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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능력 소년
작가 : 하시문
작품등록일 : 2018.12.11

하도아- 영원을 살아온 초능력자다. 지적이고 냉소적인 그지만 남모르는 따뜻함도 가지고 있다. 절대 악인 ‘배키’를 제거하는 것이 그의 숙원이다.
박재성- 도아의 학교 친구다. 도아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은 아이인 그는 남을 해칠 줄 모른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수민- 도아의 학교 친구다. 내심 도아를 짝사랑하지만, 굳이 티 낼 만큼 지고 들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폐가 동호회를 주최한 장본인이자 배키가 된 중형의 마지막 희생양이다.
김중형- 민경의 스토커이자 배키가 깃든 인간이다. 은밀히 잠재해 있던 배키가 표면에 등장하고부터 살인귀로 변모한다. 대상의 머리를 먹을 때마다 그 대상의 기억도 훔친다.
성미온- 도아가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도아를 좋아하고 있다.
보발- 한때는 르와 교도였다가 도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부터, 500년 이상 도아를 보필하고 있다. 화수의 손에 죽게 된다.
벨즈- 그의 활동 주기는 24시간 중 단 3시간이다. 그 3시간 동안 짐승의 형태로 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바람이 된다. 그는 감시자다.
팽화수-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대상을 특정 짓지 않으나 남자만 노린다. 우연한 기회에 도아 일행을 만나고부터 도아에 대한 살해 의지를 가지게 된다.
강민경- 미래가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3살 여자다. 벨즈의 감시를 받는다.

 
20. 배키
작성일 : 18-12-19 09:55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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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형은 겨우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고열 탓에 눈을 거의 감고 있었고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벗다가 윗도리가 찢어졌고, 바지를 발로 차서 벗었다. 늘어진 젖가슴이지만 어깨를 보나 뭐로 보나 어째 발달한 상체였다. 그는 얼음물을 두잔 연거푸 마시고 방 한쪽에 가서 웅크렸다. 손발이 찼고 떨렸다.

 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네 시간 만에 잠에서 깼다. 아직도 창밖은 환했다. 웬걸 몸이 날아갈 듯 가뿐했다. 잠이 최고의 보약은 맞지만 놀라움을 감추기 힘든 건 사실이었다. 그는 냉장고로 가 콜라를 꺼내 쭉 들이켰다. 단숨에 비우고 기다렸다가 트롤의 언어인 듯한 기괴한 트림을 했다.

 요즘 그에게 이상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 밖에서 들리는 고양이 소리에 짜증을 느끼고 있는데 갑자기 세상의 불이 한 번 꺼진 듯하다가 켜지면 자신이 고양이가 든 가방으로 발가락을 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굴러 들어온 떡을 가방 채 바닥이나 벽에 떡메를 쳐서 갖고 놀았다.

 그는 양반다리로 앉아 있다가 한쪽 팔로 무릎을 밀며 일어났다.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 이마를 훔치고 마지막에는 턱을 닦아냈다. 순간 팔이 축 늘어졌다. 아무리 움직여 보려 해도 팔이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마치 거죽만 남고 안에 있는 뼈와 근육이 몽땅 녹아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다 피가 도는 뜨뜻한 느낌과 함께 팔이 접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암, 아니지!”

 바깥으로 나간 그의 얼굴에 활기가 넘쳤다. 그는 자신감의 발로로 모자챙을 살짝 들어 올리고 두 팔을 크게 흔들면서 걸었다. 냅다 마트로 들어간 그는 카운터를 보았다. 불쾌하게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뭐야? 민경 씨는요?”

 “아, 혹시 전에 일하시던 분 말씀하시는 거세요? 그분 어제부터 그만두고 제가…….”

 중형의 눈에는 말을 하는 여직원의 입만 보였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벌레 같은 것이 온몸을 타고 보글보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들었던 장바구니를 세게 팍 놔두며 여직원을 흘겼다.

 “아씨, 그만둔 이유가 뭔데요?”

 “저도 거기까지는 모르겠어요.”

 여직원은 중형의 기세에 주눅이 들었다. 중형은 빠른 걸음으로 마트를 나가 곧장 민경이 사는 빌라로 향했다.

 “민경 씨! 강민경!”

 그가 현관문을 주먹으로 두들기며 외쳤다.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와요! 안 나오면 나도 안 간다!”

