내인 엘리자벳032가 일동을 대표해서 항의했다. 류우459는 엷게 웃었다.

  “알지. 그러기에 이렇게 조용히 왔지 않나. 그리고 말일세. 타이탄이 비사법지역이기에 약간 무리를 해도 용인되지 싶은걸.”

  류우459의 이죽거림에 흑장미063이 일동의 분노를 대신해서 나섰다.

  “일곱 세기의 시간을 보내고서도 여전히 이기적인 분이시군요. 원하는 게 뭐죠?”

  류우459는 장미장원의 여주인들에게 얼굴을 향했다. 명문가의 후예다운 단정한 입술에서 단정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몇 가지 있지. 이렇게 함대를 끌고 와 결심을 보인 이상 체면을 세워 줄 것으로 믿고 이야기하겠네.”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변했다. 오랜 세월 최고 직위를 누려 온 자에게서만이 찾아볼 수 있는 명령조의 목소리와 아랫사람을 달래는 데 능숙한 부드러움이 잘 어울린 언어 구사였다.

  “첫째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음모를 중지하고 그 시설들을 파괴할 것! 무슨 음모가 있느냐고 변명은 말아. 이미 조사를 끝낸 후 이곳에 왔으니.

  둘째는 김진욱090을 이곳으로 불러올 것! 그 친구와는 청산할 빚이 있는데 보다시피 내 신분은 죽은 자의 것이어서 겉으로 내놓고는 싸울 형편이 못되거든.

  그리고 셋째는…… 셋째 주문은 잠시 유보하기로 하지. 상황에 따라서 자연히 이루어 질 지도 모르니.

  당장 답변을 듣고 싶은 건 두 가지인데, 어려울까?”

  류우459의 말에 따라 흑장미063의 얼굴빛이 복잡하게 변했다. 마지막 세 번째 주문에 이르러서는 짐작한 바가 있다는 듯이 얼굴에 홍조가 스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회복한 그녀는 단호히 말했다.

  “타이탄은 우주 유일의 비사법지역이고 주점 ‘언제나 장미가 피어 있는 곳’은 장미장원이 피땀 흘려 쌓아온 기업이다…… 이것이 우리의 답변이니 다음 일은 위대한 류우 가계의 분들 뜻대로 하시죠.”

  둘째 여주인인 샤넬084 역시 말을 거들었다.

  “힘을 앞세워 청을 한다. 전형적인 무력시위로군요. 류우 일가가 일곱 세기 전부터 해온.”

  방안 가득 떠오른 입체 영상은 더욱 늘어난 연방우주군 함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함대 전투를 연습 중인 모양으로 그들이 대화하고 있는 주위에도 진용을 갖춘 함대가 연신 각종 전투대형을 연출하며 지나치고 있었다. 류우459는 그러한 함대 연습 영상의 한 복판에 서서 장미장원의 여주인들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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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12장. 아름다운 우주에는 사막이 있다 (3) 2018 / 11 / 29 420 1 5984   
28 제12장. 아름다운 우주에는 사막이 있다 (2) 2018 / 11 / 28 424 1 5625   
27 제12장. 아름다운 우주에는 사막이 있다 (1) 2018 / 11 / 26 439 1 5587   
26 제11장. 사이렌의 푸른 강 2018 / 11 / 25 437 1 7654   
25 제10장. 오르트 구름 Oort cloud (2) 2018 / 11 / 23 413 1 4350   
24 제10장. 오르트 구름 Oort cloud (1) 2018 / 11 / 21 416 1 5796   
23 제9장. 유성우의 밤이면 천랑(天狼)이 운다 (2) 2018 / 11 / 18 414 1 4280   
22 제9장. 유성우의 밤이면 천랑(天狼)이 운다 (1) (2) 2018 / 11 / 17 483 2 4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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