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는 떨떠름했다.
“수상한 사람을 봤다던가 하는…….”
그는 남자가 하는 말을 걸러 들었다.
“못 봤어요.”
그는 간단히 말했다. 남자는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며 동료와 함께 가버렸다. 그들은 지나가는 여성을 불러 세웠다. 그다음에는 옷가게에 들어갔다. 경찰이 분명했다. 화수는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잠복하는 경찰도 많을 것이다. 이제 그것을 하려면 위험 노출을 최소한으로 해야 했다. 범행 대상으로는 노숙자 계통이 좋을 것이지만 그건 흥미가 나지 않으니 문제였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한 그는 우습게도 폐가를 검색했다. 그런 곳이라면 산이나 바다 같은 곳도 아니라서 이동하기에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도시 주변에 있는 폐가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곳을 탐사하겠답시고 오는 것도 새파랗게 어린놈들이었다. 그는 도로 가의 연석을 밟고 섰다. 뒤에서 구부정한 노인네가 지팡이로 바닥을 더듬으며 지나갔다.
쓸 만한 곳이 나오지 않아 그는 머리를 튕겼다. 가능하다면 도시에서 가까운 곳이라야 했는데 적당한 곳이 없었다. 약간 외진 곳의 짓다가 만 아파트는 인터넷이 아니라 발품을 팔아 얻은 수확이었다.
그의 방문이 잦은 건 당연한 결과인데 아무래도 내부의 배열이나 위치 같은 것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별거 없어서 결과적으론 시간 낭비에 불과했지만. 눈에 띄는 점은 여기가 청소년의 일탈 현장을 겸한다는 것이다. 그는 경찰에 잡히기 일보 직전의 위험천만한 상황을 가정했다. 꼬마들에게 뒤집어씌울 수 없을까 하고 판을 짜던 그는 약간 낙심한 표정이었다.
그런 어느 하루에 그는 뜻밖의 방문자들과 맞닥뜨렸다. 폐가 탐험을 위해 온 도아 일행이었다.
“진짜? 폐가 탐험을 하러 왔다고?”
화수는 관심도 없으면서 놀라는 척하며 말했다. 일종의 밑밥이었다. 이럴 때는 우호적인 태도가 좋았다.
“네, 그게 우리 음, 취미 같은 거예요.”
수민이 밝게 말했다.
“취미라.”
화수는 그들이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만 코웃음을 쳤다.
“근데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요?”
그녀가 물었다.
“나도 너희와 비슷한 취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지.”
순간 화수는 이 건물을 배경으로 한 근거 없는 소문을 지어낼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더 자세히 물어올 수도 있고 자기가 말한 것을 나중에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신뢰를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넌 어째 말이 없구나?”
화수가 재성에게 말했다.
“예?”
재성이 얼굴을 붉혔다.
“그럼 둘러보고들 가.”
그렇게 말했지만 화수는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다. 그가 멋쩍어하며 말했다.
“혹시 말인데, 나도 동참해도 될까?”
수민은 의사를 확인하려는 목적인지 친구들을 번갈아 힐끔 보았다.
“괜찮대요.”
그녀가 말했다. 탐사를 하는 동안 그녀는 시종일관 재잘거렸고 화수는 착한 형, 오빠 연기를 위해 되도록 부드러운 목소리 톤을 유지했다. 재성이 살짝 삐끗하자 과도하게 몰입하여 걱정하기도 했다. 그 상황에도 도아는 건물을 둘러보고만 있었다.
탐사가 끝나고 건물 밖으로 나오면서 화수가 말했다.
“햐, 오늘 재밌었어! 너희들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거 같아. 너희들 혹시 이런 곳 자주 다녀?”
“당연하죠. 말했잖아요, 취미 같은 거라고.”
수민이 밝게 말했다.
“너희들, 방문했던 곳을 재방문하기도 하니?”
화수가 전략을 염탐하기 위해 말했다.
“아뇨. 아직까진 그런 일 없었어요. 근데 왜요?”
그녀가 빗방울이 떨어졌나 하여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하늘이 한껏 찌푸리고 있었다.
“그냥, 궁금해서.”
화수가 웃으며 답했다. 그는 그렇지 하며 통성명을 요구했다. 전략의 일종이었다. 그들은 학교와 이름, 나이 같은 걸 교환했다.
왠지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아서 말해 주는 거예요. 수민의 그 말이 화수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 이거 뭐 있나? 실은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아, 우리 XX고교 예쁜이들! 화수는 XX고등학교를 생각하며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XX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회포를 푼 적이 있었지 않던가. 결국 수민의 예언은 사실이 되었다. 그들은 같은 아파트에서 또 마주치게 된 것이다.