 그는 손바닥으로 벨을 때리고 주먹으로 문을 치는 것을 반복했다.

 “강민경 내 말 안 들려? 문 열라고!”

 한 이십 분 정도 밖에서 떠들었을 것이다. 그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민경이었다. 그의 얼굴이 한순간 환해졌다가 어둡게 변했다.

 “민경 씨 내 전화번호 저장시켜 둔 거예요?”

 저기서 망설였다.

 “아니요.”

 “통화기록에서 찾은 거예요?”

 “네, 통화기록에서 찾아서 전화를 한 거예요.”

 그녀는 중형이 시비를 걸 거라고 생각했다. 시비? 천만의 말씀이었다. 오히려 중형은 음흉한 얼굴이 되어 가고 있었다.

 “찾는 데 얼마 안 걸렸죠?”

 “네? 네…….”

 나이스였다. 중형은 흥분감에 몸을 움츠리며 전화를 다른 귀로 옮겼다. 그가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건 며칠 전, 그걸 찾기 쉬웠다는 건 그녀가 친한 사람이 얼마 없다는 증거, 오로지 자신의 소유라는 변함없는 사실.

 “마트 일 그만뒀다면서요? 왜 그랬어요? 대답 좀 해 봐요.”

 “그만두고 싶어서요. 지쳤어요.”

 “진상 손님 때문이에요? 사장? 동료? 누군데요? 내가 가서 확! 혹시 저는 아니죠? 겨우 일주일에 서너 번 장을 보러오는 내가요? 아니면 그때 그 일 때문에 그래요? 그건 실수였어요. 민경 씨도 인정하지 않아요? 저기요!”

 “앞으로 찾아오지 마세요.”

 그녀의 말에 그는 말문이 막혔다. 삼 층에서 내려와 일 층 계단으로 향하는 젊은 남자를 죽일 듯이 쏘아 보았다.

 “민폐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전혀 생각 안 하는데요?”

 그가 거의 고함을 질렀다.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내 말 진짜예요.”

 “걸핏하면 경찰! 경찰! 그래, 불러라, 불러!”

 얼마 지나지 않아 파출소에서 두 명의 순경이 왔다. 중형은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했다. 복도를 서성이는 중형의 덩치를 보고 놀란 것도 잠시 순경들은 그를 살살 타이르며 경찰차에 태우려고 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이 미련한 여자가 정말로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이 김중형을. 자기 남자를. 미래의 남편을. 건물주를. 그는 거의 바로 파출소에서 나왔다. 씩씩거리는 그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가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그는 메시지를 남겼다.

 -개 같은 년.

 그는 갑자기 휘청대더니 현상 수배 전단이 부착된 게시판을 잡은 채 무릎을 굽혔다. 현기증이 심했다. 배는 미친 듯이 고팠다. 그는 구경난 것처럼 쳐다보는 사람들을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쫓아버렸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빨간 벽돌로 된 단독주택에서 나오던 여대생이었다. 맛있어 보였어. 신맛이 나겠지만 육즙은 기가 막힐 거야! 보경을 생각하자 그의 입가를 타고 침이 흘렀다. 소매로 훔치며 택시를 탔다. 하지만 원하는 만찬을 즐기는 데는 며칠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간은 합법적인 루트의 생고기로 때웠고, 아무리 먹어도 해소되지 않던 허기는 발로 뛴 지 사 일째 되는 날 채울 수 있었다.

 식사 거리가 향수 냄새를 뿌리며 나타난 건 늦은 오후 무렵이었다. 그는 입가가 조금씩 더 찢어져 있는 탓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 안에서 이빨이 딱딱거렸고 알코올 냄새나고 끈적거리는 침이 염산처럼 뚝뚝 떨어졌다. 그는 뒤에서 급습했다. 통통한 손으로 목을 잡고 비틀면서 그대로 머리통을 삼켜 버렸다. 머리가 뜯긴 그녀는 흡사 금 간 수도처럼 피를 삐질삐질 뿜어내며 그 자리에서 뻗었다. 그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머리통이 목구멍을 통과 할 때는 마치 아나콘다가 된 느낌이었다. 집에서 확인했을 때, 찢어진 입가는 어느새 핏자국만 남기고 아물어 있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화수는 아직도 현실감이 없었다.

 “씨발.”