“너희들 여기 웬일이야?”
화수가 드러낸 감정은 놀람, 불쾌함, 흥분감이었다. 도아 일행이 보기에는 놀람과 반가움이었지만.
“어? 오빠는요?”
“나는 그냥…….”
“취미예요?”
수민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그거야! 그건 그렇고…… 재방문은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
“얘 때문에요. 뭔가 감이 좋지 않대요.”
그녀가 도아를 가리켰다.
도아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배키를 생각하고 나온 결과였다. 솔직히 그는 불온한 느낌을 준 것이 이 건물인지 화수인지 헛갈렸다. 하지만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다. 화수였다. 화수에게서 어딘가 불안전하고 면도날처럼 서늘한 느낌이 났다. 일찍이 아는 배키와는 다른 감각이었지만 찌릿찌릿한 이상 감각임은 틀림없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예요?”
도아가 던지듯 물었다.
“뭘 하고 있었냐니?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냥 좀 둘러보고 있었을 뿐이야. 새집을 구할 때는 항상 그렇잖아?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새집이라고. 무기한 공사 중단된 아파트긴 하지만.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항상 혼자 다녀요?”
도아가 진지해져서 말했다.
“항상은 아니었어. 여자 친구가 있었지. 지금은 헤어졌지만.”
“미안해요.”
수민이 대신 사과했다.
“미안해할 거 없어. 헤어진 게 뭐 대수라고. 여자야 널리고 널렸는데.”
그렇게 말하며 화수는 바지 주머니에 오른손을 넣었다. 피부 결에 닿은 잭나이프의 단단한 감촉이 그의 피를 녹였다.
“너희들 다음 목표는 어디야?”
“아직 정한 건 아닌데…….”
“개국에 있는 폐건물이요.”
도아가 수민의 말을 가로챘다. 원래는 그리로 가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아파트로 바뀌었던 것이다.
“개국이라면 아, 거기군. 좀 먼 곳이네. 주로 버스를 이용하나?”
수민이 두 다리를 팡팡 때렸다.
“오, 그래?”
“이번 달 이십 일에 거기 갈 거예요. 그 치?”
수민이 밝게 말했다.
그들과 헤어진 화수는 이끌린 듯 보경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녀를 우연히 길에서 마주한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 돼지 새끼는! 그녀와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는 중형을 한눈에 알아본 그는 당혹감을 느꼈다. 금방까지도 중형과 한자리에 있던 그녀의 모습을 본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 잔영으로 남았다.
‘남자 친구가 저딴 놈이야? 그게 말이 돼? 눈탱이라도 맞은 거냐? 나하고 헤어지고 만나는 게 저런 돼지 새끼라고?’
중형은 어딘지 만만해 보이면서도 위화감이 드는 인물이었다. 화수는 자신도 모르게 중형을 따라가게 되었다. 한 마디로 짧은 순간 화수가 선택한 건 전여친이 아니었다. 나름 멋이라고 생각했는지 중형이 쓰고 있는 모자에서 올이 심하게 풀려 있었다. 중형은 셔츠 안에 사람 얼굴이 크게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다리는 짧았고 모자 밖으로 삐져나온 뒷머리에는 기름기가 줄줄 흘렀다. 손에는 무게 탓에 축 늘어진 작고 검은 비닐 봉투를 들고 있었다.
중형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때마침 전봇대가 있어서 화수가 그 뒤에 몸을 숨겼다.
“야옹. 야옹.”
중형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코를 푸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순간 화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중형이 쓰레기를 투척했는데 거기서 고양이 앞발 하나가 굴러 나온 것이다. 화수는 놀란 듯이 중형의 뒷모습을 인상 쓰다만 얼굴로 바라보았다.
‘네가 고양이 킬러였어?’
화수는 주머니에 있던 손을 스르르 뺐다. 양손에서 땀이 배어났다. 결국 그는 중형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럴 수가 없었다.
사 층 건물을 둘러싸고 도는 바람이 비명 소리처럼 들리는 소음을 만들었다. 도아 일행은 철문을 간단히 통과했다. 바람이 불자 잡풀이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서늘한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여느 폐가가 그렇듯 잡동사니가 널려 있었다. 방이 많았고, 비율적으로 문이 없는 곳이 많았다. 천장에는 물이 고여 있어서 바닥으로 한 방울씩 떨어졌다. 벌건 못이 드러나 있는 곳은 특별히 조심해야 할 곳이었다.
방 몇 군데를 흥미롭게 들르고 나온 그들은 어느 방문 앞에 섰다.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다. 문 윗부분에는 네모꼴의 접착 했던 것이 떨어진 자국이 있었다. 수민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녀가 남자들의 등을 찰싹 때리며 주문했다.