 형사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나 조사는 그가 저지른 범행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보경이 죽었다고 했다. 그는 그녀의 전 남자친구이므로 용의자 중 한 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의 부모가 보기에 그는, 그는…….

 “보경이가 왜……! 왜 씹빨!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누구야? 대체 나한테 왜 그래? 보경이는 뭐야? 어떤 새끼야! 끄아아악!”

 그는 발로 걷어찼다. 버스정류장의 벽을, 나무를, 신호등을, 마치 냄새를 남기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그녀의 집까지 갔다. 잠시 망설였다가 초인종을 힘주어 눌렀다.

 대문에 있는 스피커에서 말했다.

 “누구시죠?”

 “팽화수예요. 안녕하세요.”

 “네……? 누구시라고요?”

 “보경이 전 남자 친구입니다, 어머님.”

 “참말로 뻔뻔한 사람이네요. 돌아가요. 경찰을 기다리던지.”

 “잠시만……!”

 스피커가 조용해졌다.

 그는 몇 번이고 초인종을 눌렀다. 만나주지 않는다면 절대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현관을 열고 나오는 중년 여성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안은 채 대문에서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돌아가시라니까요. 왜 이러세요?”

 인터폰에서와는 달리 중년 여성은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였다.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코를 얼마나 풀어 댔던지 코끝이 빨갰다.

 “보경이가…… 그렇게……. 어머님, 저 경찰서 갔다 왔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네? 가만있지 말고 말씀 좀 해주세요.”

 “가요. 가시란 말이에요.”

 “못 갑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중년 여성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예요! 전 보경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어요! 네, 전 천하의 쓰레깁니다, 알아요! 하지만 따님을 진정 사랑했어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좋아요. 하지만……!”

 그녀가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문 가까이 걸어왔다.

 “머리가 사라졌어요, 머리가! 머리가요…… 그 꽃 같은 아이, 보고 싶어서 어떡해.”

 그녀가 오열을 하기 시작하며 대문 너머로 총총히 사라졌다. 현관이 닫히는 걸 확인하고 화수도 발길을 돌렸다. 그가 보경의 새 연인을 만난 건 삼 일 뒤 경찰서에서였다. 제법 잘생긴 샌님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남자친구가, 그가 생각했던 작자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그는 이제껏 고양이 킬러가 그녀의 남자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 돼지 새끼는 뭐였단 말이야?’

 그는 샌님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너한텐 그녀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어! 네가 아니라 나였다면!”

 화수가 형사 조사 중인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둘은 금세 엉켰고 형사들이 욕을 하며 뜯어말렸다.

 화수는 경찰서를 나오면서 부르튼 입술을 팔목으로 스윽 문질렀다. 그는 많은 죽음을 봐 왔다. 하지만 그녀와 죽음의 연계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 순간 그는 그녀의 목을 조르고 팠던 욕구를 상기했다. 그의 숨이 한순간 거칠어졌다. 그는 마지막 남은 계단 두 단을 한 번에 내려오다가 넘어질 뻔했다.

 예전에 그는 음주 운전 차에 뺑소니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를 치고 달아났던 중소기업 이 세는 사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차 안에서 잠든 남자의 손에는 대마초가 들려 있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몇 분만 늦었어도 라는 말이 자주 나오곤 한다. 화수가 그랬다. 만약 보경의 신고가 십 분만 늦었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상 상태만 보자면 팔 하나 부러진 정도지만 애비가 작살내고 남은 뇌의 반이 오작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병원까지 동행해 주었고 그 이후로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는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이라는 개념을 흔해 빠진 연인들의 사랑과 동일시하면 안 되었다. 왜냐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의 것이니까.

 문득 그는 보경의 모친이 한 말을 떠올렸다. 경찰도 한 말이지만 머리가 아예 사라졌다는 것이다. 절단부는 예기나 톱 같은 것으로 자른 것이 아니었다. 뜯어냈다고 해야 맞는다고 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대체 무엇이였다. 그 아름다운 얼굴이.

 그는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다가 술집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단단히 취하는 날인지 술에서 단맛이 났다. 알딸딸하게 취한 그는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많았다. 걷거나 차를 타고, 대화를 나누고, 웃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는 그들 한가운데로 비척거리며 걸어갔다. 걷자고 생각했다. 집까지는 멀었다. 그런데 뒤에서 힘껏 밀치는 것이다. 쓰러진 그는 지갑을 뺏겼다. 도망치는 소매치기가 보였다. 쓰러진 그는 한동안 웃기만 했다.

 “삼천 원 남았다, 삼천 원! 다 가져라!”

 

 중형은 시멘트벽에 몸을 부딪치며 걸었다. 손으로 벽을 짚었다. 손이 까칠까칠한 벽면에 쓸렸다. 벽 위의 블록에는 돌멩이가 박혀 있었다. 벽에는 누군가 색이 나오는 돌로 섹스하고 싶다는 소망을 적어 놓았다. 전봇대에는 오래된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는 허리를 굽히며 힘겹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목구멍에서 쌕쌕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의 둥근 콧구멍에서 나른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러는 거야?’

 그는 자신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후렸다. 몸이 너무 아파 아까 병원을 찾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는 내심 여자의 머리가 뱃속에서 발견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하지만 벌써 소화가 된 것인지 엑스레이에 나오지 않았다. 여자의 머리를 먹은 다음 날 아침 변기에다가 피 섞인 똥칠갑을 했었다. 똥 무더기에 뭐가 섞여 있었을까 생각했다. 너 똥까시 했구나? 그 생각이 뭐라고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는 폭소를 터트렸다.

 고양이 소리는 지금도 들렸다. 모자챙 밑으로 뜨거운 햇볕이 들어왔다. 그는 내가 옷을 너무 두껍게 입었나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름인데 후드재킷까지 걸치고 있었다. 시각적인 면에서나 다른 이유에서나 지금 거의 물탱크가 다름없었다. 그는 많은 게 마려웠다. 오줌이나 똥 말고도. 민경아 한 바가지 싸줄게! 자기야, 사랑해!

 그는 몇 걸음 가다가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마치 수영을 하는 것처럼 팔을 휘둘렀고 뒷발도 굴렸다. 그의 콧김에 흙이 흩어졌다. 그는 콘크리트 냄새를 들이키며 몸을 세웠다. 그의 배에서 삐이익하고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그는 껍질을 벗길 것처럼 연신 안면을 세게 문질러댔다. 미칠 듯이 더웠고, 땀이 났다. 온몸이 냄비처럼 펄펄 끓는 것 같았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그는 두 다리를 떨며 일어났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잘난 남자가 여기에 있지. 건물주라고. 올챙이가 마려워. 지독한 가뭄에는 올챙이 비가 필요해. 열 바가지 쌀래! 창자와 뇌, 엉덩이 살, 배꼽시계, 눈깔사탕, 내장 풍선, 손가락 고치, 임신이 되려면 빠구리를 해야 돼. 민경아 우주의 기원이 뭔지 알아? 건물주가 가고 있어. 빅뱅을 일으켜서 권위적인 아빠와 인자한 엄마, 귀염둥이 딸과 딸딸이쟁이 아들을 만든 섹스가 얼마나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지 알 게 할 거야.

 그는 침을 질질 흘렸다. 순간 손목 아래가 아파서 보니 퉁퉁거리는 맥박이 보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손을 입으로 덮쳤고, 아찔할 때 정신을 차린 후에는 잘근잘근 씹던 것을 멈췄다. 금방에라도 앞니 네 개가 빠질 것처럼 잇몸에서 심한 경련이 났다.

 “어머, 괜찮으세요?”

 삼십대 여성이었다.

 그는 퍼질러진 상태로 큰 머리만 흔들었다.

 “괜찮아요? 구급차 불러드려요?”

 “저 좀 도와줄래요?”

 맛있겠다.

 “잠깐만요.”

 그녀가 핸드폰을 꺼냈다.

 내가 건물주라서?

 “그거 말고요. 씨발년아. 그냥 도와줘요.”

 “네?”

 그녀가 다가왔다. 쩝쩝쩝.

 “그게 아니라고!”

 그는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여자의 왼팔과 목 아래서 아래턱까지 와작와작 뜯어 발겨 삼켜 버렸다. 목구멍으로 넘기기 직전에 치아와 치아, 혀와 혀가 부딪쳤다. 딥키스. 그는 목구멍 안쪽 면에 닿은 이가 슥 미끄러지는 걸 선명하게 느끼며 그 맛을 음미했다.