“부셔.”
“쉽게 말하네.”
도아가 말했다.
재성은 그녀의 말대로 하려다가 도아의 시큰둥한 반응에 몸을 사렸다. 둘은 문에 힘차게 발길질을 했다. 몇 번을 그렇게 하자 낡은 경첩에서 문이 떨어져 나가려고 했다. 윗부분이 떨어져 나온 문을 힘주어 밀자 덜컥하고 열렸다. 그들의 눈에 불시에 들어온 것은 온 방에 깔려 있는 서류였다. 한 장을 들어 읽던 재성이 찝찝한 얼굴이 되었다.
“여기 정신병원이었나 봐.”
재성이 퉤퉤 하듯 손을 빠르게 휘저으며 말했다.
“그러네.”
“그러네가 뭐야.”
수민이 도아를 질타했다.
천장의 형광등에는 거미줄이 잔뜩 처져 있었고 주위는 검게 변해 있었다. 다른 방도 그랬지만 여기의 벽지도 찢어발겨 있었다. 물 얼룩이 나이테처럼 져 있는 곳도 있었다. 공기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유리로 덮인 철제 캐비닛은 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는 담배꽁초 몇 개가 떨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다녀갔나 봐.”
“그랬겠지.”
도아가 수민의 말에 동의했다. 어련히 그러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멀게는 폐가 동호회부터 가깝게는 동네 주민이나 병원 관계자일 수도 있었다.
“돈이라도 나올까 싶었나?”
수민이 뚱하게 말했다.
재성은 플라스틱 서류꽂이가 쓰러져 있는 철제 책상의 수납장을 열어 보았다. 가위나 볼펜 몇 자루뿐 아무것도 없었다. 흥미를 잃고 방에서 나온 그들은 발소리와 말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복도를 걸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방학이다!”
그녀가 뿌듯한 듯 말했다.
“그거 좋은 거야?”
“어쩜, 얘 좀 봐. 방학이 싫은 사람도 있니? 저기요, 하도아 씨?”
“그냥, 그렇게 좋은 건가 싶어서.”
“미온이 못 볼 생각에 슬퍼져서 그러지, 너?”
“걔는 그냥 아는 사람이고.”
“슬픈 이야기네.”
그녀가 우는 척하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도아의 말에서 희망을 갖게 된 그녀였다. 예상대로 폐가 동호회 일은 재밌었고 바람대로 도아와 엄청 가까워졌다. 솔직히 그녀는 함께 어울리고부터 더 도아가 각별하게 느껴졌다. 전에는 만약 그가 사귀자고 한다면 흔쾌히 승낙할 자신이 있는 정도로 끝났으나 지금은 하도아 라는 아이가, 그녀가 일상에서 받은 설렘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방금도 넌지시 눈빛을 건넨 그녀였다. 하지만 도아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살짝 얄미웠다.
“하긴, 걔 보면 딱 되바라진 느낌이 나긴 해.”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면 못 써.”
“네, 네, 하도아 씨. 근데 도아 너희 집 여기 근처랬지?”
아까 수민은 멀리서도 그 위용을 짐작게 하는 대저택을 보고 놀랐었다. 도아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거기가 자신의 거처라고 말하지 않았다.
“누가 있는 거 같아.”
그때까지도 잠자코 있던 재성이 말했다. 그들은 잠깐 서서 귀를 기울였다. 재성의 말대로였다. 뭔가 질질 끌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저기서 화수가 나타났다. 그들과 맞닥뜨린 화수의 얼굴에 언뜻 난감해 하는 빛이 들었다.
“이런, 들켜 버렸네. 나도 모르게 오게 되더라.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
화수가 약간 달아오른 얼굴로 슬쩍 웃으며 말했다.
“뭐 어때요. 잘 왔어요.”
수민이 말했다.
순간 화수는 아파트 건물에서의 일을 생각했다. 공장 작업복을 입은 이십대 남자였다. 남자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화수는 뒤따라갔다. 널찍이 서 있는 상가 몇 군데서 CCTV가 보였지만 방범용으로 제작된 모형임을 알고 있었다. 여덟 번째로 바닥에 철퍼덕 넘어진 남자의 주변 장소가 으슥했다.
가로등의 간격이 매우 멀었다. 화수는 작업을 실행하려다가 멈추고 다시금 주위를 살폈다. 길가에는 주차된 차도 없었고 괜히 주위를 맴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인간이야말로 형사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런 곳에까지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가서 남자의 어깨 밑에 목을 집어넣었다. 남자가 웅얼거렸다. 술 냄새가 지독해서 화수는 이따금 숨을 참았다. 그는 아파트로 남자를 밀어 넣었다. 삼 층이었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땀에 젖은 그는 발에 걸리는 스티로폼을 옆으로 차냈다. 숨을 헐떡이며 잠시 쉬었다.