 

 아이들은 벌써 지루함을 느껴 몸을 비비 꼬았다. 아무리 방학식이라고 한들 교장의 훈화를 견디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근래 도시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이야기 때문이라도 학교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더욱이 삼 학년 중 세 명이 죽고 한 명이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었다. 같은 학교 학생들이 사건에 연루되었으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떠들고 싶어지는 게 당연했다.

 “시간이 참 빠른 거 같아. 벌써 방학이라니.”

 재성이 말했다. 도아는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재성은 여자 줄에 서 있는 수민도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고루한 말투로 진행되는 교장의 훈화는 그만큼 지루했다.

 “야, 그거 들었냐? 머리가 통째로 사라졌대.”

 순간 도아는 아이들의 대화에 귀 기울였다.

 “사람이 죽었는데 머리만 잘려져 있고 다른 데는 깨끗했다잖아. 그래 인마, 머리만 없어졌어. 꼭 짐승이 먹어 치운 것 같은 모양새라던데. 야, 진짜 겁나지 않냐? 오늘 아침만 해도 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인상을 쓰고 지나다니고 있더라.”

 “무슨 생각해?”

 수민이 머리를 내밀어 은근슬쩍 말했다.

 “아무 생각도.”

 도아가 말했다. 그는 수백 명의 전교생이 모인 조회 때면 기원전 삼백삼십사 년에 페르시아 원정길에 오른 마케도니아·헬라스 연맹군을 떠올렸다.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의 여러 도시를 해방한 알렉산더 대왕은 시리아에서 이집트까지 세를 넓혔다. 그 용감무쌍한 군대의 장엄한 행진이 도아에게 깊은 감명을 준 게 사실이었다.

 도아 앞에 나타난 배키는 알렉산더를 모방하고 있었다. 양쪽 팔이 없는 알렉산더 석상이었는데 대리석으로 된 알몸은 희생자들의 피로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도아의 손짓에 배키는 순식간에 박살 났다. 전투를 목격한 예술가들로 인해 초능력자 소년은 신의 아들이나 심부름꾼, 어떤 계승자 같은 것으로 서사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었다.

 “거짓말.”

 “거짓말 아닌데.”

 “우리 모임은 끝난 게 아니야. 알지?”

 “알아.”

 “방학이라고 해도 말이야.”

 “알지.”

 방학식이 끝나고 아이들이 우르르 교문을 나갔다. 도아와 재성은 함께였다. 도아는 오랜만에 재성의 집에 갔다. 할머니만 없다뿐이지 콩만 한 방에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집에 놀러 갈래?”

 커피를 마시는데 도아가 새삼스럽게 말했다. 재성은 자신이 불쾌한 아이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선뜻 대답을 못 했다.

 “오늘 갈래? 너한테만은 소개하고 싶은데.”

 너한테만은이라는 말이 재성의 가슴에 여운을 남겼다. 재성은 주저하다가 그에 응했다. 보발과의 정식 만남은 당연히 차에서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보발이 재성을 향해 말했다.

 “보발, 평소에 하는 것처럼 하면 돼. 재성이는 나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으니까.”

 “그렇습니까, 도련님. 알겠습니다.”

 도련님이란 소리에 재성은 저도 모르게 친구를 힐긋거릴 수밖에 없었다. 재성은 자신이 앉아 있는 시트를 잡고 있었다. 차는 문이 두꺼웠고 좌석은 편안했다. 그는 발밑에서 잔잔히 지나가는 아스팔트를 느꼈다. 왠지 차창 밖 분위기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개국 마을 방향이어서 재성은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폐건물에서 보았던 대저택이 점점 가까워지자 재성은 설마 했다. 설마가 현실이 되자 그는 가슴까지 철렁했다.

 “저 집은 그때! 저게 너희 집이라고?”

 “그래.”

 재성의 입에서 힉 소리가 났다. 저택은 재성에게 위압적인 태도였다. 그에겐 거의 학교만 하게 느껴졌으니. 석재가 골고루 섞인 실내 장식은 고급스러웠고 인테리어에서 고풍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림, 조각품, 융단, 벽장식 어디 하나 기품이 안 느껴지는 곳이 없었다. 재성은 대기업의 회의실에나 있을 법한 긴 식탁에서 허둥지둥 저녁을 먹었다. 메인 요리는 구이 요리였다. 재성은 식탁에서 진행되는 모든 게 어려웠다. 의도치 않게 눈칫밥을 먹다가 도아를 흉내 내며 샴페인을 마셨고 배가 부른 줄도 모르고 나이프와 포크를 손에서 놓았다.