칼을 꺼내려다가 멈췄다. 석회 냄새가 거지 같았다. 그의 손이 간헐적으로 꿈틀거렸다. 그의 두 손이 남자의 목 위에서 멈췄다. 보경이 생각났던 것이다. 언뜻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시달리던 그는 두 손으로 남자의 목을 감쌌다. 따뜻했다. 툭툭 뛰는 맥박이 느껴졌다. 그는 남자의 목을 느슨하게 졸랐다.
남자가 그의 손을 밀어내며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깬 것은 아닌 것이 바로 곯아떨어졌다. 화수는 짧은 시간 남자의 목에 압박을 가했다가 벌떡 일어났다. 남자가 헛소리를 하며 기침을 했다. 그 길로 화수는 아파트를 나왔다. 가만 생각해보니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다. 이 장소는 그 녀석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수민이하고 재성이하고, 그래, 너는 도아랬나?”
화수의 말을 도아는 못 들은 척 못 본 척 자연스럽게 무시했다.
넷은 남자 화장실을 지나쳤다. 그 안은 마치 시쳇더미라도 태운 것처럼 되어 있었다. 소변기가 깨진 곳도 있었고, 창문이 남아난 곳이 없었다. 이후로 그들은 몇 개의 방을 더 보았다. 아무것도 없어서 일차원적으로는 깨끗했다.
“너희들 이런 곳에서 뭘 얻는 거야?”
화수가 말했다.
“호기심을 충족 받는 거죠.”
수민이 말했다.
“너 수민이랬지?”
그는 알면서도 물었다.
“네, 맞아요.”
“예쁜 이름이다. 너 학교에서 인기 많지?”
“뭐 그냥저냥……, 오빠 이름이 뭐였더라? 성을 모르겠어요.”
“팽화수.”
일전에 그는 가명을 데려고 했었다. 하지만 영 점 일 초의 순간 본명을 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손해 보는 거 같지만 동물적 감각을 믿은 것이다.
“우와, 팽 씨.”
그녀는 진심으로 신기해했다.
화수는 어떻게 하고 있나 싶어 도아와 재성 쪽을 곁눈질했다. 도아는 눈만 추켜올려서 건물의 축축한 천장을 보고 있었고 재성은 발로 발밑의 흙을 고르고 있었다. 여기저기 흙 천지였다. 그들은 넝마처럼 쌓여 있는 포대 자루를 지나쳤다. 그녀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누구 짓이야? 수민이 너야?”
화수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벽 아래에 있는 대변은 꽤 오래된 것이었다.
“아, 하지 마요!”
수민이 앙탈을 부렸다.
똥이라니, 도아는 괴로워서 눈을 감았다. 재성은 마치 내가 범인이요 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최선을 다해 선한 미소를 짓고 있던 화수지만 도아를 쳐다볼 때는 미묘한 살의가 드러났다. 씨발 새끼. 존나 찢어버리고 싶게 생겼네.
그들은 삼 층으로 올라갔다. 침대가 그대로 있는 방이 많았다. 화수가 침대를 발로 찼다. 먼지가 풀풀 일어났다. 냄새도 맡기 싫어서 도아는 물러섰다. 벽에는 그을음 같은 것이 있었다. 다른 방에는 선반이 관처럼 쓰러져 있었다. 물리적인 힘을 가해 침대를 성냥개비로 만든 곳도 있었다. 커튼이 수의처럼 그 위를 덮고 있었다.
사 층에서도 특이점은 없었다. 그녀가 바라는 괴현상은 없었다. 도아가 화수를 신경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거기 다시 가볼까? 거긴 진짜 귀신이 살잖아?”
“재성이랑 가 본 적이 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도아가 알아듣고 말했다. 재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재방문한 적은 없었다.
“정말?”
그녀가 말했다.
“뭐야? 재밌는 이야기면 나도 끼워줘.”
수민이 설명하자 화수는 되게 흥미로워했다. 물론 연기에 기인한 거였다. 속내는 마치 괴담 이야기의 영안이며 하는 것들을 대할 때와 같았다. 그런 건 웃자고 하는 소리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무슨 미친 소리란 말인가. 그는 착하게 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연기 속에서 번쩍하고 빛나는 쇠붙이가 튀어나왔다. 꺅하는 여자의 비명 소리는 노래방 마이크처럼 에코가 심했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는 도아를 죽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중형은 잊는 것이 나았다.