 서재에서 재성은 입을 헤 벌린 채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하늘 높이 치솟은 천장까지 빼곡한 책은 과장을 보태 수십만 권은 되어 보였다. 세상의 책이 여기에 다 있었다. 도아를 따라 이 방 저 방에 들어가 구경하던 재성이 궁금했던 건 뭐니 뭐니해도 귀공자가 자는 방이었다. 깔끔하기 그지없는 도아의 방도 보통 크지 않았다. 마치 광고에서 나오는 모델하우스 같아서 재성은 아무것도 만지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재성은 도아를 따라 저택 밖으로 나갔다. 해가 서쪽 산등성이를 물들이는 걸 두 사람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재성아 알지? 저기에 우리가 갔던 폐건물이 있어.”

 참으로 고즈넉한 분위기의 마을이었다.

 “도아야 넌 정말 행복할 거 같아. 완전…….”

 재성은 도아의 눈을 보지 못했다. 이런 아이가 내 친구였구나 싶어서 문득 엄청난 계급 차이를 느꼈던 것이다.

 “그저 그래.”

 도아가 숨을 들이셨다.

 “……즐겁지 않아?”

 “학교생활에서만.”

 “너야 애들에게 워낙 인기가 많으니까. 어디서든 환영받잖아, 넌.”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데.”

 재성은 도아와 함께 밤늦도록 저택 주변을 돌아보았다. 도아는 카드 수백 장을 이용하여 집을 만드는 것을 보여주었고 독학으로 배운 몇 가지 마술과 직접 만든 달콤한 샴페인도 선보였다. 도아는 세상에서 제일 귀한 손님 중 하나인 절친의 반응에 신이 났던지 개그를 해야지만 살 수 있는 종말의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하지 않을 썰렁한 몇 가지 농담도 했다. 어쩔 수 없이 호응하던 재성이 나중에는 지고 말았다. 그는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배를 잡고 웃어댔다.

 

 재성은 보발의 차에 혼자 있었다. 차 안은 대화 없이 조용했다. 재성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부담스런 침묵이었다.

 그러다 보발이 말을 걸어왔다.

 “도련님에게 재성 군 같은 친구분이 있다니 잘 됐습니다.”

 “아, 네…….”

 재성은 말을 놓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 말을 하기가 괜히 부담스러웠다.

 “도련님의 학교생활이 어떤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도아는 좋은 아이예요. 그래서 인기가 최고로 많아요. 얼굴도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재성 군이 보기에 도련님은 어떤 것 같습니까? 즐거워 보이십니까?”

 “네.”

 재성은 더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입이 무거워지기만 했다.

 “주제넘은 소리일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도련님을 잘 부탁하겠습니다. 그러면 재성 군에게도 도련님은 좋은 친구로 남을 겁니다. 저로서도 기분 좋은 일일 테지요.”

 “저도 도아랑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말입니까?”

 “네.”

 “그런 줄 알겠습니다.”

 “……네.”

 보발이 점잖게 웃었다. 그 모습에 재성은 긴장이 풀렸다.

 “재성 군은 여자친구가 없는지요?”

 “아, 전, 없어요, 저는.”

 “실례를 범했습니다.”

 “아, 괜찮아요. 근데 도아는 있는 거 같던데.”

 할 말이 없어서 재성은 도아에게 미안한 짓을 했다.

 “제가 보기에 새침데기 아가씨 같습니다. 그게 나쁘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네.”

 재성은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 힘이 부쳤다. 몇 마디 더 주고받는 사이 내릴 때가 되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재성은 차가 출발한 뒤에야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사는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 자동차였다. 대저택의 차고에는 리무진을 포함해 열 대가 넘는 외제차가 있었다. 억이 넘지 않은 차가 없었고 제일 비싼 차는 수십억이나 갔다.

 반지하로 들어가 열쇠를 꺼내던 그는 자물쇠가 뜯어져 있는 걸 깨달았다. 그는 맹꽁이자물쇠를 주워들었다. 문을 열자마자 처참한 꼴이 된 방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래 봐야 가져갈 게 없었다. 없어진 건 돼지저금통이 다였다. 그는 잠시 멍하니 서서 도아의 저택을 생각했다. 정확히는 거기에 있을 도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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